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장(書狀)

서장/대강좌3/무비스님

通達無我法者 2007. 9. 12. 11:55
 

 

무비스님 서장 대강좌 제 1-2 강

 

  앞에서 책 소개 많이 했습니다만,

책 한권 써서 800년 동안 베스트셀러가 될 수 있다면 얼마나 큰 영광이겠습니까?

이것만 보더라도 대혜스님의 그 지견.

그 지혜가 얼마나 뛰어나다고 하는 것을 우리가 그냥 무조건 믿어도 좋습니다.

  당나라 때는 로마 제국시대. 우리나라는 신라. 한참 인류의 문명의 꽃이 활짝 피고, 그 꽃이 만개의 시기가 곧 넘어가려고 하는 무렵.

그 당시가 우리나라로 치면 고려가 됩니다.

그 무렵에 등장했기 때문에 대혜스님의 지혜는 정말 걸러지고, 걸러지고 검증받고, 검증받고 또 검증받은 유물입니다.

 

그런데 그런 시대에 중국 천하에 내 노라 하는 사대부들이 모두가 대혜스님의 신도였습니다.

부처님 신도보다도 대혜스님의 신도가 훨씬 우수한 신도들이 많았습니다.

그 점이 아주 부러운 점이지요.

  그 만치 대혜스님은 위대했던 당시의 聖者(성자)였다는 사실을 우리가 가슴속에 새기면 아마 대혜스님의 가르침의 구절구절이 더 감동적으로 와 닿고, 더 의미 있게 내 마음속에 자리 잡지 않을까?

이런 효과를 노리기 위해서 저는 대혜스님을 말씀 드리는 것입니다.

 

  서장의 대지! 대개 불교는 그렇습니다.

어떤 경전이든지 제목이 그 뜻을 나타내있기도 하지요.

그러면서 거기에서 더 간단하게 알도록 하기 위해서 大旨(대지)라는,

글자 여섯 자로서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것이 “斥邪解現正見(척사해현정견)” 그래요.

삿된 소견을 물리치고, 바른 견해를 들어낸다.

이것이 大慧(대혜) 書狀(서장)의 主題(주제)입니다.

 

  여기서 삿된 견해란 무엇이며, 정견이란 무엇인가?

이런 것을 살펴볼...

꼭 맞는 말은 아닙니다만,

그러나 그런 내용들이 대다수이고, 제가 덧붙인 것이 “禪機(선기)의 宣揚(선양)이다.” 그랬습니다.

선기란 무엇인가? 선의 모든 것을 한 마디로 축약해서 표현할 때 선기라고 합니다.

기틀 기(機)자는 뭔가? 근원. 뿌리. 중심. 핵심. 그러면서 電燈(전등)으로 치면 스위치 역할을 합니다.

간단 하지만 딱 올리면 온 강당이 환하게 밝아집니다.

내리면 그냥 꺼져 버려요. 아무리 넓은 공간도 캄캄 합니다. “기”라고 하는 것은 기계에 있어서는 그런 부분을 “기”라고 그럽니다.

우리말로 해석하기가 아주 까다로운 글자입니다.

   그냥 “선기!” 그렇게만 아세요. 선의 모든 것이 선기라는 이 말에 다 집약이 되어 있다고 이해하면 됩니다. 

너무 무책임한 것 같고 애매모호한 것도 같고요.

그래서 조금 빗나간 것 같지만,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선기란 선의 體化(체화). 또는 인격화다.

선기는 선의 일곱 가지 의미와 또는 선의 7대 정신으로 표현할 수 있다.

제가 일곱 가지 의미.

7대 정신으로 표현하는데요.

 

우리나라가 “선불교” “선불교” 하면서도 통불교적인 요소가 너무 많아서 선행사를 하는 경우가 너무 많습니다.

  “설선법회다.” “선강좌다.” “뭐다.” 이렇게 하는데 정말 선의 정신을 어느 정도 감안하고 선행사를 과연 하는가?

이런 것을 생각할 때가 참 많습니다.

