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림보훈(禪林寶訓)

선림보훈/4 늙고 가난할수록 뜻을 굳게 가져야 한다

通達無我法者 2007. 12. 3. 16:40
04  늙고 가난할수록 뜻을 굳게 가져야 한다  효순 노부(曉舜老夫)스님 / 1009∼1090
 

 1. 운거산(雲居山) 효순(曉舜)스님의 자(字)는 노부(老夫)이다. 여산(山) 서현사(棲賢寺)에 살 때, 군수(郡守) 괴도관(槐都官)에게 사사로운 노여움을 사 횡역(橫逆)에 걸리게 되었다. 이에 환속을 당하여 속인의 옷을 입고 서울로 가 대각(大覺)스님을 방문하려 하였는데, 산양(山陽) 지방에 이르러 눈으로 길이 막히자 여인숙에서 묵게 되었다. 하루 저녁에는 어떤 길손이 종 둘을 데리고 눈을 헤치며 왔는데, 노부(老夫)스님을 보더니 마치 오랜 친구처럼 대하였다. 이윽고 옷을 갈아입고 앞에서 절을 하므로 노부스님이 누구냐고 묻자, 길손은 대답하였다.
"옛날 동산(洞山)에 있을 때 스님을 따라 짐을 지고 한양(漢陽)에 갔을 때, 종을 지휘한 송영(宋榮)입니다."
스님이 지난 일을 이야기해 주었더니 송영은 길게 탄식하였다. 첫 새벽에 밥을 준비하고 백금(白金) 다섯 냥(兩)을 주더니 이어서 종 하나를 불러놓고 말하였다.
"이 아이는 서울을 여러 차례 갔다왔으므로 험한 길을 자세하게 알고 있으니 스님께서는 가시는 길을 염려하실 것 없읍니다."
덕분에 스님은 서울에 갈 수가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본다면 그 두 사람은 평소에 간직한 도가 있었다는 사실을 잘 알 수 있다. 『구봉집(九峯集)』

2. 효순 노부(曉舜老夫)스님은 천성이 대범하고 강직해서 저울질하여 재산 불리는 일 따위는 알지 못하였다. 매일 일정한 일과를 정해놓고 조금도 어김이 없었으며, 등불을 켜고 청소하는 일까지도 모두 몸소하였다. 한번은 이렇게 탄식하였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말라는 옛사람의 훈계가 있으셨거늘 도대체 나는 어떤 사람인가?"
늙어갈수록 그 뜻은 더욱 견고해지니, 어떤 사람은 말하였다.
"왜 시자들을 시키지 않습니까?"
스님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추운 날 더운 날에 그저 지내는 것도 편안치 않을테니, 그들을 수고롭게 하고 싶진 않다."
[탄연집(坦然集)]

3. 우리 불도를 전수하고 지키는 데는 진실한 모든 것을 귀하게 여긴다. 삿됨과 바름을 구별하고 망정(妄情)을 제거하는 것이 마음을 다스리는 요점이며, 인과(因果)를 식별하고 죄와 복을 밝히는 것이 꾸준히 도를 실천하는 요점이다. 또한 도덕을 넓히고 사방에서 오는 사람을 맞이하는 것이 주지(住持)의 요점이고, 재능을 헤아려 일을 맡기는 것은 사람을 쓰는 요점이며, 말과 행동을 살펴 가부를 판정하는 것은 훌륭한 사람을 구하는 요점이다.
알맹이는 간직하지 않은 채 헛된 명예만을 자랑한다면 진리에는 이익이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지조와 실천에 있어서 반드시 성실해야 한다. 이를 굳게 지켜 변함이 없다면 평탄과 험난을 하나로 여길 수 있다. 『탄연암집(坦然庵集)』

4. 효순 노부스님이 부산(浮山)의 법원 녹공(法遠錄公:991∼1067)스님에게 말하였다.
"위 없는 오묘한 도를 탐구하려면 곤궁할수록 뜻을 더욱 굳게 먹고 늙을수록 기상을 더욱 씩씩하게 가져야 한다. 세속을 따라 구차하게 명리(名利)를 훔치느라 지극한 덕을 스스로 잃어서는 안된다. 옥의 귀한 특성은 깨끗한 빛깔에 있으므로 다른 색 때문에 자기 색을 잃지 않으며, 소나무는 엄동설한에도 변함이 없으므로 눈과 서리도 그 지조를 시들게 하지는 못한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절개와 의리가 천하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점이다.
공정한 목표만을 받들 만하니 스스로 노력하지 않아서야 되겠는가. 옛사람도 말하기를, `여유로운 새는 홀로 훨훨 날아 외로운 바람을 탈 뿐 떼를 짓지 않는다'라고 하였는데, 지당한 말씀이라 하겠다." 『광록(廣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