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六祖壇經)

六祖壇經 敦煌本...編譯(1~11장)

通達無我法者 2007. 7. 9. 16:58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

2편.편역(編譯)

(1~11장)

 

 

1.서언(序言)

 

惠能大師 於大梵寺講堂中 昇高座 說摩訶般若波羅密法 授(受)無相戒

 其時座下 僧尼道俗 一萬餘人 韶州刺史韋 (등據) 及諸官僚(寮)三十餘人

 儒士餘人 同請大師說摩訶般若波羅蜜法 刺史遂令門人僧法海集記 流行後代(伐)與學道者

承此宗旨 遞相傳授 有所依(於)約 以爲 承 說此壇經

 

혜능대사가 대범사 강당의 높은 법좌에 올라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하고

 무상계를 주시니, 그때 법좌 아래에는 스님, 비구니, 도교인, 속인등, 일만여 명이 있었다.
소주 자사 위거와 여러 관료 삼십여 명과 유가의 선비 몇몇 사람들이 대사에게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설해주기를 함께 청하였고,

 자사는 이윽고 문인 법해로 하여금 모아서 기록하게 하였으며,

후대에 널리 행하여 도를 배우는 사람들이 함께 이 종지를 이어받아서

 서로서로 전수케 한지라, 의지하여 믿는 바가 있어서 이에 받들어 이어받게 하기 위하여

 이 <단경>을 설하였다.

 

 

 

 2. 심사(尋師)

 

能大師言 善知識 心 念摩訶般若波羅蜜法 大師不語 自 心神 良久乃言 善知識 靜( )聽

惠能慈父 本官 范陽 左降遷流(嶺)南新州百姓 惠能幼小 父小早亡 老母 孤遺 移來(南)海

艱辛貧乏(之) 於市賣(90)(買)柴 忽有一客 買柴 遂領惠能 至於官店 客將柴去

 惠能 得錢 却向門前 忽見一客 讀金剛經 惠能 一聞 心明(名)便悟 乃問(聞)客曰

從何處來 指此經典 客 答曰 我於 州黃梅縣(懸)東憑茂(墓)山 禮拜五祖弘忍和尙 見今(令)
在彼 門人 有千餘衆 我於彼聽見大師勸道俗 但持(特)金剛經一卷 卽得見性 直了成佛 惠能

聞說 宿業有緣 便卽辭親 往黃梅憑茂(墓)山 禮拜五祖弘忍和尙(91)

 

 

혜능대사는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마음을 깨끗이 하여 마하반야바라밀법을 생각하라 !"
대사께서는 말씀하시지 않고 스스로 마음과 정신을 가다듬고 한참 묵묵하신 다음

이윽고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조용히 들어라. 혜능의 아버지의 본관은 법양인데 좌천되어

영남의 신주 백성으로 옮겨 살았고 혜능은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었다.

늙은 어머니와 외로운 아들은 남해로 옮겨와서 가난에 시달리며

 장터에서 땔나무를 팔았더니라.
어느 날 한 손님이 땔나무를 샀다. 혜능을 데리고 관숙사(官宿舍)에 이르러

손님은 나무를 가져갔고, 혜능은 값을 받고저 문을 나서려 하는데

문득 한 손님이 <금강경>을 읽는 것을 보았다.


혜능은 한번 들음에 마음이 밝아져 문득 깨치고, 이내 손님에게 묻기를 
"어느 곳에서 오셨기에 이 경전을 가지고 읽습니까.?" 하였다.
손님이 대답하기를
"나는 기주 황매현 동빙무산에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는데,

 지금 그 곳에는 문인이 천여 명이 넘습니다.

나는 그곳에서 오조대사가 승려와 속인들에게 다만 <금강경> 한 권만 지니고 읽으면

 곧 자성을 보아 바로 부처를 이루게 된다고 권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하였다.
그 말을 들은 혜능은 숙세의 업연이 있어서,

 곧 어머니를 하직하고 황매의 빙무산으로 가서 오조 홍인화상을 예배하였다. 


 

弘忍和尙 問惠能曰 汝 何方人 來此山 禮拜吾 汝今向吾邊 復求何物 惠能 答曰

弟子 是嶺(領)南人 新州百姓 今故遠來 禮拜和尙 不求餘物 唯求<作>佛法 [作]

大師遂責惠能曰 汝是嶺(領)南人 又是 若爲堪作佛 惠能 答曰 人 卽有南北 佛性(姓)

卽無南北 (93) 身 與和尙 不同 佛性(姓) 有何差別 大師欲更共議 見左右在傍邊

大師更不言 遂發遣惠能 令隨衆作務 時有一行者 遂差惠能於 房 踏 八箇餘月

 

홍인화상께서 혜능에게 묻기를
"너는 어느 곳 사람인데 이 산에까지 와서 나를 예배하며,

이제 나에게서 새삼스레 구하는 것이 무엇이냐?" 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제자는 영남 사람으로 신주의 백성입니다.

지금 짐짓 멀리서 와서 큰스님을 예배하는 것은 다른 것을 구함이 아니옵고

오직 부처되는 법을 구할 뿐입니다." 하였다.


오조대사께서는 혜능을 꾸짖으며 말씀하시기를
"너는 영남 사람이요 또한 오랑캐거니 어떻게 부처가 될 수 있단 말이냐?"하셨다.
혜능이 대답하기를
"사람에게는 남북이 있으나 부처의 성품은 남북이 없습니다.

 오랑캐의 몸은 스님과 같지 않사오니 부처의 성품에 무슨 차별이 있겠습니까?" 하였다.
오조스님은 함께 더 이야기하시고 싶었으나,

 좌우에 사람들이 둘러 서 있는 것을 보시고 다시 더 말씀하시지 않았다.

