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42/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9. 3. 14:37

시중 42

 

14-20 무명은 없다

大德

四大色身是無常이라

乃至脾胃肝膽

髮毛爪齒

唯見諸法空相이니

儞一念心歇得處

喚作菩提樹

儞一念心不能歇得處

喚作無明樹니라

無明無住處

無明無始終이라

儞若念念心歇不得하면

便上他無明樹하야

便入六道四生하야

披毛戴角이요

“큰스님들이여!

사대로 되어있는 이 몸뚱이는 덧없는 것이다.

비장과 위와 간과 쓸개와 머리카락과 털과 손톱과 이빨마저도 오직 모든 것이 텅 비어있는 모양임을 보여줄 뿐이다.

그대들의 한 생각 마음이 쉰 곳을 보리수라 하고,

한 생각 마음이 쉬지 못하는 곳을 무명수라 한다.

무명은 머무는 곳이 없으며, 처음과 끝이 없다.

그러므로 그대들이 만약 순간순간의 마음이 쉬지 못한다면 곧 무명수 위에 올라가서 곧바로 사생 육도(四生六道)에 들어가서 털이 나고 뿔이 달리는 짐승이 될 것이다.”

 

강의 ; ‘나는 없다.’ 이 말은 반야심경을 한 마디로 표현한 것이다.

5온이 모두 텅 비어 없다.

안·이·비·설·신·의도 텅 비어 없다.

색·성·향·미·촉·법도 모두 텅 비어 없다.

4성제, 8정도, 12인연도 텅 비어 없다.

일체가 다 텅 비어 없다는 것이 반야심경의 요점이다.

그래서 필자는 반야심경을 주력삼아 외우다가 깨달은 것이 ‘나는 없다.’이다.

내가 없는데 다시 무엇을 위하여 헐떡거리겠는가.

생로병사와 일체 문제의 해결이다.

그대들 한 생각 쉬어버린 곳이 보리수다.

그대들이 한 생각 쉬지 못한 곳이 무명수다.

그런데 무명이란 말 뿐이지 실은 없는 것이다.

무엇인가 찾으려고 헐떡거리는 마음 때문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온갖 4생(生) 6도(途)가 다 벌어진다.

다종다양한 삶이 펼쳐진다.

천태학(天台學)에 일념삼천(一念三千)이라는 말이 있다.

한 순간에 삼천 가지의 삶의 양상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한 마디로 우리가 살며 느끼고 있는 일체 현실이 모두 한 생각 쉬지 못해서 무명이 있고,

그 무명으로 인하여 환영처럼 펼쳐진 것들이다.

儞若歇得하면

便是淸淨身界니라

儞一念不生하면

便是上菩提樹

三界神通變化하야

意生化身하야

法喜禪悅하며

身光自照

思衣羅綺千重이요

思食百味具足하야

更無橫病이니라

菩提無住處

是故無得者니라

“그대들이 만약 쉬기만 하면 그대로가 곧 청정법신의 세계다.

그대들이 한 생각도 나지 않으면 곧 보리수에 올라 삼계에서 신통 변화하여 마음대로 화신의 몸을 나타내리라.

그래서 법의 기쁨과 선의 즐거움[法喜禪悅]으로 몸의 광명이 저절로 빛날 것이다.

옷을 생각하면 비단 옷이 천 겹으로 걸쳐지고,

밥을 생각하면 백 가지 진수성찬이 그득히 차려지며,

다시는 뜻밖의 병이나 가난으로 오는 병에 걸리는 일도 없을 것이다.

보리는 어떤 주처가 없다.

그러므로 얻을 것도 없느니라.”

 

강의 ; 한 생각 쉬는 것이 곧 한 생각도 일어나지 않은 것이며,

한 생각 일어나지 않은 것이 곧 한 생각 쉰 것이다.

그 경지가 되면 이 현실 그대로가 청정법신의 세계며 곧 보리수에 올라 삼계에서 신통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뜻대로 몸을 나타내며 법희선열(法喜禪悅)을 누리리라.

비단 옷이 넘쳐나고 온갖 진수성찬이 구족하여 병도 없으리라.

한 생각 쉬는 것이 무엇인가?

자신에게 모든 것이 구족하여 더 이상 밖을 향해서 찾을 것이 없는 이치를 깨닫는 것이다.

설사 부처와 조사라 하더라도 자신 밖에 다른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밖을 향해 찾지 않는 것이다.

신통묘용과 복덕 지혜도 그렇다.

그것이 쉬는 것이며 한 생각도 일으키지 않는 것이다.

법희선열(法喜禪悅)이란 말은 삶의 극치다.

가만히 읊조리기만 해도 그 희열이 샘솟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