經典/잡아함경(雜阿含經)

잡아함경 제34권

通達無我法者 2007. 12. 21.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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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아함경 제34권
  
  송 천축삼장 구나발타라 한역
  
  
940. 초목경(草木經)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舍衛國) 기수급고독원(祇樹給孤獨園)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輪轉)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고 있다. 비구들아, 너희들 생각에는 어떠하냐? 만일 이 땅덩이에 있는 풀과 나무를 다 베어 네 손가락 정도 만한 길이의 나무를 베어 산가지[籌]를 만들고, 그 산가지를 가지고 너희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 의지했던 부모의 수를 헤아린다고 할 때, 산가지의 수는 끝이 날지 몰라도 그 부모의 수는 다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아, 이와 같이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야 한다. 열심히 정진(精進)하여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욱 더 늘어나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4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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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1. 토환립경(土丸粒經)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어떠하냐? 비구들아, 이 땅덩이의 모든 진흙을 바라과(婆羅果) 열매만한 크기의 환을 만들어 가지고, 너희들이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고 하면서 그 동안에 의지한 부모의 수를 헤아린다고 하자. 아마 흙으로 만든 탄알은 다 끝이 날지 몰라도 너희가 의지했던 부모의 수는 끝나지 않을 것이다. 비구들아, 중생들이 시작이 없는 과거로부터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는 이들의 수효도 이와 같으니라.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부지런히 방편을 써서 모든 존재에 대한 집착을 끊고, 더 이상 늘어나지 않도록 꼭 그렇게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42. 안락경(安樂經)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모든 중생들이 편안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이렇게 생각해야 한다.
  
2)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5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3)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6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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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들도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전하면서 일찍이 저런 즐거움을 누렸었는데, 그 갈래가 한량없이 많았었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시작이 없는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서 윤전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구나' 하고 꼭 그렇게 배워야 한다. 그리하여 부지런히 노력하여 모든 존재를 끊어 더 늘어나게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43. 고뇌경(苦惱經)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輪轉)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고 있다.
  모든 비구들아, 만일 저 모든 중생들이 온갖 고뇌를 받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한다.
  '우리들도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서 윤전하면서 일찍이 저와 같은 괴로움을 받아왔는데, 그 수효가 한량없이 많았었다.'
  그런 까닭에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존재를 끊어 더 늘어나게 하지 않아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44. 공포경(恐怖經)5)
  
4)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7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5)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8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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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는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모든 비구들아, 너희들은 모든 중생들이 두려운 마음이 생겨 온몸의 털이 곤두서고 옷자락이 일어서는 것을 보거든 이런 생각을 해야 한다.
  '우리들도 과거에는 틀림없이 일찍이 살생을 하였을 것이고 상해(傷害)하였을 것이다. 우리들은 이러한 나쁜 친구[惡知識]가 되어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부지런히 정진하여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고 더 이상 늘어나거나 자라나게 하지 말도록 꼭 그렇게 배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45. 애념경(愛念經)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서 오랜 세월 동안 윤전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모든 비구들아, 만일 중생들이 서로 사랑하고 생각하며 기뻐하는 것을 보거든 마땅히 이와 같이 생각하라.
  '이 중생들도 과거에는 우리들의 부모·형제·처자·친척·권속(眷屬)·스승이었었거나, 혹은 친구들이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지금 이처럼 오랜 세월 동안 나고 죽음에 윤전하는 것은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욕에 목이 얽매였기 때문에, 오랜 세월 동안을 윤전했으면서도 아직 괴로움의 본제를 알
  
6)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9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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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부지런히 노력하고 방편을 써서, 모든 존재를 끊어 더욱 많아지게 하지 말도록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46. 항하경(恒河經)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께 찾아와서 공경을 다하여 문안인사를 드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미래 세상에는 마땅히 몇 분의 부처님이 계십니까?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미래에도 부처님은 항하강 모래알처럼 많을 것이다.
  그 때 바라문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미래 세상에도 한량없는 항하강의 모래알처럼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삼먁삼불타(三藐三佛陀 : 正偏知)가 계실 것이라고 하니, 나는 그 부처님을 따라 모든 범행을 닦으리라.'
  그 때 바라문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그 때 바라문이 길을 가다가 생각했다.
  '나는 사문 구담에게 미래 세상의 모든 부처님에 대해서만 묻고 과거 세상에 대해서는 물어보지 못했다.'
   그는 곧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세존께 다시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과거 세상에는 또 몇 분의 부처님이 계셨습니까?
  
7)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0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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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과거 세상에도 항하강 모래알처럼 한량없이 많은 부처님이 계셨느니라.
  그 때 바라문은 다시 이렇게 생각하였다.
  '과거에도 항하강 모래알처럼 한량없이 많은 부처님이 계셨는데, 나는 일찍 한 번도 친근히 하지 못했었다. 그렇다면 가령 미래 세상에도 항하강 모래알처럼 한량없이 많은 삼먁삼불타께서 계실 것이라 하더라도 가까이하고 좋아하지 못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지금부터 저 사문 구담의 곁에서 범행을 닦으리라.'
  그리고는 그는 곧 합장하고 부처님께 아뢰었다.
  원컨대 저도 바른 법과 계율 안에서 출가하여 범행을 닦고자 하오니 허락하여 주소서.
  부처님께서 바라문에게 말씀하셨다.
  네가 내 바른 법과 계율 안에서 출가하여 범행을 닦고 비구가 되는 것을 허락하노라.
  그 때 바라문은 즉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그리고 나서는 혼자 고요한 곳에서 선남자가 바른 믿음으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까닭을 생각하고……(내지)……아라한이 되었다.
  
  
947. 누골경(累骨經)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비부라산(毘富羅山)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한 겁 동안 나고 죽음에 윤전할 때, 만일 그 해골이 쌓여 썩지 않는다면 저 비부라산만 할 것이다.
  만일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로서 이것은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苦聖
  
8)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1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며,. 또 이역본으로는 실역(失譯) 『잡아함(雜阿含)』 제11번째 경이 있고, 또 안세고(安世高)가 한역한 『佛說七處三觀經』 제30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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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諦]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이 발생하는 거룩한 진리[苦集聖諦]라고 사실 그대로 알며, 이것은 괴로움이 사라지는 거룩한 진리[苦滅聖諦]라고 사실 그대로 알고, 이것은 괴로움이 사라지는 길의 거룩한 진리[苦滅道跡聖諦]라고 사실 그대로 알면, 그는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아, 세 가지 결박인, 몸이라고 집착하는 삿된 견해, 계율에 대한 삿된 견해, 그리고 의심, 이 세 가지를 끊고 수다원을 얻어 나쁜 갈래의 법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삼보리(三菩提)로 바로 향하며, 일곱 번 천상과 인간 세상을 왕래하면서 태어난 뒤에는 마침내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한 겁 동안에
  그 몸의 뼈를 쌓아 모았을 때
  항상 쌓아두어 썩지 않으면
  저 비부라산 만큼이나 높으리라.
  
  만일 저 거룩한 제자로서
  바른 지혜로 진리를 보아
  이것은 괴로움이고 괴로움의 인이며
  괴로움을 떠나야 열반을 얻는다고 안다.
  
  여덟 가지 거룩한 길을 닦으며
  저 반열반(般涅槃)으로 바로 향하여
  천상과 인간을 오고가면서
  일곱 번 되풀이하여 태어난 뒤에는
  일체의 결박을 완전히 끊고
  마침내 괴로움을 벗어나리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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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48. 성경(城經)9)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전하고 있으면서도 괴로움의 본제(本際)를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그 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어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오른쪽 무릎을 꿇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한 겁의 길이는 얼마나 됩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위해 설명해줄 수는 있지만, 아마 네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유를 들어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주겠다. 비구야, 비유하면 쇠로 된 성이 있는데 4방이 각각 1유순(由旬)이고, 높이도 또한 그렇다. 그 성 안에 겨자씨를 가득 채워놓고, 어떤 사람이 백 년에 그 겨자씨를 한 알씩 집어내어 그 겨자씨가 다하여도 1겁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비구야, 그 겁이란 이와 같이 길고 긴 세월이다. 이처럼 기나긴 겁이 백 천 만 억 겁이 되도록 큰 괴로움이 계속 이어져서, 해골이 산을 이루고 고름과 피는 바다를 이루는 지옥·축생·아귀의 나쁜 세계가 있으니, 이것을 비구야,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이와 같이 배워서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 늘어나지 않게 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
  
