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이야기·이규행

39. 독부양녀(毒婦楊女)

通達無我法者 2008. 9. 22. 18:35

 

 

독부양녀(毒婦楊女)

찻잔 속에 독을 넣어 달마에게 바쳤는데…

달마는 짚신 한짝으로
화신을 만들어 죽은척
“不二法 구하지 않는구나”

호들갑 떨며 땅에 엎드려

교만심이 싹트는 양연지

신광을 제도하지 못하면



달마는 신광과의 첫 만남이 어긋난 것이 못내 아쉬웠다. 하지만 아직은 시절 인연이 아니기에 어쩔 도리가 없었다. 후일을 기약한 달마는 선종이 창성할 예정지인 소실산으로 발길을 재촉했다. 동록관(東綠關)이라는 곳에 이르렀을 때였다. 호젓한 길 맞은편에서 웬 여인이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달마는 순간적으로 당혹감을 느꼈다. 그렇다고 피할 수도 없는 일이었다. 아니나다를까 여인은 당돌하게도 먼저 말을 걸어 왔다.

“노스님께서는 어디서 오셔서 어디로 가시는 길인지요?”
달마는 곧이곧대로 대답했다.

“나는 서역에서 왔소이다. 무제와 신광 대사를 제도하려고 왔는데 아직 시절 인연이 무르익지 않아 새로이 인연 있는 곳을 찾아가고 있는 중이외다.”이 말을 들은 여인은 호들갑스럽게 땅에 엎드려 예를 갖추었다.

“스님, 저희 집으로 가시지요. 저는 어릴 때부터 불법에 귀의해 집에 조그만 법당까지 갖추고 있습니다. 저희 집에서 잠시 쉬어 가시면 그보다 더한 복록이 없겠습니다.”이 여인은 누구인가. 이름은 양연지(楊 脂). 달마의 전기(傳記)에 나오는, 악독한 여인의 표본이다. 양연지는 달마가 무제와 신광의 이름을 아무렇지도 않게 들먹이는 것을 보고는 ‘이거, 보통 스님이 아니구나’고 짐작했다. 이 스님을 집에 모셔 환대하면 반드시 큰 이득이 있을 것이라는 사심(邪心)이 발동한 나머지 기를 쓰고 달마를 붙잡으려 한 것이다.

달마는 양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 분명 예사로운 여인이 아니었다. 사심으로 가득 찬 것이 훤하게 보였다. 그러나 이 여인의 청을 야박하게 거절할 수가 없었다. 사심을 시험해 보는 것도 법을 펴는 것이라 여기고 안내하는 대로 따랐다.

양연지는 달마를 법당으로 안내했다. 달마를 법좌 위에 모신 다음 삼배의 예를 올렸다.

“제자 양연지가 스승님께 인사 올립니다. 저는 오랫동안 재계(齋戒)하며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아직 명심견성(明心見性)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오늘 인연이 있어 밝은 스승님을 만난 것을 특별한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저는 기쁜 마음으로 스승님의 제자가 되기를 원하고 또 원하옵니다. 자비를 베푸시어 제자로 삼으시고, 정법을 가르쳐 주시기 바라나이다.”달마는 여인의 말을 들으면서 어이가 없었다. 짐작은 했지만 너무나 저돌적이었다. 달마는 여인의 얼굴을 똑바로 쏘아보면서 말했다.

“지금 그대가 구도발심(求道發心)한 것은 결코 사소한 일이 아니오. 더군다나 여자의 몸은 오루체(五漏體)로서 허물이 많기 때문에 하늘같이 높고 바다같이 깊은 대원(大願)을 세우고, 삼귀오계(三歸五戒)를 굳게 지키고 바른 생각을 품지 않고서는 어려운 일이오. 만일 원을 세운 대로 행하지 않으면 도리어 지옥에 떨어질 뿐이고, 만겁이 되어도 구제받지 못할 것이오. 그러므로 두번 세번 생각하고 원을 세우는 것이 현명할 것이오. 그렇게 가벼이 원을 세우고 맹세해서는 안 되는 일이오. 알겠소이까.”달마는 점잖게 훈계하면서 거절했다. 양연지는 조사의 얼굴을 쳐다보면서 황당하다는 듯 야릇한 표정을 지었다. 연지는 호락호락하게 물러설 여인이 아니었다. 도리어 달마 조사의 무릎 앞으로 바짝 기어들면서 읍소했다.

