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천목사 괴일산(魁一山)의 후신
천목사(天目寺)에 사는 괴일산(魁一山)은 소주(蘇州) 사람으로 박학다재하며 천동사(天童寺)의 평석(平石) 노스님과 절친한 사이였다. 총림의 전성시대를 맞아 모두들 세상에 나아갔지만 괴일산은 깊은 산골짜기에 홀로 살며 속인과 사귀지 않으니 대매사(大梅寺) 나찬(懶瓚)스님의 옛 풍모를 지녔다. 그러나 아랫마을 시주 홍씨 집안의 자제만은 왕래를 허락하였다.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홍씨는 괴일산이 작은 가마를 타고 그의 집으로 들어오는 꿈을 꾸었고 그 이튿날 아들을 낳았는데, 이름을 응괴(應魁), 자를 사원(士元)이라 하였다. 어려서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부인을 맞아 아이를 기를 때까지는 전생의 기미가 전혀 엿보이지 않다가 30세가 되자 갑자기 반성하여 평소에 하던 일을 모두 바꾸었으며, 승려 명유나(明維那)와 함께 동천목산(東天目山) 꼭대기에 암자를 짓고 선정(禪定)을 익히며 화전을 일구고 걸식을 하는 일까지 모두 몸소 하였다. 고행으로 늙은 스님일지라도 그처럼 독실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지정(至正) 정유년(1357) 북쪽 오랑캐에게 경산사가 소각당했을 때 나는 그의 처소를 찾아갔는데, 그의 용모는 숙연하고 예의가 있으면서도 자연스럽게 대하였다. 나는 까닭을 물어본 후에야 그가 괴일산의 후신임을 알게 되었으며 이를 계기로 그에게 말하였다.
”그대의 전신은 천동사의 평석(平石) 노스님과 둘도 없는 사이였다. 노스님의 나이 아흔이지만 아직도 이목이 밝으니 그대가 게를 지어 보낸다면, 한 꿈에 두 번 깨어났지만 꿈과 깸이 한결같음을 보여줄 수 있지 않겠는가.”
이에 사원(士元)이 게를 지었다.
천동사의 노스님 평석(平石)에게 전하노니
한생각은 이제도 옛날도 아니로다
단풍나무 다리 위에 깊은 밤 종소리를 듣자니
오강은 예전처럼 하늘에 잇닿아 푸르구려.
寄語天童老平石 一念非今亦非昔
欲聽楓橋半夜鍾 吳江依舊連天碧
그러나 이 게송이 전해지기도 전에 노스님은 입적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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