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굉지선사 묵조명 해설 2

通達無我法者 2008. 9. 28. 10:39

 

 

혜능스님 ‘방아찧기’는 ‘默照’의 어울림
 
대혜선사 묵조선 비판은

화두 부각위한 방편일 뿐


지난주에 이어서 묵조명을 마저 공부하겠습니다. 묵조는 부처님으로부터 달마스님과 육조스님을 거쳐 후대로 이어져 내려온 禪입니다. 육조스님의 방아찧는 모습도 묵과 조의 어울림입니다. 당나라 이전에는 간화선이 등장하지 않습니다. 대혜스님에 의해 간화선이 널리 퍼지게 되었지만 간화선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묵조선의 이해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오해하기 쉬운 대혜스님의 묵조에 대한 비판은 화두를 부각시키기 위한 방편인 것이지 묵과 조를 소홀히 여겨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금강경의 진공은 침묵의 자리이며 육바라밀 묘용은 묵조의 현현입니다. 묵조는 명색을 떠난 법신의 경계이므로 이해하기 어렵지만 여러 번 음미하면 가슴 깊게 공감이 이루어집니다.

默照銘 (하) (宏智禪師)
飮善見藥 撾塗毒鼓
선견약을 마시고 도독고를 두드림이로다.

回互底時 殺活在我
묵조가 서로 잘 어울릴 때에는 죽이고 살려냄이 나에게 달려있고

門裏出身 枝頭結果
근진의 문에서 뛰쳐나가면 가지(발길 닿는 곳)마다 열매가 맺히도다

默唯至言 照唯普應
침묵만이 오로지 지극한 말이 되며 비춤만이 오로지 널리 응하니

應不墮功 言不涉聽
응하되 공을 내세우지 아니하며 말하되 듣는 것에 동요하지 않도다

森羅萬象 放光說法
이 세상 모든 것이 빛을 발하며 설법하고

彼彼證明 各各問答
저마다 저마다 증명하며 서로 서로 묻고 대답하도다

問答證明 恰恰相應
묻고 대답하며 서로 서로 증명하면 기쁨 가득히 서로 응하나

照中失默 便見侵凌
비춤(일상) 가운데에 침묵(진리)을 잃으면 문득 얽매임을 당하리라.

證明問答 相應恰恰
서로 서로 증명하며 묻고 대답하면 서로 서로 응하여 기쁨 가득하나

默中失照 渾成剩法
침묵 가운데에 비춤을 잃으면 둥근 이치가 유루법을 이루도다

默照理圓 蓮開夢覺
묵조의 이치가 원만하면 연꽃이 벌어지듯 꿈에서 깨어나고

百川赴海 千嶂向岳
여러 줄기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고 천갈래 봉우리가 큰 산을 향하도다.

如鵝擇乳 如蜂採花
거위가 물에서 젖을 가려내듯, 꿀벌이 꽃에서 꿀을 모으듯

默照至得 輸我宗家
묵과 조가 지극하면 우리 종가의 가르침은 계승되리라.

宗家默照 透頂透底
우리의 가르침 묵조로 머리 위도 꿰뚫고 발 밑도 꿰뚫으면

舜若多身 母多羅臂
허공의 어디라도 자재롭고 두루하며 자비의 손 닿음이 한량 없도다.

始終一揆 變態萬差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로서 살피면 변화하는 모습의 천차만별 깨달으니

和氏獻璞 相如歸璧
화씨가 옥을 헌납했듯 진리로서 꼬인 세상 이해하고
상여가 옥을 찾아왔듯 방편으로 세상을 구하리라.

當機有準 大用不勤
중생의 근기 따라 준거가 있으매 크게 쓰는 이는 얽매임이 없으리니

환中天子 塞外將軍
서울에 있으면 천자가 되고, 변방에 있으면 장군이 되리로다.

吾家底事 中規中矩
묵조로 전승하는 우리의 진리는 곧은 것의 중심이며 굽은 것의 중심이니

傳去諸方 不要잠擧
여러 곳에 전해 줌에 속임의 방편으로 거량하지 말지어다.

