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어(法語)

分半座

通達無我法者 2008. 8. 18. 09:12


공불기 2549년. 6월. 1일/무비스님



     세존이 가섭과 자리를 반 나누어 앉다



   오늘은 염송에 있는 네 번째 이야기. 다자탑전에서 자리를 반을 나누어서 가섭에게 앉히다 하는 그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온 염화사중의 이심점심의 내용과 또 娑羅樹下(사라수하)에서 槨尸雙浮(곽시쌍부)의 내용과 아울러서 소위 三處傳心(삼처전심) 이라고 하는 대용중의 하나입니다.


   三處傳心이란 부처님께서 가섭존자에게 마음을 전했는데, 세 곳에서나 그렇게 전해서, 우리 선종에서는 가섭존자가 부처님의 마음을 이어받은 유일한 분이라고, 그 법맥을 아주 철저히 굳히는 그런 어떤 의도 하에서, 다른 사람이 많았는데도, 훌륭한 제자들이 많았음에도, 가섭존자를 第一祖(제1조)로하고, 또 가섭존자는 第一祖로할 만치, 세 곳에서나 부처님의 마음을 전해 받은 그런 역사가 있다는 이런 이야기입니다.


이것은 잡아함경에 나오는 이야기인데, 세존께서 다자탑 이라고 하는 탑 앞에서, 수많은 대중들에게 설법을 하시는데, 가섭존자가 늦게 도착했습니다.

   그래서 세존께서는 그와 자리를 나누어, 앉도록 했다. 그러니까 평소에 없던 일이었기 때문에, 대중들은 어리둥절해했다.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렇게 기록이 되어있습니다. 이것이 예사롭지 않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영산회상에서 부처님께서 꽃을 들어서 보였는데, 설법은 아니 하시고, 꽃만 들어 보였는데, 대중들은 그 뜻을 아무도 몰랐다. 그런데 가섭존자가 그 뜻을 알았는지, 빙그레 웃었다고 그러죠.

  염화시중. 또 염화미소. 영산회상. 거렴화 이런 말로 표현됩니다.

   우리 인터넷방송을 하는 저의 카페 이름도, 그런 뜻에서 염화실 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지요.

   이 염화라고 하는 표현은 거기에 깊은 뜻은 그만 두고라도, 꽃 이라고 하는 사실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그리고 꽃을 이렇게 들어서 대중에게 보였다.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 자연이 만든 가장 아름다운 것을 부처님이 들어서 대중에게 보였다하는 그 표면적인 것만 가지고도, 아주 멋진 광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평소에 부처님이 말씀으로야 설법을 많이 하셨죠. 그런데 어느 날, 말씀으로 하시지 않고, 꽃만 들어 보였다.

우리는 거기에 무슨 깊은 뜻이 있는 것으로 천착을 합니다. 그렇게 천착해서 이해될 뜻은 아니지요. 단지 그것뿐 입니다.

꽃을 들어 보이고, 꽃을 들고 또 대중은 보고, 그것밖에 더 있습니까? 사실은 그런 것이죠. 꽃을 들어 보이고, 대중은 그것을 볼 줄 알고...


공자도 그런 말을 했지요. 目擊(목격)이 道前(도전)이라. ←눈을 서로 마주치는 거기에, 바로 도가 있다. 유교에서도 이런 표현이 얼마든지 있는데, 불가에서 꽃을 들었다. 그 든 꽃을 우리가 봤다는 그 사실. 그러면 다 들어내 보인 것이고, 그 이상 뭐 달리 다른 것은 없습니다.

   그런데 거기서 알량한 지식을 가지고, 자꾸 이리저리 우리가 천착을 하는 것이지요.

   그리고 사라수하에서 곽시쌍부 라고 하는 것도, 부처님께서 열반하셨는데, 곽 속에 들어가 계셨어요 벌써.


   그런데 제일 큰 제자라고 하는(소위 선가에서 말하는 이야기죠.) 제일 큰 제자라고 하는 그 가섭존자가, 늦게야 도착했다는 것입니다. 벌써 화장을 했어야 옳은데가섭존자가 도착을 아니 했기 때문에, 상수제자인 가섭존자가 와야 화장을 할 그런 상황 이였기 때문에, 가섭존자가 늦게 도착하니까, 돌아가신지 여러 날이 된 부처님이 두 발을 곽 밖으로 내 보였다.


   이것은 흔히 49제를 지낼 때, 염불문 에도 나옵니다. 곽시쌍부라고 하는 낱말이 나오는데,  총영도중 에 수유청리 라. ←달마스님이 불생불멸의 도리를 보여준 것은, 중국에서 돌아가신지 오래 됐는데, 총영이라고 하는 그 길에서, 한 쪽에 짚신을 꿰어 차고, 넘어가다가, 사신과 마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많이 나누었다 하는, 달마대사 총영도중 수유청리 하는 이런 염불과 아울러서 사라수하에서 곽시쌍부 라. 세존은 곽시쌍부 로서 불생불멸의 도리를 보였고, 달마대사는 수유청리 로서 불생불멸의 도리를 보였다. 이렇게도 풀이를 많이 일반적으로 하지요.


   그런 그 곽씨쌍부와 아울러서, 염화시중 곽씨쌍부와 아울러서 오늘 이야기하고자 하는,  다자탑 앞에서 가섭존자가 늦게 도착했는데,  세존이, 앉은 자리 반을 나눠가지고 거기에 앉게 했다.




   그런데 어떻게 그럴 수가 있는가 하고, 대중들은 어리둥절했다. 거기에 오고가는 마음의 거래가 있었다고 보는 것이지요. 그래서 삼처전심이라고 그렇게 합니다.

