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37/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8. 31. 18:20

   시중 37

14-15 귀신과 도깨비들

如諸方善知識

不辨邪正하야

學人

來問菩提涅槃三身境智하면

瞎老師

便與他解說타가

被他學人罵著하고

便把棒打他言無禮度하나니

自是儞善知識無眼이라

不得瞋他로다

 

“제방의 여러 선지식들은 삿된 것과 바른 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그래서 학인이 찾아와서 보리와 열반과 삼신(三身)과 경계와 지혜 등을 묻는다. 눈이 먼 노사는 그에게 해설을 해 주다가 학인으로부터 꾸짖고 힐난함을 받게 되면 곧바로 몽둥이로 후려치면서 ‘이 예의와 법도도 모르는 놈아!’라고 한다. 그것은 스스로 그대들 선지식들이 안목이 없기 때문이다.

그 학인에게 화를 내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강의 ; 세상의 선지식들이 어찌 임제스님과 같겠는가.

거개가 눈 먼 이들이다.

사(邪)와 정(正)을 분별하지 못하는 이들이다.

학인의 지적을 받으면 그만 화부터 낸다.

아만은 있어서 채면이 깎이는 것은 못 참는다.

실은 화를 낼 일이 아니다.

자신이 안목이 없다는 사실을 시인하라.

자신이 안목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 그것을 시인 할 줄 알면 그는 참으로 대단한 분이다.

존경을 받을 분이다.

자신을 비우고 꼬리를 내릴 줄 안다는 것도 아무나 할 수 없는 일이다.

살림에는 눈이 보배라는 말이 있듯이, 인생을 살아가는데도 안목이 제일이다. 불법을 공부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욱 더 그렇다.

“그대의 행동은 문제 삼지 않는다.

그러나 그대의 안목은 반드시 점검하겠다.”라는 고인의 말이 있다.

안목은 참으로 중요하다.

有一般不識好惡禿奴하야

卽指東劃西하며

好晴好雨하며

好燈籠露柱하나니

儞看하라

眉毛有幾莖

這箇具機緣

學人不會하고

便卽心狂이라

如是之流

總是野狐精魅魍魎이니

被他好學人

嗌嗌微笑하야

言瞎老禿奴

惑亂他天下人이로다

 

“좋고 나쁜 것을 모르는 머리 깍은 종들이 있어서 동쪽을 가리키다 서쪽을 가리키고,

맑은 날을 좋아하다가 비오는 날을 좋아하며,

등롱(燈籠,등불을 켜서 어둠을 밝히는 기구)과 노주(露柱,법당의 드러난 둥근 기둥)를 좋아한다.

그대들은 잘 보아라!

눈썹에 털이 몇 개가 남아 있는가?

이 일에는 기연(機緣)이 갖추어져 있는데 학인들은 알지 못하고 곧 미쳐버리는 것이다.

이런 무리들은 모조리 여우나 귀신 도깨비들이다.

그 좋은 학인들에게 ‘이 눈멀고 머리 깍은 늙은이가 온 천하 사람들을 미혹하고 어지럽게 만드는 구나’라는 비웃는 말을 듣게 되는 것이다.”

 

 

강의 ; 온전하지 못한 선지식들은 학인이 무엇을 물으면 그 말을 따라 별의별 이야기를 어수선하게 다 늘어놓는다.

이야기가 갈팡질팡한다.

보리니 열반이니 삼신이니 관찰할 대상인 경계니 관찰하는 지혜니 하는 등등에 대하여 펼치는 이야기가 장관이다.

팔만장경을 다 동원한다.

모두가 삿된 이야기들이다.

그렇게 삿된 말만 어지럽게 늘어놓다가 눈썹이 남아나겠는가?

삿된 말을 좋아하면 눈썹이 빠진다.

동·서·남·북이니 맑고 흐림이니 등롱이니 노주니 구모(龜毛)니 토각(兎角)이니 석녀(石女)니 하는 말로 모두 선문답으로 여긴다.

선리(禪理)를 알지 못하고 허황된 망언만 늘어놓는다.

악지식들에게 보통 있는 관례다.

모두가 눈앞에 보이는 온갖 것들을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어지럽게 늘어놓는다.

이 도리에는 반드시 기연(機緣)과 까닭이 있다.

함부로 늘어놓는다고 맞는 말이 아니다.

그런 것을 여우나 도깨비나 귀신들의 장난이라고 한다.

멀쩡한 사람이 그렇게 되어서야 옳겠는가.

선지식 그 자신이 잘못되는 것은 그렇지만 학인을 미치게 만들면 그 업을 어찌하겠는가.

천하의 스승 된 모든 사람들은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