어느 절이라고 구체적으로 예는 들지 않겠습니다만,

완전히 무당이 굿판을 벌리듯이 장엄을 해요.

요즘 물질이 풍부하기 때문에 프린트도 많이 하고, 현수막도 많이 걸고,

깃발을 펄럭이면서 별별 장엄을 하고서 선을 설명 한다고 행사를 하더라고요. 완전히 무당굿판을 벌려 놓고는 선행사를 한다는 겁니다.

선의 정신하고는 전혀 안 맞는 겁니다. 선의 정신을 이 기회에...

 

  우리는 한국의 통불교가 자랑스러운 것이 아니고,

선불교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어쨌든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 중에서는 선불교가 명품불교니까요.

“선” 이라는 말을 얼마나 많이 쓰는가? “선”의 브랜드 값이 얼마나 높은가? “선” 아니 들어가는 데가 없어요.

심지어 여성들이 쓰는 화장품도 “선 화장품”입니다.

조선일보에 난 것을 제가 봤어요.

요즘 종합 격투기 하는 것 보시죠?

세계 싸움꾼들 다 모아놓고 싸우는 거기 밑바닥에 써진 글씨를 보셨어요? “선기”라고 써 놨어요.

그때의 “기”자는 기운 氣(기)를 써놓고 영어로 “X 에너지”라고 써 놨어요.

선의 기운이라는 겁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싸움 잘 하는 사람도 선의 기운으로 한다는 겁니다.

 

저는 선을 좋아하는 사람이니까 그 “선”자... 미국 어느 체육관에서 하는데 그 “선”자가 눈에 띄어서 자세히 보니까  “禪氣”라고 써 놨어요.

제가 쓰는 機자가 아니고 氣자를 써서 선 기운이라는 겁니다.

심지어 싸움판에도 선이 등장 했어요.

“禪”상표가 이렇게 인기가 좋습니다. 아주 값이 비싸요.

온갖 잡동사니 다 모아놓고 “禪食(선식)” 이러는데 선은 잡동사니가 아닙니다.

 

 처음에 뭐라고요?

“簡素(간소).” 멋지잖아요? 이것이 선입니다. 간단하고 소박하다.

  선은 첫째, 간단명료하고 소박해야 돼요.

禪房(선방)에 한번 가 보세요.

그 방석정리라든지 신발정리라든지 가사장삼 걸어놓은 정리라든지 그냥 선이 느껴지잖아요.

선이 뭔지 모르지만 선이 느껴지잖아요.

 

우리 조계종이 선불교를 표방함으로 해서 세계적으로 상당히 위상이 높아요.

이런 시간을 마련 한 것이 너무너무 다행스럽고,

이런 시간을 자주 마련해서,

많은 선지식들에게 선을 많이 들어서 정말 거기서 검증 하고 선별해서,

선의 오롯한 정신을 정리해야할 시점에 와 있습니다.

 

  禪은 脫俗(탈속) 해야 됩니다.

俗氣(속기)가 너덜너덜 붙어서 禪師(선사)가 됐던지,

禪氣(선기)가 됐던지,

禪房(선방)이 됐던지,

禪寺刹(선사찰)이 됐던지,

禪자를 붙였으면 탈속해야 됩니다.

아파트도 선 스타일 이라는 광고 들어 보셨지요?

어떻게 지어놓고 선 스타일 이라고 하는가?

하고 제가 보니까 아주 간소 합니다.

장치가 거의 없어요.

텅 비었어요. 그리고 탈속해 보여요. 어딘가 모르게 탈속해 보여요.

벽장이 많고, 걸 것이 많고, 널 것이 많은 것이 아니고...

  自然(자연). 천지자연이 아니고, 저절로 그러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천지자연의 춘하추동 자연도 사실 저절로 그러함이지요.

 

그런데 선은 체화. 우리들 자신이 선을 익혀서, 선의 정신을 도입을 해서, 내 삶의 어떤 한 표현으로 나타나야 된다고요.

그런데 자연스러워야 됩니다.

