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조단경(六祖壇經)

六祖壇經 敦煌本...編譯(24~33장)

通達無我法者 2007. 7. 9. 17:22

 돈황본단경[敦煌本壇經]

2편.편역(編譯)

(24~33장)

 

 

 

24.돈수(頓修)


世人 盡傳 南[宗]能北(比)秀 未知根本事由 且秀禪師 於荊南府當(南荊 堂)陽縣玉泉寺

住持(時)修行 惠能大師 於韶州城東三十五里曹溪山 住 法卽一宗 人有南北(比) 因此便立南北 何名(以)漸頓 法卽一種 見有遲疾 見遲卽漸 見疾卽頓 法無漸頓 人有利鈍故 名漸頓

 神秀師嘗(常)見人 說惠能法 疾直指(旨)路 秀師遂喚(換)門人僧志誠曰 汝聰明多智

 汝與吾至曹溪山 到惠能所 禮拜但聽 莫言吾使汝來 所聽得(德)意旨 記取

 却來與吾說 看惠能見解與吾誰疾遲 汝第一早來 勿令吾怪 志誠 奉使歎喜 遂半月中間

卽至曹溪山 見惠能和尙(當) 禮拜卽聽 不言來處 志誠(城) 聞法 言下便悟 卽契本心

起立卽]禮拜 自言 和尙 弟子從玉泉寺來 秀師處 不得(德)契悟 聞和尙說 便契本心 和尙 慈悲 願當敎(散)示 惠能大師曰 汝從彼(被)來 應是細作 志誠曰 未說時卽是 說[及]了不(卽)是

六祖言 煩惱卽是菩提 亦復如是

 

세상 사람이 다 전하기를 '남쪽은 혜능이요 북쪽은 신수'라고 하나,

아직 근본 사유를 모르는 말이다.


또 신수선사는 형남부 당양현 옥천사에 주지하며 수행하고,

혜능대사는 소주성 동쪽 삼십오 리 떨어진 조계산에 머무시니,

법은 한 종(宗)이나 사람에게 남쪽과 북쪽이 있어

이로 말미암아 남쪽과 북쪽이 서게 되었다. 


어떤 것을 '점(漸)과 '돈(頓)'이라고 하는가?
법은 한가지로되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기 때문이다.

견해가 더딘즉 '점'이요 견해가 빠른즉'돈'이다.

 법에는 '점'과 '돈'이 없으나 사람에게는 영리함과 우둔함이 있는 까닭으로

'점'과 '돈'이라고 이름한 것이다.


일찍이 신수스님은 사람들이 혜능스님의 법이 빠르고 곧게 길을 가리킨다고 말하는 것을

 보았다. 신수스님은 드디어 문인 지성스님을 불러 말하였다.


"너는 총명하고 지혜가 많으니, 나를 위하여 조계산으로 가라.

가서 혜능 스님의 처소에 이르러 예배하고 듣기만 하되, 내가 보내서 왔다 하지 말라.

 들은대로 그 뜻을 기억하여 돌아와서 나에게 말하여라.

그래서 혜능스님의 견해와 나와, 누가 빠르고 더딘지를 보게 하여라.

너는 첫째로 빨리 오너라. 그래서 나로 하여금 괴이하게 여기지 않도록 하라."


지성은 기쁘게 분부를 받들어 반달쯤 걸려서 조계산에 도달하였다.

 그는 혜능스님을 뵙고 예배하여 법문을 들었으나 온 곳을 말하지 않았다.
지성은 법문을 듣고 그 말끝에 문득 깨달아 곧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다.
그는 일어나서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제자는 옥천사에서 왔습니다. 신수스님 밑에서는 깨치지 못하였으나

 큰스님의 법문을 듣고 본래의 마음에 계합하였습니다.

 큰스님께서는 자비로써 가르쳐 주시기 바라옵니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거기에서 왔다면 마땅히 염탐꾼이렸다!"
지성이 말하였다.
"말을 하기 이전에는 그렇습니다만, 말씀을 드렸으니 이미 아니옵니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번뇌가 곧 보리임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大師謂志誠曰 吾聞汝(與)禪師敎人 唯傳戒定慧 汝(與)和尙 敎人戒定慧 如何 當爲吾說

 志誠(城)曰 秀和尙 言戒定慧 諸惡不作 名爲戒 諸善奉行 名爲惠 自淨其意 名爲定

此卽名爲戒定惠 彼作如是說 不知和尙所見 如何 惠能和尙答曰 此說 不可思議 惠能所見

又別 志誠(城)問 何以別 惠能答曰

見有遲疾 志誠(城) 請和尙說所見戒定惠 大師言 [如]汝聽吾(悟)說 看吾(悟)所見處 心地無[疑]非自性(姓)戒 心地無亂 是自性(姓)定 心地無癡 自性(姓)[是]惠 能大師言 汝戒定惠 勸小根諸人 吾戒定惠 勸上[根]人 得悟(吾)自[性] 亦不立戒定惠 志誠(城) 言 請大師說不立 如何 大師言 自性(姓) 無非無亂無癡 念念般若觀照 常(當)離法相 有(222)何可立 自性(姓)頓修 立有漸 此所(契)以不立 志誠 禮拜 便不離曹溪山 卽爲門人 不離大師左右

 

대사께서 지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들으니 너의 스님이 사라을 가르치기를 오직 계.정.혜를 전한다고 하는데,

너의 스님이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계.정.혜는 어떤 것인가? 마땅히 나를 위해 말해 보라."


지성이 말하였다.
"신수스님은 계.정.혜를 말하기를 '모든 악을 짓지 않는 것을 계라고 하고,
모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을 혜라고 하며, 스스로 그 뜻을 깨끗이 하는것을 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곧 계.정.혜이다'고 합니다. 
신수스님의 말씀은 그렇거니와, 큰스님의 의견은 어떠신지 알지 못합니다."


혜능대사께서 대답하셨다.
"그 법문은 불가사의하나 혜능의 소견은 또 다르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어떻게 다릅니까?"
혜능스님께서 대답하셨다.
"견해에 더디고 빠름이 있느니라."
지성이 계.정.혜에 대한 스님의 소견을 청하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는 나의 말을 듣고서 나의 소견을 보라. 마음의 땅에 그릇됨이 없는 것이 자성의 계요,

 마음의 땅에 어지러움이 없는 것이 자성의 정이요,

마음의 땅에 어리석음이 없는 것이 자성의 혜이니라."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계.정.혜는 작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요, 

나의 계.정.혜는 높은 근기의 사람에게 권하는 것이다. 
자기의 성품을 깨치면 또한 계.정.혜도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이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세우지 않는다고 말씀하시는 뜻은 어떤 것입니까.?"
지성은 단박 닦으라. 세우면 점차가 있으니 그러므로 세우지 않느니라."
지성은 예배하고서 바로 조계산을 떠나지 아니하고

 곧 문인이 되어 대사의 좌우를 떠나지 않았다.