그리고 혜능을 내보내어 대중을 따라 일하게 하시니,

그 때 혜능은 한 행자가 이끄는 대로 방앗간으로 가서 여덟 달 남짓 방아를 찧었다

 

 

 

3. 명게(命偈)

 

五祖弘忍於一日 喚門人盡來 門人 集訖(記) 五祖曰 吾向汝(與)說

 世人 生死事大 汝等門人 終日供養 只求福田 不求出離生死苦海 汝等自性(姓) 迷 福門

 何可救汝 汝 且歸房自看 有智(知)惠者 自(白)取本性(姓)般若之知(知之) 各作一偈呈吾

 吾看汝偈 若悟(吾)大意者 付汝衣法 爲六代 火急急

 

오조 홍인대사께서 하루는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셨다.

 문인들이 다 모이자 말씀하셨다.
"내 저희들에게 말하나니, 세상 사람들의 나고 죽는 일이 크거늘

너희들 문인들은 종일토록 공양을 하며 다만 복밭만을 구할 뿐

나고 죽는 괴로운 바다를 벗어나려 하지 않는다.

 너희들은 모두 자성이 미혹하다면 복의 문이 어찌 너희들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너희들은 모두 방으로 돌아가 스스로 잘 살펴보라.

 지혜가 있는 자는 본래의 성품인 반야의 지혜를 스스로 써서

각기 게송 한 수를 지어 나에게 가져오너라.

내가 너희들의 게송을 보고 만약 큰 뜻을 깨친 자가 있으면 그에게 가사와 법을 부촉하여

 육대의 조사가 되게 하리니, 어서 빨리 서둘도록 하라."

 

 

門人 得處分 却來各至自房 遞相謂言 我等 不須呈心用意作偈 將呈和尙 神秀上座

是敎授師 秀上座得法後 自可依(於)止 請不用作 諸人 息心 盡不敢呈偈 時大師堂前

有三間房廊 於此廊下 供養 欲畵楞伽變 幷畵五祖大師 傳授衣法 流行後代 爲記

畵人盧珍(玲)看壁了 明日 下手

 

문인들이 처분을 받고 각기 자기 방으로 돌아와 서로 번갈아 말하기를 
"우리들은 마음을 가다듬고 뜻을 써서 게송을 지어 큰스님께 모름지기 바칠 필요가 없다.

 신수상좌는 우리의 교수사이므로 신수상좌가 법을 얻은 후에는

저절로 의지하게 된 터이니 굳이 지을 필요가 없다."하고,

모든 사람들은 생각을 쉬고 다들 감히 게송을 바치지 않았다. 
그때 화공 노진이 홍인대사의 방 앞에 있는 삼칸의 복도에 '능가변상'과 오조 대사가

 가사와 법을 전수하는 그림을 그려 공양하고,

후대에 전하여 기념하고자 벽을 살펴보고서 다음날 착수하려고 하였다.

 

 

 

4. 신수(神秀)

 

 

上座神秀思惟 諸人 不呈心偈 緣我爲敎授師 我若不呈心偈 五祖如何得見我心中

見解深淺 我將心偈 上五(99)祖呈意 求法 卽善(卽善求法) 覓祖 不善 却同凡心 奪其聖位

若不呈心 終(修)不得法 良久思惟 甚難甚難 甚難甚難 夜至三更 不令人見

 遂向南廊下中間(問)壁上 題作呈心偈 欲求於法 若五祖見偈 
言此偈語<不堪> 若訪覓我 我宿業障重 不合得法 聖意難則 我心自息


상좌인 신수는 생각하였다.
'모든 사람들이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는 것은 내가 교수사이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오조스님께서 나의 마음 속의 견해가

얕고 깊음을 어찌 아시리오. 내가 마음의 게송을 오조스님께 올려 뜻을 밝혀서

 법을 구함은 옳거니와, 조사의 지위를 넘봄은 옳지 않다. 
도리어 범인의 마음으로 성인의 지위를 빼앗음과 같다.

그러나 만약 마음의 게송을 바치지 않으면 마침내 법을 얻지 못할 것이다.

한참을 아무리 생각하여도 참으로 어렵고 어려우며 참으로 어렵고도 어려운 일이로다.

 밤이 삼경에 이르면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마음의 게송을 지어서 써 놓고 법을 구해야겠다.

만약 오조스님께서 게송을 보시고 이 게송이 당치 않다고 나를 찾으시면

나의 전생 업장이 두터워서 합당히 법을 얻지 못함이니,

성인의 뜻은 알기 어려우므로 내 마음을 스스로 쉬리라.'

 

 

秀上座 三更 於南廊下中間壁上 秉燭題作偈 人盡不知(和) 偈曰 身是菩提樹

 心如明鏡臺(101)時時勸拂(佛)拭 莫使有塵埃


신수상좌가 밤중에 촛불을 들고 남쪽 복도의 중간 벽 위에 게송을 지어 써놓았으나

사람들이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게송으로 말하였다.


몸은 보리의 나무요.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

 

 

神秀上座題此偈畢 歸房臥 無人見 五祖平旦 遂喚(換)盧供奉來 南廊下 畵楞伽變

五祖忽見此偈 讀訖(請記) 乃謂供奉曰 弘忍 與供奉錢三十千 深勞遠來(102) 不畵變相也

金剛經 云 凡所有相 皆是虛妄 不如留(流)此偈 令迷人誦 依此修行 不墮三惡 依法修行

 人有大利益 大師遂喚門人盡來 焚香偈前 人衆 入(人)見 皆生敬心 <五祖曰> 如等

盡誦此偈者 方得見性(姓) 依(於)此修行 卽不墮落 門人盡誦 皆生敬心 喚言善哉


신수상좌가 이 게송을 다 써 놓고 방에 돌아와 누웠으나 아무도 본 사람이 없었다.

