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35/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8. 31. 17:56

 시중 35

 

14-13 불 속에서도 타지 않는다

唯有道流

目前現今聽法底人하야

入火不燒하며

入水不溺하며

入三塗地獄호대

如遊園觀하며

入餓鬼畜生而不受報하나니

緣何如此

無嫌底法일새니라

儞若愛聖憎凡하면

生死海裏沈浮하리니

煩惱由心故有

無心煩惱何拘리오

不勞分別取相하면

自然得道須臾니라

儞擬傍家波波地學得하면

於三祇劫中

終歸生死하리니

不如無事하야

向叢林中하야

牀角頭交脚坐니라

 

“오직 도를 배우는 벗들의 눈앞에 법을 듣고 있는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은 불에 들어가도 타지 않고 물에 들어가도 빠지지 않으며,

삼악도의 지옥에 들어가도 마치 정원을 구경하며 노는 듯하고,

아귀 축생에 들어가도 그 업보를 받지 않는다.

어째서 그런가하면 꺼려할 것이 아무것도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

그대들이 만약 성인은 좋아하고 범부를 싫어한다면 생사의 바다에 떴다 잠겼다 할 것이다.

번뇌는 마음을 말미암아서 생겨나는 것이니 마음이 없다면 번뇌가 어찌 사람을 구속하겠는가?

분별하여 모양을 취하느라 헛수고하지 않으면 저절로 잠깐 사이에 도를 얻을 것이다.

그대들이 분주하게 옆 사람에게 배워서 얻으려 한다면 삼 아승지겁 동안 애를 써도 결국은 생사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아무런 일 없이 총림의 선상 구석에서 두 다리를 틀고 않아 있느니만 못하리라.”

 

 

강의 ; 모든 사물은 불에 타지 않는 것이 없다.

물에 빠지지 않는 것이 없다.

하지만 말을 하고 말을 듣는 이 사람은 불에도 타지 않고 물에도 빠지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지옥에서도 정원을 거니며 구경하는 것처럼 편안하고 행복하다.

축생이나 아귀에 들어가도 그 축생이나 아귀가 되지 않는다.

진정한 도는 꺼려할 것이 없는 법이기 때문이다[無嫌底法].

물론 좋아할 것도 없는 법이다.

보고 듣는 이 자리에 무슨 차별이 있는가.

좋아하고 싫어할게 어디 있는가.

그래서 혜능조사는 선도 생각하지 말고 악도 생각하지 말라고 하였다.

취사선택하지 말고 사랑하고 미워하지 않으면 훤하게 밝다.

완전한 평화와 행복이다.

성불이고 견성이고 열반이고 깨달음이고 조사고 부처님이다.

말을 듣고 있는 이 사람이다.

너고 나다. 삼라만상이고 우주만유다.

선이라고 좋아하고 악이라고 싫어한다면 좋고 싫고 취하고 버리고 하는 일이 벌어진다.

성인이다 법부다 하는 분별이 있게 되어 사랑과 미움이 있게 된다.

편견과 치우침이 있게 되어 양변에 떨어진다.

편견과 치우침으로 양변에 떨어지면 그것이 곧 삼악도다.

지옥이다. 윤회다. 불에 타고 물에 빠지는 일이다.

분노의 불길에 휩싸이고 탐욕의 물결에 떠내려간다.

물과 불에 반복하여 윤회하게 되며,

아귀와 축생에 끌려 다니며 윤회하게 된다.

무위진인(無位眞人)을 잃어버린 것이다.

어느 곳에서든지 주체가 되지 못하고 종이 되어 끌려 다닌다.

타인이 손해를 입히고 비방을 하고 욕을 하고 때리고 모함하는 일에 휘말린다. 그런 일에 따라다니며 윤회하게 된다.

하루 종일 시시비비에 떠다닌다. 그래서 나는 없다.

온통 남이다. 경계뿐이다.

산은 산, 물은 물대로 그대로 두고 보라. 장미는 장미 목련은 목련 그대로 두고 보라.

밤나무는 밤나무 감나무는 감나무 그대로 두고 보라.

눈앞에 버러진 온갖 현상들에 �아 다니지 말고 주인이 되라.

그러면 어디서나 행복하리라.

이것이 수처작주 입처개진(隨處作主 立處皆眞)이다.

상대적 편견에 떨어진 온갖 이론들을 애써 배우느라고 삼 아승지겁 동안 돌아다니느니 보다는 차라리 아무런 일 없이 총림의 선상 구석에서 두 다리를 틀고 않아 있느니만 못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