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환법의 정체란 무엇인가 ? |
독사와 호랑이에게는 사람을 해치려는 생각이 본래부터 있는 것은 아니다. 그들은 높은 산허리를 의지하고 평평한 땅바닥에 누워 있다. 그런데 길가는 사람들이 오히려 그들을 무서워하여 서로 주의를 주며 멀리 한다. 이는 그들이 사람을 물어뜯고, 또 독이 있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그들의 그림자만 보아도 피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보살이 환법(幻法)을 대하는 것도 이와 같다. 무엇이 <환법>인가 하면, 실제는 없는데 있는 듯한 것이다. 이미 실체가 없다고 말했는데, 도대체 무엇이 있단 말인가? 이것은 허공에는 본래 미세한 먼지도 없는데, 눈병에 걸린 사람은 허공에서 어지러운 헛꽃[空華]을 보는 것과 같다. 허깨비인 줄 아는 사람은 자기의 눈병을 탓하겠지만, 허깨비인 줄 모르는 사람은 도리어 헛꽃만을 탓한다. 그밖에 물에 어린 달그림자와 거울 속에 비친 형상도 실제로는 모두가 헛된 존재이다. 그런데도 미혹한 사람은 그것을 <있다>고 집착하면서 그저 그것을 없애려고 한다. 더구나 그러면 그럴수록 더더욱 무언가 <있는> 듯 해진다. 그러나 깨달은 사람은 그것이 허깨비인 줄 알고 없애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그러다 보면 일부러 없애려 하지 않아도 그것은 저절로 없어진다. 그러므로 경전 중에서 `허깨비인 줄 알면 그대로 없어지니 따로 방편을 쓸 필요가 없다' 고 하는 대목이 있는 것이다. 허깨비인 줄 아는 그 <앎>은 알음알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고, 담박에 깨치는 마음 바로 그 자체이다. 그 <앎>은 지극히 당연하기 때문에 허깨비가 없어지기를 기다리지 않아도 저절로 없어진다. 그러므로 일부러 방편을 만들려 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것은 허깨비를 없애려는 마음이나 없애려는 대상이 모두 방편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자신의 마음자리를 통철하게 깨달아서 모두가 허깨비인 줄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그렇게 확실히 알기만 하면 허깨비는 저절로 없어지므로, 없애고 말고 할 것이 없게 된다. 이것은 마치 뱀과 호랑이를 보기만 해도 피하는 것과 같다. 그들이 사람을 물어뜯고 독이 있다는 것을 알아서 자연히 그들을 멀리하기 때문이다. 어찌 따로 방편을 써야만 환법(幻法)이 사라지겠는가? 참된 깨달음이 없는 사람들이라 할지라도 `4대5온(四大五溫)은 허깨비' 라고 모두들 말한다. 그러나 잠시라도 좋은 일이건 나쁜 일이건 부딪치면, 갑자기 알음알이가 발동하여 갖가지 허깨비가 생겼다가는 없어지곤 한다. 갖가지 고통을 모두 맛보고 마음에 싫증이 나서 그것들을 없애려고 하지만, 허깨비같은 견해〔幻見〕만 더욱 증가할 뿐이다. 더구나 허깨비가 생기게 된 모든 인연을 올바르게 알지도 못했는데 어떻게 그것을 없앨 수가 있겠는가? 수행을 잘하는 사람은 허깨비를 없애야겠다는 생각도 없이 오직 자기의 공부만 부지런히 할 뿐이다. 자기의 마음자리만 깨달으면 백 천이나 되는 허깨비의 허망이 녹아져 진실하고 고요한 상태로 돌아간다. 이 때는 <떠난다>고 한 그 말마저도 오히려 부질없는 군더더기가 될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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