9)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2번째 소경과 또 『증일아함경(增一阿含經)』제50권 제52 대애도반열반품(大愛道般涅槃品) 3번째 소경의 내용과도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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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49. 산경(山經)1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그 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한 겁의 길이는 얼마나 깁니까?
  부처님께서 비구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를 위해 설명해줄 수는 있지만 네가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유로써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설명할 수 있다. 비구야, 깨어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는 4방이 각각 1유순(由旬)이나 되는 큰 돌산이 있다. 어떤 사람이 가시(迦尸)국에서 생산되는 겁패(劫貝 : 무명)로 백 년에 한 번씩 그 산을 스쳐 끊이지 않았을 때, 저 돌산이 마침내 다 닳는다 해도 1겁은 아직 끝나지 않는다. 비구야, 그 겁이란 이와 같이 길고 긴 세월이다. 이처럼 기나긴 겁이 백 천 만 억 겁이 되도록 큰 괴로움 받고……(내지)…… 모든 비구들아, 마땅히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 늘어나지 않게 그렇게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10)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3번째 소경의 내용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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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50. 과거경(過去經)1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느니라.
  그 때 어떤 비구가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여미고, 부처님께 예를 올린 뒤에 오른 무릎을 땅에 꿇고 합장하고 여쭈었다.
  비구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유로써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그렇게 해주겠다. 비구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의 수명이 백 살인데, 아침에 3백 천 겁을 생각하고, 낮에 3백 천 겁을 생각하며 저녁에 3백 천 겁을 생각한다. 이와 같이 날마다 겁수(劫數)를 생각하여 백 살을 살고 목숨을 마친다 해도 그 겁수의 끝을 생각할 수가 없다. 비구야, 마땅히 알아야 하리라. 이와 같이 과거의 겁수는 한량이 없느니라. 과거 한량없는 겁수의 오랜 세월 동안 괴로움을 받으면서, 뼈가 쌓여 산을 이루고 피가 흘러 강이 되며,……(내지)……지옥·축생·아귀의 나쁜 세계를 전전하였다. 비구야, 이와 같이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마땅히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 늘어나지 않게 그렇게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51. 무유일처경(無有一處經)12)
  
11)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4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2)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5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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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 곳에서도 나지 않거나 죽지 않은 곳이 없다. 이와 같이 오랜 세월 동안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마땅히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 늘어나지 않게 그렇게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52. 무불일처경(無不一處經)1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어느 한 곳에서도 일찍 부모·형제·처자·권속·종친, 그리고 스승이 아니었던 사람은 하나도 없다. 이와 같이 비구들이여, 오랜 세월 동안 시작이이 없는 나고 죽음에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한다.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마땅히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 늘어나지 않게 그렇게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53. 대우제포경(大雨泡經)14)
  
13)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6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4)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7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1355 / 2145] 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비유하면 큰 비가 쏟아질 때 물방울이 금방 생겼다가 금시 사라지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중생들은 무명(無明)에 덮이고 애욕에 목이 얽매여,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났다 죽었다 하며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마땅히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 늘어나지 않게 그렇게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54. 대우홍주경(大雨洪澍經)1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비유하면 넓은 하늘에서 장마 비가 쏟아질 때에는 동·서·남·북 어디에도 끊어지는 곳이 없는 것처럼, 동·서·남·북의 한량없이 많은 나라에 겁(劫)이 이루어지고, 무너지는 것도 마치 하늘에서 장마 비가 쏟아져 어디에도 끊어지는 곳이 없는 것과 같다. 이와 같아서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느니라.
  또 비유하면 막대기를 공중에 던지면 혹은 머리부터 땅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꼬리부터 땅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평행을 이루며 땅에 떨어지기
  
15)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18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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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하는 것처럼,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다 보면, 혹은 지옥에 떨어지기도 하고, 혹은 축생 세계에 떨어지기도 하며, 혹은 아귀의 세계에 떨어지기도 한다. 이와 같이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한다.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마땅히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 늘어나지 않게 그렇게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55. 오절륜경(五節輪經)16)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사위국 기수급고독원에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중생들은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비유하면 비구야, 어떤 장정이 다섯 마디로 된 바퀴를 항상 굴려 쉬지 않는 것처럼, 중생들도 다섯 갈래 바퀴를 굴려, 지옥·축생·아귀·사람·하늘 갈래에 윤회하면서 항상 굴러 쉬지 않는다. 이와 같이 시작이 없는 나고 죽음에 오랜 세월 동안 윤회하면서도 괴로움의 본제를 알지 못하고 있다. 그런 까닭에 비구들아, 마땅히 모든 존재를 끊어 없애서 더 늘어나지 않게 그렇게 공부해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56. 비부라경(毘富羅經)1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16)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20번째 소경의 내용과 또 『잡아함경(雜阿含經)』제16권 431번째 소경인 장경(杖經)의 내용과 비슷하다.
17)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6권 21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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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비부라산 곁에 머물고 계셨다.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일체 현상[行]은 무상(無常)한 것이고 일체 현상은 한결같지 않은 것이며, 편안하지 않은 것이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다. 비구들아, 일체 현상에 대하여 싫어하고 여의려는 마음을 내어야 하며, 해탈을 좋아해야 하느니라.
  비구들아, 과거 세상에서는 이 비부라산의 이름을 장죽산(長竹山)이라고 하였다. 이 산 언저리에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고을 이름을 저미라(低彌羅)읍이라고 하였다. 이 저미라읍에 살고 있던 사람들의 수명은 4만 살이었다. 그들은 이 산 꼭대기까지 나흘이면 오갈 수 있었다. 그 시대의 부처님 명호(名號)는 가라가손제(迦羅迦孫提) 여래·응공·등정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고 하였다. 그 분이 세상에 나와 설법하여 교화하시면,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다 좋고, 뜻도 좋으며 맛도 좋으며, 순수하고 한결같으며 원만하고 범행이 깨끗하며 잘 드러내고 나타내 보이셨다. 그러나 그 장죽산(長竹山)이라는 이름도 지금은 사라졌고, 저미라읍 사람들도 다 죽었으며, 그 부처님도 이미 반열반하셨다. 그러므로 비구들아, 일체의 현상은 다 덧없고 한결같지 못한 것이며, 편안하지 않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그것을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닦고, 욕심을 여의고 해탈해야 하느니라.
  비구들아, 과거 세상에서는 이 비부라산의 이름을 붕가(朋迦)라고 하였다. 그 때 그 산 주위에 빙 둘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고을의 이름은 아비가읍(阿毘迦邑)이라고 하였으며, 그 시대 사람들의 수명은 3만 살이었다. 아비가읍에 살던 사람들은 이 산 꼭대기까지 사흘이면 오갈 수 있었다. 그 때 세간에 출현하신 부처님의 이름은 구나함모니(拘那含牟尼) 여래·응공·등정각·명행족·선서·세간해·무상사·조어장부·천인사·불세존이라고 하였다. 그 부처님이 세간에 나와 연설하신 경법의 내용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다 좋았으며, 뜻도 좋고 맛도 좋았다. 순수하고 한결같으며 원만하고 범행이 깨끗하며 잘 드러내고 나타내 보이셨다. 그러나 모든 비구들아, 저 붕가산이라는 이름도 지금은 사라진 지 이미 오래되었고, 아비가읍 사람들도 다 죽은 지 오래되었으며, 그 부처님도 이미 반열반하신 지 오래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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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아서 비구들아, 일체 모든 현상은 다 무상한 것이고 한결같지 못한 것이며, 편안하지 않은 것이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그것을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닦으며, 즐기지 않고 해탈해야 하느니라.
  비구들아, 과거 세상에서는 이 비부라산을 숙파라수(宿波羅首)라고 하였다. 그 산 주위에 빙 둘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그 때 그 고을의 이름을 적마읍(赤馬邑)이라고 하였으며, 그 시대 사람들의 수명은 2만 살이었다. 적마읍에 살던 사람들은 이 산 꼭대기까지 이틀이면 오갈 수 있었다. 그 때 세간에 출현하신 부처님의 이름은 가섭(迦葉) 여래·응공……(내지)……세간에 나와 연설하신 경법은 처음도 중간도 마지막도 다 좋았으며, 뜻도 좋고 맛도 좋았다. 순수하고 한결같으며 원만하고 범행이 깨끗하였으며, 잘 드러내고 나타내 보이셨다. 그러나 모든 비구들아, 저 수파라수산이라는 이름도 지금은 사라진 지 오래되었고, 적마읍 사람들도 다 죽은 지 오래되었으며, 그 불세존께서도 이미 반열반하신 지 오래되었다.
  이와 같아서 비구들아, 일체 모든 현상은 다 무상한 것이고 한결같지 못한 것이며, 편안하지 않은 것이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그것을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닦으며, 즐기지 않고 해탈해야 하느니라.
  비구들아, 오늘날은 이 산 이름을 비부라산이라고 한다. 이 산 주위에 빙 둘러 사람들이 살고 있었는데, 이 나라의 이름은 마갈제(摩竭提)라고 한다. 이 때 모든 사람들의 수명은 1백 살인데, 그것도 잘 소화시켜야 백 살을 채운다. 이 마갈제에 사는 사람들은 이 산 꼭대기까지 잠깐이면 오갈 수 있다. 나는 지금 여기에서 여래·응공·등정각……(내지)……불세존이 되었다. 바른 법을 연설하고 교화하여 저들로 하여금 적멸한 열반과 정도(正道)·선서(善逝)·각지(覺知)를 얻게 한다. 비구들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이 비부라산 이름도 장차 사라질 것이요, 마갈제 사람들도 장차 죽을 것이며, 여래도 오래지 않아 당연히 반열반할 것이다.
  이와 같아서 비구들아, 일체 모든 현상은 다 무상한 것이고 한결같지 못한 것이며, 편안하지 않은 것이고 변하고 바뀌는 법이니, 너희 비구들은 마땅히 그것을 싫어하여 여의려는 마음을 닦으며, 즐기지 않고 해탈해야 하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곧 게송을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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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날에는 장죽산이었고
  고을 이름은 저미라라고 하였지.
  그 다음에는 붕가산이었고
  마을 이름은 아비가라고 했다네.
  
