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번째 날, 아침 법문
수행자 여러분, 오늘이 마지막 날입니다. 수행자 여러분들께서는 여러분이 할 수 있는 만큼 마지막 시간까지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주십시오. 이 수행이 끝나는 시간까지 여러분의 노력을 줄이지 말고, 뒤로 물러서지 말고 계속하십시오.
수행자 여러분들을 위해서 많은 분들이 이 수련회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노력을 게을리 하지 않았습니다. 마지막 시간까지 수행을 계속 이어가도록 하십시오.
사두! 사두! 사두!
열번째 날, 회향 법문
오늘 법문의 제목은 가장 좋은, 가장 바람직한 삶과 윤회에서 벗어나는 길입니다.
이와 같이 가장 좋은, 가장 바람직한 삶의 필수적인 법(法. dhamma)은 네 가지입니다.
1. 계의 법(戒의 法. siiladhamma)입니다.
2. 보시의 법(布施의 法. daanadhamma)입니다.
3. 믿음의 법[信心의 法. saddhaadhamma]입니다.
4. 자비의 법(慈悲의 法. mettaadhamma)입니다.
1. 계의 법(戒의 法. siiladhamma)입니다.
계의 법은 신(身), 구(口), 의(意)라는 세 가지 행(行)을 통해서 불선업을 쌓지 않도록 자신을 제어하는 것입니다. 신, 구, 의라는 삼업 가운데 제일 첫 번째로 제어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 구업(口業)입니다. 즉 말로 행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가 마음으로 짓는 업입니다. 세 번째로 제어해야 할 것이 몸으로 행하는 업입니다.
첫 번째, 구업으로 여러분이 말을 하기 전에 마음으로 이 말이 선한 말인가? 먼저 생각하고 말을 제어해야 합니다.
두 번째, 마음의 제어는 어떤 생각을 할 때 이 생각이 좋은 생각인지 나쁜 생각인지 알아야 합니다.
세 번째, 몸으로 하는 행을 제어해야 합니다. 이 행동이 잘못된 것인지, 이익이 있는 것인지 없는 것인지, 이렇게 행한 것이 선한 것인지 불선한 행인지 알고 해야 합니다. 이처럼 삼업을 제어하면서 살아간다면 여러분들은 현재에서도 미래에서도 행복할 것입니다.
2. 보시의 법(布施의 法. daanadhamma)입니다.
보시를 할 때는 보시를 하기 전에도 기쁜 마음으로 해야 하고, 보시를 할 때도 기쁜 마음으로 하고, 보시를 한 뒤에도 기쁨 마음과 함께 해야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 가지가 포함되어야 좋은 의지를 담은 보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시를 하기 전에 기쁜 마음이면 행복하고, 보시를 할 때도 기쁜 마음과 함께 하면 행복하고, 보시를 한 뒤에도 계속 기뻐함으로써 행복합니다.
(1) 보시를 할 때 가져야 할 두 가지, 또는 세 가지 마음가짐이 있습니다.
① 먼저 보시를 할 때는 욕심이 없는 마음에서 해야 됩니다. 욕심이 없이 행하는 보시란 자신의 소유인 것을 남에게 준다는 욕심이 없는 좋은 마음입니다.
② 다음으로 화냄이 없는 마음으로 보시를 합니다. 이것이 자비입니다. 여기서 화냄이 없는 마음이란 것은 보시를 받는 분에 대한 자애로운 마음입니다. 보시를 받는 분이 꼭 필요할 때 쓰시고 좋은 마음으로 써 주십시오, 하는 자애로운 마음과 함께 하는 화냄이 없는 마음입니다.
내가 올리는 보시 물이 예를 들면, 가사나 음식이라면 이 가사를 입으실 때, 또 이 음식을 드실 때 행복하시기를, 건강하시기를 하는 자애를 보내는 마음과 함께 드리는 것입니다.
이처럼 욕심이 없는 마음과 화내지 않는 자애로운 마음의 보시를 두 가지의 요소라고 합니다. 이것은 두 가지의 선한 의지로 드리는 보시라도 말 할 수 있습니다.
③ 보시를 할 때는 어리석지 않음(amoha)으로 해야 합니다. 빨리어 아모하(amoha)는 어리석지 않은 것을 말하고 모하(moha)는 어리석음을 말합니다.
