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대승정종분/8/밝음이 오면 어둠은 사라지니

通達無我法者 2008. 9. 30. 17:04

 

 

毘離耶波羅蜜精進頌 曰進修名焰地 良爲慧光舒 二智 心中遣 三空 境上袪 無明 念念滅 高下執情除 觀心如不間 何啻至無餘

비리야바라밀정진송에 이르길 ‘정진하며 수행함을 염지(焰地. 보살의 10지 가운데 제4, 焰慧地)라 함이여! 진실로 지혜의 광명이 퍼지는 것이라. 근본지(根本智)와 후득지(後得智)는 심중에서 버리고, 아공(我空) 법공(法空) 구공(俱空)은 경계위에서 제거할지니라. 무명이 생각생각 멸하니, 고하(高下)에 집착된 정이 제거되리로다. 마음을 관함이 끊일 사이 없으면 어찌 무여열반에만 이를 뿐이리오.

禪波羅蜜禪定頌 曰禪河 隨浪靜 定水 逐波淸 澄神生覺性 息慮滅迷情 遍計虛分別 由來假立名 若了依他起 無別有圓成

선바라밀선정송에 이르길 ‘선(禪)의 물길은 물결 따라 고요하고, 정(定)의 물은 파도를 잠재워 맑아지도다. 정신을 맑혀 각성(覺性)을 일으킴이요, 근심을 쉬어 미혹의 정을 멸함이로다. 변계(遍計→사물을 바르게 바라보지 못하고 마음과 경계에 부딪쳐 주관적으로 잘못 인식하는 것. 實在로 오인된 非實在物로서 唯識에서는 주체를 능변계, 객체를 소변계라 함)로써 허망하게 분별하여 이로부터 거짓으로 이름을 세운 것이니, 만일 의타기(依他起 →홀로 존재하지 못하고 갖가지 인연에 의해 생겼다가 인연이 사라지면 함께 없어지는 것)를 요달하면 원성실성(圓性實性→원만성취, 진실의 구족. 존재의 본성. 진여)도 따로이 있다고 할 것이 없도다.’

般若波羅蜜智慧頌 曰慧燈 如朗日 蘊界 若乾城 明來暗便謝 無暇暫時停 妄心 猶未滅 乃見我人形 妙智圓光照 唯得一空名

반야바라밀지혜송에 이르길 ‘지혜의 등불은 밝은 해와 같고, 몸과 외경은 신기루와 같도다. 밝음이 오면 어둠이 문득 사라지나니, 잠시도 머물 짬이 없도다. 망령된 마음을 멸하지 못하면 곧 나와 남의 형상에 이끌리겠지만 오묘한 지혜의 원만한 광명이 비치면 한갓 하나의 헛된 이름일 뿐이로다.’

萬行齊修頌 曰三大僧祇劫 萬行具齊修 旣悟無人我 長依聖道流 二空 方漸證 三昧任遨遊 創居歡喜地 常樂遂忘憂

만행제수송에 이르길 ‘삼대아승지겁에 만행(萬行)을 갖추어 가지런히 닦음이로다. 이미 인아상(人我相)이 없음을 깨달아서 길이길이 성인의 도에 의지해야 하도다. 아공과 법공을 점차로 증득하고 삼매(三昧) 가운데에 소요하는지라, 환희지에 머물러 항상 즐기며 마침내 근심을 잊음이로다.

[冶父]若要天下行 無過一藝强

만일 천하에서 행세하려 한다면, 한 가지 재주보다 뛰어난 것이 없도다. (보시바라밀만 잘해도 족하다는 뜻)

[說]無才者 行天下則脚頭到處 無與立談者 其窮 可知 有才者 行天下則無所往而不自得 其樂 不可言 無慧眼者 妄加功行則行行 有着 去道轉遠 有慧眼者 入於行海則心心 淸淨 徑與本地 相應 旣與本地 相應 塵沙德用 無量妙義 元自具足 不從他得

재주 없는 사람이 천하에 행세하면 발길 닿는 곳마다 더불어 말할 사람이 없으리니 그 궁색함을 가히 알 수 있고, 재주 있는 사람이 천하에 행세하면 어디를 가더라도 스스로 얻으리니 그 즐거움을 가히 말할 수 없다. 지혜의 눈을 갖추지 않은 사람이 망령되이 공부해서 행한다면 행동 행동에 집착이 있어서 도와의 거리가 더욱 멀어질 것이요, 지혜의 눈을 갖춘 사람이 수행의 바다에 들어가면 마음 마음이 청정하여 똑바로 반야의 본지(本地)와 더불어 상응할 것이니, 이미 본지와 더불어 상응한다면 온갖 德用과 무량한 묘의(妙義)가 원래 스스로 구족하여 다른 것으로부터 얻은 것이 아니리라.