  그 다음에는 수파라산이었고
  마을 이름은 적마라고 했었네.
  오늘날에는 비부라산이라 하고
  나라 이름은 마갈타라고 한다.
  
  그런 이름의 산들의 다 사라졌고
  그 사람들도 다 죽었으며
  모든 부처님도 반열반하였으니
  존재하던 것은 다 없어지고 말았네.
  
  일체 현상은 무상한 것으로서
  그것은 모두 생멸하는 법이거니
  한 번 생긴 것은 다 없어지는 것
  오직 적멸만이 즐거운 것이라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57. 신명경(身命經)1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迦蘭陀竹園)에 계셨다.
  
18)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1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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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婆蹉) 종족이 부처님을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드렸다. 문안을 마치고 나서 한쪽에 물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여쭈어 볼 말씀이 있사온데 혹 한가하시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어라. 너를 위해 설명해주리라.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목숨[命]이 곧 몸[身]입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목숨이 곧 몸이라고 하는 것은 정확한 해답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목숨도 다른 것이고 몸도 다른 것입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목숨도 다르고 몸이 다르다고 하는 것도 정확한 해답이라고 할 수 없느니라.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목숨이 곧 몸입니까?'라고 여쭈어도 '정확한 해답이라고 할 수 없다'고 대답하시고 '목숨은 몸과 다릅니까?'라고 여쭈어도 '정확한 해답이라고 할 수 없다'고 대답하셨습니다. 사문 구담께서는 어떤 법이 있기에 제자가 목숨을 마치면, 곧 예언하여 말씀하시기를 '아무개는 어느 곳에 태어났고 아무개는 어느 곳에 태어났다. 그 제자들은 여기서 목숨을 마치고 몸을 버리면, 곧 의식[意生身]19)을 타고 다른 곳에 태어난다'고 하십니까? 그 때를 당해서는 목숨도 다르고 몸도 다른 것이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남은 것이 있음을 말한 것이고, 남은 것이 없음을 말한 것이 아니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어찌하여 남은 것이 있음을 말씀하시고 남은 것이 없음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까?
  
19) 이루어지는 의식[識], 즉 식신(識神)을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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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바차에게 말씀하셨다.
  비유하면 불이 남은 물질이 있으면 타고, 남은 물질이 없으면 타지 않는 것과 같느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불이 남은 물질이 없는데도 타는 것을 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물었다.
  어떤 것을 보고 불이 남은 물질이 없는데도 탄다고 하느냐?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유하여 말씀드리면 큰 불 더미에 세찬 바람이 불면 불이 공중에 날려갑니다. 그런 것이 어찌 남은 물질이 없는데도 불이 타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바람이 불어 불을 날리는 것도 남은 물질이 있는 것이다. 남은 물질이 없다고 할 수 없느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공중에 날리는 불을 어떻게 남은 물질이 있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공중에 날리는 불은 바람을 의지하기 때문에 머물고 바람을 의지하기 때문에 타는 것이다. 바람을 의지하기 때문에 남은 물질이 있다고 말한 것이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중생이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고 의식을 타고 다른 곳에 가서 태어나는데 어떤 남은 것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중생이 여기에서 목숨을 마치고 의식을 타고 다른 곳에 가서 태어날 그 때를 당해서는 애욕으로 말미암아 집착하고, 또 애욕으로 인해 머무르기 때문에 남은 것이 있다고 말하느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중생은 애락(愛樂)으로써 남은 것이 있고, 염착(染着)으로써 남은 것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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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있습니다. 그러나 오직 세존께서는 남은 것이 없기 때문에 등정각(等正覺)을 이루셨습니다. 사문 구담이시여, 세간에 일[緣]이 많아 하직인사를 하고 돌아가려고 합니다.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마땅히 그 때를 알아야 합니다..
  바차 종족은 부처님께서 설하신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958. 목련경(目連經)2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대목건련(大目揵連)도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존자 대목건련을 찾아가서 서로 문안인사를 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존자 대목건련에게 말하였다.
  묻고싶은 일이 있는데 혹 한가하시면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목련이 대답하였다.
  마음대로 물어라. 아는 것이라면 당연히 대답해주리라.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이 존자 목건련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이 있기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혹 누가 와서 '어떻습니까? 여래는 후사(後死 : 後生)가 있는가, 후사가 없는가. 혹은 후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가?' 하고 물으면 다 대답해주는데, 사문 구담은 혹 누가 와서 '여래는 후사(後死 : 後生)가 있는가, 후사가 없는가. 혹은 후사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가?' 하고 물어도 확실하게 대답해주시지 않으시니 그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목건련이 대답하였다.
  바차여,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은 색(色)·색의 발생[色集]·색의 사라
  
20)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2번째 소경의 내용과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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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짐[色滅]·색의 맛[色味]·색의 근심[色患]·색을 벗어남[色出]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한다.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에게 후생이 있다'고 말하면 곧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여래에게는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하면 곧 거기에 집착하게 된다. 또 수(受)·상(想)·행(行)도 이와 마찬가지이며, 식(識)·식의 발생·식의 사라짐·식의 맛·식의 근심·식을 벗어남에 대해서도 사실 그대로를 알지 못한다. 사실 그대로 알지 못하기 때문에 '여래에게 후생이 있다'고 말하면 곧 거기에 집착하게 되고, '여래에게는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하면 곧 거기에 집착하게 된다.
  그러나 세존은 색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알고, 색의 발생·색의 사라짐·색의 맛·색의 근심·색을 벗어남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신다. 사실 그대로 아시고 계시기 때문에 '여래는 후생이 있다'고 말해도 집착하시지 않고, '여래는 후생이 없다,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해도 집착하시지 않으신다. 또 수·상·행도 이와 같으며, 식에 대해서도 사실 그대로 알고, 식의 발생[識集]·식의 사라짐[識滅]·식의 맛[識味]·식의 근심[識患]·식을 벗어남[識出]에 대하여 사실 그대로 아신다. 사실 그대로 아시기 때문에 '여래는 후생이 있다'고 말하여도 그런 게 아니고, '여래는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해도 그런 게 아니다. 그것은 매우 깊고 넓고 크며, 한량없고 헤아릴 수 없어 모두 다 적멸(寂滅)한 것일 뿐이다.
  바차 종족이여, 이런 인(因)과 이런 연(緣)이 있기 때문에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이 만약 와서 물으면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한다. 그러나 여래께서는 혹 누가 와서 물으면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신다.
  그 때 바차 종족은 존자 대목건련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1364 / 2145] 쪽
  
959. 기재경(奇哉經)2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인사를 드렸다. 문안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무슨 인(因)과 무슨 연(緣)으로, 다른 사문이나 바라문들에게는 만일 누가 와서 물으면,…………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은 위의 경에서 설한 것과 같다.)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이 찬탄하면서 말했다.
  기이합니다. 구담이시여, 제자와 스승이 이치도 같은 이치요 문구도 같은 문구이며, 뜻도 같은 뜻이고……(내지)……제일의(第一義)도 같습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조금 전에 마하 목건련을 찾아가 이러한 이치·이러한 문구·이러한 뜻으로 그에게 물었사온데, 그도 또한 이러한 이치·이러한 문구·이러한 뜻으로 저에게 대답해주었습니다. 그것이 꼭 지금 구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구담이시여, 스승과 제자는 이치도 같은 이치요 문구도 같은 문구이며, 뜻도 같은 뜻이요 제일의도 같기에 그래서 이상하다고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이 볼 일이 있어서 나리(那梨)라는 마을로 갔다. 거기서 볼 일을 끝마치고 존자 선다가전연(詵陀迦旃延)을 찾아가서 서로 문안인사를 하였다. 문안인사를 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선타가전연에게 물었다.
  무슨 인연으로 사문 구담께서는 혹 누가 와서 묻더라도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확실하게 대답해주시지 않으십니까?
  선타가전연이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했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물으리니 너는 마음대로 대답하라. 네 생각에는 어떠하
  
21)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세 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365 / 2145] 쪽
  냐? 만일 어떤 인연으로 갖가지로 지어진 모든 현상인, 색계(色界)와 무색계(無色界), 생각이 있는 세계[想]와 생각이 없는 세계[非想], 생각이 없기도 하고 없지 않기도 한 세계[非想非非想]에 대해서, 저러한 인연으로 된 행(行)이 남김 없이 아주 사라지고 영원히 사라지고 말더라도 여래께서는 그것에 대해서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씀하실 수 있겠는가?
  출가한 바차 종족이 선타가전연에게 말했다.
  혹, 어떤 인연으로 갖가지로 지어진 모든 행인, 색계와 무색계, 생각이 있는 세계와 생각이 없는 세계, 생각이 없기도 하고 없지 않기도 한 세계에 대해서, 그 인연으로 된 행이 남김없이 사라진다면, 어떻게 구담께서 거기에 대해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다'고 말씀하시겠습니까?
  선타가전연이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했다.
  그런 까닭에 여래께서는 혹 누가 와서 '여래는 후생이 있습니까, 후생이 없습니까,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후생이 없지도 않고 있지도 않습니까?' 하고 묻더라도 확실하게 대답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출가한 바차 종족이 선타가전연에게 물었다.
  그대는 사문 구담의 제자가 된 지 오래이십니까?
  선타가전연이 대답하였다.
  출가하여 이 바른 법과 율(律) 안에서 범행(梵行)을 닦은 지 3년이 조금 지났습니다.
  출가한 바차 종족이 말했다.
  선타가전연께서는 시원하게 좋은 이익을 얻었습니다. 젊어서 출가하여 그러한 몸의 율의[身律儀]와 입의 율의[口律儀]를 이룩하였고, 또 그러한 지혜와 말솜씨[辯才]까지 얻었습니다.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은 선타가전연의 말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1366 / 2145] 쪽
  