어리석지 않은 마음으로 하는 보시는 분명한 앎과 함께 보시를 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분명한 앎은 지혜와 함께 하는 보시라는 것입니다. 이는 여러분들께서 선업의 결과를 믿으시고 정신과 물질이 모두 무상, 고, 무아임을 알아 분명한 앎과 함께 하는 보시를 말합니다.
그래서 욕심이 없는 마음으로 하는 보시, 화냄이 없는 마음으로 하는 보시, 어리석지 않은 분명한 앎과 함께 하는 보시, 이 세 가지의 요소, 세 가지의 선한 의지를 가지고 하는 것이 가장 좋은 보시인 것입니다.
(2) 다시 보시의 종류는 세 가지가 있습니다. 같은 보시이지만 가장 낮은 보시, 중간의 보시, 가장 가치 있는 보시, 이렇게 세 가지가 있습니다.
① 가장 낮은 보시란 보시를 할 때, 사람으로 다시 행복하게 태어나길 바라는 것이나, 아니면 범천에서 행복하게 태어나기를 바라면서 보시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적(知的)이지 못한 사람이 하는 낮은 단계의 보시입니다. 왜냐하면 인간적인 행복함이 고(苦)라는 것을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범천에서 태어나는 것 역시 고(苦)라는 것을 모르므로 해서 고를 원하는 마음으로 보시를 하기 때문에 가장 낮은 보시라고 합니다.
② 중간 등급의 보시란 자기 자신만의 열반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하는 보시입니다.
③ 가장 가치 있는 보시는 가장 지적이고 지혜와 함께 하는 보시입니다. 이는 자신의 열반을 얻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열반을 얻게 하기 위해서 하는 보시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보시가 가장 가치 있는 보시입니다.
예를 들면 이 센터를 설립하신 분의 목적은 자신이 열반을 얻기 위한 것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모두 열반을 얻기 원하는 마음에서 이 센터를 보시하셨을 것입니다.
<빨리어 다나(daana)는 보시(布施)의 뜻으로 깨끗한 마음으로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보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을 다나담마(daanadhamma)라고 합니다.>
3. 믿음의 법[信心의 法. saddhaadhamma]입니다.
보시를 할 때 항상 깨끗한 마음으로 보시를 하셔야 합니다. 마음이 깨끗할 때는 수행자의 몸도 깨끗해집니다. 마음이 아름다울 때는 몸도 역시 아름다울 것입니다.
지금 여기 많은 수행자가 계십니다. 여기 계신 모든 분들이 과거에 보시공덕을 쌓은 것은 똑 같습니다. 그 보시공덕으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하지만 여기 계신 분들의 모습이 다 다른 것은 전생에서 보시를 행할 때 어떤 마음으로 보시를 했느냐에 따라 그 결과로써 모습도 다 다릅니다.
4. 자비의 법(慈悲의 法. mettaadhamma)입니다.
얼마만큼 계속 사람으로 태어났고 또 아무리 부자이고 아름답다고 해도 자애로운 마음이 없다면 그 사람은 불행한 것입니다. 여기서 자비를 보낸다는 것은 '다른 사람이 행복하기를,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 안에는 용서와 참음이 함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행복해지기를 원한다면 용서하는 것을 익혀야 하고 많이 참아야 합니다. 정말 행복하길 원하고 자애로운 마음으로 살기를 원한다면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거나 찾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거나 알게 되면 자신의 마음은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용서함으로써 행복하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많이 참음으로써 행복하고, 다른 사람의 허물을 보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행복해 지는 것입니다.
마음과 몸이 행복해 지기를 원한다면, 이 생에서도 다음 생에서도 행복하기를 원한다면, 지금까지 말씀드린 네 가지 법과 함께 해야 하는 것입니다. 계율과 보시와 믿음과 자비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도 이 네 가지 법을 '살 때도 두려움이 없는 법이고, 죽을 때도 두려움이 없는 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음은 우리를 열반으로 이끄는 네 가지 법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1. 열반에 이르는 네 가지 법 가운데 첫 번째는 오온이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자신을 볼 때,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것을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알아야 합니다. 태어났으므로 죽을 수밖에 없고, 이 몸이 무상하다는 것을 분명하게 아셔야 합니다.
이처럼 항상 하지 않는 무상을 숙고함으로써 갈애, 자만심, 내가 있다는 잘못된 견해인 유신견(有身見)이 제거될 것입니다.