오조스님께서 아침에 노공봉을 불러 남쪽 복도에 '능가변상'을 그리게 하려 하시다가,

문득 이 게송을 보셨다. 다 읽고 나서 공봉에게 말씀하셨다.

"홍인이 공봉에게 돈 삼만냥을 주어 멀리서 온 것을 깊이 위로하니, 변상을 그리지 않으리라. <금강경>에 말씀하기를 무릇 모양이 있는 모든 것은 다 허망하다 하셨으니,

 이 게송을 그대로 두어서 미혹한 사람들로 하여금 외우게 하여,

 이를 의지하여 행을 닦아서 삼악도에 떨어지니 않게 하는것만 못할 것이다.

 법을 의지하여 행을 닦으면 사람들에게 큰 이익이 있을 것이니라." 


이윽고 홍인대사께서 문인들을 다 불러오게 하여 게송 앞에 향을 사르게 하시니,

 사람들이 들어와 보고 모두 공경하는 마음을 내므로 오조스님이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모두 이 게송을 외우라. 외우는 자는 바야흐로 자성을 볼 것이며,

이를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 않으리라."
문인들이 다들 외우고 공경하는 마음을 내어 '훌륭하다!'고 말씀하였다.

 

五祖(褐)遂喚秀上座於堂內 問(門)是汝作偈否 若是汝作 應得我法 秀上座言

 罪過 實是神秀作 不敢求祖 願和尙 慈悲 看 弟子有小智惠 識大意否 五祖(褐)曰 汝作此偈

見卽來到 只到門前 尙未得入 凡夫依(於)此偈修行 卽不墮落 作此見解 若覓無上菩提

卽未可得 須入得門 見自本性(姓) 汝且去 一兩日來
思惟 更作一偈 來呈吾 若入得門 見自本性(姓) 當付汝衣法 秀上座去 數日作不得

 

오조스님이 신수상좌를 거처로 불러서 물으시되,
"네가 이 게송을 지은 것이냐?

 만약 네가 지은 것이라면 마땅히 나의 법을 얻으리라." 하셨다.


신수상좌가 말하기를,
"부끄럽습니다. 실은 제가 지었습니다만 감히 조사의 자리를 구함이 아니오니,

원하옵건대 스님께서는 자비로써 보아 주옵소서.

 제자가 작은 지혜라도 있어서 큰 뜻을 알았습니까?" 하였다.


오조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지은 이 게송은 소견이 당도하였으나 다만 문 앞에 이르렀을 뿐

아직 문 안으로 들어오지는 못하였다.

범부들이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곧 타락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견해를 가지고 위 없는 보리를 찾는다면 결코 얻지 못할 것이다.

모름지기 문 안으로 들어와야만 자기의본성을 보느니라.

 너는 우선 돌아가 며칠 동안 더 자성을 보았다면

 마땅히 가사와 법을 너에게 부촉 하리라."하셨다.
신수상좌는 돌아가 며칠을 지냈으나 게송을 짓지 못하였다.


 

 

5. 정게(呈偈)


有一童子 於 房邊過 唱誦此偈 惠能 一聞 知未見性(姓) 未(卽)識大意 能 問童子 適來誦者

是何言偈 童子答能曰 不知 大師言 生死事(是)大 欲傳衣(於)(107)法 令門人等

各作一偈 來呈看 悟大意 卽付衣法 爲六代祖(褐) 有一上座名神秀 忽於南廊下

書無相偈一首 五祖(褐)令諸門人 盡誦 悟此偈者 卽見自性(姓) 依此修行 卽得出離

 

한 동자가 방앗간 옆을 지나면서 이 게송을 외고 있었다.

혜능은 한번 듣고, 이 게송이 견성하지도 못하였고 큰 뜻을 알지도 못한 것임을 알았다.


혜능이 동자에게 묻기를,
"지금 외우는 것은 무슨 게송인가?"하였다. 동자가 혜능에게 대답하여 말하였다.
"너는 모르는가? 큰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고 죽는 일이 크니

 가사와 법을 전하고저 한다 하시고, 문인들로 하여금 각기 게송 한 수씩을 지어와서 보이라 하시고, 큰 뜻을 깨쳤으면 가사와 법을 전하여 육대의 조사로 삼으리라 하셨는데,

 신수라고 하는 상좌가 문득 남쪽 복도 벽에 모양 없는 게송(無相偈) 한 수를 써 놓았더니,

 오조스님께서 모든 문인들로 하여금 다 외우게 하시고,

이 게송을 깨친 이는 곧 자기의 성품을 볼 것이니,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면 나고 죽음을 벗어나게 되리라고 하셨다."

 

 

惠能 答曰 我此踏 八箇餘月 未至堂前 望上人 引惠能至南廊下 見此偈禮拜 亦願誦取

結來生緣 願生佛地 童子引能至南廊下 能 卽禮拜此偈 爲不識字 請一人讀 惠<能>聞(問)已

卽識大意 惠能 亦作一偈 又請得一解書人 於西間壁上 題(提)著 呈自本心 不識本

 心 學法無益 識心見性(姓) 卽悟(吾)大意 惠能偈 曰 
菩提 本無樹 明鏡 亦無臺 佛性(姓) 常淸(靑)淨 何處有塵埃又偈曰心是菩提樹

 身爲明鏡臺 明鏡本淸淨 何處染塵埃院內徒(從)衆 見能作此偈 盡怪 惠能 却入 房 五祖(褐)忽見惠能偈(但) 卽善[知]識大意 恐衆人知 五祖乃謂衆人曰 此亦未得了

 

혜능이 대답하기를
"나는 여기서 방아찧기를 여덟 달 남짓 하였으나 아직 조사당 앞에 가 보질 못하였으니,

바라건대 그대는 나를 남쪽 복도로 인도하여 이 게송을 보고 예배하게 하여 주게.