 

 

 

25.불행(佛行)

 

又有一僧 名法達 常誦法華經七年 心迷不知正法之處 <來問曰>經上 有疑 大師 智慧廣大

願爲決(時)處 大師言 法達 法卽甚達 <汝心不達> 經上無疑(癡) <汝時自疑> 汝心自邪(耶)

 而求正法 吾心正定 卽是持經 吾一生已來 不識文字 汝將法華經來

對吾讀一遍 吾聞(問)卽知(之)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법달이라 하였다.

항상 <법화경>을 외워 칠년이 되었으나

마음이 미혹하여 바른 법의 당처(堂處)를 알지 못하더니 와서 물었다.
"경에 대한 의심이 있습니다. 큰스님의 지혜가 넓고 크시오니 의심을 풀어주시기 바랍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은 제법 통달하였으나 너의 마음은 통달하지 못하였구나.

 경 자체에는 의심이 없거늘 너의 마음이 스스로 의심하고 있다. 


네 마음이 스스로 삿되면서 바른 법을 구하는구나.

나의 마음 바른 정(定)이 곧 경전을 지니고 읽는 것이다. 
나는 한평생 동안 문자를 모른다.

 너는 <법화경>을 가지고 와서 나를 마주하여 한편(一遍)을 읽으라.

 내가 들으면 곧 알 것이니라."

 


法達 取經到 對大師讀一遍 六祖聞(問)已 卽識佛意 便與(汝)法達說法華經 六祖言法達

法華經 無多語(228) 七卷 盡是譬喩因(內)緣 如來廣說三乘 只爲世人根鈍 經文(聞)分(公)明

無有餘乘 唯一佛乘 大師<言> 法達 汝聽一佛乘 莫求二佛乘 迷却汝性(聖)

經中 何處是一佛乘 與汝(汝與)說 經云 諸佛世尊 


唯以(汝)一大事因緣故 出現於世(已上十六字(家)是正法) <此>法 如何解 此法 如何修

 汝聽吾說 人心 不思 本源 空寂 離却邪見 卽一大事(是)因緣 內外不迷 卽離兩邊 外迷著(看)相 內迷著空 於相離相 於空離空 卽是不[空]迷 悟(吾)此法 一念 心開 出現於世 心開何物

 開佛知見 佛 猶如覺也 分爲四門 開覺知見 示覺知見 悟覺知見 入覺知見 開示悟入

 從(上)一處入 卽覺知見 見自本性 卽(229)得出世

 

법달이 경을 가지고 와서 대사를 마주하여 한편을 읽었다.

육조스님께서 듣고 곧 부처님의 뜻을 아셨고 이내 법달을 위하여 <법화경>을 설명하시었다. 


육조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법화경>에는 많은 말이 없다. 일곱 권이 모두 비유와 인연이니라. 
부처님께서 널리 삼승을 말씀하심은 다만 세상의 근기가 둔한 사람을 위함이다. 
경 가운데 분명히 '다른 승(乘)이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한불승(佛乘) 뿐이라'고 하셨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너는 일불승을 듣고서 이불승을 구하여 너의 자성을 미혹하게 하자 말라.

 경 가운데서 어느 곳이 일불승인지를 너에게 말하리라.
경에 말씀하기를 '모든 부처님.세존께서는 오직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 때문에 세상에 나타나셨다.'고 하셨다. [이상의 열여섯 자는 바른 법이다.]
이 법을 어떻게 알며 이 법을 어떻게 닦을 것인가? 너는 나의 말을 들으라.


사람의 마음이 생각을 하지 않으면 본래의 근원이 비고 고요하여 삿된 견해를 떠난다.

밖으로 미혹하면 모양에 집착하고 안으로 미혹하면 공(空)에 집착한다.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공에서 공을 떠나는 것이 곧 미혹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법을 깨달아 한생각에 마음이 열리면 세상에 나타나는 것이니라.


마음에 무엇을 여는가?
부처님의 지견을 여는 것이다. 부처님은 깨달음이니라.

 네 문으로 나뉘나니, 깨달음의 지견을 여는 것과 깨달음의 지견을 보이는 것과 

깨달음의 지견을 깨침과 깨달음의 지견에 들어가는 것이니라.

 열고(開) 보이고(示) 깨닫고(悟) 들어감(入)은 한 곳으로부터 들어가는 것이다.

곧 깨달음의 지견으로 자기의 본래 성품을 보는 것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大師言 法達 吾(悟)常願一切世人 心地 常自開佛知見 莫開衆生知見 世人 心<邪>

 愚迷造惡 自開衆生知見世人心正 起智惠觀照 自開佛知(智)見 莫開衆生知(智)見 開佛知(智)見 卽出世 大師言 法達 此是法華(達)經一乘法 向下分三 爲迷(名)人故 汝但依(於)一佛乘

大師言 法達 心行 轉法華 不行 法華轉 心正 轉法華 心邪(耶) 法華轉 開佛知(智)見 轉法華 

開衆生知(智)見 被法華轉 大師言 努力依法修行 卽是轉經 法達 一聞 言下大悟 涕淚悲泣

自言 和尙 實未曾(僧)轉法華 七年 被法華轉 已後 轉法華 念念修行佛行

 大師言 卽佛行 是佛 其時聽人(入) 無不悟者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나는 모든 세상 사람들이 스스로 언제나 마음 자리로 부처님의 지견을 열고

중생의 지견을 열지 않기를 항상 바라노라.