“부처님 앞에서 맹세하나이다. 만약 제가 법을 얻고도 스승님의 은혜를 저버리거나 삼귀오계를 지키지 않고 중도에서 그만두는 일이 있으면 영원히 고해(苦海)에 빠져서 만겁(萬劫)을 지나도 삼계(三界)를 벗어날 수 없을 것입니다. 스승님, 부디 자비를 베푸시어 가르침을 주시옵소서.”비록 연지가 애절한 목소리로 말하고는 있지만 달마는 그 목소리에 진실성이 없고 도리어 사심이 듬뿍 깃들여 있음을 새삼 느꼈다. 달마는 대답 대신에 게송을 읊었다.

“만약 삼계고해에 있으면서 정법을 구하고자 한다면, 오로지 몸 속에서 동정(動靜)의 공(功)을 밝혀야 하느니라. 법은 만물을 낳고 삼계를 꿰뚫었으니, 도(道)는 천지를 감싸고 허공에 가득하도다. 뼈를 뚫고 골수를 투과하여 이르지 않은 데가 없고, 팔방(八方)에 응현(應現)하니 그 묘(妙)가 무궁하도다. 지수화풍(地水火風) 사대(四大)는 두루 돌아 진정한 주인노릇을 하나니, 안으로는 형상이 없고 밖으로는 흔적이 없구나. 항상 정기신(精氣神) 삼가(三家)가 와서 상회(相會)하면 내외일체(內外一體)가 황금빛을 나타내리라.”달마의 목소리는 여인의 폐부를 찔렀다. 연지는 감격하여 어쩔 줄 몰랐다. 달마는 이어서 게송을 몇 구절 더 읊었다.

“사람과 법, 두 가지를 다 잊는 것이 진공(眞空)이니라. 활발하게 동정(動靜)의 공을 닦는 것도 그 속에서 해야 하느니라. 자기 몸속에서 참나를 찾아 얻으면 하늘의 명을 받아 극락궁(極樂宮)으로 비승(飛昇)하리라.”여인은 달마의 법어를 한 구절도 놓치지 않고 몽땅 외웠다. 혹시 잊을까봐 몇 날 몇 밤을 암송했다. 양연지의 몸과 마음에는 이때부터 뜨거운 열감(熱感)이 솟으면서 이상한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연지는 금새라도 하늘로 날아오를 듯이 기뻤다.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변화는 아무리 생각해도 달마 조사의 구수심인(口授心印)을 받은 때문이라고 여겨졌다. 그렇다면 자기는 이미 전법(傳法)을 받은 법제자가 된 것이 분명한 듯싶었다.

비록 달마 조사로부터 확실한 언질은 없었지만 연지는 스스로 법을 이어받은 것으로 착각했다. 그녀의 착각은 급기야 엉뚱한 상상으로 번져 갔다. 연지는 전법과 관련한 고사(故事)가 머리에 떠올랐다. 명사(明師)로부터 심인(心印)을 받은 제자는 스승을 이어 그 지위에 오른다는 이야기가 그것이다.

달마의 실질적인 후계자가 된 것으로 자부한 양연지는 날이 갈수록 마음 속에 교만심이 싹텄다. 이미 법을 전해 받은 이상 달마를 만나는 것조차 번거롭고 귀찮았다. 만약 달마만 없다면 자기의 존재를 천하에 과시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심지어는 양 나라의 무제와 향산사의 신광 대사도 자기 앞에 무릎을 꿇을 것이라 생각했다. 이렇게 되면 더할 나위 없는 영광이 아니겠는가.

양연지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달마가 자기 집에 머물고 있는 한 그런 날이 쉽사리 올 것 같지가 않았다. 게다가 달마는 좀처럼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연지는 조급한 마음에 마침내 달마를 없애려는 계책을 세우기로 했다. 소리 소문 없이 달마를 제거하는 최상책은 독살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기회를 엿보았다.

달마는 이미 오래 전부터 연지가 무슨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직감으로 알아 차렸다. 하지만 짐짓 모르는 척 하고 그녀의 음모에 걸려들었다. 연지는 날을 골라 찻잔 속에 독을 넣어 달마에게 바쳤다. 그것을 받아 마신 달마는 그 자리에서 피를 토하고 숨을 거뒀다.

