좌선의 강의·혜거스님

〈38〉생사대사는 출가의 동기/‘윤회 벗어나는 일’ 최우선 명제

通達無我法者 2009. 10. 24. 02:28

 

 

‘윤회 벗어나는 일’ 최우선 명제

〈38〉생사대사는 출가의 동기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일은 생사보다 더 큰 일이 없다. 그러므로 불교에서는 생사가 가장 큰 일이라 하여 생사를 ‘생사대사(生死大事)’, ‘생사사대(生死事大)’, ‘대사일번(大死一番)’, ‘일대사(一大事)’,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한다.
 
오조 홍인대사(五祖弘忍大師, 594~674)가 제자에게 “세상 사람들은 생사의 일이 크거늘 너희들은 종일 복전만을 구하고 생사고해에서 벗어날 것은 구하지 않으니 자성이 어리석으면 복으로 어찌 구원될 수 있겠는가?(世人生死事大 汝等終日只求福田 不求出離生死苦海 自性若迷 福何可救)”라고 하였다. 즉 생사고해에서 벗어나려면 자성을 밝혀 깨달아야만 가능하다. 설사 종일 복전을 구해 염불하고 간경과 참선을 한다해도 결국 자성을 깨닫지 못하면 생사고해를 벗어날 수 없다는 뜻이다.
 
영가현각선사(永嘉玄覺禪師, 665~713)는 육조혜능대사(638~713)를 만난 자리에서 앉아계시는 육조스님을 세바퀴 돌고는 육조스님 앞에 주장자로 땅을 한 번치고 서 있었다. 이에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수도하는 사람은 3천위의와 8만세행을 갖춰 겸허해야 하거늘 대덕은 어느 곳에서 왔길래 대아만을 내는가?”라고 하시니, 영가스님께서 “생사의 일이 크고 무상이 신속합니다(生死事大無常迅速)”라고 답을 하여 생사에서 벗어나는 일 밖에 그 무엇에도 관심이 없는 견처를 보임으로써 육조스님으로부터 법을 전수받게 된다.
 
또한 도헌선사(道禪師)도 “생사의 일이 중대하니 빨리 알아차리고 부질없이 업식이 망망하게 지내지 말라(生死事大快須薦取 莫爲等閑業識茫茫)”고 하였다. 선림보훈(禪林寶訓)에서는 만암도안(萬菴道顔, 1094~1164)선사가 “선배들은 생사의 일이 크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대중과 마주하여 의심을 결단하였으며, 이미 뜻을 밝히고 나서는 생멸심을 일으키지 않았다(前輩念生死事大對衆決疑 旣以發明未起生滅心也)”고 하였으며, 수암단일(水庵但一, 1107~1176)선사도 “옛사람들은 생사의 큰일을 위해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古人爲生死事大 不食不寢)”라고 하였다.
 
 
禪에서는 ‘生死大事’를 마땅히 관심 기울일
 
첫 번째 과제로 삼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선승은 출가해 목숨 거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이처럼 세상을 살아가는 일 중 생사의 일만큼 큰 일이 없고 시시때때로 변하는 무상이 너무도 신속하여 생사윤회에서 벗어나 자유자재한 해탈을 이루기 위해서는 시간을 지체하지 말고 오직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그러므로 생사의 문제는 출가자의 가장 큰 출가의 동기가 되어 왔던 것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삼법경(三法經)’에서는 “일체 세간이 좋아하지 않는 3가지 법이 있다. 무엇이 3가지인가. 노.병.사(老病死)이다. 이와 같은 3가지 법은 일체 세간이 좋아하지 않는 것이다. 만약 일체세간이 좋아하지 않는 3가지 법이 없었다면 모든 불세존(佛世尊)께서 세상에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此有三法 一切世間所不愛念 何等爲三 爲老病死 如是三法 一切世間所不愛念 若無此三法世間所不愛者 諸佛世尊不出於世)”라고 하였다.
 
