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법화경(法華經)

제 7 장 화성유품(化城喩品)(2)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09:51

제 7 장

화성유품(化城喩品)(2)


꽃 공양을 마치고 저마다 가지고 온 궁전을 부처님께 바치며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어, 이익케 하기 위해 바치는 이 궁전을 받아 주옵소서.”

그때 여러 범천왕들은 부처님께 나아가 일심으로 소리를 합하여 시송으로 여쭈었습니다.
『세존은 매우 뵙기 어려워라. 모든 번뇌를 깨뜨려 주시는 분이시여. 일백 삼십 겁을 지나고서 이제
한 번 만나 뵐 수 있어 마음이 메마른 중생에게 가르침의 비, 흡족하게 내리시는 분이시여.
예전에 보지 못했던 한량없는 지혜를 가지신 분이시여, 우담바라꽃 피듯이 오늘에야 겨우 만나 뵙네.
저희들의 궁전들은 부처님의 빛을 받아 아름답게 빛납니다. 세존이시여,
대자비를 가지고 이 궁전을 받으소서.』

그때, 여러 범천왕은 시송으로 부처님을 찬양하여 마치고 이런 말을 여쭈었습니다.

“원하옵나니, 세존께서는 가르침을 설하시어 일체 세간의 여러 하늘과 악귀신과 선신과 스님과
바라문들을 다 안온을 얻게 하시고, 해탈하도록 하여 주시옵소서.”

이때, 여러 범천왕들은 일심으로 소리를 합하여 시송으로 말씀드렸습니다.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위없는 가르침 설하시어 큰 가르침의 북을 울리시고 큰 가르침의
고동을 부시며, 큰 가르침의 비를 널리 내려 한량없는 중생 건지소서.

저희들은 다 함께 귀의하고 청하옵나니, 깊고 미묘한 가르침 들려 주소서.』

그때, 대통지승 여래께서는 무언으로 이를 허락하였습니다.

또한 서남방과 하방에도 이와 같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때, 상(上)방의 오백만억 국토에 있는
여러 큰 범천왕들도, 예전에 볼 수 없었던 밝은 광명이 자기들의 궁전에 비치는 것을 보고 환희하고
춤 출 듯이 기뻐하며, 이상한 생각을 마음에 일으켜, 각각 서로 찾아가 이 상서를 의논하였습니다.
“무슨 사연이 있어 우리들의 궁전이 이와 같이 빛나는가?” 하고.

그 범천왕들 가운데 정수리에 털송이를 가진 시기(尸棄)라고 하는 큰 범천왕이 있어
여러 범천의 집단을 향하여 시송으로 말하였습니다.
『지금 무슨 사연이 있어, 우리들의 여러 궁전마다 위엄과 덕이 있는 광명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은
예전에 없던 일이라.

이와 같은 훌륭한 서상은 듣지도 보지도 못했거늘, 큰 덕이 있는 하늘이 태어나려 하심인가,
세간에 부처님이 출현하심인가?』

그때, 오백만 억의 범천왕들은 궁전과 갖가지 하늘 꽃을 담은 그릇을 가지고 함께 하(下)방으로 내려가
이 상서의 근원을 찾았더니, 대통지승불께서 깨달음을 얻으셨던 보리수 아래 설법의 자리에 앉아서,
여러 하늘들과 용왕과 건달바?긴나라?마후라가, 사람인 듯 아닌 듯한 것들에게 공경 받으며 둘러싸여
계심을 보며, 또한 열 여섯 왕자들이 부처님께 “가르침을 설하소서”하고 간청하는 것을 보자,
여러 범천왕들은 머리 숙여 부처님을 예배하고 주위를 수없이 돌며, 하늘 꽃을 부처님의 몸에 흩으니,
그 흩은 꽃이 수미산처럼 높았으며 또 부처님 곁에 있는 보리수에도 공양하였습니다.
꽃 공양을 마치자, 저마다 가지고 온 궁전을 부처님께 바치며 여쭙기를, “저희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공덕을 내리시는 마음으로 이 궁전을 받아 주옵소서.” 하고 간청하였습니다.

이때, 여러 범천왕들은 부처님 앞으로 일심으로 소리를 같이하여 시송으로 여쭈었습니다.

『좋을시고, 세상을 제도하시는 부처님을 뵙는 것은.
삼계의 지옥으로부터 부지런히 중생을 나오게 하시네.

모든 것 다 아시는 세존께서 수많은 어린 중생 불쌍히 여겨,
부처님의 가르침을 설하셔서 널리 일체 중생 지도하시네.

옛날의 한량없는 겁은 부처님 안 계셔서 헛되이 보내, 세존 아직 나오시지 않아 시방은 항상 어두워서
삼악도는 늘어나고 아수라 또한 성하므로, 하늘 중생 줄어들고 죽어서 많이 악도에 떨어지네.

부처님의 가르침 따르지 않고 항상 좋지 못한 일 행하여서, 몸의 힘과 지혜의 힘도 모두 다 줄어드네.

죄업의 인연으로 모든 즐거움 다 잃고서 삿된[邪] 가르침에 걸리어서 좋은 규범마저 알지 못해,
부처님의 교화 받지 못하고 나쁜 갈래로 떨어지네.

부처님은 세간의 눈이 되시려고 오랜만에 나오셨네.

모든 중생 불쌍히 여기어서 세간에 출현하사, 괴로운 세상 넘고 나와 바른 깨달음 이루었네.

