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 계율을 경시하는 말세의 풍조를 개탄하다
명주(明州) 오대산(五臺山)의 계단(戒壇)은 영지(靈芝)율사가 중창한 것이다. 축조를 마치고 법을 강론하는데 한 노인이 나타났다. 신비한 기가 뛰어나고 눈썹과 수염이 하얀 그가 앞으로 나와 말하였다.
”저는 보통 사람이 아닙니다. 세 알의 구슬을 바쳐 오늘의 계단 조성을 축하합니다.”
말이 끝나자 그 노인은 보이지 않았다. 그리하여 계단 중심에 세 알 구슬을 안치하였는데 여러 차례 빛이 나왔다.
황조(皇朝:明) 홍무 11년(1378) 4월 17일, 단주(壇主) 덕옹(德顒)이 열 명의 율사를 모시고 계법회(戒法會)를 크게 열었는데 그후 이틀이 지난 밤에 자계사(慈溪寺)의 스님 자무(子懋)가 단에 오르려는 찰나에 갑자기 구슬에서 광채가 밖으로 뻗어나오는 것이 보이고 그 속에서 선재동자가 나타났다. 자무는 깜짝 놀라 소리쳤고 온 대중이 돌아가면서 예배하였다. 슬픔과 기쁨이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그후로 밤마다 대중들은 더욱 경건하고 간절히 기도하니, 황금부처로 나타나기도 하고 팔이 여섯 달린 관음상, 또는 붉은 대 푸른 버들 위에 빈가새 [頻伽鳥]가 좌우로 춤을 추며 날아다니기도 하고, 또는 월개(月蓋)를 쓰거나 손에 화로를 든 부처로 나타나기도 하고, 용신이 구슬을 바치는 등 신기한 변화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그것은 흔히 볼 수 없는 일들이었다.
아! 내 들어보니 세존께서 계단의 축조를 마치시자 범천왕(梵天王)이 귀한 구슬을 올렸고 제석천왕도 여의주로 비를 내려 세존을 도왔다고 한 세존께서 돌아가실 때 비구들에게 “계율로 스승을 삼으라'고 부촉하셨고, 또한 “만일 나의 법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계율에서 비롯된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 불교와 계율의 관계는 실로 크다. 오대산의 계단에 구슬을 올린 사실은 본디 대단한 일이었다 하지만 상법시대(말세)에 계법을 거행하자 신비한 감응이 이처럼 빛날 줄을 생각이나 했었겠는가! 천룡(天龍)이 계법을 보호하는 마음을 또렷이 볼 수 있다. 그러나 스님들이 계율을 쓸모없는 형식이라 생각하고 조금치도 마음에 두지 않음을 어찌하랴. 가슴아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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