또한 바라건대 이 게송을 외워 내생의 인연을 맺어 부처님 나라에 나기를 바라네"하였다.


동자가 혜능을 인도하여 남쪽복도에 이르렀다.

혜능은 곧 이 게송에 예배 하였고, 글자를 알자 못하므로

 어느 사람에게 읽어 주기를 청하였다. 혜능은 듣고서 곧 대강의 뜻을 알았다.

혜능은 한 게송을 지어, 다시 글을 쓸 줄 아는 이에게 청하여 서쪽 벽 위에 쓰게 하여

 자신의 본래 마음을 나타내 보였다. 본래 마음을 모르면 법을 배워도 이익이 없으니,

마음을 알아 자성을 보아야만 곧 큰 뜻을 깨닫느니라.
혜능은 게송으로 말하였다.


보리는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받침대 없네. 
부처의 성품은 항상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 있으리오.


또 게송에서 말하였다.


마음은 보리의 나무요
몸은 밝은 거울의 받침대라
밝은 거울은 본래 깨끗하거니
어느 곳에 티끌과 먼지에 물들리오.


절 안의 대중들이 혜능이 지은 게송을 보고 다들 괴이하게 여기므로,

 혜능은 방앗간으로 돌아갔다. 오조스님이 문득 혜능의 게송을 보시고,

 곧 큰뜻을 잘 알았으나, 여러 사람들이 알까 두려워하시어 
대중에게 말씀하기를 "이도 또한 아니로다!"하셨느니라.

 


 

 6. 수법(受法)

 

五祖夜至(知)三更 喚惠能堂內 說金剛經 惠能 一聞 言下 便悟(伍) 其夜受法

人盡不知 便傳頓法及衣 汝爲六代祖 衣將爲信 代代相傳 法以心傳心 當令自悟 五祖言

惠能 自古傳法 命(氣)如懸絲 若住此(113)間 有人害汝 汝卽須速去

 

오조스님께서 밤중 삼경에 혜능을 조사당 안으로 불러 <금강경>을 설해 주셨다.

혜능이 한번 듣고 말끝에 깨쳐서 그날 밤으로 법을 전해 받으니

 사람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였다.
이내 오조스님은 단박 깨치는 법과 가사를 전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육대조사가 되었으니 가사로써 신표로 삼을 것이며,

 대대로 이어받아 서로 전하되, 법은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하여

마땅히 스스로 깨치도록 하라."


오조스님은 또 말씀하셨다.
"혜능아, 예부터 법을 전함에 있어서 목숨은 실날에 매달린 것과 같다.

만약 이곳에 머물면 사람들이 너를 해칠 것이니, 너는 모름지기 속히 떠나라."

 


能 得衣法 三更 發去 五祖自送能於九江驛 登時 便五(悟)祖處分 汝居努力 將法向南

三年 忽弘此法 難起(去) 在後弘化 善誘迷人 若得心開 汝悟 無別 辭違已了 便發向南

 

혜능이 가사와 법은 받고 밤중에 떠나려 하니 오조스님께서 몸소 구강역까지

혜능을 전송해 주시었으며, 떠날 때 문득 오조스님께서 처분을 내리시되, 
"너는 가서 노력하라. 법을 가지고 남쪽으로 가되, 삼 년 동안은 이 법을 펴려하지 말라.

환란이 일어나리라. 뒤에 널리 펴서 미혹한 사람들을 잘 지도하여,

만약 마음이 열리면 너의 깨침과 다름이 없으리라." 하셨다.
이에 혜능은 오조스님을 하직하고 곧 떠나서 남쪽으로 갔다.

 

兩月中間 至大庾(庚)嶺 不知向後 有數百人來 欲擬害(頭)惠能 奪衣(於)法 來至半路 盡

却廻 唯有一僧 姓陳 名惠明(順) 先 是三品將軍 性行 序惡 直至嶺上 來 犯著 惠能 卽還法衣

 又不肯取 我故遠來 求法 不要其衣 能 於嶺上 便傳法惠明(順) 惠明(順) 得聞 言下心聞開

 能 使惠明(順) 卽却向北化人來

 

 달 가량 되어서 대유령에 이르렀는데, 뒤에서 수백명의 사람들이 쫓아 와서

혜능을 해치고 가사와 법을 빼앗고자 하다가 반쯤 와서 다들 돌아간 것을 몰랐었다.

오직 한 스님만이 돌아가지 않았는데 성은 진이요 이름은 혜명이며, 선조는 삼품장군으로, 성품과 행동이 거칠고 포악하여 바로 고갯마루까지 쫓아 올라와서 덮치려 하였다.

혜능이 곧 가사를 돌려 주었으나 또한 받으려 하지 않고

 "제가 짐짓 멀리 온 것은 법을 구함이요 그 가사는 필요치 않습니다" 하였다.
혜능이 고갯마루에서 문득 법을 전하니 혜명이 법문을 듣고 말끝에 마음이 열리었으므로,

 혜능은 혜명으로 하여금 "곧 북쪽으로 돌아가서 사람들을 교화하라."고 하셨다.

 

 

 

 7. 정혜(定慧)

 

 

惠能 來依(衣)此地 與諸官僚(奪)道俗 亦有累劫之因 敎是先聖(性)所傳 不是惠能自知

願聞先聖(性)敎者 各須淨心 聞了願自除(餘)迷 如(於)先代悟 惠能大師喚言 善智識 菩提般若之智(知) 世人 本自有之 卽緣心迷 不能自悟 須求大善知識 示導(道) 見性 善知識 遇悟卽成智

 

혜능이 이곳에 와서 머무른 것은 모든 관료, 도교인, 속인들과 더불어

오랜 전생부터 많은 인연이 있어서이다.

