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암잡록(山艤雜錄)

60. 금동석가상과 관음보살상의 영검

通達無我法者 2008. 3. 7. 08:43
 

 

 

60. 금동석가상과 관음보살상의 영검


은성(鄞城) 복취암(福聚菴)의 비구 보월(普月)스님이 받들고 있던 청동으로 만든 석가상은 오래되고 정교한 불상인데 애당초 번양(番ꞥ陽)에 있던 것이라고 할 뿐, 처음 조성된 유래에 대해서는 아무도 아는 바 없다. 송(宋) 휘종(徽宗) 정화(政和1111~1117) 연간에 전감(錢監:쇠돈 만드는 곳의 우두머리)이 그 불상을 가져다가 풀무에 넣어 무려 3일 동안이나 녹였지만 형태와 색상이 더욱 선명하였으므로 모두들 놀라서 그 불상을 요주(饒州)의 광효사(光孝寺)에 봉안하고 “벽화금동석가보상(辟火金銅繹迦寶像)'이라 이름하였다. 광종(光宗) 소흥(紹興1190~1194:원문의 “소흥'은 잘못으로 생각됨)에 광효사의 주지 보걸(普傑)스님이 화공에게 명하여 그 불상을 그리고 또 돌에다 새겼다. 회계(會稽)의 중교(仲皎)스님이 찬(讚)을 썼는데 거기에 이런 구절이 있다.


부처님께서 부처 삶는 놈을 만났네

불꽃 속에 넣어서 녹이려 했지만

삼일 동안 들판에 불똥이 튕길 뿐

큰 용광로 속에서 끄떡도 안했다네.

作家會遇殺佛手  置之列焰令銷鎔

火星迸野亘三日  巍巍不動洪爐中


그후 사씨(史氏)가 정권을 잡자 그 불상을 사씨에게 바쳐 결국 절좌(浙左) 지방까지 내려오게 된 것이며, 금조(今朝:明) 홍무(洪武) 임술년(1382) 보월스님이 사씨에게 돈을 주고 산 것이다.

또한 해회사(海會寺)에 지난 날 안휘(顔輝)가 손수 그린 관음성상이 한 폭 있었는데 필력이 정묘하고 채색이 엄숙하면서도 아름다워 세상에 보기 드문 것이었다. 원 지정(元 至正:1341~1367) 연간에 성 안에 사는 고씨(高氏)가 양황참법(梁皇懺法)의 예를 거행하면서 삼일 동안 그 그림을 모셔다가 불단을 마련하였다. 공양을 끝마치고 모든 사람들이 흩어진 저녁 2경(二更) 무렵 그 그림에서 큰 빛이 쏟아져 집 밖으로 뚫고 나갔다. 저자 사람들은 불이 난 줄 알고 불을 끄려고 정신없이 달려왔는데 그것은 그림에서 쏟아져 내린 빛이었다. 그후 저씨(氏)와 장씨(張氏)가 불사를 거행한 후 공양에 청하니 처음처럼 상서로운 빛이 났었다.

청정법신은 일체 만물을 포섭한다. 경에 이르기를, 삼천대천세계에 겨자씨 만한 곳이라도 보살의 신명(身命)이 계시지 않는 곳은 없다고 하였다. 중생에 응하여 모습을 나투시고 인연 따라 감응하니 어느 곳이라도 부처님이 계시는 곳 아닌 데가 없다. 이를 비유하자면 태양이 하늘에 떠서 강물 속에 그림자 비치면 보는 사람마다 각기 하나의 태양이 그 사람을 따라 다니는 것과도 같다. 불보살의 신비한 조화를 비교해 보면 어찌 그 차이가 만배에 그치겠는가?

이제 청동으로 만든 석가상과 관음의 그림을 보면 그 영검이 이와 같으니 불상과 진신을 두 가지로 생각하여 깊은 공경심을 내지 않을 수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