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21. 청렴하고 유능한 제점승 / 지문사 이 정당(醮正堂)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30
 

 

 

21. 청렴하고 유능한 제점승 / 지문사 이 정당(醮正堂)


홍무(洪武) 8년(1375) 가을 나는 도반 보복 원(報復元)스님을 찾아 상산(象山) 지문사(智門寺)를 갔는데 그곳에 이 정당(彝正堂)이라는 제점(提點) 승려가 있었다. 그는 40여 년 동안 절 재물의 출납을 맡아보았는데 청렴하고 유능하여 계획과 결단에 규모가 있었으며 대중을 잘 무마하여 여섯명의 주지를 겪으면서도 시종여일하게 일을 처리하였다. 그해 7월 24일 밤 꿈에, 두 동자가 책상 앞에 나란히 서 있기에 무슨 일로 여기에 왔느냐고 묻자 동자는 제점에게 금전출납부를 계산해 보려고 왔다는 것이다. 이에 나에게는 계산할 수 있는 장부가 없다고 말하다가 깨었는데 다시 잠이 들어 같은 꿈을 꾸게 되었다. 그 이튿날 방장실을 찾아가 어젯밤 꿈이야기를 한 후 방장스님에게 말씀올렸다.

“간밤에 이와 같은 꿈을 꾼 것은 올해 고사(庫司)를 맡아보는 자가 게을러서 상주재산의 장부를 만들어놓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니, 스님께서는 그를 독촉하심이 좋겠습니다.”

그가 말하는 태도를 보니 조금도 부끄러워하는 빛이 없었다.

얼마 후 들어보니 이 정당이 그의 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미끄러져 술 취한 사람처럼 혼수상태에 빠졌다가 밤중이 되어서야 다시 깨어나 황급하게 뒷일을 정리한 후 눈을 감았다고 한다. 이 정당은 지문사에 공로가 있는 사람이라 하겠으니,  임종 때까지도 자기 일에 충실하였다. 그러나 요즈음 절 일을 맡아보는 많은 사람들은 상주물을 보면 마치 소리개가 먹이 낚아채듯, 제비가 벌레 잡아먹듯 하며 인과의 죄보를 개의치 않는데, 이 이야기를 들으면 반드시 행동을 고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