 세상사람의 마음이 삿되면 어리석고 미혹하여 악을 지어 스스로 중생
의 지견을 여나니, 중생의 마음이 발라서 지혜를 일으켜 관조하면 스스로 부처님의 지견을 여나니, 중생의 지견을 열지 말고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곧 세상에 나오는 것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이것이 [법화경의 일승법이다. 아래로 내려가면서 삼승을 나눈 것은

 미혹한 사람을 위한 까닭이니, 너는 오직 일승불만을 의지하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달아, 마음으로 행하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으로 행하지 않으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나니,

마음이 바르면 <법화경>을 굴리고 마음이 삿되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부처님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을 굴리고

 중생의 지견을 열면 <법화경>에 굴리게 되느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힘써 법대로 수행하면 이것이 곧 경을 굴리는 것이니라."
법달은 한번 듣고 그 말끝에 크게 깨달아 눈물을 흘리고 슬피울면서 스스로 말하였다.
"큰스님이시여, 실로 지금까지 <법화경>을 굴리지 못하였습니다. 
칠 년을 <법화경>에 굴리어 왔습니다.

 지금부터는 <법화경>을 굴려서 생각생각마다 부처님의 행을 수행하겠습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부처님 행이 곧 부처이니라."
그 때 듣는 사람으로서 깨치지 않은 이가 없었다.

 


 

26.참청(參請)

 

時有一僧名智常 來曹溪山 禮拜和尙 問(聞)四乘法義 智常 問(聞)和尙曰 佛說三乘

又言最上乘 弟子不解 望爲敎(敬)示 惠能大師曰 汝自身心見 莫著外法相 元無四乘法

人心自有(不量)四等 法有四乘 見聞讀誦 是小乘 悟<法>解義是中乘 依(衣)法修行 是大乘

萬法 盡通 萬行(幸)俱備 一切無離 但離法相 作無所得(德) 是最上乘 乘是[最上]行義

 不在口諍 汝須自修 莫問吾(悟)也

 

그 무렵 지상이라고 하는 한 스님이

조계산에 와서 큰스님께 예배하고 사승법(四乘法)의 뜻을 물었다.


지상이 큰스님께 여쭈었다.
"부처님은 삼승을 말씀하시고 또 최상승을 말씀하시었습니다.

제자는 알지 못하겠사오니 가르쳐 주시기 바랍니다."


혜능대사가 말씀하셨다.
"너는 자신의 마음으로 보고 바깥 법의 모양에 집착하지 말라. 원래 사승법이란 없느니라.

사람의 마음이 스스로 네 가지로 나누어 법에 사승이 있을 뿐이다.

 보고 듣고 읽고 욈은 소승이요,

법을 깨쳐 뜻을 앎은 중승이며,

법을 의지하여 수행함은 대승이요

 일만 가지 법을 다 통달하고 일만가지 행을 갖추어 일체를 떠남이 없으되

오직 법의 모양을 떠나고 짓되, 얻는 바가 없는 것이 최상승이니라.

승(乘)은 행한다는 뜻이요 입으로 다투는 것에 있지 않다.

 너는 모름지기 스스로 닦고 나에게 묻지 말라."


 

又有一僧名神會 南陽人也 至曹溪山 禮拜問言 和尙坐(座)禪 見 亦不見 大師起打神會三下

却問神會 吾打汝 痛 不痛 神會答言 亦痛亦不痛 六祖言曰 吾亦見亦不見 神會又問 大師

何以亦見亦不見 大師言 吾亦見 常見自過患 故云亦見 亦不見者 不見天地人過罪 所以亦見亦不見(也) 汝 亦痛亦不痛 如何 神會答曰 若不痛 卽同無情木石 若痛 卽同凡(夫) 卽起於恨

大師言 神會 向前 見不見 是兩邊 痛<不痛> 是生滅 汝自性 且不見 敢來弄人 神會(禮拜)禮拜 更不言 大師言 汝心迷不見 問善知識覓路 以心悟自見 依法修行
汝自迷(名) 不見自心 却來問惠能見否 吾見(不)自知 代汝迷不得 汝若自見 代得吾迷 何不自

修 問吾見否 神會作禮 便爲門人 不離曹溪山中 常在左右

 

또 한 스님이 있었는데 이름을 신회라고 하였으며 남양사람이다.
조계산에 와서 예배하고 물었다.
"큰스님은 좌선하시면서 보십니까. 보지 않으십니까?"


대사께서 일어나서 신회를 세 차례 때리시고 다시 신회에게 물었다.
"내가 너를 때렸다. 아프냐, 아프지 않으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합니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신회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은 어째서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십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본다고 하는 것은 항상 나의 허물을 보는 것이다. 그러므로 본다고 말한다.

 보지 않는다고 하는 것은 하늘과 땅과 사람의 허물과 죄를 보지 않는 것이다. 
그 까닭에 보기도 하고 보지 않기도 하느니라.

 네가 아프기도 하고 아프지 않기도 하다 했는데 어떤 것이냐?"


신회가 대답하였다.
"만약 아프지 않다고 하면 곧 무정인 나무와 돌과 같고,

아프다 하면 곧 범부와 같아서 이내 원한을 일으킬 것입니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신회야, 앞에서 본다고 한 것과 보지 않는다고 한 것은 양변(兩邊)이요,

아프고 아프지 않음은 생멸이니라.

너는 자성을 보지도 못하면서 감히 와서 사람을 희롱하려 드는가?"


신회가 예배하고 다시 더 말하지 않으니,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네 마음이 미혹하여 보지 못하면 선지식에게 물어서 길을 찾아라.

마음을 깨쳐서 스스로 보게 되면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네가 스스로 미혹하여 자기 마음을 보지 못하면서

도리어 와서 혜능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내가 보는 것은 내 스스로 아는 것이라 너의 미혹함을 대신할 수 없느니라.

 만약 네가 스스로 본다면 나의 미혹함을 대신하겠느냐?

어찌 스스로 닦지 아니하고 나의 보고 보지 않음을 묻느냐?"


신회가 절하고 바고 문인이 되어 조계산중을 떠나지 않고 항상 좌우에서 모시었다.