960. 기특경(奇特經)22)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인사를 드렸다. 문안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여쭐 말씀이 있는데 혹 한가하시면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물어보아라. 너를 위해 설명해주리라.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무슨 까닭에 혹 누가 와서 '여래는 후생이 있습니까, 후생이 없습니까,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후생이 없지도 않고 있지도 않습니까?' 하고 질문을 해도 무슨 이유로 확실하게 대답해주시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이 사이의 자세한 내용들은 앞의 선타가전연경에서 말씀하신 것과 같다.)……후생이 있지도 않고 없지도 않은 것이라고 말하지 않느니라.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기이한 일입니다. 구담이시여, 스승과 제자는 뜻과 뜻이 같고 문구와 문구가 같으며, 맛과 맛이 같고 그 이치가 다 같습니다. 이른바 제일구(第一句)의 말씀이십니다. 구담이시여, 저는 조그마한 일이 있어서 나리가(那利迦)라는 마을로 가서 일을 마치고 나서 잠깐 사문 가전연에게 들려 이러한 뜻·이러한 문구·이러한 맛으로 사문 가전연에게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그 역시 이러한 뜻·이러한 문구·이러한 맛으로 저에게 대답하였습니다. 그 때 그 대답이 지금 사문 구담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았습니다. 그런 까닭에 스승과 제자 사이에 뜻과 문구와 맛과 이치가 똑 같은 것이 참으로 이상한 일임을 알았습니다.
  
22)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5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367 / 2145] 쪽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961. 유아경(有我經)23)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인사를 드렸다. 문안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세존이시여,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러자 세존께서는 잠자코 아무 대답이 없으셨다. 이렇게 두 번 세 번 물었으나 세존께서는 여전히 두 번 세 번 다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내가 이미 세 번이나 사문 구담에게 여쭈어 보았으나 대답을 듣지 못했다. 나는 그만 돌아가야겠다.'
  그 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의 뒤에서 부채로 부처님을 부쳐드리고 있었다.
  아난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 출가한 바차 종족이 세 번씩이나 질문했는데도 세존께서는 왜 대답하지 않으셨습니까? 그것은 저 출가한 바차 종족으로 하여금 '사문은 내가 묻는 것에 대답하지 못한다'고 하는 잘못된 생각을 더하게 하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만일 나라고 하는 것이 있다고 대답한다면 그가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삿된 견해를 더 늘어나게 할 것이요, 만일 내가 나라고 하는 것은 없다고 대답한다면, 이전부터 가지고 있던 의혹이 어찌 더 늘어나지 않겠느냐? 그렇다면 그에게 본래는 나라고 하는 것이 있었는데 지금 끊어 없앴다고 말해야 하겠느냐? 만일 본래부터 나라고 하는 것이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상견
  
23)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여섯 번째 소경과 같은 내용이다.
[1368 / 2145] 쪽
  (常見)이요, 지금 끊어 없앴다고 한다면 그것은 곧 단견(斷見)이다. 여래는 그 두 극단을 여의고 중도에 서서 다음과 같이 설법한다.
  '이 일이 있기 때문에 이 일이 있고, 이 일이 일어나기 때문에 이 일이 생기는 것이다. 즉 무명(無明)을 연(緣)하여 행(行)이 있고,……(내지)……태어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괴로움의 번민이 멸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아난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62. 견경(見經)2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인사를 드렸다. 문안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구담께서는 이와 같이 보셨으며, 이와 같이 말씀하셨습니까? 즉 '세간은 영원하다. 이것이 곧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고 말입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와 같이 보고 그와 같이 말하지 않았다. 즉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이 곧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고 말이니라.
  구담이시여, 어째서 구담께서는 그와 같이 보셨으며, 그와 같이 말씀하셨습니까? 즉 '세간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며 영원한 것도 아니요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끝이 있다, 끝이 없다,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요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후생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입니다.
  
24)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일곱 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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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그와 같이 보고 그와 같이 말하지 않았다.……(내지)……'후생이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말이니라.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께서는 이런 견해에 대해서 어떤 잘못을 보셨기에 이러한 여러 견해에 대하여 전혀 말씀하시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이러한 견해, 즉 '세상은 영원하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다 허망한 것이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뒤바뀐 견해이고, 이것은 곧 관찰한다는 견해이며, 이것은 곧 흔들리는 견해이고, 이것은 곧 더러운 견해이며, 이것은 곧 결박하는 견해이다. 이것은 괴로움이고, 이것은 걸리는 것이며, 이것은 번뇌이고, 이것은 열(熱)로서 견해가 얽매이는 것이다. 그래서 어리석고 들은 게 없는 무식한 범부는 미래 세상에서 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괴로움의 번민이 생기느니라.
  바차 종족아, 만약 '세간은 영원하지 않다,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영원한 것도 아니요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끝이 있다, 끝이 없다,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한다면, 그것은 뒤바뀐 견해이며,……(내지)…… 근심·슬픔·괴로움의 번민이 생기느니라.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께서는 어떻게 보시나이까?
  부처님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여래는 이미 다 보았다. 출가한 바차 종족아, 여래의 견해는 이른바 '이것은 괴로움의 거룩한 진리다, 이것은 괴로움의 발생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 이것은 괴로움이 사라짐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 이것은 괴로움이 사라지는 길에 대한 거룩한 진리이다'라고 본 것이다. 이와 같이 알고 이와 같이 보았기 때문에, 일체의 견해·일체의 감정·일체의 출생·일체의 나·내 것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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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는 견해·잘난 체하는 거만 등으로 인해 얽매이고 집착하는 번뇌를 끊고, 그것들을 고요하고 시원하고 진실하게 한다. 이와 같이 해탈한 비구에게는 태어난다고 해도 옳지 않고, 태어나지 않는다고 해도 옳지 않다.
  바차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어째서 태어난다고 해도 옳지 않다고 말씀하십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에게 물으리니 네 생각나는 대로 대답하라. 바차야, 비유하면 어떤 사람이 네 앞에서 불을 사르는 것과 같다. 너는 그 때 그 불이 타는 것을 보겠느냐? 또 네 앞에서 불이 꺼지면 너는 불이 꺼지는 것을 보겠느냐?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말하였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어떤 사람이 너에게 묻기를 '아까는 불이 탔었는데 지금은 그 불이 어디에 있는가? 동쪽으로 갔는가, 아니면 서쪽·남쪽·북쪽으로 갔는가?'라고 한다면, 너는 어떻게 대답하겠느냐?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만일 누가 저에게 와서 그렇게 묻는다면 저는 '내 앞에서 불이 탄 것은 섶이 있었기 때문이다. 만일 섶을 계속해서 대주지 않으면 불은 곧 아주 꺼져버리고 다시는 타지 않을 것이다. 동쪽이나 서쪽·남쪽·북쪽으로 갔다는 것은 옳지 않다'라고 대답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나도 또한 그와 같이 말했다. 즉 '색(色)이 이미 끊어진 줄을 벌써 알았고, 수(受)·상(想)·행(行)·식(識)도 이미 끊어진 줄을 벌써부터 알고 있다. 그래서 그 근본을 끊는 것이 마치 다라나무 밑동을 끊은 것과 같아서 다시는 움이 틀 거리가 없으니, 앞으로는 영원히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그런데 만일 동쪽·서쪽·남쪽·북쪽으로 갔다고 하면 그것은 옳지 않다. 그것은 매우 깊고 넓고 크며, 한량없고 헤아릴 수도 없어 영원히 사라진 것이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제가 지금 비유로 말씀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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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지금이 적절한 때인 줄 알아야 할 것이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비유하면 여기에서 가까운 성읍(城邑)의 어느 마을에 좋고 깨끗한 땅이 있고 거기에 견고림(堅固林)이 있습니다. 거기에 커다란 견고나무가 한 그루가 나서 수천 년의 오랜 세월 동안 지내오면서 가지와 잎은 말라 떨어졌고 껍질은 썩었지만, 오직 줄기만은 홀로 서 있는 것과 같이 구담이시여, 여래의 법과 율은 모든 가지와 잎은 떠나고 오직 빈 줄기만 굳건히 혼자 서 있나이다.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963. 무지경(無知經)25)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 인사를 드렸다. 문안 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저들이 얼마나 알지 못하면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말하겠습니까? 즉 '세간은 항상한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요 이와 다른 말은 허망한 것이다. 세간은 항상한 것이 아니다, 세간은 항상한 것이기도 하고 항상하지 않은 것이기도 하다, 세간은 항상한 것도 아니요 항상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세상은 끝이 있다, 세상은 끝이 없다, 세상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세상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은 몸과 다르다,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그렇게
  
