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붓다의 수행법/위빠사나/144

通達無我法者 2010. 12. 27. 23:12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위빠사나 수행은 먼저 하고자 하는 진실한 의도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 뒤에 스승의 가르침에 따라 대상을 정확하게 알아차리고

다음으로 알아차림을 지속해야 합니다.

 

이런 지속을 위해서는 알아차리는 것이 유용한지, 적합한지,

바른 대상인지, 미혹하지 않은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이와 같은 조건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래야 비로소 수행의 지혜가 나서 이익을 얻습니다.

 

이처럼 위빠사나 수행은 먼저 의도가 있어야 하고, 알아차림과 함께

알아차림을 지속시키기 위한 네 가지의 분명한 앎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노력이 따라야 하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로 지혜가 생겨서

궁극의 자유를 얻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셋째,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입니다.

 

하려는 마음 알아차리기는 의도(意圖)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의도는 생각하는 것인데 한문으로는 사(思)라고 합니다.

무엇인가를 하려고 계획을 세우는 것이 의도입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는 의도에 의해서 일어납니다.

 

논장에서는 이 의도를 여러 가지로 설명합니다.

행위를 하는 것, 고무하는 것, 격려하는 것, 자극하는 것,

조정하는 것, 기억하여 행위를 하게 하는 것 등등이 있습니다.

이런 모든 것을 통 털어서 의도라고 합니다.

 

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도

여러 가지의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들과 함께 중요한 대상입니다.

 

의도는 마음에 의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없으면 의도가 일어나지 않습니다.

이 의도가 바로 행(行)입니다.

 

행위를 업(業)이라고 하는데 의도가 있는 행위를 바로 업이라고 말합니다.

이때의 의도란 분명하게 하려는 마음을 낸 것을 말합니다.

업은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과보가 따르는데

이때 의도가 없는 행은 업이라고 볼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인식하지 못한 채로 모르고 불가피하게 하게 된 행은

업이 되지 않아서 과보를 받지 않습니다.

 

12연기에서는 업이 2가지가 있습니다.

과거의 업과 현재의 업입니다.

 

과거에 형성된 의도를 ‘행(行)’이라고 합니다.

이때의 행이 바로 의도이고, 이것이 마음의 형성력입니다.

그러므로 과거의 행은 의도가 있기 때문에 ‘업’입니다.

그리고 현재 새로운 의도를 내서 하는 행위를 ‘업(業)의 생성(生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과거의 의도는 행이고, 현재의 의도는 업의 생성입니다.

 

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기는,

현재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도를 내는 그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업의 생성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재 새로 생성하는 업의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수행자는 과거에 형성된 업을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현재 새로 생성하는 업이 알아차릴 대상입니다.

 

업의 생성이란 업의 힘을 말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업력입니다.

현재 의도를 일으켜 업을 만들면

이 힘이 미래의 태어남을 만들기 때문에 업의 생성이라고 합니다.

 

이때 유념해야 할 것은 내가 미래로 옮겨가는 것이 아니고

바로 이 업의 힘이 옮겨가서 태어남이 생기는 것입니다.

의도를 알아차리면 이런 인과관계를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에 자아가 없습니다.

그래서 내가 다음 생에 태어나는 것이 아니고 단지 업의 생성, 그 힘이 옮겨가기 때문에

여기에 나라고 하는 자아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과거는 이미 지나 간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는 원인으로서의 의미 이상은 없습니다.

과거는 관념이며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서

수행자에게는 반면교사로써의 의미밖에 없습니다.

 

수행자는 항상 현재 여기에서 실재하는 것을 대상으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 시작이 바로 의도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수행자가 처음부터 항상 의도를 알아차려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물론 그렇게 할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처음부터 의도를 알아차리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인식과정의 단계에서 기본임을 알고,

의도를 알아차리는 힘이 생겼을 때 알아차리면 됩니다.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마음과 몸이 있어서 삽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만 가지고 살 수는 없습니다.

마음과 함께 있으면서 마음에 의해서 일어나는

마음의 작용이 일을 하기 때문에 사는 것입니다.