 

 

 

 

27. 대법(對法)

 

 

大師遂喚門人法海,志誠,法達,智常,志徹,志道,法珍,法如,神會 大師言 汝等拾弟子 近前

汝等 不同餘人 吾滅度後 汝各爲一方頭 吾敎汝說法 不失本宗 擧<三>科法門 動<用>

三十六對 出沒 卽離兩邊 說一切法 莫(243)離於性相 若有人 問法 出語盡雙 皆取法對

 來去相因 究( )竟 二法 盡除 更無去處 三科法門者 蔭界入 蔭是五蔭 界<是>十八界 <入>是十二入 何名五蔭 色蔭,受蔭,想(相)蔭,行蔭.識蔭 是 何名十八界 六塵,六門,六識 何名十二入

外六塵 中六門 何名六塵 色聲香味觸(未獨)法 是 何名六門 眼耳鼻舌身意 是 法性 起六識

 眼識耳識鼻識舌識身識意識 六門六塵 自性 含萬法 名爲含藏識 思量卽轉識 生六識

出六門<見>六塵 是三六十八 由自性邪 起十八邪 含自性<正起>十八正 含惡用卽衆生

善用卽佛 用由(油)何等 由(油)自性對

 

대사께서 드디어 문인 법해.지성.법달.지상.지통.지철.지도.법진.법여.신회 등을 불렀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 열명의 제자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너희들은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않으니, 내가 세상을 떠난 뒤에

너희들은 각각 한곳의 어른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들에게 법 설하는 것을 가르쳐서 근본 종취를 잃지 않게 하리라.
삼과의 법문(三科法門)을 들고 동용삼십육대(動用三十六對)를 들어서

 나오고 들어감에 곧 양변을 여의도록 하여라.


모든 법을 설하되 성품과 모양을 떠나지 말라.

만약 사람들이 법을 묻거든 말을 다 쌍(雙)으로 해서 모두 대법(對法)을 취하여라.

 가고 오는 것이 서로 인연하여 구경에는 두 가지 법을 다 없애고

다시 가는 곳마저 없게하라. 삼과법문이란 음(蔭).계(界).입(入)이다.

음은 오음(五蔭)이요 계는 십팔계(十八界)요 입은 십이입(十二入)이니라.


어떤 것을 오음이라고 하는가? 색음.수음.상음.행음.식음이니라.
어떤 것을 십팔계라고 하는가? 육진(六塵).육문(六門).육식(六識)이니라.
어떤 것을 십이입(十二入)이라고 하는가? 바깥의 육진과 안의 육문이니라.


어떤 것을 육진이라고 하는가? 색.성.향.미.촉.법이니라.
어떤 것을 육문이라고 하는가? 눈.귀.코.혀.몸.뜻이니라.
법의 성품이 육신인 안식.이식.비식.설식.신식.의식의 육식과 육문과 육진을 일으키고

자성은 만법을 포함하나니, 함장식(含藏識)이라고 이름하느니라.


생각을 하면 곧 식(識)이 작용하여 육식이 생겨 육문으로 나와 육진을 본다.

이것이 삼(三).육(六)은 십팔(十八)이니라.
자성이 삿되기 때문에 열여덟 가지 삿됨이 일어나고,

자성이 바름(正)을 포함하면 열여덟 가지 바름이 일어나느니라.


악의 작용을 지니면 곧 중생이요, 선이 작용하면 곧 부처이니라.
작용은 무엇들로 말미암는가? 자성의 대법으로 말미암느니라.


 

外境無情 對有五 天與地對 日與月對 暗與明對 陰與陽對 水與火對 語與言對 法與相對

有十二對 有爲無爲有色無色對 有相無相對 有漏無漏對 色與空對,動與靜(淨)對,淸與濯對,

凡與聖(性)對,僧與俗對,老與少對,大大與少少對,長與短對,高與下對 自性[居]起用對 有十九對 邪與正對,癡與惠對,愚與智對,亂與定對,戒與非對,直與曲(典)對,實與虛對, 與平對,煩惱與菩提對,慈與害(空)對,喜與嗔對,捨與對,法身與色身對,化身與報身對,體與用對,性與相<對>

 有情(淸)無情(親)對 言語 與法相 有十二對 [內]外境有無<情>五對 自性起有十九對(三身有三對) 都合成三十六對法也 此三十六對法 解用 通一切經 出入 卽離兩邊 如何自性起用 三十六對共人言語 出外 於<相>離相 入內 於空離空 著空卽惟長無明(名) 著相惟<長>邪見 謗法 直言不用文字 旣云不用文字 人不合言語 言語卽是文字 自性上說空 正語言 本性 不空 迷自惑 語言邪(除)故 暗不自暗 以明(名)變暗 以暗不自暗 以暗現明 來去相因 三十六對 亦復如是

 

바깥 경계인 무정(無情)에 다섯 대법이 있으니,

 하늘과 땅이 상대요 해와 달이 상대이며, 어둠과 밝음이 상대이며,

 음과 양이 상대이며, 물과 불이 상대이니라.
논란하는 말(語)과 직언하는 말(言)의 대법과, 법과 형상의 대법에 열두가지가 있다.

 

유위가 무위.유색과 무색이 상대이며, 유상과 무상이 상대이며, 유루와 무루가 상대이며,

 현상(色)과 공이 상대이며, 움직임과 고요함이 상대이며, 맑음과 흐림이 상대이며, 범(凡)과 성(聖)이 상대이며, 승(僧)과 속(俗)이 상대이며, 늙음과 젊음이 상대이며,

큼과 작용이 상대이며, 김(長)과 짧음(短)이 상대이며, 높음과 낮음이 상대이니라.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 대법에 열아홉 가지가 있다.

삿됨과 바름이 상대요, 어리석음과 지혜가 상대이며, 미련함과 슬기로움이 상대요,

어지러움과 선정이 상대이며, 계율과 잘못됨이 상대이며, 곧음과 굽음이 상대이며,

실(實)과 허(虛)가 상대이며, 험함과 평탄함이 상대이며, 번뇌와 보리가 상대이며,

사랑과 해침이 상대이며, 기쁨과 성냄이 상대이며, 버림과 아낌이 상대이며,

 나아감과 물러남이 상대이며, 남(生)과 없어짐(滅)이 상대이며,

항상함과 헛없음이 상대이며, 법신과 색신이 상대이며, 화신과 보신이 상대이며,

본체와 작용이 상대이며, 성품과 모양이 상대이니라.


유정.무정의 대법인 어(語).언(言)과 법(法).상(相)에 열두 가지 대법이 있고,

바깥 경게인 무정에 다섯 가지 대법이 있으며, 자성이 일으켜 작용하는데

열아홉 가지의 대법이 있어서 모두 서른여섯 가지 대법을 이루니라.
이 삼십육 대법을 알아서 쓰면 일체의 경전에 통하고 출입에 곧 양변을 떠난다. 


어떻게 자성이 기용(起用)하는가?
삼십육 대법이 사람의 언어와 더불어 함께 하나 밖으로 나와서는 모양에서 모양을 떠나고, 안으로 들어와서는 공(空)에서 공얼 떠나나니,

공에 집착하면 오직 무명만 기르고 모양에 집착하면 오직 사견만 기르느니라.
법을 비방하면서 곧 말하기를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이미 문자를 쓰지 않는다고 말할진대는 사람이 말하지도 않아야만 옳을 것이다.

