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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란 무엇인가 ① ‘연기’와 ‘연’은 구분돼야

通達無我法者 2010. 6. 20. 23:35

 

 

연기란 무엇인가 ① ‘연기’와 ‘연’은 구분돼야

 
“연기는 괴로움의 발생구조, 소멸구조”
    
이번 주부터는 초기불교 교학의 주제인 온.처.계.근.제.연(蘊.處.界.根.諦.緣)의 여섯 가지 가운데 마지막 주제인 연기의 가르침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먼저 연기(緣起)라는 술어의 어원부터 살펴보자. 연기는 빠띳짜사뭅빠다(paticca-samuppa-da)를 중국에서 緣(paticca)-起(samuppa-da)로 직역한 것이다.
여기서 paticca(연)는 prati(~를 대하여)+√i(to go)의 동명사로 문자적으로는 (무엇을) 의지하여라는 뜻이다.
samuppa-da(기)는 sam(함께)+ud(위로)+√pad(to go)에서 파생된 남성명사로 함께 위로 간다는 문자적인 뜻에서 일어남 , 발생, 근원을 뜻한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緣起로 정착되었고 영어로는 dependent origination으로 정착되고 있다.
한글로는 조건(paticca) 발생(samuppa-da)으로 직역되는데, 그래서 필자는 연기를 ‘조건발생’으로 옮기고 있다.
 
그러면 조건 지워져서 일어나는 것은 모두 연기인가?
예를 들면 아버지와 어머니를 조건으로 하여 아들이 생겨나는데 그러면 이러한 상호관계도 연기라고 부를 수 있는가?
초기불전에 의하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
초기불전에서는 12연기로 정리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만을 연기라 부른다.
그 외의 제법의 상호관계나 상호의존은 연기라 부르지 않고 연(緣, paccaya)이라는 술어로 명명한다.
 
고.집.멸.도 사성제와 일치
 
이외 상호관계 상호의존은 ‘연’
   
초기경에서 12연기는 모두 예외 없이 “무명(無明)을 조건으로 의도적 행위들(行)이, 의도적 행위들을 조건으로 알음알이(識)가, … 태어남을 조건으로 늙음.죽음(老死)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憂悲苦惱)이 발생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苦蘊)가 발생한다.
그러나 무명이 남김없이 빛바래어 소멸하기 때문에 의도적 행위들(行)이 소멸하고, … 태어남이 소멸하기 때문에 늙음.죽음과 근심.탄식.육체적 고통.정신적 고통.절망이 소멸한다.
이와 같이 전체 괴로움의 무더기가 소멸한다.”(S12:1 등)로 정형화되어 나타난다.
즉 무명, 행부터 생, 노사까지의 12가지 구성요소나 이것이 더 축약되어 나타나는 11지 연기, 10지, 9지 … 2지 연기만을 연기라고 부르고 있다.
 
연기는 이처럼 무명부터 노사까지의 12연기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것이다.
이 이외의 ‘제법의 상호관계’는 초기불교에서는 절대로 연기라 부르지 않는다.
제법의 상호관계는 아비담마에서 ‘상호의존(緣, paccaya)’이라 부른다.
그러므로 ‘연기(조건발생)’와 ‘연(상호의존)’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
그런데도 한국불교에서는 연기를 상호의존(연)으로 넓혀서 이해하고 있다.
그래서 연기하면 화엄에서 말하는 중중무진연기 혹은 법계연기를 떠올린다.
 
거듭 강조하지만 초기불교에서 연기는 12연기로 대표되는 괴로움의 발생구조(유전문)와 소멸구조(환멸문)만을 뜻한다.
그리고 이것은 괴로움(고)과 괴로움의 발생구조(집)와 괴로움의 소멸구조(멸)와 괴로움의 소멸로 인도하는 도닦음(도)으로 정리되는 불교의 진리인 사성제와 그대로 일치하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적인 제법의 상호관계나 법계연기 등은 상좌부 아비담마에서 설하는 24연 즉 24가지 상호의존(24緣)과, 설일체유부 아비달마에서 설하는 6인-4연-5과와, 유식에서 설하는 10인-4연-5과라는 제법의 상호포섭관계로 이해되어야 마땅하다.
그러므로 먼저 연기(조건발생)와 연(상호의존)은 엄격히 구분되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
 
각묵스님 /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