西川十樣錦 潻花色轉鮮 欲知端的意 北斗 面南看 虛空 不閡絲毫念 (毫 一作頭) 所以彰名大覺仙

서천의 최고 비단에 꽃을 수놓으니 색이 더욱 곱도다. 만약 확실한 뜻을 알고자 한다면 북두칠성을 남쪽으로 향하여 볼지어다. 허공이 실낱만큼도 걸리지 않아서 대각선(大覺仙→부처)이라 이름 붙여 빛날 수 있나니라.

<보충설명> 반야바라밀 하나만으로도 좋은데, 거기에 보시바라밀을 더하니 더욱더 아름다워진다는 뜻입니다. 이런 확실한 뜻을 알려면, 남쪽을 보면서 북두칠성을 찾듯이 사량분별이나 고정관념을 모두 털어버리고 한 모습으로 보아야 합니다.

[說]般若智 以爲質 萬行花 以爲文 智行 相資 文質 彬彬 伊麽則以智起行智愈明 錦上潻花色轉鮮 又行施 固已偉然 更能無住 其施益大 所以 道 西川十樣錦 潻花色轉鮮 欲知端的意 北斗 面南看 北斗南星 位不別 言南言北 也由情 伊麽則行施 卽無住 一時無前後 逈出有無之境 不坐格外之機 簫然無寄 量同太虛 大覺之名 於是乎彰 無量福聚 於是乎成

반야의 지혜로 바탕을 삼고 만행의 꽃으로 무늬를 놓으니, 지혜와 행실이 서로 도와 무늬와 바탕이 곱게 어울린다. 이런 즉 지혜로써 행을 일으키매 지혜가 더욱 밝아지고 비단 위에 꽃을 수놓으니 색이 더욱 아름답다. 또 보시를 행함이 진실로 이미 위대한 것인데 다시 능히 상에 머무름이 없으니 그 보시가 더욱 위대하다. 이런 까닭으로 말하기를, “西川十樣錦 潻花色轉鮮”이라 한 것이다. “欲知端的意 北斗面南看”이라 하니, 북두칠성과 남성(南星)이 그 위치가 다르지 않거늘 남쪽이라 하고 북쪽이라 말하는 것은 사람들의 정 때문이다. 이러한 즉 보시를 행함에 상에 머무름이 없으면 일시에 전후(前後)가 없어서 유무(有無)의 경계를 벗어나고 격외의 기틀에도 앉지 않는 것이니, 소연하여 아무 것도 붙을 것이 없어서 그 기량이 태허공과 같아, 대각(大覺)의 이름이 여기서 빛나며, 무량한 복더미가 여기서 이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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孟子 告子 上 牛山
牛山之木 嘗美矣 以其郊於大國也 斧斤 伐之 可以爲美乎
是其日夜之所息 雨露之所潤 非無萌蘖之生焉 牛羊 又從而牧之
是以 若彼濯濯也 人見其濯濯也 以爲未嘗有材焉 此豈山之性也哉
雖存乎人者 豈無仁義之心哉 其所以放其良心者 亦猶斧斤之於木也
旦旦而伐之 可以爲美乎
其日夜之所息 平旦之氣 其好惡與人相近也者幾希
則其旦晝之所爲 有梏亡之矣
梏之反覆 則其夜氣不足以存 夜氣不足以存 則其違禽獸不遠矣
人見其禽獸也 而以爲未嘗有才焉者 是豈人之情也哉
孔子曰 操則存 舍則亡 出入無時 莫知其鄕 惟心之謂與

<보충설명>
산은 나무가 있어서 푸르고 아름답습니다. 그런데 사람의 이익 때문에 나무들을 베어서 민둥산을 만들면 본래의 아름다운 모습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산은 부지런히 밤기운을 받고 이슬을 머금어 다시 생기를 발하려 합니다. 그런데 소나 염소가 새로 돋아난 싹들을 다시 뜯어 먹는다면 산은 다시 헐벗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도 산의 이치와 같습니다. 밤기운을 받아 윤기를 되찾는 선량한 성품이 낮 동안 外物과 접하면 다시 오염됩니다. 마치 밤사이에 돋아나는 새순을 소나 염소가 뜯어먹어 민둥산을 만드는 것과 같습니다.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