 언어가 곧 문자이기 때문이다.


자성에 대해서 공(空)을 말하나 바른 말로 말하면 본래의 성품은 공하지 않으니 

미혹하여 스스로 현혹됨은 말들이 삿된 까닭이니라.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 때문에 어두운 것이다.

어둠이 스스로 어둡지 아니하나 밝음으로써 변화하여 어둡고, 어둠으로써 밝음이

 나타나나니, 오고감이 서로 인연한 것이다. 삼십육 대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大師言 十弟子 已後傳法 遞相敎授一卷壇經 不失本宗 不稟受(授)壇經 非我宗旨 如今得了

遞代流行 得遇壇經者 如見吾親授 拾僧 得敎授已 寫爲壇經 遞代流行 得者必當見性

 

대사께서 열명의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이후에 법을 전하되 서로가 이 한 권의 <단경>을 가르쳐 주어 본래의 종취를 잃어버리지 않게 하라. <단경>을 이어받지 않는다면 나의 종지가 아니니라.

이제 얻었으니 대대로 유포하여 행하게 하라.
<단경>을 만나 얻은 이는 내가 친히 주는 것을 만남과 같으니라."
열명의 스님들이 가르침을 받아 마치고 <단경>을 베껴서 대대로 널리 퍼지게 하니,

 얻은 이는 반드시 자성을 볼 것이다.

 

 

 

28. 진가(眞假)

 

大師先天二年八月三日 滅度 七月八日 喚門人告別 大師<先>天元年 於新州國恩寺造塔

 至先天二年七月告別 大師言 汝衆 近前 吾(五)至八月欲離世間 汝等 有疑早問

爲汝(外)破疑 當令迷者盡 使汝(與)安樂 吾若去後 無人(入)敎汝(與) 法海等衆僧

聞已 涕淚悲泣 唯有神會 不動亦不悲泣 六祖言 神會小僧 却得善<不善>等 毁譽不動

 餘(除)者 不得 數年 山中 更修何道 汝今悲泣 更有阿誰 憂吾不知去處在 若不知去處

終不別汝 汝等悲泣 卽不知吾<去>處 若知去(255)處 卽不悲泣 性體(聽) 無生無滅 無去無來

汝等 盡坐(座) 吾與汝(如)一偈 眞假動靜(淨)偈 汝(與)等 盡誦取 見此偈意 汝<與>吾同 依(於)此修行 不失宗旨 僧衆禮拜 請大師留偈 敬心受持(特)

偈曰
一切無有眞 不以見於眞.
若見於(衣)眞者 是見盡非眞.
若能姿有眞 離假卽心眞.
自心不離假 無眞何處眞.
有情(性)卽解動 無情(性)卽不動. 
若修不動行 同無情不動.
若見眞不動 動上有不動.(256)
不動是不動 無情無佛種(衆).
能善分別相 第一義不動. 
若悟作此見 則是眞如用.
菩提學道者 努力須用意.
莫於大乘門 却執生死智.
前頭人相應 卽共論佛語.
若實不相應 合掌令歡喜(勸善).
此敎本無諍 無諍失道意.
執迷諍法門 自性入生死.

 

대사께서는 선천 이년 팔월 삼일에 돌아가셨다.

칠월 팔일에 문인들을 불러 고별하시고, 선천 원년에 신주 국은사에 탑을 만들고

선천 이년 칠월에 이르러 작별을 고하셨다.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앞으로 가까이 오너라. 나는 팔월이 되면 세상을 떠나고자 하니

너희들은 위하여 의심이 있거든 빨리 물어라. 
너희들을 위하여 의심을 부수어 마땅히 미혹을 다 없애어 너희들로 하여금 안락하게 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는 너희들을 가르쳐 줄 사람이 없으리라."
법해를 비롯한 여러 스님들이 듣고 눈물을 흘리며 슬피 울었으나, 

오직 신회만이 꼼짝하지 아니하고 울지도 않으니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어린 신회는 도리어 좋고 나쁜 것에 대하여 평등함을 얻어 헐뜯고 칭찬함에 움직이지 않으나, 나머지 사람들은 그렇지 못하구나. 그렇다면 여러 해동안 산중에서 무슨 도를 닦았는가? 너희 지금 슬피 우는 것은 또 누구를 위함인가?

나의 가는 곳을 너희가 몰라서 근심하는 것인가? 
만약 내가 가는 곳을 모른들 마침내 너희에게 고별하지 않겠느냐?
너희들이 슬피 우는 것은 곧 나의 가는 곳을 몰라서이다.

 만약 가는 곳을 안다면 곧 슬피 울지 않으리라.


자성의 본체는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느니라.
너희들은 다 앉거라. 내 너희들에게 한 게송을 주노니,

'진가동정게(眞假動靜偈)'이다.

 너희들이 다 외워 이 게송의 뜻을 알면 너희는 나와 더불어 같을 것이다. 
이것을 의지하여 수행해서 종지를 잃지 말라."


스님들이 예배하고 대사께 게송 남기시기를 청하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 가졌다.

게송에 말씀하셨다.


모든 것에 진실이 없나니 진실을 보려고 하지 말라.
만약 진실을 본다 해도 그 보는 것은 다 진실이 아니다.
만약 능히 자기에게 진실이 있다면 거짓을 떠나는 것이 곧 마음의 진실이다.
자기의 마음이 거짓을 여의지 않아 진실이 없거니, 어느 곳에 진실이 있겠는가?
유정은 곧 움직일 줄을 알고 무정은 움직이지 않나니

만약 움직이지 않은 행을 닦는다면 무정의 움직이지 않음과 같다.
만약 참으로 움직이지 않음을 본다면 움직임 위에 움직이지 않음이 있나니.
움직이지 않음이 움직이지 않음이면 뜻도 없고 부처의 씨앗도 없도다.
능히 모양을 잘 분별하되 첫째 뜻은 움직이지 않는다.
만약 깨쳐서 이 견해를 지으면 이것이 곧 진여의 씀이니라.
모든 도를 배우면 이에게 말하노니 모름지기 힘써 뜻을 써서
대승의 문에서 도리어 생사의 지혜에 집착하지 말라.
앞의 사람이 서로 응하면 곧 함께 부처님 말씀을 의논하려니와
만약 실제로 서로 응하지 않으면 합장하여 환희케 하라.
이 가르침은 본래 다툼이 없음이라 다투지 않으면 도의 뜻을 잃으리오,
미혹함에 집착하여 법문을 다투면 자성이 생사에 들어가느니라.