가르침은 옛 성인이 전하신 바요 혜능 스스로 안 것이 아니니,

 옛 성인의 가르침 듣기를 원하는 이는 각각 모름지기 마음을 깨끗이 하여,

듣고 나서 스스로 미혹함을 없애어 옛 사람들의 깨침과 같기를 바랄지니라.

[아래로부터는 법(法)이니라.]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선지식들아, 보리반야의 지혜는 세상 사람들이 본래부터 스스로 지니고 있는 것이다.

다만 마음이 미혹하기 때문에 능히 스스로 깨치지 못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름지기 큰 선지식의 지도를 구하여자기의 성품을 보아라.
선지식들아, 깨치게 되면 곧 지혜를 이루느니라.

 

善知識 我此法門 以定慧爲本 第一勿迷言惠定 別 定惠 體一不二 卽定是惠體 卽惠是定用

 卽惠之時 定在惠 卽定之時 惠在定 善知識 此義 卽是<定>惠等 學道之人 作意 莫言先定發惠 先惠發定 定惠各別 作此見者 法有二相 口說善 心不善 惠定不等 心口俱善 內外一[衆]種

定惠卽等 自悟修行 不在口諍 若諍先後 卽是<迷>人 不斷勝負 却生法我 不離四相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정과 혜로써 근본을 삼나니,

 첫째로 미혹하여 혜와 정이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정과 혜는 몸이 하나여서 둘이 아니니라.
곧 정은 이 혜의 몸이요 혜는 곧 정의 씀이니,

곧 혜가 작용할때 정이 혜에 있고 곧 정이 작용할 때 혜가 정에 있느니라.


선지식들아, 이 뜻은 곧 정,혜를 함께 함이니라.

 도를 배우는 사람은 짐짓 정을 먼저 하여 혜를 낸다거나 혜를 먼저하여 정을 낸다고 해서

 정과 혜가 각각 다르다고 말하지 말라. 이런 소견을 내는 이는 법에 두 모양이 있는 것이다.

 

입으로는 착함을 말하면서 마음이 착하지 않으면 혜와 정을 함께 함이 아니요,

 마음과 입이 함께 착하여 안팎이 한가지면 정,혜가 곧 함께 함이니라.

스스로 깨쳐 수행함은 입으로는 다투는 데 있지 않다.

만약 앞 뒤를 다투면 이는 곧 미혹한 사람으로서 이기고 지는 것을 끊지 못함이니,

도리어 법의 아집이 생겨 네 모양(四相)을 버리지 못함이니라.

 

一行三昧者 於一切時中 行住坐(座)臥 常行直(眞眞)心(121)是 淨名經 云 直(眞)心

是道場 直(眞)心 是淨土 莫心行 曲(典) 口說法直 口說一行三昧 不行直(眞)心 非佛弟子

但行直(眞)心 於一切法 無[上]有執著 名一行三昧 迷人 著法相 執一行三昧 直(眞)心 坐不動 除妄不起心 卽是一行三昧 若如是 此法 同無情(淸) 却是障道因緣 道須(順)通流 何以却滯 心<不>住在 卽通流 住卽被(彼)縛 若坐不動 是 維摩詰 不合呵舍利弗 宴坐(座)林中 善知識

又見有人 敎人坐(座) 看心看淨 不動不起 從此置功 迷人 不悟 便執成顚 卽有數百般(盤)

如此敎道者 故知(之)大錯

 

일행삼매란 일상시에 가거나 머물거나 앉거나 눕거나 항상 곧은 마음을 행하는 것이다.

<정명경>에 말씀하기를 '곧은 마음이 도량이요 곧은 마음이 정토다'라고 하였느니라.


마음에 아첨하고 굽은 생각을 가지고 입르로만 법의 곧음을 말하지 말라.
입으로는 일행삼매를 말하면서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부처님 제자가 아니니라.

 오직 곧은 마음으로 행동하여 모든 법에 집착하고 일행삼매에 국집하여

앉아서 움직이지 않는 것이 곧은 마음이라고 하며,

망심을 제거하여 마음이 일어나지 않는 것을 일행삼매라고 한다.

 만약 이와 같다면 이 법은 무정과 같은 것이므로 도리어 도를 장애하는 인연이니라.


도는 모름지기 통하여 흘러야 한다. 어찌 도리어 정체할 것인가? 
마음이 머물러 있지 않으면 곧 통하여 흐르는 것이요, 머물러 있으면 곧 속박된 것이니라.
만약 앉아서 움직이지 않음이 옳다고 한다면

사리불이 숲속에 편안히 앉아있는 것을 유마힐이 꾸짖었음이 합당하지 않느니라.


선지식들아, 또한 어떤 사람이 사람들에게 '앉아서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보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으로써 공부를 삼게하는 것을 본다.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됨이 곧 수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짐짓 알아야 한다.

 

 

善知識 定惠 猶如何等 如燈光 有燈卽有光 無燈卽無光 燈是光之(知)體 光是燈之用

<名>卽有二 體無兩(124)般 此定惠法 亦復如是

 

선지식들아,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곧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다. 이름은 비록 둘이지만 몸은
둘이 아니다. 이 정,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8.무념(無念)

 

 

善知識 法無頓漸 人有利鈍 迷(明)卽漸契(勸) 悟人 頓修 識自本<心> 是見本性

 悟卽元無差別 不悟 卽長劫輪廻善知識 我自法門 從上已來 [頓漸]皆立無念爲(無)宗

 

선지식들아, 법에는 단박 깨침과 점차로 깨침이 없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영리하고 우둔함이 있으니,

미혹하면 점차로 계합하고 깨친 이는 단박에 닦느니라.

자기의 본래 마음을 아는 것이 본래의 성품을 보는 것이다.

깨달으면 원래로 차별이 없으나 깨닫지 못하면 오랜 세월을 윤회하느니라.

