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이상적멸분/4/하늘과 땅은 예전부터 한 모습

通達無我法者 2008. 10. 5. 07:19

 

 

<사진설명>덕민 스님은 “진리의 경계에서 여여하게 있으면 바깥 경계의 천변만화가 아무런 관계도 없어진다”고 말했다.

[冶父]智不責愚
지혜 있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을 책망하지 않도다.

〈보충설명〉 부처님은 지혜 있는 사람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가리왕을 책망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如刀斷水 似火吹光 明來暗去 那事無妨 歌利王歌利王 誰知遠煙浪 別有好商量
칼로 물 베기요, 불로 빛을 불기로다. 밝음이 오고 어둠이 감에 무슨 방해가 있으리오? 가리왕, 가리왕이여! 저 멀리 노을 진 파도에 특별한 살림이 있는 것을 그 누가 알겠는가?

〈보충설명〉 인욕바라밀을 실천하는 보살들은 자신의 몸이 잘라진다 해도 칼로 물 베기 같이 생각하며 오히려 그 가운데에서 법의 선열을 느낍니다. 가리왕과 같은 범부들은 이런 이치를 알 수 없습니다.

須菩提 又念過去於五百世 作忍辱仙人 於爾所世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수보리여! 또 생각하건대, 내가 과거 오백세에 인욕선인이 되었을 때, 그러한 세계에 있으면서 아상 · 인상 · 중생상 · 수자상이 전혀 없었도다.”

[冶父]目前 無法 從敎柳綠花紅 耳畔 無聞 一任鶯吟燕語
눈앞에 한 모습도 없으니 버들은 푸르름에 맡기고 꽃은 붉은 데에 맡기라. 귓가에 한 소리도 들리지 않으니 꾀꼬리의 울음에 맡기고 제비의 지저귐에 맡겨라. 즉 세상시비에 끄달리지 않는다는 뜻(이순(耳順)).

〈보충설명〉 사상(四相)이 다 끊어지면, 마치 맑은 거울에 사물의 영상이 드러나는 것처럼, 세상 시비에 얽매이거나 주관적 편견에 오염됨이 없이 눈앞의 사물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四大元無我 五蘊悉皆空 廓落虛無理 乾坤萬古同 妙峰常如故 誰管顚號括地風
사대(四大)에는 본래 나라는 존재 없고, 오온(五蘊)도 텅 비었도다. 툭 트여 다듬을 이치가 없음이여! 하늘과 땅은 만고에 한 모습이로다. 묘한 봉우리가 높고 높아 항상 여여(如如)한데, 누가 회오리의 소용돌이에 흔들리는가?

〈보충설명〉 진리의 경계에서 여여하게 있으면 바깥 경계의 천변만화(千變萬化)가 나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다만 토끼의 뿔이요, 거북의 털처럼 찾아 볼 수 없는 것일 뿐입니다.

고전 맛보기

無家別 - 杜甫

寂寞天寶後 園廬但蒿藜
我里百餘家 世亂各東西
存者無消息 死者爲塵泥
적막한 천보년 난리 후, 동산과 집들은 쑥대밭이 되었네.
내 고향 백여가(百餘家)는 전쟁 통에 뿔뿔이 흩어져서,
산 사람도 소식 없고, 죽은 사람도 흙이 되었으리.

賤者因陣敗 歸來尋舊蹊
久行見空巷 日瘦氣慘悽
但對狐與狸 毛怒我啼
四隣何所有 一二老寡妻
미천한 이 몸, 패잔병으로 돌아와 옛 길 더듬으니,
오래도록 다녀도 텅 빈 거리 뿐, 햇살조차 여위어 기운마저 참담하네.
여우와 살쾡이만 털을 바짝 세우고 나에게 으르렁거리네.
사방 어디에 아는 사람 있는가? 한둘의 늙은 과부 뿐.

宿鳥戀本枝 安辭且窮棲
方春獨荷鋤 日暮還灌畦
자는 새도 옛 숲을 그리는데, 어찌 이 궁핍한 곳에서 깃듦을 사양하리.
바야흐로 봄이라 홀몸으로 호미 매고 밭 갈고, 날 저물면 논에다가 물도 대보네.

縣吏知我至 召令習鼓
雖從本州役 內顧無所携
近行止一身 遠去終轉迷
家鄕旣蕩盡 遠近理亦齊
마을 관리는 내가 온 것 알고서 불러내어 북치는 연습하라 명령하네.
비록 고향의 역사(役事)에 종사는 하겠지만, 안으로 돌아보니 식솔하나 없도다.
가까운 데 근무해도 이 한 몸뿐이요, 멀리 가더라도 끝내는 떠돌이 신세인데,
집과 고향은 이미 거덜 났으니, 멀고 가까운 것 아무 의미 없구나.

永痛長病母 五年委溝谿
生我不得力 終身兩酸嘶
人生無家別 何以爲蒸黎
길이길이 통탄할 일은, 오랜 병석의 어머니를 5년 동안 개천가에 가매장한 것이로다.
나 태어나서 못나고 힘없으니, 모자(母子)가 평생토록 원통하게 울부짖네.
인생살이 집도 없이 이별하니, 어찌 사람 모양 갖추었다 하리오.

〈보충설명〉 두보의 삼별(三別) 가운데 집 없이 이별하는 내용의 詩입니다. 끝 부분의 ‘嘶’는 목쉰 짐승의 울음처럼 애처롭고 한이 서린 울음이고, ‘蒸黎’는 천민의 삶을 말하는 것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