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문보장록(禪門寶藏錄)

화엄원 계종화상의 깨침

通達無我法者 2007. 12. 10. 14:03

“청정한 성품은 걸림이 없어”

 

화엄원의 계종스님이 운거지 선사에게 물었다. “견성성불이란 무슨 뜻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청정한 성품은 본래 담연하여 동요가 없고 유와 무, 장과 단, 취와 사, 청정과 염오가 없어 본래 걸림이 없다. 이처럼 분명하게 보는 것을 견성이라 이름한다. 성품이 곧 불이고 불이 곧 성품이다. 때문에 견성성불이라 말한다.” 계종스님이 물었다. “성품이 이미 청정하여 유와 무에 속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볼 수가 있습니까.” 선사가 말했다. “보아도 볼 바가 없다.” 계종스님이 물었다. “볼 바가 없는데 어떻게 본다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보았다는 것조차 없다.” 계종스님이 물었다. “보았다는 것조차 없다고 그렇게 간주했을 경우 도대체 누가 본다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렇게 보았다는 주체가 없다.” 계종스님이 물었다. “결국 견성성불의 도리가 어떻다는 겁니까.” 선사가 말했다. “그대는 알겠는가. 무릇 도리가 있다(有)고 간주하면 그것은 분별이므로 미혹하여 그에 따라 생사에 빠지고 만다는 것을. 그러나 분명하게 본 사람은 그렇지 않다. 종일토록 보아도 일찍이 본 바가 없고, 본다는 바탕을 찾으려해도 찾을 수가 없다. 이처럼 분별이 없는 것을 견성이라 이름한다.

 

견성은 청정심이자 본래심

자기성품서 ‘자기 佛’봐야

” 계종스님이 물었다. “그러면 지극한 도리란 무엇입니까.” 선사가 말했다. “내가 요약해서 말해보겠다. 청정한 성품에는 범과 성이 없고, 또 아는 자도 없고 모르는 자도 없다. 그 두 가지는 가명일 뿐이다. 만약 나는 알고 남은 모른다면 그것은 큰 착각이다. 또 범과 성, 청정과 염오가 있다고 보는 것도 큰 착각이다. 그리고 범과 성이 없다고 이해하는 것도 또 인과를 부정하는 꼴이 된다. 이와 같은 작용이야말로 완전한 청정의 성품으로 견성성불이라 할 수 있다.” 계종스님이 대단히 기뻐하며 물러났다.

 

계종스님은 화엄학의 강사라는 사실 이외에 자세한 기록은 알려져 있지 않다. 운거지 선사는 운거보지(雲居普智)이다. 우두종의 9대 선사로서 불굴유칙의 제자이다. 일반적으로 우두종의 선풍이 그렇듯이 계종화상에 대한 운거보지 선사의 답변도 마음을 깨치고나면 경계와 주관이 모두 사라진다는 입장이다.

만법개공을 주장하였고, 세간과 출세간도 일념의 망심으로부터 비롯된다는 것이었다. 따라서 일념이 발생하면 만법이 발생하고 일념이라는 생각조차도 철저하게 비워버려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운거선사는 한걸음 나아가서 보살행의 실천으로 반야공관을 전개하고 있는 점이 엿보인다. 이와 같은 선풍에 대하여 운거보지 선사와 거의 동시대를 살았던 규봉종밀은 분별을 그치는 것으로 마음을 닦는 종지라는 뜻에서 식망수심종(息妄修心宗)이라 칭하였다.

 

당시에 선종의 종지에 대하여 보편적으로 간주되었던 견성성불에 대하여 계종의 질문은 교학의 입장에서는 늘상 제기되는 질문이기도 하였다. 이에 대하여 운거선사는 본래청정한 성품에는 장단 유무 범성 정예 등의 분별이 없을 뿐만 아니라 그렇게 간주하는 주관조차 초월해 있음을 터득하는 것이 곧 견성이라고 말한다. 때문에 견성은 청정심이요 본래심이며 내지 불심을 깨우친다는 개념이었다. 그러나 그와 같은 청정심은 다름아닌 부처의 속성이라는 점에서 성은 불이고 불은 성이라는 입장에서 견성성불이 가능하다고 말한다. 만약 성품과 부처가 다르다면 견성은 끝내 성불일 수가 없다. 이것은 견성이 곧 성불이요 견불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자기의 성품을 보는 것은 자기의 불을 보는 것이다. 그러나 종일토록 보아도 일찍이 본 바가 없고, 본다는 바탕을 찾으려해도 찾을 수가 없듯이 분별심을 초월해야 할 것을 강조한다. 그러면 청정한 성품에는 일찍이 염오된 적도 없고 동요도 없지만 온갖 방편의 작용을 구사하여 자비를 실천한다는 점에서 선법의 보살행을 강조하고 있는 점은 우두종의 선풍이 단순히 공관의 터득에 그치지 않고 보살의 자비심을 실천하는 것으로 승화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계종화상은 곧바로 선법에 귀의하고 선정의 실천에 매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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