 

마음은 대상을 아는 것으로서 하나이지만

다양한 형태의 마음의 작용이 있어서 마음이 그것을 압니다.

이때 의도가 이러한 여러 가지 마음의 작용 중의 하나입니다.

 

마음의 작용은 오온 중에서 수(受), 상(想), 행(行)을 말합니다.

이 마음의 작용은 마음과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합니다.

그래서 어느 것이 먼저라고 할 것이 없습니다.

이것들이 오온으로 결합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마음의 작용은 동일한 대상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입이 육경(六境)과 부딪쳐서 육식(六識)을 하는 과정이 모두 동일한 대상입니다.

마음의 작용은 물질적인 것과 정신적이라는 것의

동일한 토대를 바탕으로 일어납니다.

 

그리고 마음의 작용은 항상 마음과 결합하여 일어납니다.

이렇게 일어나는 것을 마음이 받아들여서 아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의 작용에 시간은 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대상은 항상 현재 여기에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과거나 미래를 알아차리지 않고,

현재 여기에 있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알아차려야 하기 때문에

언제나 현재에 머뭅니다.

 

수행자 여러분!

우리가 산다고 할 때 다른 것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은 모두 13가지입니다.

그 중에 모든 마음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이 7가지입니다.

이 7가지는 언제든지 있기 때문에 기본이 되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리고 연관될 때도 있고 연관되지 않을 때도 있는 마음의 작용이 6가지가 있습니다.

이것들은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만 나타납니다.

 

모든 것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은 항상 여기에 있는 마음의 작용입니다.

그래서 이것이 없으면 정상적으로 사는 것이 성립되지 않습니다.

 

여기서 정상적이라는 것은 이 기능이 작용하더라도

이 중에 하나라도 결함이 있으면 바른 사고력을 갖기가 어렵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정상적인 인지기능을 할 때 다음의 7가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것이 바로 접촉, 느낌, 인식, 의도, 집중, 생명력, 숙고입니다.

이상의 7가지가 바르게 작용할 때 정상적으로 사는 것입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정신적 장애가 있다면 이상의 7가지의 기능이

제대로 작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울증이나 분열증도 이상의 7가지 기능이 원활하지 못하기 때문에 생긴 것입니다.

그러므로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때는 이것들을 하나씩 점검해봐야 합니다.

 

그러므로 장애가 생겼을 때 다른 것들도 점검해봐야 하겠지만

바른 의도를 가지고 있는지, 아니면 바른 의도를 가지고 있지 않은지를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래서 누구나 바른 의도를 갖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이것은 의식을 구성하는 기본요소이기 때문에 생존에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 7가지가 마음의 작용 중에서 수, 상, 행입니다.

이때 접촉은 오온의 행(行)이며,

느낌은 오온의 수(受)이며, 인식은 오온의 상(想)이고,

의도는 오온의 행(行)이며, 집중은 오온의 행(行)이고,

생명력은 오온의 행(行)이며, 숙고도 오온의 행(行)입니다.

 

마음의 작용은 모두 52가지가 있는데

느낌과 인식을 빼고는 나머지가 모두 행에 속합니다.

 

이상 마음의 작용 중에서 기본이 되는 7가지는 각각이 혼자서 존재하지 못합니다.

매순간 7가지가 함께 모여서 다시 마음과 몸과 함께 일어나서 함께 소멸합니다.

이것이 색온, 수온, 상온, 행온, 식온이라는 오온(五蘊)입니다.

 

그러므로 의도도 여러 가지 기능 중의 하나입니다.

마음을 알아차리는 위빠사나 수행자는

여기서 행위의 원인이 되는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이

지금 우리의 수행의 목표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수행을 할 때 의도를 바르게 알아차리면 접촉, 느낌, 인식, 집중, 숙고가

모두 함께 바르게 작용합니다.

이처럼 의도하나만 바르게 알아차리면 7가지 기능이 모두 바르게 작용합니다.

왜냐하면 이것들은 서로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수행의 보이지 않는 이익입니다.

