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31/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8. 31. 17:27
시중  31


14-9 구하는 것이 있으면 괴롭다

問, 如何是心心不異處 師云, 儞擬問早異了也 性相各分이로다 道流莫錯하라 世出世諸法 皆無自性하며 亦無生性하고 但有空名하야 名字亦空이어늘 儞祇麽認他閑名爲實하니 大錯了也로다 設有皆是依變之境이라 有箇菩提依涅槃依 解脫依 三身依 境智依 菩薩依 佛依니라

“무엇이 순간순간의 마음이 다르지 않는 경계입니까?”

“그대들이 물으려 하는 순간 벌써 달라져 버린 것이니 성품과 형상이 각각으로 나누어졌다.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착각하지 말아라.

세간이나 출세간의 모든 법은 다 자성이 없으며,

또한 생멸의 성품도 없다.

그저 허망한 이름뿐이며 그 이름을 쓴 글자도 또한 텅 빈 것이다.

그대들은 이처럼 그 부질없는 이름을 진실한 것으로 알고 있으니 매우 잘못 된 것이다.

설사 그러한 것들이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의지해서 변화한 경계들이다.

이른바 보리의 의지와 열반의 의지와 해탈의 의지와 세 가지 불신의 의지와 경계와 지혜의 의지와 보살의 의지와 부처의 의지 등이다.”


강의 ; 앞의 단락에서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아니한 것을 살아있는 할아버지라고 하였다.

그렇다면 어떤 것이 마음과 마음이 다르지 않은 것인가?

이렇게 묻고자 할 때 이미 달라져 버렸다.

성품과 형상도 이미 나누어 졌다.

한 생각 일어나기 이전소식이다.

한 생각 일어나면 벌써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일어나고 삼라만상이 벌어진 것이다.

잘 살펴야 한다.

착각하기 쉬운 대목이다.

세간이나 출세간의 법이 다 허망하다.

실로 제행이 무상하다.

모든 것이 생기고는 없어지고 없어지고는 다시 생기는 인연에 의한 연기의 작용이다.

연기는 공이다.

공이기 때문에 또한 연기한다.

모든 존재는 이 원리대로 존재한다.

우주만유가 이 원칙을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러므로 헛된 이름뿐이다.

이름이라는 글자조차 텅 비어 없다.

부질없는 이름을 진실한 것으로 아는 것은 참으로 잘못된 것이다.

부처나 중생이나, 성인이나 범부나,

생로병사나 상락아정(常樂我淨)이나,

세간법과 출세간법이 모두 공이요 연기다.

독립된 자성으로서의 실체가 없다.

그래서 이 존재의 원리인 “오온이 모두 공한 줄 알면 일체 문제가 다 해결이다.” 라고 밤낮 외우고 있다.

고통으로 인하여 숨이 끊어지고 끊어졌다가는 다시 이어지고, 이어졌다가는 다시 끊어지고 하는 이와 같은 아픔도 모두가 공이다.

공이기 때문에 행복도 불행도 아니다.

설사 경전에서 말한 이런 저런 것들이 있다손 치더라도 그것들은 다 이 한 생각에 의지하여 변화된 가상의 경계들이다.

보리니 열반이니 해탈이니,

법신 보신 화신이니,

경계니 지혜니,

보살이니 부처니 하는 이름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아름답고 성스럽고 위대한가.

그 훌륭하고 성스럽고 위대한 이름들은 모두 이 한 생각에 의지하여 변화한 헛된 가상의 경계요 이름뿐이다. 

보리·열반·해탈·법신·보신·화신·경계·지혜·보살·부처 등등의 주옥같은 이름들,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이름들,

이런 것들을 가상이요,

허상이요,

이름뿐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소중하다.

그동안 믿고 의지하고 살아왔는데 실은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다.

믿고 싶지가 않다.

그동안 공을 드린 것이 너무도 아깝다[前功可惜].

그렇다고 삼을 짊어지고 금을 버릴 수[擔麻棄金]도 없는 노릇이다.

이것이 솔직한 심정이다.

하지만 어쩌랴 이 가르침이 진짜 불교며 우리 한국불교의 전통인 것을.

이 가르침이 정통 불교인 것을.

역대 조사들이 이런 가르침에 매혹되어 임제스님을 꿈에도 못 잊는다.

모두가 임제스님의 법을 계승했노라고 자랑들이지 않은가.

그래서 우리나라의 큰스님들은 임제스님의 흉내를 내느라고 남의 상가 집에 가서도 “할”을 하지 않는가.

죽어서도 다시 임제스님의 문중에서 그 가풍을 따르리라고 축원하지 않는가.


儞向依變國土中하야 覓什麽物 乃至三乘十二分敎 皆是拭不淨故紙 佛是幻化身이요 祖是老比丘 儞還是娘生已否 儞若求佛하면 卽被佛魔攝이요 儞若求祖하면 卽被祖魔縛이니 儞若有求皆苦 不如無事로다

“그대들은 의지하여 변한 국토에서 무엇을 찾고 있느냐?

삼승 십이분교마저도 모두가 똥을 닦아낸 휴지다.

부처란 허깨비로 나타난 몸이며,

조사란 늙은 비구인데 그대들은 어머니가 낳아 주신 진짜의 몸이 있지 않는가.

그대들이 만약 부처를 구하면 부처라는 마군(魔群)에게 붙잡히고,

조사를 구하면 조사라는 마군에게 묶이게 된다.

그대들은 만약 구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가 고통이니 아무런 일 없느니만 못하니라.”


강의 ; 임제스님의 말씀은 점입가경을 넘어서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는 곳까지 왔다.

막보자는 막말이다.

정말 마지막 말이다.

어찌 이렇게 까지 표현 할 수 있는가.

그대들은 진짜가 아닌 가짜로 만들어진 세상에서 무엇을 찾으려는가.

보리·열반·해탈·법신·보신·화신·경계·지혜·보살·부처 등등은 말할 것도 없고

부처님의 살림살이라고 할 수 있는 일생의 가르침인 삼승 십이분교는 모두 똥을 닦는 휴지다.

임제록도 예외는 아니다.

부처님은 허깨비고 조사란 늙은 비구다.

그런데 그대들에게는 어머니가 낳아준 진짜가 있지 않은가.

그것을 두고 다시 무엇을 찾는가.

여기서 할 말은 다 했다.

이 몸 당체가 곧 살아있는 부처요 조사다.

아무리 찾아봐야 그 이상은 없다.

여러분들이 허망하다고 말하는 이 육신,

즉 환화공신(幻化空身)이 곧 여래법신이다.

만약 그대들이 그것을 두고 부처를 찾으면 부처라는 마군에게 붙잡히고 조사를 구하면 조사라는 마군에게 묶이게 된다.

구하는 것이 있으면 다 괴롭다.

아무런 일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다.

유구개고 불여무사(有求皆苦 不如無事)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하근기 소인들은 임제록에서 이 한 마디만 건져도 훌륭하다.

평생의 양식은 된다.

공연히 창업한다고 퇴직금 날리고 전세금까지 날리지 말라.

집에서 청소하면서 마음 청소도 하고 빨래하면서 마음 빨래만 해도 크게 버는 일이다.

즐거움이란 구하지 않는 즐거움보다 더한 즐거움은 없다.

본래 더 구할 것이 없다 다 갖추어져 있다.

억만 장자다.

세세생생 써도 다 못쓴다.

더 이상 무엇을 구하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