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금강반야바라밀다경 제목 해설

通達無我法者 2008. 9. 26. 12:57

 

 

마음 청정하니 물과 물고기 둘이 아니네
 
구름 걷히고 비 개니 부처의 경지요
안개 끼고 구름 드리니 미혹의 세계라
범부와 성인에 통하니 마하반야요
견고해 무너지지 않으니 금강반야라

금강경오가해는 그 동안 우리가 공부해 온 바와 같이 經의 이름에 대한 다섯 분 선지식의 풀이가 상세하고도 친절하게 소개되어 있습니다. 이는 經의 이름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이 그 만큼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經의 이름 속에 함축된 진리의 대의를 진실로 잘 이해하면 원각경, 능엄경, 화엄경, 대승기신론 등 다른 대승경전의 이해가 쉬워집니다. 진리는 하나지만 진리를 해설하는 다섯 분 선지식의 특성에 따라 그 향기도 각각 다릅니다. 오늘은 일물서에 이어 금강반야바라밀경 제목에 대해 풀이한 함허스님의 향기를 느껴보겠습니다.

一切衆生 內含種智 與佛無殊 但以迷倒 妄計我人 倫沒業坑 不知反省 所以 釋迦老人 示從兜率 降神王宮 入摩耶胎 月滿出胎 周行七步 自顧四方 指天指地 作獅子吼 天上天下 唯我獨尊
일체 중생이 안으로 갖가지 지혜를 지니고 있어 부처님과 더불어 다름이 없건만 다만 모습에 미혹되고 전도되어 망령되이 아상, 인상을 헤아려서 업의 구덩이에 빠져 반성을 알지 못한다. 그런 까닭으로 석가 노인께서 시현(示現)으로 도솔천에서부터 신령스럽게 왕궁에 내려와 마야 부인의 태에 들고 달이 차매 태에서 나와 두루 일곱 걸음을 걷고, 스스로 사방을 돌아보시고 하늘과 땅을 가르키며 “하늘 위, 하늘 아래,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라고 사자후 하셨다.
〈보충설명〉 삼라만상 낱낱이 모두 존귀하다는 가르침은 인류역사에서 부처님을 빼고는 찾아볼 수 없습니다. 만약 부처님이 ‘천상천하 유아독존’이라는 위대한 말씀을 세상에 남기지 않으셨다면, 우리 인간은 영원히 자신의 존귀함을 자각하지 못하고 신(神)에 예속되었을 지도 모릅니다. ‘천상천하 유아독존’ 이라는 이 말씀은 우리 자신이 곧 생명의 진실한 주체이며, 진여의 모습을 갖춘 존엄한 존재임을 가르쳐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여를 깨달아 알면 우리 자신이 곧 부처이고 神인 것을 일깨워주신 말씀입니다. 만물의 중심에는 바로 ‘나’ 자신이 있으며, ‘나’를 둘러싸고 있는 만물에 대한 갖가지 인식 또한 ‘나’로부터 출발하는 것 아닙니까?

年至十九 四門遊觀 觀生老病死 四相相逼 子夜 踰城出家 入雪山 六年苦行 臘月八夜 見明星悟道 初遊鹿苑 轉四諦法輪 次說阿含方等等部 漸令根性純熟 方說此般若大部 開示悟入佛之知見 夫大雄氏之演說般若 凡四處十六會
나이 19세에 이르러 네 곳의 문을 돌아보면서 생로병사(生老病死)의 네 가지 모습이 서로 핍박함을 관찰하시고, 한 밤중에 성을 넘어 출가하여 설산에 들어가 6년 동안 고행하시다가 12월 8일 밤에 밝은 별을 보고 도를 깨달으시고, 최초로 녹야원에 가셔서 사제의 법륜을 굴리셨으며, 그 후로 아함부 방등부 등의 경전을 설하면서 중생의 근성을 점차적으로 순숙(純熟)케 하시고, 바야흐로 이 반야대부를 설하여 부처님의 지견(知見)에 깨달아 들어감을 활짝 열어 보이시니, 대저 대웅씨가 반야를 연설하신 것이 무릇 네 곳의 16회에 이른다.

經二十一載 說半千餘部 於諸部中 獨此一部 冠以金剛 以爲喩者 此之一部 以約該博 金剛一喩 廣含諸義 故 以爲喩也
21년을 지내는 동안 半千餘部(600部)를 설법하고 그 가운데에서 홀로 이 한 부(능단금강경)를 금강이라고 冠을 씌워 비유로 삼은 것은, 이 한 부가 간략하면서도 해박하며, 금강이라는 한 비유가 널리 모든 뜻을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한 것이다.