 

武相爲(無)體 無住[無]爲本 何名(明)無(爲)相 無相者 於相而離相 無念者 於念而不念

無住者 爲人本性 念念不住 前念今(念)念後念 念念相續(讀) 無有斷絶 若一念斷絶 法身

卽是離色身 念念時中 於一切法上無住 一念若住 念念卽住 名繫縛 於一切法上 念念不住

卽無縛也 <是>以無住 爲本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예부터 모두가 생각 없음(無念)을 세워 종(宗)을 삼으며

모양 없음(無相)으로 본체를 삼고 머무름 없음(無住)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어떤 것을 모양이 없다고 하는가?
모양이 없다고 하는 것은 모양에서 모양을 떠난 것이다.

 생각이 없다고 하는 것은 생각에 있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이요,

머무름이 없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본래 성품이 생각마다 머무르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지나간 생각과 지금의 생각과 다음의 생각이 생각생각 이어져 끊어짐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 끊어지면 법신이 곧 육신을 떠나느니라.


순간순간 생각할 때에 모든 법 위에 머무름이 없나니,

만약 한 생각이라도 머무르면 생각마다에 머무는 것이므로 얽매임이라고 부르며

 모든 법 위에 순간순간 생각이 머무르지 아니하면 곧 얽매임이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머무름이 없는 것 으로 근본을 삼느니라.

 

 

善知識 外離一切相 是無相 但能離相 性體淸淨 [是] 是以無相爲體 於一切境(鏡)上 不染

名爲無念 於自念(128)上離境(鏡) [不]不於法上念生 莫百物思 念盡除却 一念 斷 卽[無]別處受生 學道者 用心 莫不息法意 自錯 尙可 更勸他人 迷不自見 [迷] 又謗經法 是以立無念爲宗 卽緣迷(名)人 於境(鏡)上 有念 念上 便起邪(去耶)見 一切塵勞妄念 從此而生

 

선지식들아, 밖으로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모양이 없는 것이다.

오로지 모양을 여의기만 하면 자성의 본체는 청정한 것이다.

 그러므로 모양이 없는 것으로 본체를 삼느니라.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하나니,

자기의 생각 위에서 경계를 떠나고 법에 대하여 생각이 나지 않는 것이니라.

 일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서 생각을 모두 제거하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 다른 곳에서 남(生)을 받게 되느니라.


도를 배우는 이는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도록 하라.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는가.

 미혹하여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한 경전의 법을 비방하나니,

그러므로 생각 없음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그것을 반연하여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기느니라.


然此敎門 立無念爲宗 世人 離見 不起於念 若無有念 無念 亦不立 無者 無何事 念者 [念]

何物 無者 離二相諸塵勞 [念者 念眞如本性] 眞如 是念之體 念(130)是眞如之用 [自]性(姓)起念 雖卽見聞覺知(之) 不染萬境(鏡)而常自在 維摩經 云 外能善分別諸法相 內於第一義而不動

 

그러므로 이 가르침의 문은 무념(無念)을 세워 종을 삼느니라.
세상 사람이 견해를 여의고 생각을 일으키지 않아서,

 만약 생각함이 없으면 생각 없음도 또한 서지 않느니라.
없다 함은 두 모양의 번뇌를 떠난 것이고, 생각함은 진여의 본성을 생각하는 것으로서,

진여는 생각의 본체요 생각은 진여의 작용이니라.

그러므로 자기의 성품이 생각을 일으켜 비록 보고 듣고 느끼고 아나,

일만 경계에 물들지 않아서 항상 자재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시기를 '밖으로 능히 모든 법의 모양을 잘 분별하나

 안으로 첫째뜻에 있어서 움직이지 않는다'하였느니라.

 


 

9.좌선(坐禪)

 


善知(諸)識 此法門中 坐(座)禪 元不著心 亦不著淨 亦不言[不]動 若言看心 心元是妄

妄如幻(幼)故 無所看也 若言看淨 人性(姓) 本淨 爲妄念故 蓋覆眞如 離妄念 本性(姓)淨

 不見自性(姓)本淨 心起看淨 却生淨妄 妄無處所 故知看者 [看] 却是妄也 淨無形相

却立淨相 言是功夫 作此見者 障(章)自本性(姓) 却被淨縛 若不動者 [不]見一切人過患

 是 性不動 迷 人 自身 不動 開口卽說人是非 與道違背 看心看淨 却是障道因緣

 

선지식들아, 이 법문 중의 좌선은 원래 마음에 집착하지 않고

 또한 깨끗함에도 집착하지 않느니라. 또한 움직이지 않음도 말하지 않나니,

만약 마음을 본다고 말한다면, 마음은 원래 허망한 것이며

허망함이 허깨비와 같은 까닭에 볼 것이 없느니라.

만약 깨끗함을 본다고 말한다면 사람의 성품은 본래 깨끗함에도

허망한 생각으로 진여가 덮인 것이므로 허망한 생각을 여의면

성품은 본래대로 일으켜 깨끗하느니라.

 

 자기의 성품이 본래 깨끗함은 보지 아니하고 마음을 일으켜 깨끗함을 보면

 도리어 깨끗하다고 하는 망상이 생기느니라.
망상은 처소가 없다. 그러므로 본다고 하는 것이 도리어 허망된 임을 알라.

 깨끗함은 모양이 없거늘, 도리어 깨끗한 모양을 세워서 이것을 공부라고 말하면

 이러한 소견을 내는 이는 자기의 본래 성품을 가로막아 도리어 깨끗함에 묶이게 되니라.


만약 움직이지 않는 이가 모든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는다면

이는 자성이 움직이지 않는 것이다. 미혹한 사람은 자기의 몸은 움직이지 아니하나

 입만 열면 곧 사람들의 옳고 그름을 말하나니, 도와는 어긋나 등지는 것이니라.