이렇듯 생노병사는 모든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나오신 까닭이다. 부처님께서 태자시절에 동서남북 사문을 유람하실 때 늙어서 거동이 불편한 사람과 병들어 신음하는 사람과 죽어서 장례를 치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시고 노병사의 3가지 고통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시다 출가하셨고, 출가하셔서 바라문의 수행도량에서 스승을 만나 바라문의 수행법을 모두 타파하시고 최상의 수행경지를 체험하셨지만 노병사 문제는 해결되지 않은 것을 자책하시면서 생사해탈의 도를 성취하지 못하면 차라리 이대로 죽을지언정 다시 일어나지 않겠다는 신념으로 생명을 걸고 수행하신 결과 성불에 이르시게 된 것이다. 부처님뿐만 아니라 출가하여 사문이 되는 것 역시 생노병사에서 벗어나는 일만이 최우선의 명제인 것이다.
 
<잡아함경(雜阿含經)> ‘적제상경(責諸想經)’에서는 “모든 선남자들아, 너희들은 왕이나 도적이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요, 빚진 사람도 아니며, 두려움 때문도 아니요, 생활이 궁해서 출가한 것도 아니다. 바로 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번민.괴로움을 해탈하기 위해서이니, 너희들은 이것 때문에 출가한 것이 아니냐?(諸善男子 汝不爲 王賊所使 非負債人 不爲恐怖 不爲失命而出家 正爲解脫生老病死憂悲惱苦 汝等不爲此而出家耶)”라 하였고, 감산덕청(山德淸, 1546~1623)도 저서 <몽유집(夢遊集)>에서 “옛부터 출가는 생사대사 뿐이다. 부처님이 출가한 것도 그 때문이니, 생사 외에 다른 불법은 없고, 불법 외에는 다른 생사가 없다(出家本爲生死大事 卽佛祖出世 亦特爲開示此事而已 非於生死外別有佛法 非於佛法外別有生死)”고 하였다.
 
희안수좌(希顔首座)는 송나라때 스님으로 강직하고 과감한 성격으로 불법은 물론 다른 학문까지도 통달하였으며 품격과 절도로 스스로를 지켰다. 행각을 마치고 옛 초막에 돌아와 숨어 살면서 세속에는 발을 들여놓지 않았다. 항상 문 닫고 좌선만 하니, 수행이 고결한 사람이 아니면 스님과 벗할 수 없었다. 명공귀인들이 여러 차례 몇몇 절에 주지로 모시려 했으나 굳이 거절하였다. 당시 참이(參已)라는 행자가 있었는데, 승려가 되고자 하여 스님을 시봉하고 있었다.
 
그러나 스님은 그가 승려 될 그릇이 못됨을 알고 <석난문(釋難文)>이라는 글을 지어 물리쳤다고 한다. <석난문>에서 “출가해서 승려가 된다는 것이 어찌 작은 일이겠는가. 안일함을 구하는 것도 아니요, 따뜻하고 배부름을 구하는 것도 아니며, 달팽이 뿔 같은 하잘 것 없는 명리를 구하는 것도 아니다. 생사를 위함이고, 중생을 위함이며, 번뇌를 끊고 삼계의 바다를 벗어나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고자 함이다(蓋出家爲僧 豈細事乎 非求安逸也 非求溫飽也 非求蝸角利名也 爲生死也 爲衆生也 爲斷煩惱出三界海續佛慧命也)”라고 하였다. 이러한 희안수좌는 임종시 목욕을 하고 단정히 앉아 염불하며 천화했다.
 
이러한 것으로 볼 때 출가하여 승려가 된다는 것은 생사윤회를 벗어나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는 중대한 일인만큼 출가한 이들에게 생사대사의 문제보다 더 중요한 일은 없으며, 또한 반드시 해결해야할 커다란 명제인 것이다. 다시 말하면 선의 궁극적인 관심은 고통의 근원을 뿌리째 뽑아내고 개별 실존의 생사대사를 철저히 해결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에서는 ‘생사대사(生死大事)’를 마땅히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첫 번째 과제로 삼고 있는 것이며, 이의 해결을 위해 선승들은 출가하여 목숨을 거는 수행을 하는 것이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