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사찰을 잘 보호하는 방법은 무엇인가 ? |
한 손님이 말하기를, "속인이 교묘한 방법으로 이웃 사찰의 살림을 빼앗은 자가 있었습니다. 절의 스님들은 백방으로 힘을 써보았으나 절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관청에서 이 문제를 다스려 주길 바랬으나 절도 찾지 못하고 수고로움만 겪었습니다"고 했다.
그러자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당신들은 세간 밖에 노니는 출가한 사람들입니다. 반드시 자신의 몸뚱아리를 잊고 물욕을 비워 이치로써 자신을 관조해야 합니다. 무엇 때문에 속인들의 취사(取捨)에 집착하는 꼴을 본받습니까?" 하였다.
옆의 객승이 말을 이었다. "그렇지 않습니다. 예로부터 `천 년간이나 상주(常住)하는 사찰이요, 하루 아침 살다 가는 스님이다' 는 훈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루 살다 가는 승려가 아니라면 누구라서 천 년을 상주하는 사찰을 보호하겠습니까?"
다시 어떤 사람이 말했다.
"내가 들은 것은 이와 다릅니다. 변하지 않는 것을 상(常)이라 말하고, 움직이지 않는 것을 주(住)라 합니다. 이것은 진실하고 고요한 법신(法身)의 본체를 두고 한 말입니다. 참된 것은 변하지 않으며, 고요한 것은 요동하지 않습니다. 참되고 고요한 상주물은 대천세계(大千世界)를 모두 포섭하여 어느 것도 본체를 벗어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옛날 가르침에도 `이 법은 진여〔法位〕에 안주하여 세간의 모습이 상주한다' 고 하였습니다. 우리들이 속세에서 분주히 돌아다녀 부귀영화를 얻으려고 걸핏하면 알음알이를 쓸데없이 일으키니, 이것을 모르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대는 출가하여 깨달음을 구하는 수행자입니다. 상주물은 참되고 고요한 법신의 본체라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어떻게 중생을 인도하고 교화를 행하는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습니까?
옛날의 보살은 6바라밀을 수행하고 4무량심(四無量心)을 베풀어 행동을 삼가하고, 착한 일을 몸소 행하는 것이 사찰을 보호하는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대는 하루 아침 살다 가는 승려로서 사찰을 보호하려 하니 착하다고는 하겠습니다.
그러나 혹시라도 정념(正念)을 버리고 취사(取捨)의 알음알이에 빠져 싸움질하고, 혈기만 믿고 빼앗긴 땅과 살림살이를 찾으려 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진실하고 고요한 법신을 미혹하고 사찰을 파괴하는 것입니다. 이보다 큰 잘못은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입니다. 그대가 이것을 뉘우쳐 고치지 않고 다만 미친 감정으로 세속의 풍습을 본받아 천년 토록 계속될 사찰을 보호하려 한다면, 이는 마치 제방을 터놓고 물이 새지 못하도록 하는 것과 같은 짓입니다.
이것은 자신을 속이는 것일 뿐입니다. 그대는 보지 못했읍니까? 세간에 나는 듯한 누각이며, 용솟음치는 듯한 전각을. 모든 장엄구(藏嚴具)가 대천세계에 충만했는데, 만약 그것이 부처님께서 원해서 그렇게 되었다면 외도(外道)라 해도 그렇게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보살이 보시를 행할 때는 자신의 머리·눈·골수·뇌 등을 보시해도 아까와하는 기색이 하나도 없다고 들었습니다. 보살은 3륜(三輪)*이 모두 공적하여 한 생각도 집착이 없습니다. 인간과 천상이 봉헌한다 해도 오히려 `내가 보시를 받는다' 는 마음이 없는데, 어찌 보살에게 베풀 대상이 있다는 생각을 하겠습니까?
참되고 고요하다는 것은 법신의 본체를 말한 것이고, 항상하여 요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법신의 모습을 밝게 나타낸 것입니다. 이런 자세를 가져야만 진정으로 상주물인 사찰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찌 감정을 멋대로 하여 관청에게 다스려주기를 바라겠습니까?"
그러자 객승이 말했다.
"분명 이와 같다면 당신에게는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건이 공적인 문제에 걸려 있을 경우, 어찌 그런 일을 앉아서 바라보기만 할 수 있겠습니까?"
다시 어떤 사람이 말했다.
"그대는 한갖 구제라는 말만 알았을 뿐, 정작 구제해야 하는 까닭은 알지 못했습니다. 아뇩다라 삼막삼보리인 제일의제(第一義諦)를 깨달아 거기에 의지해서 사찰이 건립되는 것이고, 사찰은 6도(六度)·4무량심(四無量心)·만행(萬行)·중선(衆善)을 바탕으로 해서 잘 운영되는 것입니다. 이들을 떠나서 구제하는 이유를 따로 찾으려고 하면, 다만 업륜(業輪)만 도울 뿐입니다. 비록 구제했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해친 것입니다. 잘 생각해 보았더니 진실한 법신의 상주는 사찰과 표리의 관계가 되어 하나가 되어 억만 겁이 지나도록 변동이 없는데, 어찌 천 년만 가겠습니까?"
얘기가 이쯤 되자 듣던 사람들이 모두 머리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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