 

 

 

29.전게(傳偈)

 

衆僧 旣聞 識大師意 更不敢諍 依法修行 一時禮拜 卽知(之)大師不永住世 上座法海向前言

 大師 大師去後 衣法 當付何人 大師言 法卽付了 汝不須問 吾滅後二十餘年 邪法 (遼)亂

惑我宗旨 有人出來 不惜身命 定(第)佛敎是非 竪立宗旨 卽是吾正法 衣不合傳(轉) 汝不信

吾與誦先代五祖傳衣付法頌(誦) 若據第一祖達磨頌]意 卽不合傳衣 聽 吾(五)與汝誦(頌)

 頌曰 第一祖達磨和尙 頌曰


吾本(大)來唐國 傳敎救迷情(名淸).
一花開五葉 結果(菓)自然成.
第二祖惠可和尙 頌曰 
本來緣有地 從地種花生.
當本元(願)無地 花從何處生. 
第三祖僧璨和尙 頌曰 
花種雖因地 地上種花(化)生.
花種無生性 於地亦無生.
第四祖道信和尙 頌曰 
花種有生性 因地種花生.
先緣不和合 一切盡無生. (263)
第五祖弘忍和尙 頌曰 
有情來下種 無情花卽生.
無情又無種 心地亦無生.
第六祖惠能和尙 頌曰 
心地含情種 法雨卽花生.
自悟(吾)花情種 菩提果(菓)自成.


能大師言 汝等 聽吾作二頌 取達磨和尙頌曰 汝迷人 依此頌修行 必當見性 
第一頌曰 
心地邪花放 五葉逐根隨.
共造無明業(葉) 見被業(葉)風吹.


第二頌曰 
心地正花放 五葉逐根(恨)隨.
共修般若惠 當來佛菩提.
六祖說偈已了 放衆生散 門人 出外思惟 卽知大師 不久住世

 

대중스님들은 다 듣고 대사의 뜻을 알았으며,

다시는 감히 다투지 아니하고 법을 의지하여 수행하였다. [대중이] 일시에 예배하니,

 곧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무시지 않을 것임을 알았다. 
상좌인 법해가 앞으로 나와 여쭈었다.
"큰스님이시여, 큰스님께서 가신 뒤에 가사와 법을 마땅히 누구에게 부촉 하시겠습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법은 전하여 마쳤으니 너희는 모름지기 묻지 말라. 내가 떠난 뒤 이십여년에 삿된 법이

요란하여 나의 종지를 혹란케 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나와서 몸과 목숨을 아끼지 않고 불교의 옳고 그름을 결정하여 종지를 세우리니, 이것이 곧 나의 바른 법이다.

그러므로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너희가 믿지 않을진대는 내가 선대의

다섯 분 조사께서 가사를 전하고 법을 부촉하신 게송들을 외워 주리라.


만약 제일조 달마조사의 게송의 뜻에 의거하면 곧 가사를 전하는 것은 옳지 않다.

잘 들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외우리라."


게송에 말씀하셨다.
제일조 달마화상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내 본시 당나라에 와서 부처님을 전하여 미혹한 중생을 구하노니
한 꽃에 다섯 잎이 열리어 그 결과가 자연히 이루리로다.


제이조 혜가스님 게송에 말씀하셨다.
본래 땅이 있는 까닭에 땅으로부터 씨앗 꽃 피나니
만약 본래로 땅이 없다면 꽃이 어느 곳으로부터 피어나리오


제삼조 승찬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가 비록 땅을 인연하여 땅 위에 씨앗 꽃을 피우나
꽃씨는 나는 성품이 없나니 땅에도 또한 남이 없도다.


제사조 도신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꽃씨에 나는 성품있어 땅을 인연하여 씨앗 꽃이 피나
앞의 인연이 화합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다 자니 않는도다.


제오조 홍인스님의 게송에 말씀하셨다.
유정이 와서 씨 뿌리니 무정이 꽃을 피우고
정도 없고 씨앗도 없나니 마음 땅에 또한 남이 없도다.


제육조 혜능의 게송에 말한다.
제마음의 땅이 뜻의 씨앗을 머금으니 법의 비가 꽃을 피운다.
스스로 꽃 뜻의 씨앗을 깨달으니, 보리의 열매가 스스로 이루는도다.


혜능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내가 지은 두 게송을 들어라. 달마스님의 게송의 뜻을 
취하였으니 너희 미혹한 사람들은 이 게송을 의지하여 수행하라.

그러면 반드시 자성을 보리라.


첫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에 삿된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무명의 업을 지어 업의 바람에 나부낌을 보는도다.


둘째 게송에 말씀하셨다.
마음 땅에 바른 꽃이 피니 다섯 잎이 뿌리를 좇아 따르고
함께 반야의 지혜를 닦으니 장차 오실 부처님의 깨달음이로다.
육조스님께서 게송을 말씀하여 마치시고 대중을 해산시켰다.

밖으로 나온 문인들은 생각하였으니 대사께서 세상에 오래 머물지 않으실 것임을 알았다.

 

 

 

30.전통(傳統)

 

六祖後至八月三日 食後 大師言 汝等著(善)位坐(座) 吾(五)今共汝(與)等別 法海問(聞)言

 此頓敎法傳授(受) 從上已來 至今幾代 六祖言初傳授(受)七佛 釋迦牟尼佛 第七 大迦葉第八, 阿難第九,末(未)田地第十, 商那和修第十一,

優婆佛陀(抒)難提十四, 佛陀(抒)蜜多第十五,
脇比丘第十六, 富那奢第十七,
馬鳴第十八, 毗羅長者第十九,
龍樹第二十, 迦那提婆第卄一,
羅 羅第卄二, 僧迦耶提第卄三,
僧迦耶(那)舍第卄四, 鳩摩羅 第卄五,
耶多第卄六, 婆修盤多第卄七,
摩拏羅第卄八, 鶴勒那第卄九, 
師子比丘第 , 舍那婆斯第 一,
優婆堀第 二, 僧迦羅第三十三,
須婆蜜多第三十四, 
南天竺(竹)國王子第三子菩提達磨第三十五,
唐國僧惠可第三十六, 僧璨第三十七,
道信第三十八, 弘忍第三十九, 
惠能自身 當今受法第四十(十四) 大師言 今日已後 遞相傳授(受) 須有依約 莫失宗旨

 

그 뒤, 육조스님께서는 팔월 초삼일에 이르러 공양 끝에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차례를 따라 앉아라. 내 이제 저희들과 작별하리라."