25)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8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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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색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세상은 항상한 것이다. 이 말은 진실이요, 이와 다른 말은 허망한 것이다.……(내지)……후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그와 같이 보고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이다. 수·상·행·식에 대해서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세간은 항상한 것이다. 이 말은 진실이요, 이와 다른 말은 허망한 것이다.……(내지)……후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그와 같이 보고 그와 같이 말하는 것이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께서는 어떤 법을 아시고 계시기에 '세간은 항상한 것이다. 이 말은 진실이요, 이와 다른 말은 허망한 것이다.……(내지)……후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그와 같이 보거나 그와 같이 말씀하시지 않으십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색에 대하여 알기 때문에 '세상은 항상한 것이다. 이 말은 진실이요, 이와 다른 말은 허망한 것이다.……(내지)……후생은 있는 것도 아니요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보거나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수·상·행·식을 알고 있기 때문에 '세간은 항상한 것이다. 이이 말은 진실이요, 이와 다른 말은 허망한 것이다.……(내지)……후생은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라고 이와 같이 보거나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 이와 같은 것은 남이 알지 못한 것을 아는 것이요, 남들이 보지 못한 것을 본 것이며, 분별하지 못한 것을 분별한 것이요, 끊지 못한 것을 끊은 것이며, 관찰하지 못한 것을 관찰한 것이요, 살피지 못한 것을 살핀 것이며, 깨닫지 못한 것을 깨달은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출가한 바차 종족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떠나갔다.
  
  
964. 출가경(出家經)26)
  
26)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0권 9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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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어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찾아와 합장하고 문안 인사를 드렸다. 문안 인사를 다 드리고 나서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시여, 여쭈어 볼 말씀이 있사온데 혹 한가하시면 설명하여 주시겠습니까?
  그 때 세존께서 잠자코 계셨다. 출가한 바차 종족은 두 번 세 번 되풀이하여 물었으나 세존께서는 여전히 잠자코 계셨다.
  그 때 출가한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저는 구담을 따르나이다. 지금 어떤 일에 대하여 질문을 하였사온데 어찌하여 잠자코 계시나이까?
  그 때 세존께서 이렇게 생각하셨다.
  '이 출가한 바차 종족은 오랜 세월 동안 질박하고 정직하여 아첨하지도 않고 남을 속이지도 않는다. 그런데 지금 묻는 것은 모르기 때문이지 일부러 성가시게 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이제 아비담(阿毗曇)과 율(律)로써 그를 받아들이리라.'
  이렇게 생각하시고 나서 출가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대로 물어라. 너를 위해 설명해주리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떠합니까? 구담이시여, 선(善)한 법과 선하지 않은 법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대답하셨다.
  있느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지금 저를 위해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을 설명하시어 제가 이해할 수 있게 해주소서.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지금 너를 위해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에 대해 간단히 설명할 터이니, 자세히 듣고 잘 생각해 보아라. 바차야, 탐욕이란 착하지 않은 법이다. 탐욕을 항복 받으면, 그것은 곧 착한 법이다. 성냄과 어리석음은 곧 착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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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않은 법이다. 성냄과 어리석음을 항복 받으면 그것은 곧 착한 법이다. 살생은 착하지 않은 법이다. 살생을 여의면 그것은 곧 착한 법이다. 도둑질·음행·거짓말·이간시키는 말·나쁜 말·꾸밈말·탐욕·성냄·삿된 견해는 다 착하지 않은 법이다. 도둑질하지 않고……(내지)……바르게 보면 그것은 곧 착한 법이다. 이것이 내가 바차를 위해 세 가지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에 대해 말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이 거룩한 제자로서 이 세 가지 착한 법과 착하지 않은 법을 사실 그대로 알고, 또 열 가지 착하지 않은 법과 착한 법을 사실 그대로 알면, 곧 탐욕을 모조리 없앨 수 있을 것이요, 성냄과 어리석음을 모조리 없앨 수 있을 것이다. 그리하여 일체의 번뇌[有漏]를 다 없애고, 번뇌가 없어지면 심해탈(心解脫)하고, 혜해탈(慧解脫)하여 현재 세상에서 제 자신이 증득한 줄을 안다. 그래서 나의 생은 이미 다하였고, 범행은 이미 섰으며, 할 일을 이미 다 마쳤으므로 후생에는 몸을 받지 않으리라는 것을 스스로 아느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혹 어떤 비구가 이 법과 율(律) 안에서 번뇌를 없애어 번뇌가 다 끊어져서 심해탈하고……(내지)…… 후생에는 몸을 받지 않을 그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하나 혹은 둘, 셋 내지 5백뿐만이 아니다. 많은 비구들이 이 법과 율 안에서 모든 번뇌를 없애고……(내지)…… 후생에는 몸을 받지 않으리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는 그만두고, 혹 어떤 비구니가 이 법과 율에서 모든 번뇌를 없애고……(내지)…… 후생에는 몸을 받지 않을 그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하나 혹은 둘, 셋 내지 5백뿐만이 아니다. 많은 비구니들이 이 법과 율 안에서 모든 번뇌를 없애고……(내지)…… 후생에는 몸을 받지 않으리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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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구는 놓아두고, 혹 어떤 우바새로서 이 법과 율에서 모든 번뇌를 없애고……(내지)…… 후생에는 몸을 받지 않을 그런 사람이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하나 혹은 둘, 셋 내지 5백 우바새뿐만이 아니다. 많은 우바새가 모든 범행을 닦고, 이 법과 율 안에서 욕계의 다섯 가지 결박[五下分結]을 끊고 아나함(阿那含)을 얻어 다시는 이 세상에 도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또 우바새는 놓아두고, 혹 어떤 우바이가 이 법과 율 안에서 범행을 닦고 이 법과 율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이가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하나 혹은 둘, 셋 내지 5백 우바새뿐만이 아니다. 많은 우바새가 모든 범행을 닦고, 이 법과 율 안에서 욕심세계의 다섯 가지 결박을 끊고, 저기서 바꿔 나서 아나함을 얻어 다시는 이 세상에 도로 태어나지 않을 것이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범행을 닦는 이들은 놓아두고, 혹 어떤 우바새가 다섯 가지 욕락(欲樂)을 누리면서도 이 법과 율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이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하나 혹은 둘, 셋 내지 5백 뿐만이 아니다. 많은 우바새들이 속가에 거처하면서 처자를 거느리고 향과 꽃으로 장식하며 종들을 두고 부려가면서도, 이 법과 율 안에서 세 가지 결박[三結]을 끊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斯陀含)을 얻어 천상과 인간 세계를 한 번씩 오간 뒤에는 마침내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이가 있다.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또 우바새는 그만두고, 혹 어떤 우바이가 다섯 가지 욕락을 누리면서도, 이 법과 율에 대해서 의심하지 않는 이가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다만 하나나 둘 셋, 내지 5백뿐만이 아니다. 많은 우바이가 속가에 거처하면서 아들과 딸을 기르고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고 향과 꽃으로 장식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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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도, 이 법과 율 안에서 세 가지 결박을 끊고 수다원(須陀洹)을 얻어, 나쁜 세계에 떨어지지 않고 결정코 삼보리(三菩提)로 바로 향해 한 번 천상과 인간 세상에 태어난 뒤에는 마침내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느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이시여, 가령 사문 구담께서 등정각(等正覺)을 이룩하셨다 하더라도, 만일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범행(梵行)을 닦는 이나, 또 우바새와 우바이로서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는 이가 이와 같은 공덕을 얻지 못하면 만족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러나 사문 구담께서 등정각을 이룩하심으로써,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범행을 닦는 이나, 또는 우바새와 우바이로서 다섯 가지 향락을 누리면서도 그와 같은 공덕을 성취하기 때문에 곧 만족하시는 것이옵니다. 구담이시여, 제가 이제 비유를 들어 말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마음대로 말하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하늘에서 많은 비가 내리면 물이 밑으로 흘러내려 가는 것처럼, 구담의 법과 율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비구·비구니·우바새·우바이로서 남자나 여자는 모두 흐름을 따라 열반으로 향하고 열반으로 실려 내려갑니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부처님과 법과 승가의 평등한 법과 율입니다. 출가한 다른 외도들이 구담의 처소를 찾아가 그 법과 율 안에서 비구가 되어 구족계를 받으려고 한다면, 얼마동안의 시간이 지나야 허락을 얻을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만일 출가한 다른 외도로서 이 바른 법과 율 안으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으려고 하면, 4개월 동안 화상(和尙)에게 의지하여 가르침을 받으면서 머물러야 한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에 따라 대충 제한을 정해 놓은 것일 뿐이니라.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만일 출가한 다른 외도가 이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으려고 하면, 화상에게 의지하여 가르침을 받으면서 머물러야 한다.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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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개월이 차서 출가하는 것을 허락하신다면, 저도 지금부터 4개월 동안 화상에게 의지하여 가르침을 받으면서 바른 법과 율 안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겠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마땅히 구담의 법 안에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범행을 닦아 지니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아까 사람에 따라 대충 제한을 정해 놓았다고 말하지 않았는가?
  바차 종족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그렇습니다. 구담이시여.
  그 때 세존께서 모든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들은 마땅히 저 바차를 제도하여 우리의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게 하라.
  바차는 곧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의 신분을 성취하게 되었다. 그래서 반 달 동안에 꼭 알아야 할 일, 꼭 분별해야 할 일, 꼭 보아야 할 일, 꼭 얻어야 할 일, 꼭 깨달아야 할 일, 꼭 증득해야 할 일들을 다 배우고 다 알며, 다 분별하고 다 보며, 다 얻고 다 깨달아서 여래의 바른 법을 다 증득하였다.
  존자 바차가 생각하였다.
  '나는 이제 꼭 알아야 할 일, 꼭 분별해야 할 일, 꼭 보아야 할 일, 꼭 얻어야 할 일, 꼭 깨달아야 할 일, 꼭 증득해야 할 일, 그 전부를 다 알고 다 분별하며, 다 보고 다 얻으며, 다 깨닫고 다 증득하였다. 나는 지금 가서 세존을 뵈오리라.'
  그 때 바차는 세존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꼭 알아야 할 일, 꼭 분별해야 할 일, 꼭 보아야 할 일, 꼭 얻어야 할 일, 꼭 깨달아야 할 일, 꼭 증득해야 할 일을 배워, 그것을 다 알고 다 분별하였으며, 다 보고 다 얻었으며, 다 깨달아 세존의 바른 법을 다 증득하였습니다. 원컨대 세존께서는 저를 위해 설법하여 주십시오. 저는 그 법문을 듣고 나서 혼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사색하고 방일하게 행동하지 않으며, 선남자가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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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를 생각하여……(내지)……스스로 후생에는 몸을 받지 않는 줄을 알도록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바차 종족에게 말씀하셨다.
  두 가지 법이 있다. 지(止)와 관(觀)을 닦아 익히고 많이 닦아 익혀야 한다. 이 두 가지 법을 닦아 익히고 더 많이 닦아 익히면, 계(界)의 결과[果]를 알고 계를 깨닫고, 갖가지 계를 알고 갖가지 계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비구는 악하고 착하지 않은 법을 구하여……(내지)……제4선(禪)을 원만하게 갖추어 머물러, 자애로움·불쌍히 여김·기뻐함·평정과 그리고 허공 경계[空入處]·의식 경계[識入處]·아무 것도 없는 경계[無所有入處]·생각도 아니고 생각 아닌 것도 아닌 경계[非想非非想入處]로써 세 가지 결박을 끊어 수다원을 얻고, 세 가지 결박이 다하고 탐욕·성냄·어리석음이 엷어져서 사다함을 얻으며, 욕계의 다섯 가지 결박[五下分結]을 끊어 아나함을 얻고, 갖가지 신통 경계인, 천안(天眼)·천이(天耳)·타심지(他心智)·숙명지(宿命智)·생사지(生死智)·누진지(漏盡智)를 모두 얻게 될 것이다. 그런 까닭에 비구야, 꼭 이 두 가지 법을 닦아야 한다. 닦아 익히고 더 많이 닦아 익이면, 이 두 가지 법을 닦았기 때문에 갖가지 경계를 알고……(내지)……번뇌를 다 끊게 되느니라.
  그 때 존자 바차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예를 올리고 떠나갔다. 그 때 바차가 혼자 고요한 곳에서 골똘히 사색하면서 방일하지 않고 머물러……(내지)……후생에는 몸을 받지 않는다는 것을 스스로 알았다.
  그 때 많은 비구들이 장엄한 방편으로 세존께 나아가 공경을 다하여 공양하려고 하였다. 그 때 바차가 모든 비구들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장엄한 방편으로 세존께 나아가 공경하여 공양을 올리려고 하는가?
  비구들이 대답하였다.
  그렇다.
  그 때 바차가 비구 대중에게 말했다.
  존자여, 내 말을 간직하고 가서 세존께 예를 올리고 '기거는 가벼우시고 병이 없으시며 편안하십니까?' 하고 문안인사를 드려 주시오.
[1379 / 2145] 쪽
  그리고 또 '바차 종족 비구는 세존께 아뢰나이다. (저는 이미 세존께 공양을 올렸습니다. 빠진 것 없이 갖추어 받들어 섬겨 기쁘게 해드렸으므로 매우 즐겁습니다. 스승님의 제자는 할 일을 다 마치고 스승님께 공양을 올려 스승님을 기쁘게 하고 나니 매우 즐겁습니다)'라는 말도 전해 주시오.
  그 때 많은 비구들은 부처님의 처소로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존자 바차는 머리를 조아려 세존의 발에 예를 올리고……(내지)……'기쁘시게 해드렸으므로 매우 즐겁습니다' 하고 아뢰었습니다.
  부처님께서 비구들에게 말씀하셨다.
  모든 하늘들이 앞서 나에게 말했는데 너희들이 또 말하는구나. 여래는 제일의 지견(知見)을 성취하였다. 또 바차 종족 비구도 그러한 덕의 힘이 있느니라.
  그 때 세존께서 저 바차 종족 비구를 위하여 첫 번째 예언을 말씀하셨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모든 비구들은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며 받들어 행하였다.
  