조작이 있고 뭔가 억지가 있는 것은 선사가 아니고, 禪客(선객)이 아니고, 禪人(선인)이 아닙니다.

  알고 보면 선은 좋은 겁니다.

아주 기가 막힌 겁니다. 왜 이 시대에 지금 간화선인가?

선중에도 간화선은 오로지 화두 하나뿐입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오로지 화두 하나뿐이라고요.

 

여기 서장에 들어가면 나오지만 천 가지 문제,

만 가지 문제 얽히고설킨 여러분들이 갖고 있는 문제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건강의 문제, 집안의 문제, 자기가 처해있는 소속 기관의 문제, 사회의 문제, 하고 있는 온갖 일들, 어마한 문제가 많습니다.

 

  그래서 대혜스님이 그랬어요.

천 가지 문제와 만 가지 문제가 오직 이 한 가지 문제로 귀결되니,

이 한 가지 문제만 해결하면 천 가지 문제,

만 가지 문제가 다 일시에 소멸이라는 말을 여러 번 만나게 됩니다.

그렇습니다. 그만치 단순해요. 간결해요. 소박해요. 이 시대가 얼마나 복잡합니까?

지금 저 앞에 데모한다고 야단법석이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 그것을 다 뒤로하고, 이 자리는 그런 모든 것들을 잎 따고 가지치고, 줄기 다 베어 버리고, 뿌리까지 다 뽑아버리고, 뭔가 이름 모를 그 하나!

그것 하나만 내 마음 속에, 내 인생에 하나만 남겨놓는 시간을 가져보는 이것이 선 공부가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합니다.

  그러면서 저절로 그러함 뿐만이 아니고, 촐랑대면 안 돼요.

깊이가 있어야 돼요. 유연한 것. 이 선은 선사가 깊이가 있고 무게가 있고, 선을 하는 보살이나 선을 하는 거사나, 선을 하는 처녀나 선을 하는 총각은 유연해요. 깊이가 있어요. 침착해요. 이것이 또 선의 특징 중의 하나예요

 

  孤高(고고)! 이것은 아주 권위입니다.

높은 바위 벼랑위에 서있는 아주 깡마른 枯木(고목).

그 고목이 몇 백 년. 몇 천 년이 되었는지 모르는, 그러면서도 도대체 넘어지지 않고, 가까이 가면 살을 베일 듯한 날카로움도 있고 위엄도 있고...

오대산 비로봉에 가면 더러 몇 천 년 된 그런 主木(주목)이 있습니다.

그 전에 상원사에 있으면서 가을에는 의례히 거기를 몇 바퀴를 도는데 그런 주목을 보면, 수 천년 된 주목이 이렇게 말라 있는데...

얼마나 거기에 위엄이 서려 있는지 가까이 갈 수가 없어요.

그런 것을 느끼게 됩니다. 선도 이 고고함이 있어야 됩니다.

 

선을 제대로 한 사람은 이것이 있습니다. 호락호락 하지를 않아요. 호락호락할 턱이 있습니까?

도인이니 명현이니 시시한 것에 호락호락 하면 그것은 선이 아니지요.

고고함! 멋진 의미 아닙니까?

  靜寂(정적)인데요. 禪은 무조건 고요해야 돼요.

바깥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선자를 생각만 해도 저절로 마음이 차분히 가라앉고, 그 끝 모를 깊이 속으로 침잠해 들어가는 마음. 이것이 또 선입니다.

 

  여러분들! 집에서 참선하신 분도 많으실 줄 믿습니다.

집안 사정이 어떻고, 자식이 어떻고, 회사 일이 어떻고, 세상 돌아가는 것이 어떻고, 大選(대선)이 어떻고, 무슨 이전투구가 되어서 물고 물리고, 선하는 사람은 그것 알바 없어요.

좌복을 펴놓고 앉으면. 가다가 공원에서도 좋고, 찻간에서도 좋고, 선을 생각하면 그것이 화두가 됐던지, 선 이라는 글자가 됐던지, 아니면 하다못해 대혜 서장이 됐던지, 아니면 제가 이야기 하는 이 순간을 기억 하는 것도 좋아요.

