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자기를 알아준 은혜에 보답하다 / 서암 요혜(西岩了惠)스님
천동사(天童寺) 서암(西岩了惠:1198~1262)스님은 촉 땅 사람이다. 남쪽 여러 곳을 돌아다니다가 경산사에 이르러 무준(無準)스님을 만났다. 거기서 서로 선기가 투합하여 무준스님은 입실을 허락하고 장주를 맡기려 하였으나 애써 막으려는 사람이 있었다. 그 이튿날 고인이 된 눌(訥)시자의 기감(起龕:다비식 때 관을 다비장으로 옮겨가기 위해 일으키는 행사) 의식이 있었는데 대중이 모두 겁을 먹고 말 한마디도 못하자. 무준스님은 유나(維那)를 시켜 혜(惠)시자를 기감을 주관할 사람으로 맞이해 오도록 하였다. 이에 혜시자는 감(羌) 앞에 이르러 연거푸 세 차례 ”눌시자!”하고 불렀지만 이때도 사람들이 겁을 내자 그는 마침내 ”세번을 불러도 대답 없더니 과연 눌시자의 정수리에서 요천골(遼天鶻)이 나왔구나!”하였다. 무준스님은 혜시자를 밀쳐내려는 자를 당장에 쫓아내고 혜시자로 하여금 그 일을 대신하도록 하였는데 혜시자는 바로 서암스님이다.
스님은 이에 앞서 영은사의 묘봉(妙峰)스님에게 귀의하였는데 그 당시 영은사는 동서 양 행랑 벽 위에 그려진, 선재동자가 오십삼 선지식에게 도를 묻는 벽화를 다시 단청하는 불사가 있었다. 선승들이 제각기 게송을 지어 축하했고 스님도 게송을 지었으나 그를 시기하는 자가 두루마리에 써넣어 주지 않았는데, 묘봉스님이 두루마리를 펼쳐보다가 물었다.
”혜시자의 게송은 어찌하여 없는가?”
”있기는 하나 두루마리에 수록할 만한 글이 못됩니다.”
”한번 일러 보아라.”
게송을 본 후 묘봉스님은 그것을 첫머리에 써넣어 주었고 그 후로 명성이 자자해졌다. 뒷날 천동사의 주지가 되어서는 환지암(幻知菴)을 새로 지어 노년에 은거할 계책을 세웠고 사당 한 채를 따로 짓고 묘봉선사를 봉안하여 자기를 알아준 은덕에 보답하였다. 벽화를 찬양한 게송은 다음과 같다.
다행히도 사방에 막힌 벽이 없으나
누가 오색으로 허공에 단청할까
선재동자는 눈 속에 뿌연 눈병 생겨
한 꺼풀 도려내니 또 한 꺼풀 생겨나네.
幸是十方無壁落 誰將五彩繪虛空
善財眼裡生花翳 去却一重添一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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