전기(傳記)에 따르면 이때 죽은 것은 달마의 화신(化身)이라고 한다. 달마는 짚신 한 짝을 벗어 화신을 만들고 본신(本身)은 감추었다는 이야기다. 이런 사연을 전혀 모르는 양연지는 달마의 장례식을 치르고 동록관의 교외에 매장했다. 속으로는 기뻐하면서도 남들 앞에서는 대성통곡했다. 세상에 스승의 죽음을 공식적으로 알리는 연기를 그럴듯하게 꾸며 댄 셈이다.

달마는 그야말로 통탄을 금할 수 없었다. 동록관을 벗어난 다음 터벅터벅 걸으면서 시 한 수로 속마음을 드러냈다.

“여인이여, 그대를 위해 슬퍼하노라. 너무나 미매하여 자성마저 어둡구나. 기왕에 마음을 돌이켜 재계를 하였다지만, 미처 삶과 죽음조차 규명하지 못했구나. 오루체로는 죄과가 크다는 것을 전혀 생각하지 않았기에, 전생에 지은 죄가 너무나 미매하여 수행을 알지 못하는구나. 여인의 몸으로 태어나 불편도 많고 험난이 거듭되니 삼종(三從)과 사덕(四德)으로 타인의 명을 좇아야 하네. 양연지, 나를 만난 것은 삼세(三世)의 행운이거늘, 진정으로 하나로 관통하는 불이(不二)의 법문을 구하지 않는구나. 여인이여, 비록 말은 잘 하지만 마음이 바르지 않으니, 어찌 가벼이 무자(無字)의 진경(眞經)을 전하리오. 겨우 선기(禪機)의 말 몇 가지를 듣고 우쭐하여, 나를 독살하고 뭇 사람의 스승이 되고자 꾀하는구나. 이로 미루어 내가 온 길은 비록 한 줄기였지만, 내가 떠난 뒤 그 길이 천 갈래 만 갈래로 갈릴 것이 두렵구나. 내가 해야 할 일은 신심 있는 사람을 찾아 도통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라. 혜안으로 사부주(四部洲)를 살펴보니 한 사람도 없구나. 다만 있다면 신광뿐이니 그를 제도하지 못하면 동토에 온 보람을 어디에서 찾으리….”달마는 신광에 대한 생각이 새삼스럽게 간절했다. 소림사에 주석하고서도 신광과 재회(再會)할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

달마를 떠나 보낸 뒤 신광은 이상하게도 허전한 마음이 앞섰다. 달마의 모습과 목소리가 마음 속에서 회돌이 쳤다. 신광은 그럴수록 달마를 잊으려고 애썼다. 그러나 애를 쓸수록 달마의 존재는 그의 마음 속에서 더욱 커져갈 뿐이었다. 신광은 중병이라도 든 듯 신음하기까지 했다. 하루는 꿈 속에서 명부(冥府)의 사자를 만났다. 마침 신광이 법단에 올라 설법을 하려는데 열 사람의 사자가 막아서는 것이었다. 신광은 단에 오르지 못한 채 열 사람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어디서 왔소. 나의 설법을 들으려면 길을 비키시오.”
열 사람의 사자들은 고개를 가로 저으며 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우리들은 유명지옥(幽冥地獄)의 십전염군(十殿閻君)이오. 당신의 법문을 들으려고 온 것이 아니라 당신의 수명이 다하였기에 온 것이오. 당신의 생혼(生魂)을 올가미에 씌워 지옥으로 갈 것이니 따라오시오.”신광은 꿈인지 생시인지도 모른 채 기절초풍할 지경이 되었다.

“나는 그 동안 49년간이나 설법으로 중생을 제도해 왔소. 그 동안 말할 수 없는 고통을 겪으면서도 노력했기에 무량(無量)의 공덕을 쌓았으리라고 믿고 있소. 그런데도 염군의 손길을 벗어나지 못하고 지옥으로 떨어진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아무리 법을 설하고 경전을 강론하더라도 우리의 손길을 피할 수는 없을 것이오.”“그렇다면 우리 불문에서는 아무도 피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오?”“그렇지는 않소. 단 한 사람만은 우리도 어쩔 수 없소.”
“그 사람이 누구요, 가르쳐 줄 수 있겠소?”
“그 사람은 당신도 만난 일이 있을 것이오. 얼마전 이 곳에 왔던 달마대사라는, 얼굴이 까맣게 생긴 화상이 바로 그 사람이오.”이 말을 들은 신광은 너무나 놀라 식은땀을 흘렸다. 그런 훌륭한 스승을 박대하다 못 해 쇠염주로 내리치기까지 했으니 될 말이 아니었다. 우선 염군에게 달마 이야기를 자세히 듣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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