般若 此爲智慧 何名爲智慧 虛空 不解說法聽法 四大 不解說法聽法 只今目前 歷歷孤明 勿形段者 能說法聽法也 此說聽底一段孤明 輝天鑒地 曜古騰今 行住坐臥 語默動靜 一切時一切處 昭昭靈靈 了然常知 此所以得名爲般若也
반야를 우리말로 번역하면 지혜니, 왜 이름하여 지혜인가? 허공도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四大도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는 것을 알지 못하건만, 다만 이제 눈앞에 또렷또렷하고 홀로 밝아서 모습으로 표현되거나 구속되지 않고도 능히 법을 설하고 법을 듣는 것이 있는데, 이 설하고 듣는 한 덩이 홀로 밝은 것이, 하늘을 빛내기도 하고 땅을 거울하기도 하며, 옛적에도 빛나고 지금도 훨훨 뛰어넘어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의 일체 시간과 일체의 공간에 환하고 신령스러워서, 항상 밝게 하나니 이것이 이름하여 반야라 할 수 있는 것이다.

喩以金剛 意謂何以 此一段孤明 處萬變而如如不動 淪浩劫而宛爾常存 宜乎比乎金剛之堅也 斬斷竹木精靈 截斷彌天葛藤 宜乎比乎金剛之利也 喩以金剛 其意以此
금강으로 비유하신 뜻은 무엇인가? 이 한 덩이 홀로 밝은 것이 만 가지 변화에 처해 있어도 여여하여 움직이지 않으며 무한한 시간과 공간에 빠져서도 완연하게 항상 존재하니 금강의 견고함에 비유하는 것이 마땅하고, 대나무와 나무 같은 것들에 의지하는 정령도 끊어버리고 하늘보다 많은 갈등번뇌도 끊어 버리니 금강의 날카로움에 비유하는 것이 마땅하다. 금강으로 비유하신 그 뜻은 이런 것이다.

亦名摩訶般若 摩訶 此爲大 何名爲大 此一段孤明 語其明則明逾日月 言其德則德勝乾坤 其量 廣大 能包虛空 體遍一切 無在不在 三世 初無間斷時 十方 都無空缺處 此所以得名爲摩訶也
또한 마하반야로 이름하니, 마하는 우리말로 대(大)라고 번역한다. 무엇을 이름하여 대(大)라 하는가? 이 일단고명(一段孤明)이 그 밝기로 말하자면 해와 달을 뛰어넘고, 그 덕을 말하자면 하늘과 땅보다 수승하며, 그 양이 넓고 커서 허공도 능히 포함하고, 본 바탕은 일체에 두루하여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다. 삼세(과거, 현재, 미래)에 걸쳐 처음부터 사이가 벌어져 있지 않은 시간이고 시방에 걸쳐 텅 비고 모자람이 없는 공간이니, 이것이 마하라고 이름할 수 있는 까닭이다.

波羅蜜 此何名爲到彼岸 迷之者曰衆生 悟之者曰佛 雲收雨霽 海湛空澄 霽月光風 相和 山光水色 互映 此悟者之境界也 霧 雲籠 上明下暗 日月 掩其明 山川 隱其影 此迷者之境界也 迷之而背覺合塵 名在此岸 悟之而背塵合覺 名到彼岸 此所以得名爲波羅蜜也
바라밀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저 언덕에 이른다’가 되니, 왜 ‘저 언덕에 이른다’라고 일컫는가? 미혹한 사람을 중생이라 하고 깨달은 사람을 부처라 하는데, 구름이 걷히고 비가 개며 바다가 맑고 허공이 깨끗하여, 비 갠 하늘의 달과 풍광이 서로 어울리고 산 빛과 물색이 서로 비추면 이것이 깨달은 사람의 경계요, 안개가 끼고 구름으로 가리워져 위로는 밝고 아래로는 어두워서 해와 달이 그 밝기를 잃고 산천이 그 그림자에 감춰지면 이것이 미혹한 사람의 경계다. 미혹하여 깨달음을 등지고 티끌에 계합하면 ‘이 언덕에 있다’ 하고, 깨달아서 티끌을 등지고 깨달음에 계합하면 ‘저 언덕에 이른다’ 하니, 이것이 이름하여 바라밀이라 할 수 있는 까닭이다.

經者 徑也 詮如上之妙旨 開後進之徑路 令不涉乎他途 能直至乎寶所 此所以得名爲經也
經이란 것은 곧은 것이니, 위에서의 묘한 뜻과 같아서 후진에게 올바른 길을 열어 다른 길에 빠지지 않게 하고, 능히 보배로운 처소에 곧바로 이르게 하는 것을 일컬음이니, 이것이 이름하여 經이라 할 수 있는 까닭이니라.

