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33/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8. 31. 17:39

 

시중  33

 

 

14-11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

儞道호대

佛有六通하야

是不可思議라하니

一切諸天

神仙阿修羅

大力鬼

亦有神通하니

應是佛否

道流莫錯하라

祇如阿修羅

與天帝釋戰戰敗

領八萬四千眷屬하고

入藕絲孔中藏하니

莫是聖否

如山僧所擧

皆是業通依通이니라

 

“그대들이 ‘부처님께서는 여섯 가지 신통이 있으시니 참으로 불가사의하다’고 하는데,

여러 천신들과 신선과 아수라와 힘센 귀신들도 역시 신통이 있다.

이들도 마땅히 부처님이겠구나.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착각하지 말아라.

아수라들이 제석천신들과 싸우다 지게 되면 팔만 사천의 권속들을 거느리고 연근 뿌리의 구멍 속으로 들어가 숨는다 하니, 이들도 성인이라 해야 하지 않겠는가?

내가 예를 든 것은 모두가 업의 신통이거나 의지한 신통들이다.”

 

 

강의 ; 불교에는 신통이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부처님의 위대함도 이 신통이 있다는 조건으로 훌륭한 분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있다.

여기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신통이란 요즘말로하면 초능력 같은 경우다.

해리포터에 나오는 마법(魔法)과 같은 것을 뜻한다.

아수라와 제석천신들이 싸우는 이야기는 해리퍼터의 마법 그대로다.

부처님의 제자 중에는 목련존자가 신통제일이라는 칭송을 받는다.

그런대 부처님은 어느 날 목련존자에게 신통은 정도(正道)가 아니니 쓰지 말라고 당부한 적이 있다.

그래서 목련존자는 신통이 뛰어났음에도 불구하고 외도(外道)들로부터 구타를 당해서 열반하였다고 한다.

임제록에서 보인바와 같이 설사 그와 같은 능력이 있다 손치더라도 그런 일은 비정상적인 것이다.

장려할 바가 아니다.

그런 능력으로서 부처님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외도의 소견이다.

방거사(龐居士)의 말씀에 “신통과 묘용이란 물을 길어 오고 땔나무를 해오는 일이다.”라고 하였다.

이것이 참 신통이다.

비가 오면 빗소리를 듣고 날이 개이면 화창한 날씨를 감상하는 일,

즐거운 일이 있으면 즐거워하고 몸이 아프면 ‘아야! 아야!’하고 앓을 줄 아는 그것이 참다운 신통이다.

지금 이 순간 사물을 보고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이 사실이 신통묘용이고 무량대복이며,

대 자유(大自由) 대 해탈(大解脫)이다.

夫如佛六通者

不然하야

入色界不被色惑하며

入聲界不被聲惑하며

入香界不被香惑하며

入味界不被味惑하며

入觸界不被觸惑하며

入法界不被法惑하니라

所以

達六種色聲香味觸法

皆是空相이라

不能繫縛此無依道人하야

雖是五蘊漏質이나

便是地行神通이니라

 

“대저 부처님의 육신통이란 그런 것이 아니다.

물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물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소리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소리의 미혹함을 받지 않으며,

냄새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냄새의 미혹함을 받지 않고,

맛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맛의 미혹함을 받지 않는다.

감촉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감촉에 미혹함을 받지 않고,

법의 경계에 들어가지만 법의 경계의 미혹을 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색․성․향․미․촉․법 이 여섯 가지가 모두 텅 비었음을 통달하고 있다.

어디에도 매이지 않는 무의도인을 속박할 수 없다.

비록 오온의 번뇌로 이루어진 몸이지만 바로 이것이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地行神通]이니라.”

 

 

강의 ; 부처님의 진정한 육신통이란 육진(六塵)경계를 만나 그 육진경계들을 일일이 느끼고 감상하고 수용하면서 그 경계에 빠지지 않고 더렵혀지지 않고 속지 않는 것이다.

그 육진경계를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그 사람의 작용이다.

경계는 경계일 뿐이기 때문에 어디에도 의지함이 없는 본래인(本來人)과는 상관없다.

본래인을 속박할 수는 없다.

본래인이 오온으로 된 이 육신을 떠나서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또한 육신이 본래인이다.

결론은 부처님의 신통도 이 육신이 땅으로 걸어 다닐 줄 아는 그 사실이다.

그래서 땅으로 걸어 다니는 신통이라 한다.

지행신통(地行神通). 아주 재미있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