〈보충설명〉
1. 飮善見藥 撾塗毒鼓
선견약이란 색계의 범천이 먹는 약인데, 모든 병이 없어지고 용맹정진 하게되어 불과(佛果)를 빨리 얻을 수 있다고 합니다. 도독고는 毒을 바른 북으로 제석궁에 있는데, 제석천왕이 이 북을 치면 나쁜 사람들이 소리를 듣고 죽는다고 합니다. 묵조가 몸에 스미면 중생을 위해 약을 먹여 깨달음도 주고, 도독고를 쳐서 시비분별도 끊어준다는 뜻입니다.

2. 門裏出身 枝頭結果
육근(六根)의 문에서 뛰쳐나와 묵과 조의 이치를 깨달으면 그 깨달음의 가지에 佛果의 열매가 열린다는 말입니다.

3. 默唯至言 照唯普應
기신론에 의하면, 默은 이언진여(離言眞如), 불변진여(不變眞如)입니다. 즉, 말을 떠난 진여이고 변하지 않는 진여입니다. 이를테면, 금반지와 금목걸이가 모양은 달라도 금이라는 본래 속성의 측면에서는 같은 것이듯, 또, 우리 몸이 불 속에 들어가면 타고 물 속에 들어가면 젖는 것이지만 우리의 마음은 타거나 젖지 않고 변함 없이 존재함과 같은 것을 말합니다. 照는 의언진여(依言眞如), 수연진여(隨緣眞如)입니다. 금강경에 의거하여 진여를 확인하는 것이 이를테면 말에 의지하는 진여인 것이며, 생명의 근원은 같으나 인연 따라 다른 생태로 존재하는 것이 이를테면 수연진여인 것입니다. 따라서 默은 말이 끊어진 불변의 지극한 말이고, 照는 말에 의지하고 인연을 따르며 현실에 응하는 것입니다.

4. 應不墮功 言不涉聽
사물에 응하고 利他行을 하더라도 자신의 공력을 자랑하지 않고, 묵조를 떠나지 않은 진실된 말을 하기 때문에 겉으로 듣는 평판에 흔들리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5. 森羅萬象 放光說法
묵과 조가 원만하면 삼라만상의 설법을 낱낱이 알아차릴 수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 소리를 들으면서 반야의 연주를 알아차리게 되고, 허공을 나르는 새를 보면서 無相無住의 用心을 이해하게 되지 않습니까?

6. 彼彼證明 各各問答
사물 하나 하나가 저마다 진리의 나툼인 것을 증명하고 서로 서로 문답을 나누며 어울린다는 뜻입니다. 산이 있으면 메아리가 울리고, 나무가 있으면 새가 날아와서 지즐거리며 문답하지 않습니까?

7. 問答證明 恰恰相應
흡흡이란 주고 받는 거래의 相이 없이 내면의 기쁨이 충만한 상태를 말합니다. 대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며 사각거리는 소리를 내고, 빨래하는 여인이 그 사이를 지나치며 발자국 소리를 내는 것이 서로 응하는 진리의 모습입니다.

8. 照中失默 便見侵凌
묵(진공)의 이치를 상실한 채 일상생활에 응하면 모자람이 있어서 능멸을 당한다는 뜻입니다. 빈궁한 사람은 비굴해지고 부유한 사람은 교만해지는 것이 모두 침묵의 이치를 모르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9. 默中失照 渾成剩法
진리만 따지고 치졸한 방편으로 융통성 없이 일상생활에 응하면 불필요한 법을 이루게 되니 곧 유루법이 된다는 뜻입니다. 침능도 잉여도 모두 중도가 아니니 묵과 조가 조화롭게 어울리면 중도를 잃지 않게 되겠지요.

