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방거사 호설편편’ 해설

通達無我法者 2008. 9. 27. 19:42

 

 

무애자재 경지도 군더더기에 불과

 



 

<사진설명>번뇌를 쓸어내듯이 덕민스님이 낙엽이 떨어진 불국사 강원 앞마당을 쓸고 있다.

밝고 밝은 태양은 하늘에 빛나고
시원하고 맑은 바람은 땅을 스친다

눈으로 보고 있으나 장님 같고
입으로 말하고 있으나 벙어리 같네


오늘은 벽암록에도 실려 있고 염송에도 실려있는 ‘방거사의 호설편편’ 이야기로 강의를 열어보겠습니다.

碧巖錄 第42則 龐居士好雪片片(老龐好雪)

[垂示]云 單提獨弄 帶水拖泥 敲唱俱行 銀山鐵壁 擬議 卽촉루前見鬼 尋思 則黑山下打坐 明明杲日麗天 颯颯淸風잡地 且道 古人還有言肴訛處 試擧看
[古則]擧 龐居士 辭藥山 山命十人禪客 相送至門首 居士 指空中雪云 好雪片片不落別處 時有全禪客云 落在什處 士打一掌 全云 居士也不得草草 士云 汝恁稱禪客 閻老子未放汝在 全云 居士作生 士又打一掌 眼見如盲 口說如啞
(雪竇別云 初問處 但握雪團便打)
[頌] 雪團打雪團打 龐老機關沒可把
天上人間不自知 眼裏耳裏 絶瀟灑
瀟灑絶 碧眼胡僧 難辨別

垂示(원오 스님이 말문을 여는 법문)
單提獨弄이라도 帶水拖泥요, 敲唱俱行이라도 銀山鐵壁이로다. 擬議면 卽촉루前見鬼요 尋思면 則黑山下打坐로다. 明明杲日麗天이요 颯颯淸風잡地로다. 且道하라. 古人還有言肴訛處마아 試擧看하라.

홀로 걸림이 없고 홀로 만법을 희롱하더라도 흙탕물에 빠질 뿐이요, 스승에게 질문하고 스승이 화답하여 모든 행을 갖추더라도 은산철벽이다. 논리적 분석으로 따지면 곧 해골 앞의 귀신을 볼 것이요, 찾아서 생각한다면 곧 지옥에 떨어져 앉을 것이다. 밝고 밝은 태양은 하늘에 빛나고, 시원하고 맑은 바람은 땅을 스친다.
한 번 일러 보아라. 옛 사람들이 오히려 잘못이 있는가? 잘 살펴 들고 보아라.

古則(방거사 일화를 공안으로 세운 옛 법문)
龐居士 辭藥山하니 山命十人禪客하야 相送至門首라. 居士 指空中雪云 好雪片片不落別處로다하니 時有全禪客云 落在什마處오 士打一掌하니 全云 居士也不得草草하라하니 士云 汝恁마稱禪客하니 閻老子未放汝在리라. 全云 居士作生고 士又打一掌云 眼見如盲하고 口說如啞로다.

방거사가 약산 유엄선사를 작별하니, 약산선사가 열 사람의 선객에게 명하여 일주문 입구까지 전송케 했다.
거사가 허공에 날리는 눈을 가리키면서 “멋진 눈이 송이송이, 서로 다른 곳에 떨어지지 않습니다”하고 말했다.
이 때, 전씨 성을 가진 선객이 “떨어지는 곳이 어느 곳입니까?”하고 물었는데
거사가 주먹으로 한 대 쳤다.
전씨 선객이 “거사님! 별 볼일 없는 행동은 보이지 마십시오.” 하였다.
거사는, “당신이 그런 소견으로 선객이라 칭하니, 염노자가 당신을 풀어주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전씨 선객이 다시 물었다. “거사님, 이 무엇입니까(이 뭣고)?”
거사는 또 다시 주먹으로 한 대 때리며 말했다. “눈으로는 보고 있으나 봉사 같고, 입으로는 말하고 있으나 벙어리 같습니다.”

(雪竇別云 初問處에 但握雪團便打어늘.)
설두스님은 (古則에 대해) 따로 말씀하셨다.
“다만, 첫 질문에 그 즉시 눈덩이를 뭉쳐 때려 버릴 것을---”

頌(방거사 고칙에 대한 頌)
雪團打雪團打여 龐老機關沒可把라 天上人間不自知라 眼裏耳裏 絶瀟灑이여 瀟灑絶이여 碧眼胡僧도 難辨別이라.

눈을 뭉쳐 때려라, 눈을 뭉쳐 때려라.
방거사의 살림살이는 가히 잡을 수가 없어라.
천상이나 인간이나 스스로 아는 이가 없으니, 눈 속도, 귀 속도 모두 끊어져 소쇄함이여,
맑고 시원하게 모두 끊어짐이여, 벽안의 달마도 이 뜻은 변별키 어려우리라.

