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46. 문 닫고 사는 설법 / 노소(老素)수좌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0:27
 

46. 문 닫고 사는 설법 / 노소(老素)수좌


노소(老素)수좌는 일생동안 문을 닫고 은거하였으므로 세상에서 그를 아는 사람이 없었다. 원 천력(元 天曆:1329~1330) 연간에 어느 한 선객이 노소수좌가 친필로 산에 은거하면서 나오는대로 회포를 적은 게송 세 수를 얻어 스승 귀원(歸源)스님에게 착어(着語)를 부탁하자 귀원스님이 말하였다.

”총림에서는 그가 세상에 나와 설법하지 않았던 점을 유감으로 여기지만 이제 이 세 수의 게송을 읽어보니 마치 큰 범종을 한번 치면 모든 소리들이 사라져 버리는 듯한 느낌이다. 어찌 그가 설법을 하지 않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 게송이 오랜 세월이 지나다보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때문에 눈에 보이는대로 몇 수를 기록해 본다.


전등록 읽다 보니 구렛나루 먼저 희고

애써 공부 다워온 지 몇 낙차(洛叉:십만 년)인고 튀 튀

낮잠 자다 깨어보니 책상 위엔 먼지만이 가득한데

처마 끝에 반쯤 드는 한가한 햇살 아래 뜨락의 꽃이 지네.

傳燈讀罷鬂先華  功業猶爭幾洛叉

午睡起來塵滿案  半檐閑日落庭華


뾰족한 지붕 낮게 고치지도 않고

위에는 긴 숲이 있고 아래엔 연못 있으니

깊은 밤 놀란 바람 노란 잎새 휘날려

오히려 쑥대밭에 내리는 비소리 같아라.

尖頭屋子不敎底  上有長林下有池

夜久驚猋掠黃葉  却如蓬底雨來時


덧없는 세상, 세월 얼마 남지 않아

애오라지 시를 쓰며 또 세월을 달래본다

오늘 아침 솔나무 아래에서

서풍을 등에 맞고 가마귀 수를 헤아려 본다.

浮世光陰自不多  題詩聊復答年華

今朝我在長松下  背立西風數亂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