  
965. 울저가경(鬱低迦經)27)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울지가(鬱低迦) 외도가 세존이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서로 문안인사를 나누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세상은 끝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울지가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느니라.
  울지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27)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1권 1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380 / 2145] 쪽
  어떻습니까? 구담이시여, 세상은 끝이 없습니까,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며,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까?
  부처님께서 울지가에게 말씀하셨다.
  그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느니라.
  울지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어째서 구담께서는 '세상은 끝이 있습니까?' 하고 여쭈어도 '그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하시고, '세상은 끝이 없습니까, 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까?' 하고 여쭈어도 '그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대답하십니까? 구담이시여, 그러면 어떤 법에 대하여 확실하게 말해주실 수 있으십니니까?
  부처님께서 울지가에게 말씀하셨다.
  아는 사람이이기도 하고 지혜로운 사람이기도 한 나는 제자들을 위해 도에 대하여 확실하게 설명하여 바로 괴로움을 다하게 하고, 마침내는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게 하느니라.
  울지가가 부처님께 아뢰었다.
  구담께서는 어떻게 제자들을 위해 도를 설명하여 바로 괴로움을 다하게 하고 마침내는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게 하십니까? 또 일체 세간이 다 이 길에서 벗어납니까, 혹은 일부분만 그러합니까?
  그 때 세존께서는 잠자코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두 번 세 번 물었으나 부처님께서는 여전히 잠자코 대답하시지 않으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이 부처님 뒤에 서서 부채를 잡고 부처님을 부쳐드리고 있었다. 존자 아난이 출가한 울지가 외도에게 말하였다.
  너는 이 앞에서 벌써 이 뜻을 물었고, 지금은 또 다른 말로 물었다. 그런 까닭에 세존께서 말씀하시지 않으시는 것이다. 울지가여, 이제 내가 마땅히 너를 위해 비유로 설명하리라. 대개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를 들어 말하면 그로 인해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비유하면, 국왕이 제 국경 변두리에 성이 있는데, 사방 주위는 튼튼하고 거리의 길은 편편하며 성문은 오직 하나만 있다. 그 문을 지키는 문지기는 총명하고 지혜로와 계산이 남보다 빠르다. 그래서 어떤 사람이 밖에서 올 때는, 들여보내야 할 사람이면 들여보내고 들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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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서는 안 될 사람이면 들어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들은 온 성을 빙빙 돌면서 두 번째 문을 찾았지만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고양이나 삵 같은 동물들이 드나들던 곳도 전혀 없었는데, 하물며 두 번째 문이 있었겠느냐? 그런 까닭에 그 문지기는 드나드는 사람들을 전부 다 알지는 못하지만, 그는 모든 사람들이 오직 그 문으로만 드나들 수 있고 또 다른 곳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과 같다.
  이와 같이 세존께서도 비록 마음을 써서 '이 세간 일체 중생들이 다 이 도를 좇아 나오는가, 혹은 일부분인가?'에 대해서는 아시지 못하지만, 그러나 중생들이 진정 괴로움을 완전히 벗어나는 사람은 모두 이 도를 좇아 나온다는 것만은 아시느니라.
  그 때 울지가 외도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자리에서 일어나 물러갔다.
  