 마음을 보고 깨끗함을 본다고 하는 것은 도리어 도를 가로막는 인연이니라.

 

 

今記汝 是此法門中 何名坐(座)禪 此法門中 一切無碍 外於一切境界上 念不起(去)爲坐 [內]見本性(姓)不亂 爲禪 何名爲禪定 外離(雜)相曰禪 內不亂曰定 外 若有相 內性(姓)不亂 本自淨自定 只緣境觸 觸卽亂 離相不亂 卽定 外離相 卽禪 內[外]不亂 卽定 外禪內定 故名禪定

維摩經 云 卽時(是)豁然 還得本心 菩薩戒 云 本源(須)自性(姓) 淸淨 善知識 見自性(姓)自淨 自修自作 自性(姓)法身 自行 佛行 自作自成 佛道

 

이제 너희들에게 말하나니,

 이 법문 가운데 어떤 것을 좌선이라 하는가?
이 법문 가운데는 일체 걸림이 없어서, 밖으로 모든 경계 위에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앉음(坐)이며 안으로 본래 성품을 보아 어지럽지 않는 것이 선(禪)이니라.


어떤 것을 선정이라 하는가?
밖으로 모양을 떠남이 禪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음이 定이다.

 설사 밖으로 모양이 있어도 안으로 성품이 어지럽지 않으면 본래대로 

스스로 깨끗하고 스스로 정(定)이니라.

 그러나 다만 경계에 부딪침으로 말미암아 부딪쳐 곧 어지럽게 되나니,

모양을 떠나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라.

밖으로 모양을 떠나는 것이 곧 선이요 안으로 어지럽지 않은 것이 곧 정이니,

"밖으로 선(禪)하고 안으로 정(定)하므로 선정"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유마경>에 말씀하기를 '즉시에 활연히 깨쳐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하였고,

<보살계>에 말씀하시기를 '본래 근원인 자성이 깨끗하다'고 하였느니라.


선지식들아, 자기의 성품이 스스로 깨끗함을 보아라.

 스스로 닦아 스스로 지음이 자기 성품인 법신이며,

스스로 행함이 부처님의 행위이며, 스스로 짓고 스스로 이룸이 부처님의 도이니라.

 

 


10.삼신(三身)

 

善知識 須自體 以(與)受無相戒 一時 逐惠能口道 令善知識 見自三身佛 於自色身

歸依(衣)淸淨法身佛 於自色身 歸依(衣)千百億化身佛 於自色身 歸依(衣)當來圓滿報身佛

 已上三唱 色身 是舍宅 不可言歸 向者三(138)身 在自法性 世人盡有 爲迷(名)不見

 外覓三[身]如來 不見自色身中三性佛 善知識 聽 與(汝)善知識說 令善知識 於(衣)自色身

見自法性 有三身(世)佛

 

선지식들아, 모두 모름지기 자기의 몸으로 모양 없는 계(無相戒)를 받되,

 다 함께 혜능의 입을 따라 말하라.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삼신불을 보게 하리라.


"나의 색신의 청정법신불에 귀의하오며, 나의 색신의 천백억화신불에 귀의 하오며,

 나의 색신의 당래원만보신불에 귀의합니다". [이상 세번 부름]


색신은 집이므로 귀의한다고 말할 수 없다.

앞의 세 몸은 자기의 성 속에 있고 세상 사람이 다 가진 것이다.

그러나 미혹하여 보지 못하고 밖으로 세 몸의 부처를 찾고

자기 색신 속의 세 성품의 부처는 보지 못하느니라.


선지식들은 들으라. 선지식들에게 말하여 선지식들로 하여금

자기의 색신에 있는 자기의 법성이 세 몸의 부처를 가졌음을 보게 하리라.

 


此三身佛 從性上生 何名淸淨[法]身佛 善知識 世人 性 本自淨 萬法 在自性(姓)

 思量一切[惡]事 卽行於(衣)惡 思量一切善事 便修於善行 知如是一切法 盡在自性(姓)

自性(姓) 常淸淨 日月常明(名) 只爲雲覆蓋 上明(名)下暗 不能了見日月星(西)辰

忽遇慧(惠)風 吹散 卷盡雲霧 萬像森(參)羅 一時皆現 世人性淨 猶如淸天 惠如日 智如月

 智惠常明(名) 於外著境(看敬) 妄念浮雲 蓋覆 自性(姓) 不能明 故遇善知識 開

眞法吹却迷(名)妄 內外明(名)徹 於自性(姓)中 萬法 皆見 一切法 自在性(姓)

名爲淸淨法身 自歸依(衣)者除不善行 是名歸依(衣)

 

 세 몸의 부처는 자성으로부터 생긴다.

어떤 것을 깨끗한 법신의 부처라고 하는가? 


선지식들아, 세상 사람의 성품은 본래 스스로 깨끗하여 만 가지 법이 자기의 성품에 있다.

 그러므로 모든 악한 일을 생각하면 곧 악을 행하고

모든 착한 일을 생각하면 문득 착한 행동을 닦는 것이다. 
이와 같이 모든 법이 다 자성 속에 있어서 자성은 항상 깨끗함을 알라.


해와 달은 항상 밝으나 다만 구름이 덮이면

 위는 밝고 아래는 어두워서 일월성신을 보지 못한다. 그러다가 지헤의 바람이 불어

 구름과 안개를 다 걷어 버리면 삼라만성이 일시에 모두 나타나느니라.


세상 사람의 자성이 깨끗함도 맑은 하늘과 같아서, 혜(惠)는 해와 같고 지(智)는 달과 같다. 지혜는 항상 밝되 밖으로 경계에 집착하여 망념의 뜬구름이 덮여 자성이 밝지 못할 뿐이다. 그러므로 선지식이 참법문을 열어 주어 미망을 불어 물리쳐 버리면 안팎이 사무쳐 밝아 

자기의 성품 가운데 만법이 다 나타나나니,

 모든 법에 자재한 성품을 청정법신이라 이름하느니라.