법해가 여쭈었다.
"이 돈교법의 전수는 예부터 지금까지 몇 대입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처음은 일곱 부처님으로부터 전수되었으니, 석가모니불은 그 일곱째이시다. 
대가섭은 제팔, 아난은 제구, 말전지는 제십, 상나화수는 제십일, 우바굽다는 제십이, 제다가는 제십삼, 불타난제는 제십사, 불타밀다는 제십오, 협비구는 제십육, 부나사는 제십칠, 마명은 제십팔, 바라장자는 제십구, 용수는 제이십, 가나제바는 제이십일, 라후라는 제이십이, 승가나제는 제이십삼, 승가야사는 제이십사, 구마라타는 제이십오, 사야나는 제이십육, 바수반다는 제이십칠, 마나라는 제이십팔, 학륵나는 제이십구, 사자비구는 제삼십, 사나바사는 제삼십일, 우바굴은 제삼십이, 승가라는 제삼십삼,수바밀다는 제삼십이, 남천축국 왕자 셋째 아들 보리달마는 제삼십오, 당나라 스님 혜가는 제삼십육, 승찬은 제삼십칠, 도신은 제삼십팔, 홍인은 제삼십구, 나 혜능이 지금 법을 받은 것은 제사십대이니라."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오늘 이후로는 서로서로 전수하여 모름지기 의지하고 믿어서 종지를 잃지말라."

 

 

 

31. 진불(眞佛)

 

法海又白 大師今去 留付何法 令(今)後代人 如何見佛 六祖言 汝聽 後代迷人 但識衆生

卽能見佛 若不識衆生 覓佛萬劫 不得見也 吾(五)今敎汝 識衆生 見佛 更留見眞佛解脫頌

迷卽不見佛 悟者卽見 法海願聞 代代流傳 世世不絶 六祖言 汝聽 吾與汝(汝與)說 後代世人

 若欲覓佛 但識自(佛)心衆生 卽能識佛 卽緣有衆<生> 離衆生無佛心 
迷卽佛衆生 悟卽衆生佛 
愚癡佛衆生 智慧衆生佛
心險(劒)佛衆生 平等衆生佛(275) 
一生心若險(劒) 佛在衆生中
一念悟(吾)若平 卽衆生自佛 
我心自有佛 自佛是眞佛
自若無佛心 向何處求佛

 

 

법해가 또 여쭈었다.
"큰스님께서 이제 가시면 무슨 법을 부촉하여 남기시어,

뒷 세상사람으로 하여금 어떻게 부처님을 보게 하시렵니까?"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들으라. 뒷 세상의 미혹한 사람이 중생을 알면 곧 능히 부처를 볼 것이다.

만약 중생을 알지 못하면 만겁토록 부처를 찾아도 보지 못하리라.

내가 지금 너희로 하여금 중생을 알아 부처를 보게 하려고

다시 '참 부처를 보는 해탈의 노래(見眞佛解脫頌)'를 남기리니,

 미혹하면 부처를 보지 못하고 깨친 이는 곧 보느니라."
"법해는 듣기를 바라오며 대대로 유전하여 세세생생에 끊어지지 않게 하리이다."


육조스님께서 말씀하셨다.
"너희는 들으라. 내 너희들을 위하여 말하여 주리라.

만약 뒷 세상 사람들이 부처를 찾고자 할진대는 오직 자기 마음의 중생을 알라.

그러면 곧 능히 부처를 알게 되는 것이니, 곧 중생이 있음을 인연하기 때문이며,

 중생을 떠나서는 부처의 마음이 없느니라.
미혹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깨치면 중생이 부처이며

우치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지혜로우면 중생이 부처니라.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이요 마음이 평등하면 중생이 부처이니
한평생 마음이 험악하면 부처가 중생 속에 있도다.


만약 한생각 깨쳐 평등하면 곧 중생이 스스로 부처이니
내 마음에 스스로 부처가 있음이라 자기 부처가 참 부처이니
만약 자기에게 부처의 마음이 없다면 어느 곳을 향하여 부처를 구하리요."


 

大師言 汝等門人 好住 吾留一頌 名自性眞佛解脫頌 後代迷<人> 聞(門)此頌意

[意]卽見自心自性眞佛 與汝此頌 吾共汝別 頌曰 
眞如淨性是眞佛 邪見三獨是眞魔(摩)
邪見之人魔(摩)在舍 正見之(知)人佛則過
性中(衆)邪見三獨生 卽是魔王來住舍 
正見自除(忽則)三獨心(生) 魔(摩)變成佛眞無假.
化身報身及淨身 三身元本是一身 
若向身衆覓自見 卽是<成>佛菩提因 
本從化(花)身生淨性 淨性常在化(花)身中 
性使化(花)身行正道 當來圓(員)滿眞無窮 
狀性本身靑淨因 除狀卽無淨性身
性中但自離五(吾)欲 見性刹那卽是眞
今生若悟(吾)頓敎門 悟卽眼前見世(性)尊
若欲修行云覓佛 不知何處欲求眞
若能身中自有眞 有眞卽是成佛因
自不求眞外覓佛 去覓 是大癡人 
頓敎法門今已留(者是西流) 救(求)度世人須自修 
今報(保)世間學道者 不依(於)此是大悠悠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너희 문인들은 잘 있거라. 내가 게송 하나를 남기리니

'자성진불해탈송' 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뒷 세상에 미혹한 사람이 이 게송의 뜻을 들으면

곧 자기의 마음, 자기 성품의 참 부처를 보리라.

 저희에게 이 게송을 주면서 내 너희와 작별하리라."


게송을 말씀하셨다.


진여의 깨끗한 성품이 참 부처요
삿된 견해의 삼독이 곧 참 마군(魔軍)이니라.
삿된 생각 가진 사람은 마군이 집에 있고,
바른 생각 가진 사람은 부처가 곧 찾아오는도다.


성품 가운데서 삿된 생각인 삼독이 나나니,
곧 마왕이 와서 집에 살고
바른 생각이 삼독의 마음을 스스로 없애면
마군이 변하여 부처되나니, 참되어 거짓이 없도다.
화신과 보신과 정신(靜身)이여,
세 몸이 원래로 한 몸이니
만약 자신(自身)에게서 스스로 보는 것을 찾는다면
본래 화신으로부터 깨끗한 씨앗이니라.