  
966. 부린니경(富隣尼經)28)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부린니(富隣尼)는 왕사성 기사굴산(耆闍崛山)에 머물고 있었다.
  그 때 출가한 많은 외도들이 존자 부린니를 찾아가 서로 문안인사를 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않아서 존자 부린니에게 물었다.
  내가 들으니 사문 구담은 '모든 존재를 끊고 부수어 버리라고 가르치신다'고 하더이다. 지금 존자 부린니께 묻습니다. 정말 그렇습니까?
  부린니가 출가한 모든 외도들에게 말했다.
  나는 그렇게 알고 있지 않다. 세존께서는 중생을 가르치시되 '모든 존재를 끊고 부수어 버려서 아무 것도 없게 하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 이치가 없기 때문이다. 세존께서는, '모든 중생들은 나[我]라는
  
28)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1권 2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382 / 2145] 쪽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여 나라고 하는 교만[我慢]과 삿된 교만[邪慢]을 일으키고 있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들을 위해 설법하시어 그것을 끊어 없애버리려고 하신 것이다.
  그 때 모든 외도들은 부린니의 말을 듣고 마음이 불쾌하여 꾸짖으면서 떠나갔다.
  그 때 존자 부린니는 모든 외도들이 떠난 뒤에 부처님께서 계신 곳으로 찾아가서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앉아, 조금 전에 모든 외도들이 와서 했던 말을 자세히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제가 아까 외도들에게 대답한 말이 혹 세존을 훼손시킨 일이나 되지 않습니까? 이렇게 설법한 말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고 법다운 말이며, 법을 따르는 말로서, 여러 이론가들의 비난이나 받지 않겠습니까?
  부처님께서 부린니에게 말씀하셨다.
  네 말대로라면 그것은 여래를 훼손한 일도 아니고 차례를 잃은 것도 아니며, 내가 확실하게 말했던 것과 같고 법다운 말이며 법을 따른 말이니, 여러 이론가들의 비난을 받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부린니야, 아까 저 모든 중생들은 나라는 것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라고 집착하여 나라고 하는 교만과 삿된 교만이 있는 자들이다. 삿된 교만에 핍박을 당하여 삿된 교만이 쌓이고 삿된 교만이 끊임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엉클어지기는 개 창자 같고 쇠사슬 같으며, 또 어지럽게 뒤엉킨 풀과 같아서, 갔다왔다 치달리고 있는 자들이다. 이 세상에서 저 세상으로, 저 세상에서 이 세상으로 왔다갔다 치달리면서, 거기서 멀리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자들이니라. 부린니야, 일체 중생들이 저 모든 삿된 교만을 남김없이 아주 없애면 저 일체 중생들은 오랜 세월 동안 편안하고 즐겁고 통쾌할 것이니라.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부린니 비구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고 기뻐하면서 받들어 행하였다.
  
  
967. 구가나경(俱迦那經)29)
  
29)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1권 3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1383 / 2145] 쪽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존자 아난은 새벽에 탑보하(補河)라고 하는 강 가로 가서 옷을 벗어 언덕에 두고 물 속에 들어가 손발을 씻은 뒤에, 다시 언덕에 올라가서 한 가지 옷을 입고 몸을 닦고 있었다. 그 때 출가한 구가나(俱迦那)라는 외도도 물 가로 갔다. 존자 아난이 발자국 소리를 듣고는 곧 기침을 하여 소리를 내었다. 구가나 외도는 사람의 소리를 듣고 물었다.
  누구십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사문입니다.
  구가나 외도가 말하였다.
  어떤 사문입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석씨 종족의 아들입니다.
  구가나 외도가 물었다.
  묻고 싶은 일이 있는데 대답해 주시겠습니까?
  존자 아난이 대답하였다.
  마음대로 물어보시오. 아는 대로 대답해 드리리다.
  구가나가 말하였다.
  어떻습니까? 아난이여, 여래에게도 후생(後生)이 있습니까?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는 '그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물었다.
  그러면 여래는 후생이 없습니까? 혹은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후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까?
  아난이 대답하였다.
  세존께서는 '그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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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가나 외도가 말하였다.
  어찌하여 '여래는 후생이 있습니까?' 하고 물어도 '그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대답하시고, 또 '여래는 후생이 없습니까, 혹은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합니까,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닙니까?' 하고 물어도 '그것은 확실하게 말해줄 수 없다'고 말씀하십니까? 아난이여, 부처님께서는 알지도 못하고 보지도 못하셨습니까?
  아난이 대답하였다.
  모르시는 것도 아니고 못 보신 것도 아닙니다. 다 아시고 다 보셨습니다.
  또 물었다.
  어떻게 알고 어떻게 보았습니까?
  아난이 대답하였다.
  보아야 할 것을 다 보셨고 일어나는 곳을 다 보셨으며, 결박이 끊긴 곳을 다 보셨습니다. 이것이 곧 아는 것이고, 이것이 곧 본 것이다. 나는 이렇게 알고 있고 이렇게 보았다. 어찌하여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였다고 말하겠습니까?
  구가나 외도가 또 물었다.
  존자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아난다(阿難陀)가 대답하였다.
  내 이름은 아난다입니다.
  구가나 외도가 말했다.
  기이합니다. 스승과 제자가 서로 의논하였구나. 만일 내가 당신이 존자 아난다인 줄 알았더라면 감히 질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곧 버리고 떠나갔다.
  
  
968. 급고독경(給孤獨經)30)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30)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1권 4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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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급고독 장자는 날마다 부처님을 찾아뵙고 예로 섬기고 공양하였다. 어느 날 급고독 장자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나는 오늘 너무 일찍 찾아왔다. 세존과 모든 비구들은 아직 선정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나는 차라리 외도들이 살고 있는 곳에 먼저 들려보아야겠다.'
  이렇게 생각한 그는 곧 외도들이 있는 절에 들어가 여러 외도들과 서로 문안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았다.
  그 때 저 외도들이 물었다.
  장자여, 그대는 사문 구담을 보았으니, 어떻게 보았으며 그는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더이까?
  장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어떻게 세존을 보았으며 세존께서는 어떤 견해를 가지셨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외도들이 물었다.
  너는 많은 비구승들을 보았다고 말했다. 그 많은 비구승들을 어떻게 보았으며 그들은 어떤 견해를 가졌더냐?
  장자가 대답하였다.
  나도 또한 내가 비구들을 어떻게 보았으며 비구들이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는지 알지 못한다.
  외도가 또 물었다.
  장자여, 너는 지금 자기 자신을 어떻게 보며 자신은 어떤 견해를 가지고 있느냐?
  장자가 대답하였다.
  너희들은 각각 자기의 견해를 말하라. 그 다음에 내가 내 견해를 말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 때 어떤 외도가 이렇게 말했다.
  장자여, 나는 일체 세간은 영원한 것이라고 본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1386 / 2145] 쪽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장자여, 나는 일체 세간은 영원하지 않다고 본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장자여, 세간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세간은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세간은 끝이 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세간은 끝이 없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세간은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여래는 후생이 있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여래는 후생이 없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여래는 후생이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하다.
  또 어떤 이는 말했다.
  여래는 후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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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것도 허망한 것이다.
  여러 외도들이 장자에게 말했다.
  우리는 각각 우리의 견해를 말했다. 너도 마땅히 네 견해를 말해야 할 것이다.
  장자가 대답하였다.
  내 견해로는, 진실이라는 것은 함이 있는 것[有爲]이고 생각[思量]하는 것이며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그것이 함이 있고 생각하는 것이며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무상(無常)한 것일 테고, 만약 무상한 것이라면 곧 괴로운 것일 게다.
  이렇게 알고 나면 일체 견해에 대해서 아무 것도 취할 것이 없다. 너희들 견해대로 '세간은 영원한 것이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라고 하면서 이 견해가 진실이라고 하지만, 그것은 함이 있는 것이고 생각하는 것이며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다. 만일 그 진실이 함이 있고 생각하는 것이며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곧 무상한 것일 테고, 만약 무상한 것이라면 곧 괴로운 것일 게다. 그런 까닭에 너희들은 괴로움을 친근히 하여 오직 괴로움만 받고 괴로움에 굳게 머물며 괴로움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또 너희들 말대로 '세간은 영원한 것이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라는 그런 견해도 또한 저와 같은 잘못이 있느니라. 또 '세간은 영원하기도 하고 영원하지 않기도 하다. 영원한 것도 아니고 영원하지 않은 것도 아니다. 세간은 끝이 있다. 세간은 끝이 없다. 세간은 끝이 있기도 하고 끝이 없기도 하다. 끝이 있는 것도 아니고 끝이 없는 것도 아니다. 목숨은 곧 몸이다. 목숨과 몸은 다르다. 여래는 후생이 있다. 후생이 없다. 후생이 있기도 하고 후생이 없기도 하다. 후생이 있는 것도 아니고 후생이 없는 것도 아니다. 이것은 진실이요 다른 것은 허망한 것이다'라는 그런 견해도 위에서 말한 것과 같다.
  어떤 외도가 급고독 장자에게 말했다.
  네 견해와 같이 '만일 그와 같이 보는 것이 진실이어서, 저 함이 있고 생각하는 것이며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것이라면 그것은 무상한 것이다. 만일 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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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한 것이면 그것은 괴로운 것이다'라고 한다면, 장자의 견해도 또한 괴로움을 친근히 하여 괴로움을 받고 괴로움에 머물고 괴로움에 깊이 들어가는 것이다.
  장자가 대답하였다.
  내가 아까 '견해가 진실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함이 있고 생각하는 것이며 인연을 따라 일어나는 법으로서, 다 무상한 것이고 무상한 것은 곧 괴로움이다'라고 말하지 않았는가? 이 괴로움을 알았기 때문에 나는 모든 견해에 대해서 집착하지 않느니라.
  저 외도는 말했다.
  그렇다! 장자의 말과 같다.
  그 때 급고독 장자는 외도들의 정사(精舍)에서 그들의 이론을 항복 받고 바른 이론을 세워, 저 외도들의 앞에서 사자처럼 외쳤다. 그리고는 그는 부처님께 나아가 머리를 조아려 그 발에 예를 올리고 한쪽에 물러앉아, 외도들과 서로 논란한 것을 부처님께 자세하게 아뢰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급고독 장자에게 말씀하셨다.
  훌륭하고 훌륭하다. 때때로 저 어리석은 외도들을 꺾어 항복 받고 바른 이론을 세워야 하느니라.
  부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자, 급고독 장자는 기뻐하면서 예를 올리고 물러갔다.
  