又略而釋之則摩訶般若者 通凡聖該萬有 廣大無邊之智慧也 金剛般若者 堅不壞利能斷 鎔凡鍛聖之智慧也 波羅蜜者 悟如是旨 行如是行 超二死海 達三德岸也 經者 以如是言 詮如是旨 現益當世 成轍後代也 或名金剛般若波羅蜜經 或名摩訶般若波羅蜜經 其義以此
또 간략히 해석한다면 마하반야라는 것은 범부와 성인에 통하고 모든 만유(萬有)에 갖추어져 있는 광대무변한 지혜요, 금강반야라는 것은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고 날카로워서 능히 끊을 수 있으므로 범부를 녹여 성인으로 단련하는 지혜이다. 바라밀이란 것은, 이와 같은 뜻을 깨닫고 이와 같은 행을 실천해서 두 가지 죽음의 바다(二死海)를 초월하며 세 가지 덕(三德)의 언덕에 도달함이다. 경이란 것은 이와 같은 말씀으로써 이와 같은 뜻을 설명하여 당세에 이익을 드러내고 후대에 궤철(軌轍. 불명의 이치)을 이루게 하는 것이니, 혹 금강반야바라밀경이라 이름하며 혹 마하반야바라밀경이라 이름하가도 하는 것이다.

題以八字 揚無量義 經以一部 攝難思敎 題稱八字 念過一藏 經持四句 德勝河沙 經義與果報 佛稱不思議 蓋以此也
제목의 여덟 글자로써 무량한 뜻을 드날리고, 경 가운데의 한 部로써 부사의(不思議)한 가르침을 총섭했으니, 제목 여덟 자를 외우는 사이에 하나의 장경(藏經)이 지나가고, 경의 사구(四句)를 수지하는 덕이 항하의 모래 수 보다 수승한지라, 경의 뜻과 과보에 대해 부처님이 부사의라고 칭한 것이 모두 이런 까닭이다.

然 此 只是約敎論耳 若約祖宗門下一卷經 言之則入息出息 常轉經 豈待形於紙墨然後 以爲經哉 所以 古人 道 船若波羅蜜 此經 非色聲 唐言 謾翻譯 梵語 强安名
그러나 이는 다만 가르침을 잡아 말한 것일 뿐이다. 만약 조종(祖宗) 문하의 한 권의 경을 두고 말한다면, 숨을 들이쉬고 내쉬면서 항상 금강경을 굴릴진대, 어찌 종이 위에 적힌 먹물 글자의 모양으로 경이라 하겠는가? 그래서 옛사람이, “반야바라밀이여! 이 경이 모양과 소리가 아니거늘, 당(唐)나라 말로 부질없이 번역한 것이요, 범어(梵語)로도 억지로 이름을 둔 것이로다.” 라고 말했다.

捲箔秋光冷 開窓曙氣淸 若能如是解 題目 甚分明
발을 걷어올리니 가을 풍광이 차갑고, 창문을 여니 새벽 기운이 청정하네. 만일 이와 같음을 능히 알아차리면 제목이 더욱 (나와 둘이 아님이) 분명하리라.

〈보충설명〉
1. 示現: 불,보살이 중생을 교화하기 위한 원력을 세우고 신령스러운 모습으로 사바세계에 나투는 것.
2. 四諦: 苦集滅道의 四聖諦
3. 大雄氏: 크고 웅장한 부처님을 나타낸 말. 마지막의 氏는 존칭.
4. 無在不在 : 信心銘의 宗非促延 一念萬年 無在不在 十方目前 (종체는 촉박하거나 느림이 없어서 한 생각이 만년이요, 있거나 있지 않음이 없어서 시방이 눈 앞이로다. 마음의 본래모습은 시간과 공간의 구애를 받지 않는다는 뜻.)의 인용.
5. 二死: 分段生死(미혹 때문에 윤회하는 凡夫의 생사. 한정된 수명과 신체를 갖게 됨)와 變易生死(윤회를 초월한 보살의 생사. 원력에 의해 변화와 改易이 가능함)
6. 三德: 법신덕, 반야덕, 해탈덕 등 열반의 세 가지 德.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관계.

禪詩 맛보기
요즘 사찰에서 재가불자를 위한 수련대회가 많이 열립니다. 재가불자도 스님의 일과처럼 좌선도 하고, 예불도 합니다. 그래서 이왕이면 마음에 새겨두어 좌선할 때마다 도움이 될 수 있게 송나라, 천동굉지선사의 ‘좌선잠’을 소개하겠습니다. ‘箴’ 이란 중요한 가르침을 적어두고 항상 깨어있는 의식으로 마음에 새기는 것입니다. 묵조선을 강조한 굉지선사는 간화선을 주창한 대혜선사와 같은 시대에 쌍벽을 이룬 스님입니다. 단하자순선사의 법을 이은 굉지선사의 좌선잠을 많이 읽고 소화하면 부처와 조사의 要機가 곧 내 것임을 알아 세상 보는 눈이 달라질 것입니다. 마치 감포 앞바다의 짠 海風이 모래사장을 건너고, 海松을 스쳐지나 토함산에 이르러 석굴암 부처님 앞에 마주서면 부드럽고 온화한 차의 맛처럼 유순해지듯 변화를 느낄 것입니다. 굉지선사의 법통인 일본 조동종의 큰 스승 道元선사는 이 좌선잠을 높이 평가하여 팔만대장경에 넣었습니다.