스스로 돌아가 의지함이란, 착하지 못한 행동을 없애는 것이며

 이것을 이름하여 돌아가 의지함이라 하느니라.

 

 

何名爲千百億化身佛 不思量 性卽空寂 思量 卽是自化 思量惡法 化爲地獄 思量善法 化爲天堂 毒害(142)化爲畜生 慈悲 化爲菩薩 智惠 化爲上界 愚癡 化爲下方 自性(姓)變化甚多(名) 迷人 自不知見 一念善 知惠卽生 <此名自性化身>

 

어떤 것을 천백억화신불이라고 하는가?
생각하지 않으면 자성은 곧 비어 고요하지만 생각하면 이는 곧 스스로 변화한다.

그러므로 악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지옥이 되고

착한 법을 생각하면 변화하여 천당이 되고

독과 해침은 변화하여 축생이 되고

자비는 변화하여 보살이 되며,

지혜는 변화하여 윗세계가 되고

 우치함은 변화하여 아랫나라가 된다.

 이같이 자성의 변화가 매우 많거늘, 미혹한 사람은 스스로 알아보지를 못한다.
한 생각이 착하면 지혜가 곧 생기나니, 이것을 이름하여 자성의 화신이라하니라.

 

<何名圓滿報身佛> 一燈 能除千年闇 一智能滅萬年愚 莫思向前 常思於後 常後念善

名爲報身 一念惡報 却千年善止(心) 一念善報 却千年惡滅 無始(常)已來 後念善 名爲報身 從法身思量 卽是化身 念念善 卽是報身 自悟自修 卽名歸依(衣)也 皮肉 是色身 是舍宅

 不在歸依(衣)也 但悟三身 卽識大意(億)

 

어떤 것을 원만한 보신불이라고 하는가?
한 등불이 능히 천년의 어둠을 없애고 한 지혜가 능히 만년의 어리석음을 없애나니,

 과거를 생각하지 말고 항상 미래만을 생각하라. 
항상 미래의 생각이 착한 것을 이름하여 보신이리고 하느니라.


한 생각의 악한 과보는 천년의 착함을 물리쳐 그치게 하고

한 생각의 착한 과보는 천년의 악을 물리쳐 없애나니,

비롯함이 없는 때로부터 미래의 생각이 착함을 보신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법신을 좇아 생각함이 곧 화신이요, 순간순간의 생각마다 착한 것이 곧 보신이요,

스스로 깨쳐 스스로 닦음이 곧 돌아가 의지하는 것이다.

 가죽과 살은 색신이며 집으로 귀의할 곳이 아니다.

다만 세 몸을 깨치면 큰 뜻을 아느니라.

 


 

11.사원(四願)

 

今旣自歸依三身佛已 與善知識 發四弘大願 善知識 一時 逐惠能道 衆生無邊誓願度

煩惱無邊誓願斷 法門無邊誓願學 無上佛道誓願成 善知識 衆生無邊誓願道 不是惠能

度善知識 心中衆生 各於自身 自性(姓)自度 何名自性(姓)自度 自色身中 邪見煩惱

愚癡迷(名)妄 自有本覺性 將正見度 旣悟正見 般若之智 除却愚癡迷妄 衆生 各各自度

 邪來(見) 正度 迷來 悟度 愚來智度 惡來善度 煩惱來菩提(薩)度 如是度者 是名眞度

 煩惱無邊誓願斷 自心 除虛妄 法門無邊誓願學 學無上正法 無上佛道誓願成 常下心行

恭敬一切 遠離迷執 覺知生般若 除却迷妄 卽自悟佛道成 行誓願


이제 이미 스스로 삼신불에 귀의하여 마쳤으니,

선지식들과 더불어 네 가지 넓고 큰 원을 발하리라.

 

 선지식들아, 다 함께 혜능을 따라 말하라.
무량한 중생 다 제도하기를 서원합니다.
무량한 번뇌 다 끊기를 서원합니다.
무량한 법문 다 배우기를 서원합니다.
위 없는 불도를 이루기를 서원합니다.

[이상 세번 부름]


선지식들아,무량한 중생을 맹세코 다 제도한다 함은

 혜능이 선지식들을 제도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 속의 중생을 각기 자기의 몸에 있는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어떤 것을 자기의 성품으로 스스로 제도한다고 하는가?
자기 육신 속의 삿된 견해와 번뇌와 어리석음과 미망에

본래의 깨달음의 성품을 스스로 가지고 있으므로 바른 생각으로 제도하는 것이니라.
이미 바른 생각인 반야의 지혜를 깨쳐서 어리석음과 미망을 없애버리면

중생을 저마다 스스로 제도한 것이니라,

삿됨이 오면 바름으로 제도하고 미혹함이 오면 깨침으로 제도하고,

어리석음이 오면 지혜로 제도하고 악함이 오면 착함으로 제도하며

번뇌가 오면 보리로 제도하나니, 이렇게 제도함을 진실한 제도라고 하느니라.


무량한 번뇌를 맹세코 다 끊는다 함은 자기의 마음에 있는 허망함을 제거하는 것이다.

 무량한 법문을 맹세코 다 배운다 함은 위 없는 바른 법을 배우는 것이다.

 위 없는 불도(佛道)를 맹세코 이룬다 함은

항상 마음을 낮추는 행동으로 일체를 공격하며 미혹한 집착을 멀리 여의고,

 깨달아 반야가 생겨 미망함을 없애는 것이다.

 곧 스스로 깨쳐 불도를 이루어 맹세코 바라는 힘(誓願力)을 행하는 것이니라.

 


 

佛紀 2532年 端午節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

백련선서간행회(白蓮禪書刊行會) 圓澤 和南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