2. 두 번째는 이 세상에는 의지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아들과 딸들은 부모를 의지 할 것이 못되고 부모 역시 아들, 딸들을 의지할 것이 못됩니다. 부모나 아들, 딸 모두가 무상과 고와 무아로 항상 하지 않는 것을 앎으로 해서 의지 할 것이 못됩니다. 부모는 아들과 딸들이 아플 때 어떻게 해 줄 수 없고 자식이 죽을 때도 어떻게 해 줄 수 없습니다. 자식도 역시 부모가 아프거나 돌아가실 때 어떻게 해 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항상 하지 않는 것, 즉 무상은 의지 할 것이 못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만일 여러분들이 무상을 의지한다면 잘못된 것에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무상한 것을 의지하는 것이 얼마나 어리석다는 것을 많이 보실 수 있을 것입니다. 세상사는 것을 한번 보십시오. 부인이 남편을 의지했을 때 남편의 고통을 부인 역시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는 정말 의지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아시고 수행을 통해서만이 바른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을 여러분께서 아셔야 합니다.
3. 세 번째는 수행자 여러분이 세상을 떠날 때 내 소유의 물건이 없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자신이 소유했던 모든 물건 역시 항상 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몸 역시 항상 하지 않다는 것을 아셔야합니다. 그래서 모든 물건이나 자신까지도 항상 하지 않으므로 해서 죽을 때는 내가 애착했던 좋은 물건들을 다 놓아야 하는 것입니다.
재물이 사람을 버리던가 사람이 재물을 버립니다. 그러므로 자신의 것이 없다는 것을 숙고한 후에야 갈애와 자만심과 잘못된 견해가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수행하므로 해서 열반에 다다르게 됩니다.
4. 네 번째는 갈애의 본성을 아는 것입니다. 여기서 갈애란 것은 원하는 마음입니다.
항상 갈애가 있다면, 항상 원하고 거기에는 만족이 없고 충족이 없습니다. 만원을 원했고 만원을 가진 뒤에는 다시 십 만원, 백 만원.... 끝도 없이 원하는 마음이 이어집니다. 이런 물질적인 것을 원하는 마음도 끝이 없고, 그 다음에는 물질만 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에 대한 욕심이 생기고, 설사 대통령이 되었어도 욕심이 거기서 그치지 않고 다른 나라까지 통치하기를 원하는 것처럼, 욕심은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욕심을 대양에 비유하셨습니다. 대양을 한번 보십시오. 항상 많은 물이 들어오지만 꽉 차는 법이 없습니다. 만족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들에게 욕심이 있는 한 거기에는 만족 충족이 없고 계속 원하는 마음만 있어 좀더 갖기를 원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갈애를 집제(集諦)로 비유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과거의 갈애가 원인이 되어 현재 고(苦)와 함께 살아야하며, 현재의 갈애를 원인으로 미래 역시 고와 함께 태어나고 고와 함께 살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욕심이 끊어지지 않는 한 고도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욕심이 끊어졌을 때 고통도 끊어지는 것입니다.
수행자께서 정말 열반을 얻기를 원한다면 욕심 내는 마음을 제거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여기서 탐심(貪心. lobha)은 자신의 몸을 좋아하는 것, 남편 아들 딸 친척들을 좋아하는 마음, 재물을 좋아하는 마음들이 포함됩니다. 그래서 자신이나 가족이나 재물에 대한 욕심을 제거해야 하는 것입니다. 자신의 몸이나 가족 친척 재물 등에 대한 욕심을 제거하지 못한다면, 자신의 몸이나 가족 친척 재물들로 인해 고통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오온이 있는 것이 허물이 아니고 욕심이 있는 것이 허물이 되는 것입니다. 남편 부인 아들 딸이 있는 것이 허물이 아니고 거기에 탐심이 있으므로 해서 허물이 되는 것입니다. 재물이 있는 것이 허물이 아니라 재물을 탐하는 마음이 허물인 것입니다.
열반을 원한다면 자신이나 아들 딸 부모 재물 등이 항상 하지 않다는 무상을 알고 보셔야 할 것입니다. 욕심을 제거하지 못했을 때는 왜 욕심을 제거 못했는지 숙고한 후 욕심을 제거해야 합니다. 이 네 가지를 이해한다면 여러분께서는 탐심을 제거할 수 있고 탐심을 제거하면 여러분은 열반에 도달하게 될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께서 이 수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셔서 정말 좋은 삶, 바람직한 삶을 살기 원한다면 앞에서 말씀드린 네 가지(계율, 보시, 믿음, 자비)와 함께 하는 생활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두! 사두! 사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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