1) 坐禪箴 (宏智禪師)
佛佛要機 祖祖機要

부처와 부처의 요정(要精)이며 추기(樞機)여, 조사와 조사의 추기이며 요정이여.
不觸事而知 不對緣而照
일과 접촉하지 않아도 신령하게 알고, 인연을 상대하지 않으므로 환하게 비추도다.
不觸事而知 其知自微 不對緣而照 其照自妙
일과 접촉하지 않고도 앎이여, 그 앎이 스스로 精微롭고
인연을 상대하지 않으므로 비춤이여, 그 비춤이 스스로 妙하도다.
其知自微 曾無分別之思 其照自妙 曾無毫忽之兆
그 앎이 스스로 정미로움이여, 일찍이 분별하는 생각이 붙지 않고
그 비춤이 스스로 묘함이여, 일찍이 한 터럭, 한 찰나의 조짐도 끼어들지 않도다.
曾無分別之思 其知無偶而奇 曾無毫忽之兆 其照無取而了
일찍이 분별하는 생각이 붙지 않음이여, 그 앎이 짝 없이 홀로 우뚝하도다.
일찍이 한 터럭, 한 찰라의 조짐도 끼어들지 않음이여, 그 비춤이 취함 없어 밝도다.
水淸徹底兮 魚行遲遲 空闊莫涯兮 飛鳥杳杳
물이 맑아 바닥까지 환함이여, 물고기의 움직임이 느리고 느리도다.
허공이 툭 틔어 가이 없음이여, 나는 새가 아득하고 아득하도다.

〈낱자 풀이〉
1. 不觸事而知의 ‘知’는 우리가 배워서 아는 앎이 아닌 밝고 신령스러운 靈知.
2. 其知無偶而奇의 ‘寄’는 고결하기 때문에 짝할 것이 없어 홀로 우뚝한 것.
3. 其照無取而了의 ‘了’는 貪着을 모두 떨구어서 밝은 것.
〈보충설명1〉 要機(要精과 樞機)는 우주가 생기기 이전, 선악이 벌어지기 이전의 생명의 근원자리입니다. 이는 언설로는 표현할 수 없고 체득을 통해서 이해할 수 있는 부처와 조사의 깨달음의 경계를 말합니다. 굉지선사는 체(體)와 용(用)으로 나누어 對句를 이루면서 이 진리에 관한 詩를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보충설명2〉 일과 마주치지 않고도 신령스럽게 안다는 것은 우리의 몸도 잊고 마음 속 견문각지(見聞覺知)도 모두 사라져 버린 부처와 조사의 삼매의 경지입니다. 이 삼매의 경지가 바탕이 되어야(體) 반연 없는 비춤이(用) 현실에 살아나게 되는 것이지요.
〈보충설명3〉 미(微=〉體. 비어있는 모습), 묘(妙=〉用. 드러난 모습) 등의 표현은 진리에 관한 표현이기 때문에 논리적 언어로 이 해하면 어긋납니다. 진리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보충설명4〉 맑은 물에서 매우 천천히 움직이고 있는 물고기를 들여다보면, 움직이는 듯 움직임이 없어 물과 물고기를 나누어 보기 어렵습니다. 물과 물고기가 서로 걸림 없이 하나로 잘 어울리지요. 마치 우리의 마음이 청정하고 소소영영한 깨달음을 얻었을 때의 모습과같습니다. 또, 광활하고 걸림 없는 허공에 흔적을 남기지 않고 아득히 날아가는 새를 보면 마치 마음을 비우고 모든 사물과 마주할 때의 자재로움과 같습니다.

2) 赤壁賦中에서(蘇東坡)
江上之淸風山間之明月 耳得之而爲聲目寓之而成色 取之無禁用之不渴

강 위의 맑은 바람과 산간의 밝은 달은, 귀로 들으면 소리가 되고 눈으로 보면 색이 되나니, 가져도 막는 사람이 없고 써도 닳지 않누나.
〈보충설명〉 청풍명월은 누가 독점할 수 없이 모두가 골고루 나누어 가질 수 있고 또 아무리 소유해도 없어지지 않습니다. 자연과 더불어 내가 하나 된 경지에서 사량분별 없이 청풍명월과 여실하게 마주하면 이 것이 바로 금강경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