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40/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9. 3. 14:03

시중 40 

 

14-18 그대는 무엇이 부족한가

山僧

無一法與人이요

祇是治病解縛이니

儞諸方道流

試不依物出來하라

我要共儞商量이라

十年五歲토록

並無一人하고

皆是依艸附葉竹木精靈

野狐精魅

向一切糞塊上亂咬로다

“산승은 남에게 줄 법이 하나도 없다.

다만 병에 따라 치료를 해주고 묶여있는 것을 풀어줄 뿐이다.

그대들 제방의 도를 배우는 벗들이여!

시험 삼아 사물에 전혀 의존하지 말고 나와 보아라.

나는 그대들과 법에 대해서 문답을 하고 싶구나.

15년이 지나도록 누구 한 사람 없었다.

모두가 풀이나 나무 잎사귀나 대나무나 나무에 붙어사는 귀신들이다.

또 여우나 도깨비 같은 것들이다.

모두 똥 덩어리에 달라붙어 어지럽게 씹어 먹는 것들이다.”

 

강의 ; 이 법은 본래로 남에게 줄 수 있는 법이 아니다.

만약 줄 수 있는 법이라면 세존은 벌써 라후라에게 주었을 것이다.

그리고 야수다라에게도 주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디에도 라후라에게나 야수다라에게 법을 주었다는 이야기는 없다.

왜냐? 줄 수 있는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런대도 법을 전해 준다느니,

법을 전해 받았다느니 하는 말은 단순한 인정에 불과하다.

그가 깨달은 것이 확실한가를 알아보고 확실하면 인정을 해 주는 일이다.

그와 같은 인정하는 일을 전해주었다고 한다.

오늘날 까지 그 관례를 그대로 쓴다.

불교는 병에 따라 약을 쓰고 속박된 것을 풀어 주는 일이다.

8만 4천 법문이란 중생들의 8만 4천 가지의 병에 따라 약을 처방한 것에 불과하다.

또 병이란 다른 말로 하면 속박이요, 구속이다.

있음과 없음에 구속되고, 생과 사에 구속되고, 성인과 범부에 구속되고, 중생과 부처에 구속되고, 선과 악에 구속되고, 일체 차별과 편견과 양변과 변견과 비교하는데 구속되어 있다.

그래서 그것들로부터의 해탈을 희망한다.

간혹 선문답을 하는데서 들을 수 있는 말로서 ‘부처님의 말씀이나 조사들의 말씀을 떠나서 한 마디 일러보라.’

또는 ‘말과 행동을 쓰지 않고 한 마디 일러보라.’

라고 주문하는 것을 들을 수 있다.

모두가 무엇엔가 의지해서 법을 말한다.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도 모두가 불조의 가르침에 근거하여 표현한다.

과거의 선배들이 남겨둔 것을 대단한 보물로 생각하여 모든 삶을 거기에 걸고 있다.

그 기준과 그 사례에 어긋나면 크게 잘 못된 것으로 생각한다.

이점에 대해서 임제스님은 입에 담을 수 없을 만치 혹독하고 심한 표현을 쓴다. “제발 누구 하나 아무 것에도 의지하지 않고 스스로 독창적인 법을 들고 나와서 같이 말 좀 해보자.

15년 동안 한 사람도 경계나 언구나 지금까지 표현한 것이 아닌 것으로 이야기를 나눠본 사람은 없었다.

모두가 제 갈 길을 못가고 구천을 떠돌다가 풀섶이나 나무나 바위 등에 붙어있는 귀신 도깨비 같은 존재들이다.

모두가 남들이 싸 논 똥 덩어리를 씹어 먹고 있는 꼴이다.”라고 하였다.

참으로 전무후무한 극언이다.

누가 감히 그 흉내를 내겠는가.

그 용맹은 천 명의 조자룡이요 만 명의 관운장이다.

누구의 표현처럼 임제는 활화산이고,

천기누설이고, 지뢰밭이고, 산사태고, 태풍이고, 해일이고, 홍수고, 날벼락이고, 대지진이고, 전쟁이고, 폭발이고, 분출하는 용암이다.

