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제록(臨濟錄)

임제록강설/시중59/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9. 3. 21:28
 

시중 59

14-36 도인은 자취가 없다

乃至孤峯獨宿하며

一食卯齋하며

長坐不臥하며

六時行道하여도

皆是造業底人이요

乃至頭目髓腦

國城妻子

象馬七珍

盡皆捨施하야도

如是等見

皆是苦身心故

還招苦果하나니

不如無事하야

純一無雜이니라

“외로운 산봉우리에 혼자 살며 아침 한 끼만 공양을 하고 눕지도 않고 앉아서 밤낮으로 도를 닦는다 하여도 모두 다 업을 짓는 사람들이다.

머리와 눈과 골수와 뇌를 보시하고, 나라와 성곽과 아내와 자식을 보시하고, 코끼리와 말과 일곱 가지 값진 보물들을 모조리 다 기꺼이 보시하더라도 이와 같은 견해는 모두가 몸과 마음을 괴롭히기 때문에 괴로운 과보를 다시 불러오는 것이다.

차라리 아무 일도 없이 순일하여 잡스런 것이 없는 것만 같지 못하니라.”

 

강의 ; 불교의 고행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결코 권장하는 일은 아니지만 위에서 소개한 것들이다.

세존도 성도하시기 전에 숱한 고행을 하였다.

그러나 고행은 고통의 과보를 불러올 뿐이다.

바람직한 수행은 아니다.

그래서 세존도 나중에는 고행을 버렸다.

깨달음을 이루고 나서 다섯 비구들을 찾아가서 첫 마디 말이 ‘나는 중도를 깨달았노라.

향락의 삶도 고행의 삶도 정상적이거나 바람직한 삶의 길이 아니다.

모든 존재는 중도의 법칙에 의하여 존재한다.

그러므로 중도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러므로 내가 고행을 포기하고 떠난 것을 타락한 것이라고 오해한 것을 풀어라.

나는 여러분들의 그와 같은 오해를 풀기 위해서 제일 먼저 이곳에 왔노라.’라고 했다.

중도의 삶이란 무엇인가?

아무 일 없이 순일하고 잡스런 것이 없는 삶이다.

인연을 따라 배가 고프면 먹고 피곤하면 잠을 자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불교적 삶의 길이다.

모든 인생사란 결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좋은 말씀을 또 소개한다. 불여무사(不如無事) 순일무잡(純一無雜)하게 살라. 모두들 왜 이렇게 못 사는가?

乃至十地滿心菩薩

皆求此道流蹤跡하나

了不可得이니

所以

諸天歡喜하며

地神捧足하야

十方諸佛

無不稱歎하나니

緣何如此

爲今聽法道人

用處無蹤跡일새니라

“또 십지에 오른 보살조차도 이 도인들의 자취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모든 천신들이 기뻐하고 지신들이 그의 발을 받들어 모시며,

시방의 모든 부처님들이 칭찬하지 않는 이가 없다.

어째서 그런가? 지금 법문을 듣고 있는 도인이 작용하는 그 곳에는 아무런 자취가 없기 때문이니라.”

 

강의 ; 그와 같이 사는 사람의 자취는 아무리 수행이 많이 된 사람이라 하더라도 찾지 못한다.

차별 없는 참사람의 자리에 있기 때문이다.

차별 없는 참사람은 지금 이 순간 법문을 듣는 그 사람이다.

그리고 모든 사람은 다 차별 없는 참사람이다.

그 사람은 아무리 작용이 활발발 하더라도 아무런 자취가 없기 때문이다.

본래로 사람은 아무런 자취가 없다.

자취 없이 왔다가 자취 없이 가는 것이 인생이다.

먼 하늘가에 자취 없이 사라지는 흰 구름 일뿐이다.

‘태어남이란 어디서 오는가?

죽음이란 어디로 가는가?

태어난다는 것, 한 조각 뜬 구름이 일어나는 것이다.

죽는다는 것, 한 조각 뜬 구름이 사라지는 것이다.

뜬 구름 그 자체 본래로 실체가 없듯, 태어나고 죽고 가고 오고하는 것도 본래로 그 실체가 없더라.’

그러면서도 이렇게 분명히 보고 듣고 울고 웃고 지지고 복고 하는 것,

이 또한 인생의 실상이다.

우리들 인생은 인연과 조건으로 잠간 있다가 인연과 조건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래서 인생은 공이다. 무다.

있으면서 없는 것, 없으면서 있는 것, 이런 원칙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중도라고 한다. 천지지간(天地之間) 만물지중(萬物之中)에서 가장 존귀한 사람이 그렇거늘 다른 것이야 논해 무엇 하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