10. 默照理圓 蓮開夢覺
꽃보다 먼저 퍼지는 둥근 연잎은 진리(默, 體)이고, 그 사이에서 나중에 피어나는 연꽃은 깨달음(照, 用)입니다. 따라서 연꽃이 핀다는 것은 체와 용이 동시에 원만히 드러난다는 뜻입니다. 또, 연뿌리에는 연잎과 연꽃이 이미 다 갖추어져 있지 않습니까? 이처럼 삼라만상이 모두 불성을 갖추고 있습니다.

11. 百川赴海 千嶂向岳
삼라만상은 모두 묵과 조의 어울림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법신의 자리를 향해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여러 줄기의 강물이 바다에서 만나고 천 갈래 봉우리가 큰 산을 향하고 서 있다는 것은 구경각을 향해 갖가지 방편으로 수행하는 것을 은유한 것입니다.

12. 如鵝擇乳 如蜂採花
땅을 확인하며 걷는 부처님의 걸음과 거위의 걸음은 비슷합니다. 또, 부처님의 손과 발에 그려진 윤상(輪相)도 거위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거위는 종종 부처님의 비유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거위는 우유와 물을 섞어서 같은 그릇에 담으면 용하게도 우유만 마시고 물은 남긴다고 합니다. 거위가 마시는 우유는 탐진치에 오염되지 않은 것을 가려내는 깨달음에 비유하고, 남기는 물은 중생심을 비유합니다.

또 벌은 좋은 꽃인지 나쁜 꽃인지를 가리지 않고, 꽃 모양도 따지지 않고, 오로지 꿀만 채취할 뿐입니다. 이는 세상 이치를 하나도 손상시키지 않고, 진리에 맞게, 자연 그대로 가려낸다는 뜻입니다.

13. 宗家默照 透頂透底
부처님의 가르침을 묵조로 꿰뚫으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확 트인 둥근 한 모습을 이룬다는 뜻입니다.

14. 舜若多身 母多羅臂
舜若多는 空을 뜻하는 범어의 음역입니다. 따라서 순약다신은 모자람 없이 충만하고 절대평등한 허공신의 이름을 말합니다. 또, 母多羅는 手印을 뜻하는 범어의 음역입니다. 따라서 母多羅臂는 마음이 내키는 대로 따르고 움직여서 모든 중생을 깨침으로 인도하는 천수관음의 자비의 손을 말합니다.

15. 和氏獻璞 相如歸璧
화씨의 옥이 진나라에 갔다가 상여에 의해 조나라로 돌아왔다는 전국시대의 고사를 말합니다. 화씨의 璞은 다듬어지지 않고 돌 속에 묻혀 있는 옥입니다. 따라서 무너지는 우리의 몸 가운데에 존재하는 진리를 상징합니다. 곧, 묵(默)이요, 체(體)입니다. 또, 상여가 찾아 온 화씨의 옥은 상여의 용기와 지혜로써 진나라에서 조나라로 도로 가져왔기 때문에 반야를 상징합니다. 곧, 조(照)요, 용(用)입니다. 옛 어른들은 이처럼 종종 고사를 빌려다가 형용해주면서 禪을 가르쳐 줍니다.

참고) 화씨의 옥: 전국시대 楚나라에 卞和氏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는 荊山에서 봉황이 돌 위에 깃든 것을 보고 玉의 원석을 발견하여 곧바로 여왕에게 증정했다. 여왕은 고귀한 옥이라 여겨서 보석을 세공하는 장인에게 옥을 맡겼는데 장인이 보통의 흔한 옥이라고 감정했다. 화가 난 여왕은 변화씨를 刖刑(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했다. 여왕이 죽은 후 변화씨는 그 옥을 다시 武王에게 바쳤는데 이번에는 나머지 발뒤꿈치 마저 잘리게 되었다. 무왕에 이어 文王이 즉위하자 변화씨는 그 옥돌을 끌어안고 초산 기슭에서 사흘동안 밤낮으로 피눈물을 흘리며 울었다. 문왕이 이 소문을 듣고 사람을 보내어 그 까닭을 물었다. “세상에 발뒤꿈치를 잘리는 형을 받은 사람은 적지 않다 그대만이 왜 그리 슬퍼하며 통곡하는가?” 그 때 화씨가 대답했다. “제가 슬피 우는 것은 발뒤꿈치가 잘려서가 아닙니다. 천하의 보옥을 알아보는 사람 없이 흔한 돌덩이라 여긴 것이 슬프고, 그 것을 바친 정직한 저를 사기꾼으로 몰아서 슬피 우는 것입니다.” 문왕은 즉시 옥돌을 세공인에게 맡겨 갈고 닦았는데 영롱한 모습을 드러냈다. 문왕은 화씨에게 많은 상을 내렸다.

