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이상적멸분/6/땅에서 넘어진 자 땅에서 일어나라

通達無我法者 2008. 10. 8. 16:02

 

 

 
<사진설명>덕민 스님은 “비어있는 가운데 충만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冶父]知恩者少 負恩者多
은혜를 아는 사람은 별로 없고, 은혜를 저버리는 사람은 많도다.
〈보충설명〉 부처님의 가르침을 음미하고 반추하면서 말 밖에 있는 진실한 뜻을 아는 사람은 적고, 오히려 부처님의 가르침에 집착하고 알음알이만 내려는 사람이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兩箇五百是一貫 阿爺元是丈夫漢 分明對面向渠言 爭奈好心無好報 眞語者實語者 呵呵呵
두 개의 오백이 일관이요, 아버지는 원래 장부로다. 분명히 얼굴 마주하고 말해 주었으니 어찌 좋은 마음에 좋은 보답이 없으리오, 진어자 · 실어자여! 하하하 허허허!

〈보충설명1〉 일관은 오백씩 둘로 나뉘어 있어도 일관입니다. 또 아버지는 원래 남성이지 여성이 아닙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진리에 관하여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한다는 것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그러나 중생은 진실된 이야기를 전해주는 부처님의 은혜를 알지 못하고 자신의 편견에 의해 곳곳에서 의심을 냅니다.

〈보충설명2〉 ‘阿爺’는 아버지.

〈보충설명3〉 ‘呵呵呵’는 부처님 말씀을 긍정하고 그 말씀에 귀의하는 표현. 범부는 부처님 말씀이 점두가 안 되고 의심이 생기지만 야보 스님은 귀의하는 마음이 되살아나서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須菩提 如來所得法 此法 無實無虛
“수보리여! 여래의 얻은바 법은, 이 법은 실도 없고 허도 없느니라.”

〈보충설명〉 실과 허 어느 한 곳에 집착하는 마음을 버리라는 의미로 한 번 더 강조해 주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찾아도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비어 있는가 하면 또 비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비어 있는 가운데에서 찾으면 찾을 수 있는 것이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래서 무실무허의 세계입니다.

[冶父]水中味 色裡膠淸
물 가운데 짠 맛이 있고, 단청 속에 아교가 청정하다.

〈보충설명〉 ‘무실무허’ 라는 말 속의 이치를 낚아채라는 뜻으로 야보스님은 이 문장을 끌어왔습니다. 물은 눈으로 봤을 때는 짠맛이 있는지 싱겁기만 한지 알기 어렵고 맛을 보아야 비로소 짠맛이 스며있는지를 알게 됩니다.

그러나 지혜 있는 사람은 물 색깔 만 보고도 짠 줄을 압니다. 단청을 볼 때도 그렇습니다. 범부중생은 단청의 아름다운 색깔에만 취하고 그 속에 아교풀이 있다는 사실을 지나쳐 버립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물속의 짠맛과 단청 속의 아교처럼 ‘무실무허’ 입니다. 무실에 집착해도 안 되고, 무허에 집착해도 안 됩니다. 비어있는 가운데에 충만한 것이 있는 진리를 알아야 합니다.

硬似鐵軟如 看時有覓還無 雖然步步常相守 要且無人識得渠
굳기는 철과 같고 부드럽기는 연유 같으면서, 볼 때엔 있는 듯 하여 찾아보면 도리어 없어라. 비록 걸음걸음 마다 서로 함께 지키나, 사람들은 이것을 알지 못하노라. 이잇!

〈보충설명〉 ‘무실무허’의 진리를 야보 스님이 염롱하는 것입니다. ‘!’는 야보 스님 자신이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실무허’에 대해 염롱했지만, 그 것도 부질없다는 뜻에서 ‘군소리 했구만!’ 하며 탄식하는 표현입니다.

須菩提 若菩薩 心住於法 而行布施 如人 入闇 則無所見 若菩薩 心不住法 而行布施 如人 有目 日光明照 見種種色
“수보리여! 만일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러 보시를 행한다면 마치 사람이 어두운 방에 들어가 아무 것도 볼 수 없는 것과 같고, 만일 보살이 마음을 법에 머물지 않고 보시를 행한다면 마치 사람이 눈이 있어서 햇빛이 밝게 비추어 갖가지 색을 보는 것과 같으니라.”

〈보충설명〉 햇빛은 어디에나 누구에게나 골고루 비추어 줍니다. 그런데도 사물을 보지 못한다면 그 것은 사람의 허물이지 해의 허물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부처님께서 무실무허의 진리를 말씀하시지만 그 가르침을 모른다면 그 것이 부처님의 허물이 아닙니다.

須菩提 當來之世 若有善男子善女人 能於此經 受持讀誦 卽爲如來 以佛智慧 悉知是人 悉見是人 皆得成就無量無邊功德
“수보리여! 앞으로 올 세상에 만일 어떤 선남자, 선여인이 능히 이 경을 수지독송하면 곧 여래가 부처님의 지혜로 이 사람을 다 알고 챙겨주며 이 사람을 청정한 눈으로 보아서 모두 무량무변의 공덕을 성취케 하리라.”

[冶父]因地而倒 因地而起 地向爾道什
땅을 인해 넘어지면 땅을 인해 일어나거니, 땅이 너를 향해 뭐라 하겠는가?
〈보충설명〉 땅이 우리를 넘어트리고 일으키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가 깨닫지 못했다고 부처님을 원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입니다.

世間萬事不如常 又不驚人又久長 如常恰似秋風至 無意人人自
세간의 모든 일 가운데 ‘항상스러움’ 과 견줄 것이 없도다. 또 사람을 ‘놀래키지 않는 것’이 오래 가도다. 항상스런 마음이여! 가을바람이 사람에게 다가와 시원하게 해주려는 생각이 없어도 사람들이 스스로 시원하다 느끼네.

〈보충설명〉 단물은 잠시 매력이 있지만 곧 싫증이 납니다. 맹물은 싱거운듯하지만 싫증나지 않습니다. 부처님 말씀도 있는 그대로여서 맹물처럼 항상스럽습니다. 또 어떤 말씀을 하더라도 사람들을 놀라게 자극하는 일이 없습니다. 가을 바람처럼 그냥 불 뿐이지만, 사람들이 스스로 시원해 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