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32. 사 성암(思省菴)스님의 법문과 게송

通達無我法者 2008. 3. 5. 21:47
 

 

 

32. 사 성암(思省菴)스님의 법문과 게송


사 성암(思省菴)스님은 태주(台州) 영해(寧海) 사람이며 속성은 알 수 없다. 형제 네 명 가운데 성암스님이 맏이였는데 모두 일시에 신심을 내어 출가하였다. 종친들에게 조상의 유산을 다 나누어 주고 살던 집 한 채 만을 남겨두었는데 친척들이 그것마저 서로 차지하려고 계속 다투자 사스님은 형제들과 함께 집을 불태운 후 그곳을 떠나버렸다. 사스님은 그후 여러 곳을 참방하여 향상의 지견을 갖췄으며 온주(溫州) 영운사(靈雲寺)의 주지를 하다가 영암사(靈岩寺)로 옮겼고 마지막에는 영운사의 앞 초막에 은거하였다.

지정(至正) 갑신(1344)년, 내가 달차원(達此原)․명성원(明性元) 등과 함께 스님을 찾아가니, 당시 스님은 90이 넘어 긴 눈썹과 호호백발이 무척이나 맑아 보였다. 스님은 신발을 끌고 나와 서서히 걸으면서 나에게 물었다.

”어디에서 왔는가?”

”강심사(江心寺)에서 왔습니다.”

”강물의 깊이가 몇백 발이나 되는가??”

”노스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이에 성암스님은 합장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앉으시오. 차 한잔 합시다.”

성암스님은 성품이 반듯하고 고결하여 시를 지으면 한산자(寒山子)와 유사한 기품이 있었다. 그가 “어느 승려를 욕하며'라는 시를 벽에 써놓았다.


오온(五蘊)*을 버리지 못한 채 머리만 깎고

누런 베옷 두르니 이것이 중이라네

불법도 세속법도 전혀 모르고

잘하는 것이라곤 돼지고기 개고기 잘 먹는 일.

五蘊不打頭自Ꜭ  黃布圍身便是僧

佛法世法都不會  噇猪噇狗十分能


책상 위에 그의 어록 한 권이 놓여 있기에 손가는대로 펼쳐보니, 여름 결제 때 한 상당법문이었다.


대원각은

소바리 말바리에 실어오고

우리 가람을 위해서는

외바구니 나물바구니를.

以大圓覺  牛角馬角

爲我伽藍  瓜籃菜籃


또한 상당법문에서 조주스님의 “개에겐 불성이 없다 [狗子無佛性] '는 화두를 들어 송을 하였다.


개에게 불성이 없다

개에게 불성이 있다

원숭이는 인색하고 교활한 장사치 때문에 시름하고

개는 청정하고 도통한 중의 입을 보고 달아나네.

狗子佛性無  狗子佛性有

猴愁摟摟頭  狗走抖摟口


나는 달차원등과 그곳을 떠나왔으며, 다시는 감히 그의 기봉(機峰)을 범할 수 없었다. 그날 밤 우리는 영운사에 묵으면서 노스님에게 사 성암스님의 몇 가지 언행에 대하여 들었는데 모두 전할 만한 것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