그 후 화씨의 옥은 趙나라 惠文王에게 들어갔다. 혜문왕은 신하 木賢의 애장품이던 것을 강제로 빼앗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강대한 힘을 가진 秦나라 昭襄王이 이 옥돌에 대한 소문을 듣고 욕심이 생겼다. 그래서 조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15개의 城과 화씨의 옥돌을 교환하자고 청했다. 혜문왕은 화씨의 옥돌을 내주기만 하고 성을 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와 옥돌을 내주지 않으면 그 것을 빌미로 진나라가 침략할지도 모른다는 걱정이 생겼다. 그래서 혜문왕은 중신회의를 열었다. 그 때 목현이 나와서 자신의 식객 중에 藺相如라는 사람이 있는데 지모와 용기가 있으니 그를 사자로 보내면 난국을 타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아뢰었다. 인상여는 진나라로 들어가 화씨의 옥돌을 소왕에게 전했다. 구슬을 받아 쥔 왕은 감탄하며 좋아하기만 했을 뿐 15개의 城 이야기는 내비치지 않았다. 이 상황을 예견했던 인상여는 “그 구슬이 한 군데 작은 흠집이 있습니다. 가르쳐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듣고 왕은 무심히 구슬을 내주었다. 인상여는 즉시, “우리는 신의를 지키기 위해 구슬을 가지고 왔으나 왕은 15개 城을 내준다는 약속을 지킬 듯 싶지 않으니 이 구슬은 일단 소생이 지니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생이 머리와 더불어 이 구슬을 부수겠습니다.” 하고는 구슬을 빼내어 조국에 돌려보냈다. 소양왕도 인상여를 정중하게 놓아보냈다.

진나라에 빼앗길 뻔했던 화씨의 보옥(璧)을 인상여의 용기와 기지로 흠집 하나 없이 온전히 되돌려 받았던 이 고사에서 ‘完璧’이라는 成語가 생겼다.

진나라 시황제는 초나라를 멸망시키고 이 옥돌로 도장을 만들어 宰相 李斯에게 ‘受命於天旣壽永昌’이라는 여덟 글자를 篆書로 쓰게 하여 옥새로 사용했다.


16. 當機有準 大用不勤
중생의 근기에 따라 진리의 현현이 달라지는데 그릇이 큰 사람은 얽매임도 없고 수고로움도 없이 응용한다는 뜻입니다. 순임금이 거문고만 타고 있어도 세간의 일이 순조롭게 돌아가는 것도 大用不勤의 이치입니다.

17. 환中天子 塞外將軍
은 井자로 나눈 아홉 지역의(홍범구주)의 가운데에 속하는 땅입니다. 그리고 이 곳을 다스리는 사람이 천자입니다. 환을 둘러싼 주변의 여덟 지역에서는 환에 조공을 바칩니다.

18. 吾家底事 中規中矩
規는 직선을 그리는 직각자이며 矩는 곡선을 그리는 곡자입니다. 따라서 불가의 가르침은 치우침도 없으며, 모든 법에 통하고, 모든 법에 알맞게 들어맞는 다는 뜻입니다.

19. 傳去諸方 不要잠擧
불가의 가르침을 제방에 전해줌에 있어 묵조 이외에 특별히 다른 방편이 필요한 것이 아니니 속임수를 빌려 묵조와 불법을 거량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아마도 대혜선사가 묵조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화두를 꿰뚫어야한다고 강조하는 것을 두고 이런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