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문숭행록(緇門崇行錄)

(제1장) 9. 시종으로 의심받다〔人疑僕從〕

通達無我法者 2008. 3. 10. 15:00

 

 

 

당(唐) 나라 승원(承遠)스님은 처음 성도(成都)에서 수학하였고, 그 후에는 형산(衡山)의 서남쪽 바위굴에서 거처하였다.   사람들이 음식을 보내주면 먹고 보내주지 않으면 풀이나 나무열매를 먹을 뿐이었다.

   그의 높은 도를 흠모하는 사람이 하루는 벼랑의 골짜기로 찾아갔다.   깡마른 몸, 때낀 얼굴로 땔감을 짊어진 사람을 만났는데 시종하는 사람이라고 여겨 소홀히 대하고 그 사람이 바로 승원스님인 줄을 몰랐다.   대종(代宗)황제가 그의 명성을 듣고, 그 고을을 반주도량(般舟道長)이라고 이름지어 하사하였다.   세상에서는 그를 염불종의 3조(三祖)라고 부른다.

 

   찬탄하여 한 마디 붙인다.

 

   띠풀을 얽어 지은 요임금의 궁궐을 촌집인가 의심하였고

   의복이 남루했던 우임금의 모습을 촌사람인가 의심하였네.

   하물며 발우와 누더기로 몸을 지탱하는 불제자에 있어서랴.

   요즈음 사람들은 사치스럼 복식에 물건까지 쌓아두고서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을까 염려하며

   의기양양하게 마을을 지나가는 이가 있으니

   조금이라도 부끄러워해야 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