   자리를 나누는데 마음 없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꽃을 드는데 마음 없이 있을 수 없는 일이고, 곽씨쌍부도 역시 마음 없이 있을 수 없는 일이예요. 알고 보면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것이.


   그 뭐 얼마든지 자리를 나누어서 앉힐 수도 있습니다. 자리가 없어서 앉힐 수도 있고, 있어도, 좀 자리 양보해서 앉힐 수도 있는 거죠.

   단수~운 하게 생각을, 아주 지극히 단순 하게 생각하면 그겁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더 이상 자꾸 천착을 하니까 불교가 멀어지는 것이지요. 불교의 본령에서 자꾸 멀어집니다.

   늦게 올 수도 있는 것이고. 늦게 오면 자리를 양보해줄 수 있는 것이지요.

   그것이 그냥 평범한 일 아닙니까? 그야말로 평상심이지요. 그래 거기에 무슨 깊은 뜻이 있다 해도 상관없고, 없다 해도 상관없고, 그냥 그 사실 그것뿐이지요.


   그렇게 이해해도 괜찮지 않겠는가? 부처님의 이런 행적이 여러 가지로 이야기가 되는데, 그것을 삼처전심이다 이렇게, 사실은 아무리 삼처전심 아니라, 무슨 이야기라도 그것을 평범한 이야기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평범한 이야기인 것이고, 그것이 아주 이상하고 궁금하고, 큰 문제로 생각이드는 사람들은 또 그렇게 풀지 못할 큰 문제로, 떠오를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各自(각자)의 그런 몫이고, 각자의 불교적 살림살이. 불교적 안목에 맡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염송에 불인스님이 이런 표현을 했어요. 다자탑 앞에서 부처님이 가섭존자에게 자리 반개를 나눠줬다. 그것은 이심전심의 도리다. 이렇게 하면서, 그것을 영산회상에서 직접 설법을 들었는데, 다자탑 앞에서 거듭 보여주심을 받았네!

영산회상에서 직접 설법을 들었는데, 하는 것은 가섭존자가 영산회상에서 직접 설법을 들었다. 꽃을 들어 보이고 그것을, 또 가섭존자가 미소했다. 이것을 뜻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두 번째, 다자탑 앞에서 거듭 보여주심을 받았네!


   뭘 보여줬다는 말입니까? 그저 자리 양보 했지요. 거기에 마음이 있다고 하든지, 무슨 깊은 뜻이 있다고 하든지, 두 분 만이 주고받는 그런 암거래가 있다고 하든지, 그것은 각자 불교적 안목의 몫이라고 하겠습니다.

당시의 그 하나를 아는 이 누구인가? 바로 그 소식! 그걸 그렇게 어리둥절해 가지고, "무슨 뜻인가?"  "무슨 뜻인가?" 이렇게 추구해야 되는지? 아니면 그대~에로 아무 마음 없이, 아무 사량 분별없이 그대로 이해하는가?


당시의 그 하나를 아는 사람이 누구인가? 무한한 맑은 바람 우주에 나부끼네! 그것을 아주 삼처전심의 그 하나로, 이렇게 보아서 그것이 뒷사람들에게 전해지고, 또 더 널리 퍼지고 확대되고 이렇게 해서, 불법이 온 천하에 널리 전해지게 됐다라고 하는, 그것을 아주 아름답게 표현을 하면서, 무한한 맑은 바람 우주에 나부끼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그런데 아주 순리로 표현했지요?


   그것을 아주 역리로 표현을 해서 더, 불인스님의 표현에다가 더 힘을 실어준 그런 정혜스님의 시가 한 수가 있어요.

비밀히 전하고 자리를 나누었다니, 얼굴에 침을 뱉어줄 것을... ←그러니까 비밀하게 이심전심 하고, 거기에 자리를 나누어 주었다. 자리를 나누어 주는 데는, 비밀히 이심전심 하는 암거래가 있었다 이거죠.

내가 거기에 있었다면 얼굴에 침을 뱉어줄 것을... 속 다 들여 보였다 이런 뜻이지요. 거 무슨 짓이냐 이거죠. "무슨 짓거리냐?" 그렇지 않고 그것을 그대로 놓아두었기 때문에, 침을 뱉어주지 않고 그 자리에서, 그런 일을 누가 한사람이 없고, 그대로 두었기 때문에, 자손들이 앙화를 면치 못했네. 이렇게 표현을 했습니다.


   아주 역으로 표현 했지요. 뭐 라고 할까요. 극찬을 했다고나 할 까? 너무 극찬이라서, 자손들이 앙화를 면치 못했네. 앙화란 것이 뭐지요?

   진짜 앙화. 재앙이라고 하는 것은, 보통 우리가 세속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재앙이 여기서는 아니지요.

   온갖 생로병사와 우비고뇌가 다 사라진 大死覺活(대사각활)!← 정말 진정 모든 것이 다 죽어 버린 뒤에, 비로소 다시 살아나는, 모든 팔만사천 번뇌. 탐. 진. 치 삼독과 팔만사천 번뇌가 다 사라진 그런 죽음! 그것이 자손들의 앙화다. 이렇게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은 역으로 극찬을 한 것이라고 저 나름대로 해석할 수가 있겠습니다.

   이것은 다자탑전 분반좌 라고 하는, 이것은 이렇게 삼처전심의 하나이고, 그 삼처전심은 아울러 염화미소와 또, 그 다음에 사라수하 곽씨쌍부와 아울러, 선가에서는 아주 높이 일컬어지는 그런 내용중 의 하나입니다.

   오늘은 삼처전심 중에서 다자탑전 분반좌 에 대한 말씀을 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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