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선의 강의·혜거스님

〈37〉불변의 고정된 실체란 없다/중생에게 생멸의 마음은 매 순간 발생

通達無我法者 2009. 10. 19. 23:14

 

 

중생에게 생멸의 마음은 매 순간 발생

〈37〉불변의 고정된 실체란 없다

 
 
불교에서는 생사의 근본을 규명하기 위해서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를 철저히 이해해야 한다. 인생의 모든 고통과 고뇌는 실제로는 변화하지 않는 것이 없음(諸行無常)에도 불구하고, 불변의 고정된 실체가 있는 것처럼 실체에 집착하는 데서 모든 고통(一切皆苦)은 시작된다. 그러므로 그런 불변의 고정된 실체란 없다는 것(諸法無我)을 스스로 깨달아 무상을 현상세계의 본래 모습이라고 진지하게 인식해야만 고통과 고뇌는 불식되고 이 이치를 깨달음으로써 해탈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불설바라문피사경(佛說婆羅門避死經)>을 보면 바라문 선인(仙人) 네 명이 정진하여 선법(善法)을 닦아 5신통을 얻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영원히 세상에서 살기를 바라며, 각자 죽음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 장소인 허공과 바다와 산과 땅으로 날아가 죽음을 피하여 피신한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죽음이 없을 것이라고 믿은 장소인 허공, 바다, 산, 땅에서 목숨을 마치게 된다. 이 경에서 나타내고자 하는 의도 역시 태어난 자는 반드시 죽는다는 ‘생자필멸’의 가르침으로 누구든지 죽음은 피할 수 없다는 것을 일깨워 주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다.
 
또한 <잡아함경>권46의 <모경(母經)>에서도 다음과 같은 일화가 나온다. 프라세나짓왕에게 지극히 존경하는 조모가 있었는데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말하기를, “세존이시여, 만일 이 나라의 모든 것을 가져다 남에게 주고 조모님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면 나는 그것을 다 주겠나이다. 그러나 이미 나고 죽음을 구하지 못하고 영원히 하직하였으니 슬픔과 그리움과 근심과 괴로움을 스스로 견딜 수 없나이다”고 하였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일체 중생.일체 벌레.일체 신으로서 난 것은 이내 죽어 마침내 다함으로 돌아가지 않는 것이 없고, 어느 것도 한 번 나서 죽지 않는 것은 없느니라. 여래와 연각과 부처의 성문 제자들마저도 마침내는 그 몸과 목숨을 버리는데 하물며 저 세속 범부들이겠는가”라고 하셨다.
 
이와 같은 일화들에서 볼 수 있듯이 불교에서는 ‘태어난 것은 여래, 연각, 성문이라도 예외없이 반드시 죽는다’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을 자각해서 생사에서 벗어나는 것을 최후의 목표로 삼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生死를 되풀이하므로 윤회를 면할 수 없다
 
선에서는 윤회주최인 생사·생멸심을 멸해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궁극의 목적이 된다
 
 
한편 선문에서는 생사를 또한 마음에 비유하여 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을 생(生)이라 하고, 한 마음이 없어지는 것을 멸(滅) 또는 사(死)라고 하여 생멸심(生滅心).생사심(生死心)을 윤회하는 주체로 보았으며, 이 생멸심.생사심이 끊어졌을 때 비로소 깨달음에 이르러 생사윤회를 면한다고 한다.
 