그 모든 것이 한꺼번에 쏟아지는 일이다.

똥 덩어리란 산처럼 쌓여있는 교학들이 그것이다.

온갖 망상으로 펼쳐 둔 주의 주장들과 사상들이 그것이다.

닦아야 되느니 증득해야 되느니 3아승지겁 동안 6바라밀, 10바라밀을 실천해야만 된다고 하는 등등의 가르침들을 지적해서 하는 말이다.

천하의 선지식이라는 이들이 모두 거기에 의지하고 있기 때문에 임제스님이 보기에는 갑갑하고 안타깝고 숨 막히고 몸살이 나서 죽을 맛이다.

활화산과 천기누설과 지뢰밭과 산사태와 태풍과 해일과 홍수와 날벼락과 대지진과 전쟁과 폭발과 분출하는 용암을 한꺼번에 쏟아 부어 다 쓸어버리고 싶은 심정이다.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임제의 적손(嫡孫) 조계종도들이여,

그리고 세계의 불교를 선도할 임제의 적손 조계종도들이여.

이 힘과 이 용기와 이 기백과 이 용맹으로 명실상부한 선의 종주국의 깃발을 온 세계에 힘차게 드날리자.

瞎漢이여

枉消他十方信施하고

道我是出家兒라하야

作如是見解로다

向儞道하노니

無佛無法하며

無修無證하나니

祇與麽傍家

擬求什麽物

瞎漢

頭上安頭

是儞欠少什麽

“야 이 눈 먼 놈들아, 저 시방의 신도들이 신심으로 시주한 물건을 마구 쓰면서 ‘나는 출가한 사람이다’라고 하여 이와 같은 견해를 짓고 있구나.

나는 그대들에게 분명히 말하고자 한다.

부처도 없고 법도 없고 닦을 것도 없고 깨칠 것도 없는데,

어쩌면 그렇게들 옆집으로만 다니면서 무슨 물건을 구하는가?

야 이 눈멀고 어리석은 놈들아!

머리 위에 또 머리를 얹는구나.

너희들에게 무엇이 부족하단 말인가?”

 

강의 ; 출가입산(出家入山)하여 수행 정진한다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온갖 호설난도(胡說亂道)로 펼쳐놓은 주의주장들을 의지해서 그것이 불교인양 하고 사는 사람들의 견해를 바로 잡아야 한다는 뜻이다.

불교는 그런 것이 아닌데 헛되이 신도들의 시주 밥만 축내고 출가인 이라고 하다니.

불교를 사뭇 틀리게 말하는 사람,

그것마저 하지 않는 사람들은 차한에 부재다.

논할 대상이 아니다.

이미 우리들 자신이 완전무결한데, 그래서 부처도 법도 수행도 깨달음도 없다. 공연히 자기의 집을 버리고 남의 집으로 찾아 헤매고 있다.

자신의 집에 이미 무한한 보물이 있는데 남의 집에 가서 무엇을 구하자는 것인가.

야, 이 눈멀고 어리석은 놈아 그렇게 해서 찾았다 하더라도 그것은 머리 위에 머리를 하나 더 올려놓는 격[頭上安頭]이다.

긁어서 부스럼 내는 일이다.

멀쩡한 사람을 병신으로 만드는 일이다.

머리 위에 머리를 올려놓고 어쩌자는 것인가?

무엇이 부족하여 그런 짓을 하는가? 지금 이 순간 글을 읽고 말하는 소리를 듣고 춥고 더운 것을 느끼고 하지 않는가?

거기서 다시 무엇이 더 필요한가? 진정한 신통묘용이요 무량대복인 것을.

참으로 천고의 명언이다.

촌철살인이다.

더 이상 나아갈 데가 없는 최후 최고의 가르침이다.

수미산 꼭대기다.

두상안두(頭上安頭).

천고의 명언이다.

흠소십마(欠少什麽).

명언중의 명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