깨끗한 성품은 항상 화신 속에 있고
성품이 화신으로 하여금 바른 길을 행하게 하면
장차 원만하여 참됨이 다함 없도다.
음욕을 없애고는 깨끗한 성품의 몸이 없다.
다만 성품 가운데 있는 다섯 가지 욕심을 스스로 여의면
찰나에 성품을 보나니, 그것이 곧 참[眞]이로다.
만약 금생에 돈교의 법문을 깨치면
곧 눈앞에 세존을 보려니와
만약 수행하여 부처를 찾는다고 할진대는
어느 곳에서 참됨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도다.


만약 몸 가운데 스스로 참됨 있다면
그 참됨 있음이 곧 성불하는 씨앗이니라.
스스로 참됨을 구하지 않고 밖으로 부처를 찾으면,
가서 찾음이 모두가 크게 어리석은 사람이로다.
돈교의 법문을 이제 남겼나니
세상 사람을 구제하고 모름지기 스스로 닦으라.
이제 세간의 도를 배우는 이에게 알리노니,
이에 의지하지 않으면 크게 부질없으리로다
.

 

 

 

32.멸도(滅度)

 

 

大師說偈已了 遂告門人曰 汝等 好住 今共汝別 吾去已後 莫作世情悲泣 而受人弔問(門)錢帛 著孝衣 卽非聖法 非我弟子 如吾在日一種 一時端坐 但無動無靜(淨) 無生無滅 無去無來

 無是無非 無主<無往> 坦(但)然寂靜(淨) 卽是大道 吾去已後 但依(衣)法修行

共吾在日一種 吾若在世 汝違敎法 吾住
無益 大師云此語已 夜至三更 奄然遷化(花) 大師春秋七十有六

 

대사께서 게송을 말씀해 마치시고 드디어 문인들에게 알리셨다.
"너희들은 잘 있거라. 이제 너희들과 작별하리라.
내가 떠난 뒤에 세상의 인정으로 슬피 울거나, 사람들의 조문과 돈과 비단을 받지 말며,

상복을 입지 말라. 성인의 법이 아니면 나의 제자가 아니니라.


내가 살아 있던 날과 한가지로 일시에 단정히 앉아서 움직임도 없고 고요함도 없으며,

 남도 없고 없어짐도 없으며, 감도 없고 옴도 없으며, 옳음도 없고 그름도 없으며,

 머무름도 없고 감도 없어서 탄연히 적정하면 이것이 큰 도이니라,


내가 떠난 뒤에 오직 법에 의지하여 수행하면 내가 있던 날과 한가지일 것이나,

내가 만약 세상에 있더라도 너희가 가르치는 법을 어기면 내가 있은들 이익이 없느니라."
대사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고 밤 삼경에 이르러 문득 돌아가시니, 
대사의 춘추는 일흔여섯이었다.


 

大師滅度之(諸)日 寺內異香 經數日不散 山崩(朋)地動 林木變白 日月無光

 風雲失色 八月三日 滅度 至十一月 迎和尙神座於曹溪山葬 在龍龕之內 白光 出現

直上衝天 二日始散 韶州刺使韋 (處)立碑 至供養

 

대사께서 돌아가신 날, 절 안은 기이한 향내가 가득하여 여러 날이 지나도 흩어지지 않았고, 산이 무너지고 땅이 진동하여 숲의 나무가 희게 변하고 해와 달은 광채가 없고

바람과 구름이 빛을 잃었다. 


팔월 삼일에 돌아가시고 동짓달에 이르러 큰스님의 영구를 모시어 조계산에 장사지내니,

용감(龍감) 속에서 흰 빛이 나타나 곧장 하늘 위로 솟구치다가 이틀 만에 비로소 흩어졌으며, 소주 자사 위거는 비(碑)를 세우고 지금까지 공양하니라.

 


 

33. 후기(後記)


此壇經 法海上座集 上座無常 付同學道 道 無常 付門人悟眞 悟眞 在嶺南曹溪山法興寺

見今傳授(受)此法

 

이 <단경>은 상좌인 법해스님이 모은 것이다.

 법해스님이 돌아가니 같이 배운 도제스님에게 부촉하였고,

도제스님이 돌아가니 문인 오진스님에게 부촉하였는데,

오진스님은 영남 조계산 법흥사에서 지금 이 법을 전수하니라.

 

如付此(山)法 須得(德)上根(恨)智(知) 心身佛法 立大悲持此經 以爲依(衣)承 於今不絶.


만약 이 법을 부촉할진대는 모름지기 상근기의 지혜라야 하며,

 마음으로 불법을 믿어 큰 자비를 세우고

 이 경을 지니고 읽어 의지를 삼아 이어받아서 지금까지 끊이지 않는다.

 


和尙 本是韶州曲江縣(懸)人也 如來入涅槃(盤) 法敎流東土 共傳無住 卽我心無住 此眞菩薩

 說眞宗(示)(288) 行實喩 唯敎大智人 是旨依(衣) 凡度誓修修行行 遭難不退 遇苦能忍

 福德深厚 方授此法 如根性 不堪 材(林)量 不得 須求此法 違律(立)不德者

不得妄付壇經 告諸同道者 令知密(諸蜜)意

 

[법해]스님은 본래 소주 곡강현 사람이다.

 여래께서 열반하시고 법의 가르침이 동쪽 땅으로 흘러서 머무름이 없음을 함께 전하니, 

곧 나의 마음이 머무름이 없음이로다. 


이 진정한 보살이 참된 종취를 설하고 진실한 비유를 행하여

오직 큰 지혜의 사람만을 가르치나니, 이것이 뜻의 의지하는 바이다.


무릇 제도하기를 서원하고, 수행하고 수행하되, 어려움을 만나서는 물러서지 않고,

괴로움을 만나서도 능히 참아 복과 덕이 깊고 두터워야만 바야흐로 이 법을 전할 것이다.

만약 근성이 감내하지 못하고 재량이 좋지 못하면 모름지기 이 법을 구하더라도 법을 어긴 덕 없는 이에게는 망령되이 <단경>을 부촉하지 말 것이니,

도를 같이 하는 모든 이에게 알려 비밀한 뜻을 알게 하노라

 

 

佛紀 2532年 端午節 해인사 백련암(海印寺 白蓮庵)

 백련선서간행회(白蓮禪書刊行會) 圓澤 和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