이것도 다 선에 속하니까요.

이렇게 딱 하면 그 순간 모든 시끄러움.

모든 번잡함이 가라앉는 것! 이것이 가능해요.

얼마든지 가능 합니다. 이것이 정적입니다. 적정하고 또 달라요. 수준이 다른 것이 정적입니다.  글자 하나 뒤바뀐 것인데요.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근사 하지요? 정적!

 

  다음으로 중요한 것이... 참선 좀 한다. 공부 좀 한다. 불교 좀 한다. 한 불교 한다면 그만 자기 아집이 생기는 겁니다. 자기 틀이 딱 생겨요. 불교를 안한 사람은 없는데 한 불교 한다는 사람은 전부 자기 아집. 자기 고집. 자기 틀이 생기는 겁니다.

 

선은 그런 것이 아닙니다. 변화무쌍한 것입니다. 변화라는 말이 참 매력 있지요? 선은 꼭 이래야 된다고 고정되어 있는 것을 아주 거부 합니다.

  사실은요. 댓돌 위에 신을 가지런하게 벗어놓고,

또 선방에 가 보면 방석을 손이 베일 정도로 모를 맞춰서 정리해 놓습니다.

그렇지만, 무질서 할 때는 아주 무질서 합니다.

어디를 찾아볼 수 없게 무질서한 것이 선객들입니다.

그러면서 또 질서가 있을 때는 서릿발 같은 질서를 세울 줄 아는 것이 禪하는 사람입니다.

 

고정 되어 있지 않아요. 가지런하지가 않아요. 한결 같지가 않아요. 어디로 튈지 모릅니다.

  선을 제대로 한사람은 그런 변화함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야 살아있는 생명이지요.

선은 생명을 극대화한 것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이 생명력을 극대화 하는 한 작업이고,

한 방편이 이 선이고, 그 중에서도 간화선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마지못해서 호국불교니 기도불교니 기복 불교니 별별 불교를 하지만,

그래도 그 중심에는 선이 있어요. 선이 생명입니다.

선불교가 면면이 중심에서 자리를 지켜 왔기 때문에 쓰러지지 않고 이렇게 있는 겁니다.

불교도 아닌 그 잡다한 불교. 불교 간판만 걸어놓고 타 종교인들 보다도 더 못하게 그냥 내달리고, 무당보다도 더 무당같이 하고,

그래도 쓰러지지 않고 이렇게 꿋꿋이 자기 갈길 가는 것은 바로 그 중심에 선불교가 있어서 그래요.

 

러니까 달마스님 이후로 그리고 800년 전 보조스님께서 이 간화선의 지침서를 도입해서 사람들에게 가르친 이후로 끊임없이 이것을 최소한도 불교 전문가. 정말 진정 전문가는 오로지 이 공부에 매진하는 것입니다.

 

  선불교의 特長(특장)은 다시 줄이면 성에불유 범영탈락.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즉 선은 아주 성스럽다고 하는 견에도 머물지 않고,

그렇다고 저질적인 범속한 생각에도 머물러 있지 않지요.

그런 것도 벗어난 사람의 삶이다. 이랬습니다.

성스러운 견에도 머물지 않고, 범속한 생각도 벗어난 사람의 삶이 바로 선이다.

 

서론으로 이렇게 정리를 했습니다.

이것이 두고두고 서장 공부하는 사이사이에 이것이 연관이 되어서 이야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또 부수적으로 선은 표현할 것이 많습니다.

두고두고 표현하겠지만,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도 한 마디씩 지어 오세요.

제가 보기에 선은 “밥이다.”

영답답하면 그렇게라도 짓든지... 왜냐?

선방에 가면 밥 먹여 주니까요.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

 여러분들이 선을 느끼는 대로, 또 공부해 가면서 선을 알아가는 대로, 또 그 동안도 공부한 것도 많으실 테니까 한 마디로...

이것 임자 없습니다. 하는 사람 것이니까요. “선은 뭐다.”라고 한번 지어 보세요.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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