〈보충설명1〉 벽암록은 중국 송(宋)나라 때 禪宗五家中 하나인 臨濟宗 楊岐派의 嫡孫인 圓悟克勤禪師가, 雲門宗의 嫡孫 雪竇重顯이 조주종심과 운문문언을 중심으로 한 公案百則을 모아 頌을 붙인 ‘雪竇頌古’에다 자유롭게 評釋을 덧붙인 책입니다.
雪竇禪師와 圓悟禪師 두 분은 다 선풍(禪風)을 드날린 선지식(善知識)입니다.

벽암록(碧巖錄)의 구성은 수시(垂示), 본칙(本則-古則), 송(頌), 평창(評唱)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요 대목에 착어(著語)가 붙어져 있는 형식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좀 더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본칙(本則) : 설두선사가 유명한 禪德의 일화 100개를 골라 공안으로 삼은 것.
2. 송(頌) : 설두선사가 100개의 일화 각각에 게송(偈頌)을 붙여 놓은 것.
詩는 눈앞 경계를 운을 달아 짓는 것, 頌은 앞의 줄거리를 정리하여 짓는 것. 3. 수시(垂示) : 원오선사가 본칙(本則) 앞에 머리말을 붙여 놓은 것.
4. 평창(評唱) : 원오선사가 본칙(本則)과 송(頌)에 대해 유래와 총평(總評)등을 붙인 것.
5. 착어(著語) : 원오선사가 송(頌)의 각 구(句)에 할주(割註)를 붙여 놓은 것.

〈보충설명2〉 단제독롱이란 무애자재한 깨달음의 경지입니다.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尊)이라고 큰소리 치는 경지이죠. 그러나 이런 경지도 절대적인 진리에서는 군더더기입니다. 또, 홀로 공부하여 왜곡된 자만에 빠지지 않게 진리에로 잘 이끌어주는 스승을 찾아다니며 물어서 알 것은 다 알았다고 설치고 다녀도, 진리의 차원에서는 이빨도 들어가지 않을 은산철벽과 같은 경지입니다.

〈보충설명3〉 敲唱의 敲는 문을 두드려 스승에게 진리를 묻는다는 뜻이며, 唱은 질문을 던지는 제자에게 스승이 진리를 가르쳐 준다는 뜻입니다.

〈보충설명4〉 古則擧의 擧는 공안으로 세워진 옛날 법문을 들어서 보여준다는 뜻입니다.

〈보충설명5〉 밝은 해가 하늘에 빛나고 맑은 바람이 시원하게 땅을 스친다는 표현은, 진리가 찾아지는 것은 아니지만 온 누리에 가득 채워져 있음을 뜻하는 것입니다. ‘中庸’에서도 ‘구만리 하늘에는 솔개가 나르고 청정한 연못에서는 물고기가 뛴다’ 라는 표현으로 道(진리)가 없는 곳이 없다고 말합니다.

〈보충설명6〉 수시법문의 마지막 구절은 단제독롱이나 고창구행도 대단한 경지인데 타니대수니 은산철벽이니 하며 잘못이라고 하니, 어디 한번 잘 살펴서 정확히 말해보라는 뜻입니다.

〈보충설명7〉 인도의 유마거사에 견줄 수 있는 중국의 거사는 방거사입니다. 고급관리이기도 했든 방거사는 호남성 형양사람이라고 하는데 생몰년일은 분명치 않습니다. 형양에서 양양으로 가는 도중 동정호를 지나게 되었는데 동정호에다가 재산을 모두 던져버렸다는 일화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석두희천화상의 제자가 되었다가, 후에는 마조도일 밑에서 법을 이은 거사입니다. 여기서의 고칙은, 방거사가 석두선사의 법사(法嗣)인 약산유엄선사 밑에서 17년 동안 머물러 공부하다가 떠나는 날 있었던 일화입니다.

〈보충설명8〉 방거사는 선객에게 염라대왕이 풀어주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까닭은 ‘호설편편불락별처’의 뜻도 올바로 파악하지 못한 선객의 공부가 익지 않았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선객이라고 불리우면서 시주 밥 만 공짜로 먹고 공부가 익지 않았다면 염라대왕 앞에서 자유롭기 어렵겠지요. 염라대왕을 들추어 낸 방거사의 말을 들은 선객이 불쾌했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곧 자기의 물음의 낙처(落處)나 한번 일러보라고 방거사에게 반격을 합니다. 그 때 방거사는, 눈 내리는 공간도 나누인 것이 아니고, 눈이 날리는 시간이 따로 존재하는 것도 아니고, 방거사나 선객이 따로 나누인 것도 아니고, 유정과 무정의 모든 것이 나뉜 것이 아닌 한 살림인데 그 것도 알아채지 못하고 또 무엇을 그렇게 따지느냐 하는 뜻으로, ‘눈 뜬 봉사이며 말하는 벙어리’라고 선객을 일깨워 줍니다.

〈보충설명9〉 방거사 고칙에 관한 설두의 게송에서 瀟灑는 사물에 걸리지 않고 속스럽지도 않은 고결한 모습입니다. 瀟는 모든 모습이 끊어져 맑고 깨끗한 것을 말하며, 灑는 푸른 나뭇잎이나 연잎에 내리는 빗방울이 또르르 굴러서 떨어지는 것처럼 털끝만큼의 오염도 허락하지 않는 싱그러운 모습을 말합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