<몽산법어(蒙山法語)> 가운데에 ‘보제존자시각오선인(普濟尊者示覺悟禪人)’에서는 “생각이 일어나고 생각이 멸함을 생사라 이르나니, 생사의 즈음을 당하여 모름지기 힘을 다해서 화두를 들지니, 화두가 순일하여지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 곧 다하리라. 생각이 일어나고 멸함이 곧 다한 곳을 이르되 고요함(寂)이라 한다(念起念滅 謂之生死 當生死之際 須盡力提起話頭 話頭純一 起滅卽盡 起滅卽盡處 謂之寂)”고 하였으며, 박산무이(博山無異, 1575~1630)도 <참선경어(參禪警語)>에서 “참선할 때에는 가장 먼저 생사심을 해결하겠다는 굳은 마음을 내야 한다. 그리고는 세계와 신심이 모두 인연으로 이룩된 거짓 존재일 뿐 주재하는 실체는 없다는 사실을 간파해야 한다. 만약 본래 갖추어져 있는 큰 이치를 깨치지 못하면 생사심을 깨뜨릴 수가 없다. 생사심이 깨뜨려지지 않았다면 무상의 살귀가 생각생각 멈추지 않을 것인데 도리어 어떻게 물리칠 수 있겠는가?(做工夫最初要發箇破生死心堅硬看破世界身心悉是假緣無實主宰若不發明本具底大理則生死心不破生死心旣不破無常殺鬼念念不亭却如何排遣)”라고 하였다.
 
결국 선문에서 말하는 계속해서 일어나고 멸하는 마음인 생사심.생멸심은 결국 번뇌.망상.분별심.사량심인 것이다. 이러한 마음에서 우리는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 중생에게 있어서 일어나고 멸하는 마음은 매 순간 일어난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생과 사를 되풀이하는 것이다. 생과 사를 되풀이하므로 윤회를 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선에서는 윤회의 주최가 되는 생사심.생멸심을 멸하여 깨달음에 이르는 것이 궁극적인 목적이 된다.
 
그래서 <치문경훈(緇門警訓)> ‘주위빈사문망명법사식심명(周渭濱沙門亡名法師息心銘)’에서는 “마음에 생각이 사라지면 생사가 영원히 끊어질 것이다. 죽지도 않고 나지도 않으면 모양도 없고 이름도 없으며, 참 된 도가 텅비고 고요하여 만물이 가지런히 평등하여진다(心想若滅生死長絶 不死不生無相無名 一道虛寂萬物齊平)”고 하였으며, <선원제전집도서(禪源諸詮集都序)>에서도 “번뇌가 다할 때 생사가 끊어지고, 생멸이 다하고 나면 적조(寂照)가 현전하여 그 응용이 무궁한 것을 이름하여 부처라 한다(煩惱盡時生死卽絶 生滅滅已 寂照現前應用無窮 名之爲佛)”고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에게 매 순간 일어나고 사라지는 생사심인 번뇌가 다하여야 비로소 생사가 끊어지고 생멸이 영원히 다하게 된다. 이러한 경지가 되었을 때 비로소 부처라 한다고 할 수 있으며, 번뇌가 일어나지 않아야 대열반(大涅槃)인 것이다.
 
<선원제전집도서>에서는 “모든 부처님은 이미 망상을 끊었기 때문에 견성하여 분명히 생사를 벗어나 신통이 자재하니 마땅히 범부와 성인의 공용이 같지 않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諸佛已斷妄想故見性了了 出離生死神通自在 當知凡聖功用不同)”고 하였고, <유마경주(維摩經注)>에서도 “해탈이란 자유자재한 마음의 법이니, 이 해탈을 얻는다면 무릇 짓는 바가 안으로 행하고 밖으로 응함이 자유자재하여 막힘이 없다(解脫者 自在心法也 得此解脫則 凡所作爲 內行外應 自在無)”고 하였다.
 
부처는 생사윤회의 근본이 되는 망상, 번뇌, 분별심을 끊어 생사를 벗어나 자유자재한 해탈을 얻지만 중생은 계속되는 생사고해(生死苦海)에서 윤회를 거듭한다. 그러므로 부처와 중생, 범부와 성인의 공용이 같지 않은 것이다. 이는 참선수행자 뿐 아니라 사람이라면 모두 생사의 문제가 삶의 가장 큰 요체임을 인식하고 생사관에 대한 바른 깨달음이 최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다.
 
모든 부처님과 모든 조사 선지식이 이 자리에서 견성하셨고, 이 자리에서 견성하셨기 때문에 이치에 막힘이 없고, 이치에 막힘이 없기 때문에 정견을 이루시게 된 것이다. 따라서 생사해탈을 참선의 궁극적 목표로 삼아 정진하셨던 것이다. 
 
혜거스님 / 서울 금강선원장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