 

알아차림 하나면 여러 가지의 마음의 작용들이 함께 작용하는 것은,

마음은 여러 가지의 복합적인 기능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좋은 의미로 작용할 때는 좋은 가속도가 붙어서 더 좋아지고,

나쁜 의미로 작용할 때는 나쁜 가속도가 붙어서 더 나빠집니다.

 

우리가 산다는 것은 이런 기본적인 기능들이 바르게 작용하기 때문에 인식할 수 있습니다.

이런 기능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그래서 자신이 알던 모르던 상관하지 않고 항상 마음의 작용은 기능을 합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서 ‘하려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지금까지 모르고 진행되던 이러한 과정을 이제부터라도 알아차리고 해야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이때 알아차릴 대상이 오직 마음인 것입니다.

의도가 마음이라서 마음이 마음을 대상으로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모든 것을 이끈다는 것은 모든 행위가 이러한 의도에 의해서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려는 의도를 알아차리면 이상의 7가지 기능들이 모두 함께 일어납니다.

그래서 대상을 명확하게 알아차릴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의도를 모르고 무심히 행할 때는 역시 7가지 기능이

분명하지 않은 상태에서 행해진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도를 알아차리는 수행을 하면 이상 7가지에

알아차림이란 행위가 하나 더 포함되어서 매우 발전적인 수행을 하는 것입니다.

 

요약을 하자면 의도는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이고,

모든 일은 마음이 하기 때문에 의도를 알아차리는 것은 모든 일을 하는 원인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의도를 알아차리면 의도와 함께 일어나는 7가지의 기능도 함께 작용하여

수행을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이것은 마치 태풍의 눈을 알아차리고

그 움직임의 추이를 살피는 것과 같습니다.

 

다른 것과 연관되어 나타나는 마음의 작용 13가지 중에서

나머지 다양하게 결합하는 마음의 작용은 6가지입니다.

이 6가지 마음의 작용은 나타날 조건이 성숙되었을 때 나타납니다.

그래서 이것은 항상 있지 않고 때때로 나타납니다.

 

이 6가지가 겨냥, 고찰, 결심, 정진, 희열, 열의입니다.

이때 겨냥은 일으킨 생각이고,

고찰은 지속적인 고찰이고,

결심은 확신에 찬 믿음을 가지고 결정하는 것입니다.

정진은 노력이고,

희열은 수행을 해서 만족하기 때문에 오는 기쁨입니다.

열의는 하고 싶은 의욕입니다.

 

마음의 작용 7가지는 항상 있는 기본적인 것이지만

다양하게 나타나는 6가지는 수행을 할 때 두드러지게 나타는 것들입니다.

기본적인 마음의 작용의 바탕 위에서 의식을 고양시켜 지혜를 얻기 위해서는

나머지 6가지의 마음의 작용이 계발되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처음에 말씀드린 7가지의 기본요건이 충분하게 갖추어져야

그 다음에 6가지를 실천할 수 있습니다.

 

이처럼 수행은 여러 가지 조건들이 성숙하면서 진행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느 날 특별한 계시나 어떤 초능력이 생겨서 모든 것을 다 아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마치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는 아기가 특별한 능력을 부여받아

모든 것을 알 수 없는 그런 일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어느 날 갑자기 화들짝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깨달음이 아니고 선정수행에서 어느 단계의 집중에서 오는 현상일 수도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음으로 잘못 아는 경우가 많습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도 열반이 아닌 유사열반이 5가지가 있습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이 아닌 선정수행에서는 깨달음이 아니고

어떤 상태에서 나타나는 현상에 불과하다고 알아야 합니다.

만약 선정수행을 해서 신통한 힘이 생긴다고 해도

그것은 지혜와는 무관한 하나의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므로 깨달음으로 가는 위빠사나 수행은 여러 가지의 마음들이 결합하여

조건이 성숙하면 단계적으로 지혜가 나타납니다.

그리고 이러한 지혜가 모여 차츰 더 큰 지혜로 발전합니다.

결국 이 지혜란 무상, 고, 무아를 얼마나 더 분명하게 아느냐 하는 것뿐입니다.

 

그러므로 수행자는 단지 이러한 조건을 성숙시키기 위해서

나타난 대상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