저희들은 즐거워하고 일체중생 기뻐하여 예전에 없었다고 찬양하네.

우리들의 여러 궁전들 빛을 받아 장엄되어 이제 세존에게 바치오니 부디 받아 주옵소서.

원하옵나니, 이 공덕을 가지고 널리 일체에 미치게 하여 저희들 모든 중생이 다 함께
부처님의 깨달음 성취하리.』

그때, 오백만억의 여러 범천왕이 시송으로 부처님의 덕을 찬미하고 나서 이와 같이 여쭈었습니다.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부디 가르침을 설하시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안온케 하시고
괴로움의 세계에서 해탈케 하옵소서.”

그때, 모든 범천왕들은 또다시 시송으로 여쭈었습니다.

『세존이시여, 법을 설하옵소서. 죽지 않는 생명을 가지도록 가르침의 북을 쳐서,
고뇌하는 중생을 지도하사 큰 깨달음의 길을 보여주옵소서. 부디 저희들의 간청을 받으셔서
아름다운 목소리로, 불쌍히 여겨 한량없는 과거세에 수행하여 깨달으신 진리를 알기 쉽게 설하소서.』

그때, 대통지승여래께서는 시방의 모든 범천왕들과 그리고 열 여섯 왕자의 간청을 받아들여 즉시
사제(四諦)의 가르침을 시(示)?권(勸)?증(證)으로 세 바퀴 돌려[三轉] 열 두 가지 수행[修行]의
가르침을 설하셨으니, 그곳은 어떤 사문(沙門)이나 바라문이거나 혹은 하늘, 마군이나 범천 및
그 어느 누구도 설하지 못하나니, 이른바 이것이 괴로움[苦]이며, 이것이 고(苦)의 모임이며
이것이 고의 멸이고 이것이 고의 멸하는 길[道]이다.

그리고, 십 이 인연의 가르침도 자세히 설하셨으니, “이 우주의 진리는 오직 하나의 힘(수냐 = 공)이지만,

그 자유 의지(힘)에 의하여 다른 원소인 파장(波長)이 함께 섞이면 불투명하게 흐려지기 때문에
이 <흐림[無明]>으로 말미암아 갖가지의 착각을 일으키고,

그 착각에 기인(基因)한 <행(行 = 생활활동)>을 오랫동안 행하여 왔다. 그러한 경험이 쌓이고 쌓여서

그 대상을 식별하는 근원적인 작용인 <식(識)>이 비뚤어진 형태로 생겨났으며 그것이 발달하여
현상으로서의 자기라는 존재, 즉 명칭(名稱)과 형상(形狀 = 色)을 식별하게 되었으며,

이 <명색(名色)>이 의지하는 시각, 청각, 후각, 미각, 촉각의 오관(五官)과 그 오관으로 느끼는 존재를
판별하여 아는, 의(意 = 뜻)가 나누어지니 이것을 <육입(六入)>이라고 한다. 또 그 육입이 있기 때문에
식과 명색과의 <접촉>(촉 = 囑)에 의해 사물을 이것저것 식별하게 되며, 이렇게 식별하게 되면 갖가지의
감정(感情), 즉 <수(受)>가 일어난다.

그런데 감정이 생기면 자연히 사물에 대한 <애(愛)>,
즉 애착이 생긴다. 애착이 일어나면 그것을 끝까지 구하는 욕망과 그것을 꼭 붙잡아 두고자 하는 마음,
즉 <취(取)>가 생긴다. 이 취가 있기 때문에 저마다 다른 감정, 다른 생각, 다른 주장, 즉 차별심인
 <유(有)>가 생기며, 이러한 차별심이 있기 때문에 사람과 사람과의 사이에 대립이 생기고 다툼이
일어나니 괴로움의 인생, 즉 <삶(생 =生)>이 생긴다.

그리고 <생>이 있기 때문에 온갖 <근심(憂)>,
<슬픔(悲)>?<고뇌(苦惱)>가 일어나며 이렇게 하고 있는 사이에 <늙음[老]>이 살며시 다가와서,
결국에는 <죽음[死]>이 찾아오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을 반대로 생각하면, <무명>을 멸하면 <행>도 멸하며, <행>이 멸하면 <식>도 멸하며,
<식>이 멸하면 <명색>도 멸하고, <명색>이 멸하면 <육입>도 멸하며, <육입>이 멸하면 <촉>도 멸하고,
<촉>이 멸하면 <수>가 멸하며, <수>가 멸하면 <애>가 멸하고, <애>가 멸하면 <취>가 멸하며, <취>가
멸하면 <유>가 멸하고, <유>가 멸하면 <생>도 멸하며, <생>이 멸하면 <노사>, <우비>, <고뇌>도
멸하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천상과 사람의 큰 집단에게 이 가르침을 설하실 때에, 육백만억 나유타의 사람들은 일체의
잘못된 사상을 받아들이지 않았으므로, 모든 번뇌를 여의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며, 모두 깊고 미묘한
선정(禪定)과 삼(三)명(明)과 육(六) 신통(神通)을 얻고 팔(八) 해탈(解脫)을 위한 수행을 할 수 있었다.
두 번째와 세 번째와 네 번째로 가르침을 설하실 때에도, 천만억 갠지스강의 모래 같은 나유타 중생들이
또한 일체 세간의 잘못된 사상을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갖가지 번뇌를 여의고 마음에 해탈을
얻었으니, 그 후로 여러 성문들은 한량없고 끝이 없어 그 수를 혜아릴 수 없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