  
969. 장조경(長爪經)31)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때 부처님께서 왕사성 가란다죽원에 계셨다.
  그 때 출가한 장조(長爪) 외도가 부처님께서 계신 곳을 찾아가 서로 문안인사를 하고 위로한 뒤에 한쪽에 물러나 앉아서 부처님께 여쭈었다.
  구담이시여, 저는 일체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습니다.
  
31) 이 소경은 『별역잡아함경』 제11권 5번째 소경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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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화종(火種) 외도에게 말씀하셨다.
  네는 일체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말한 그 견해도 인정하지 않느냐?
  장조 외도가 말하였다.
  아까 말한 '일체의 견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그 견해도 인정하지 않습니다.
  부처님께서 화종 외도에게 말씀하셨다.
  그와 같이 알고 그와 같이 보면, 그 견해는 이미 끊어진 것이고 이미 버린 것이며 이미 여읜 것이다. 다른 견해가 계속되지 않을 것이고 생기지도 않을 것이니라. 화종이여, 대부분의 사람들도 네 견해와 같다. 대부분의 사람들도 다 그와 같이 보고 그와 같이 말한다. 너도 또한 그들과 같다. 화종이여, 만일 모든 사문 바라문들이 그런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도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러한 사문 바라문은 이 세간에서도 극히 드물 것이다.
  화종이여, 그들은 세 가지 견해에 의지한다. 어떤 것이 그 세 가지인가? 어떤 이는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일체를 인정한다.'
  또 어떤 이는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
  또 어떤 이는 이와 같은 견해를 가지고 이렇게 주장한다.
  '나는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
  화종이여, 만일 '일체를 인정한다'고 말하는 자라면 그 견해는 탐욕과 함께 생기는 것이요, 탐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또 성냄과 함께 생기는 것이요, 성 내지 않는 것이 아니며, 어리석음과 함께 생기는 것이요 어리석지 않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얽매인 것이고 얽매임을 여의지 못한 것이며, 그것은 번뇌이고 청정하지 못한 것이다. 거기에서 좋아하여 취하고 물들어 집착하는 것이 생기느니라.
  또 만일 '나는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한다면 그 견해는 탐욕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고, 또한 성냄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며, 어리석음과 함께 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청정한 것이요 번뇌가 아니며, 얽매임을 여읜 것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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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얽매인 것이 아니다. 그래서 좋아하지 않고 취하지 않으며 물들지 않고 집착하지 않느니라.
  화종이여, 만일 '나는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런 견해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면, 저 인정하는 것에는 탐욕이 있어……(내지)……집착이 생기는 것이요, '그와 같은 견해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하면 거기에서는 탐욕을 여읜 것이고,……(내지)……집착이 생기지 않느니라. 그러나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배운 것을 이와 같이 말한다.
  '(내가 만일 일체를 인정한다)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주장하면, 곧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진 이로부터 나무람과 힐난을 당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이른바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견해, 그리고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가진 이러한 무리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나무라기 때문에 힐난하고, 힐난하기 때문에 해친다. 그는 나무람을 당하고 힐난을 받으며 해침을 당하기 때문에 곧 그 견해를 버리고 다른 견해를 일으키지 않는다. 이와 같이 견해를 끊고 견해를 버리고 견해를 여의어서, 다른 견해가 계속 이어지지 않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느니라.
  또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배운다.
  '(내가 만일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주장하면, 곧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진 이로부터 나무람과 힐난을 당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일체를 인정한다는 견해와 그리고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이르는 말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견해를 가진 이로부터 나무람과 힐난이 있고,……(내지)……계속 이어지지 않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느니라.
  또 저 많이 들어 아는 거룩한 제자는 이와 같이 배운다.
  '내가 만일 어떤 것은 인정하고 어떤 것은 인정하지 않는다'고 이와 같이 보고 이와 같이 주장하면, 곧 다른 두 가지 견해를 가진 이로부터 나무람과 힐난을 당할 것이다.'
  어떤 것이 그 두 가지인가? 일체를 인정한다는 견해와 일체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견해를 이르는 말이다. 이와 같은 두 가지 견해를 가진 이로부터 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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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람과 힐난이 있고,……(내지)……계속 이어지지 않으며 일어나지도 않고 생겨나지도 않느니라.
  또 화종이여, 이와 같은, 즉 몸의 추한 네 가지 요소에 대하여 거룩한 제자는 무상한 것이라고 관하고, 나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관하며, 그에 대한 탐욕을 여의어야 한다고 관하고,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관하며, 버려야 할 것이라고 관한다. 만일 거룩한 제자가 그것은 무상한 것이라고 관하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관하며, 그에 대한 탐욕을 여의어야 한다고 관하고,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관하며, 버려야 할 것이라고 관하여 머무르면, 그는 저 몸에 대하여 몸이라는 욕심·몸이라는 생각·몸이라는 애착·몸이라는 더러움·몸에 대한 집착이 아주 사라져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화종이여, 세 가지 느낌[受]이 있다. 이른바 괴롭다는 느낌·즐겁다는 느낌·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이다. 이 세 가지 느낌은 무엇이 인(因)이 되며, 무엇이 발생[集]이 되며, 무엇에서 생기고 무엇이 변한 것인가? 즉 이 세 가지 느낌은 감촉이 인이 되고, 감촉이 발생이 되며, 감촉에서 생기고 감촉이 변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감촉이 모이면 느낌이 모이고, 감촉이 사라지면 느낌도 곧 사라져서 지극히 고요하고 맑고 시원하게 되느니라.
  그는 이 세 가지 느낌인 괴롭다는 느낌·즐겁다는 느낌·괴롭지도 즐겁지도 않다는 느낌에 대해서, 그 느낌의 발생·사라짐·맛·근심, 그리고 거기에서 벗어나는 길을 참답게 알고, 그것을 참답게 안 뒤에는 곧 그 느낌을 무상한 것이라고 관하고, 나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관하며, 그에 대한 탐욕을 여의어야 한다고 관하고,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관하며, 버려야 할 것이라고 관한다. 그리하여 그는 몸의 한계와 감각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고, 목숨의 한계와 감각에 대해 사실 그대로 알아서, 몸이 무너지고 목숨이 끝난 뒤에는 일체의 느낌이 다 사라져서 남음이 없느니라.
  그 때 그는 이렇게 생각한다.
  '즐거움을 느낄 때에도 몸은 역시 무너지고, 괴로움을 느낄 때에도 몸은 또한 무너지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음을 느낄 때에도 몸은 역시 무너지고 만다.'
  그래서 그는 괴로움을 벗어나게 된다. 즉 저 즐거운 느낌에 대해서도 얽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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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지 않아 얽매임을 여의고, 괴로운 느낌에도 얽매이지 않아 얽매임을 여의며, 괴롭지도 않고 즐겁지도 않은 느낌에도 얽매임을 여의어 얽매이지 않는다. 어떤 얽매임을 여의게 되는가? 탐욕·성냄·어리석음을 여의고, 남·늙음·병듦·죽음·근심·슬픔·괴로움을 여의게 된다. 나는 이것을 괴로움에서 벗어나는 것이라고 말하느니라.
  그 때 존자 사리불(舍利弗)은 구족계를 받은 지 겨우 반달이 지났다. 그는 부처님의 뒤에 서서 부채를 들고 부처님을 부쳐드리고 있었다.
  존자 사리불이 이렇게 생각하였다.
  '세존께서는 저런 여러 가지 법에 대해서 욕심을 끊고 여의었으며, 없애고 버리는 것을 칭찬하신다.'
  존자 사리불은 곧 저 여러 가지 법은 무상한 것이라고 관하고, 나고 사라지는 것이라고 관하며, 그에 대한 탐욕을 여의어야 한다고 관하고, 사라져 없어지는 것이라고 관하며, 버려야 할 것이라고 관하였다. 그래서 모든 번뇌를 일으키지 않고 마음이 해탈할 수 있었다.
  그 때 장조 외도는 티끌과 때를 멀리 여의고 법안(法眼)이 깨끗하게 되어, 출가한 장조 외도는 법을 보고 법을 얻었으며, 법을 깨닫고 법에 들어갔다. 모든 의혹을 끊었으며, 남의 제도를 받지 않고, 바른 법과 율(律)에 들어가 두려움이 없게 되었다. 그는 곧 자리에서 일어나 옷을 바로잡고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합장하고 부처님께 여쭈었다.
  원컨대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부처님의 법에서 여러 가지 범행을 닦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 출가한 장조 외도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바른 법과 율 안에서 출가하여 구족계를 받고 비구의 신분을 얻었느니라.
  그러자 그는 곧 선래(善來) 비구가 되어 선남자(善男子)로서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입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집이 없는 데로 출가하여 도를 배우는 까닭을 생각하고……(내지)……심해탈을 얻어 아라한이 되었다.
  부처님께서 이 경을 말씀하시자, 존자 사리불과 존자 장조는 부처님의 말씀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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