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이상적멸분/5/참된 말을 하는 이가 여래이니

通達無我法者 2008. 10. 8. 15:59

 

 

이번 강의는 『금강경』 상권의 마지막인 이상적멸분의 끝부분입니다.

『금강경』 상권은, 『금강경』 ‘사구게’를 수지·독송하면 무한한 공덕이 따른다는 게 그 핵심내용입니다. 앞으로 이어지는 하권은 『금강경』이 어떻게 수승한가에 관하여 10과목으로 나뉘어서 전개됩니다. 상권의 마지막 부분인 이상적멸분은 내용이 깊고 그윽하기 때문에 육조 스님이나 야보 스님이 구결 또는 선시 등으로 우리의 이해를 도와주고 있습니다.

이상적멸분에서는 아상과 인상 등 모든 相이 사라지고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게 되면 그 경지가 곧 부처님 모습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생노병사와 진로망상에 얽매인 내가 진실된 나라고 착각하는 우리의 관념을 파기해서 청정한 마음이 되살아나면, 진리가 우리 앞에 환하게 드러나고 또 진리를 뿌리 삼은 우리의 일상도 묘유의 삶이 됩니다.

옛 조사들은 선적 표현을 빌려서 이 진공묘유의 『금강경』 도리를 우리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육조 스님은 한 겨울 눈 속에서 여름철 칡꽃이 핀다고 표현했고, 야보스님도 한 겨울 눈 속에서 여름철 파초가 피어난다고 표현했습니다. 육조 또는 야보 스님의 이런 표현들은 우리의 왜곡된 고정관념이 깨지고 일체상이 끊어지면 삼라만상 모두는 진리의 현현(顯現)이며 우리의 삶은 대자유를 누리게 된다는 것을 언급한 것입니다.

오래 묵은 대나무 줄기에서 새순이 돋아나고 묵은 나무 가지에서 새롭게 꽃이 피는 것은 모두 텅 빈 진리에서 생겨나는 현실의 모습입니다. 더위에 지친 나그네가 소나기를 피해 나무숲을 찾고, 노을이 지면 돛배가 포구를 향해 돌아가는 것도 진공묘유의 살림입니다. 대나무가 빽빽하게 시냇물을 가로질러 세워져 있어도 시냇물이 자유롭게 흐르는 모습이나, 산이 높아도 흰구름이 자유롭게 떠가는 모습은 모두 신선하고 조화로운 부처님 모습입니다.

부처님 세계는 이렇듯 삼라만상이 있는 그대로 청정한 진리의 모습입니다.

是故 須菩提 菩薩 應離一切相 發阿多羅三三菩提心 不應住色生心 不應住聲香味觸法生心 應生無所住心 若心有住 卽爲非住 是故 佛說菩薩 心不應住色布施

“이런 까닭으로 수보리여! 보살은 마땅히 일체의 상을 여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발해야 하나니, 색에도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성향미촉법에도 머무르지 말고 마음을 낼 것이며, 응당히 머무는 바 없이 마음을 내야 하니라. 만일 마음에 머무름이 있으면 그 것은 곧 머무름이 아닌 것이니, 이런 까닭으로 부처는 ‘보살은 마땅히 마음을 색에 머물지 말고 보시하라’고 설하는 것이니라.”

〈보충설명1〉 ‘若心有住 卽爲非住’는 만일 마음에 머무름이 있으면 相에 떨어지고 고통을 벗어 날 수 없으므로 청정한 진리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보충설명2〉 규봉 스님의 과목을 참조하면, 중생이 세상살이에서 느끼는 고통은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여기 저기 떠돌아다니는 유전고(流轉苦), 둘째는 서로 생각이 어긋나고 거슬려서 갈등을 빚는 중생상위고(衆生相違苦), 셋째는 먹고 살 것이 모자라는 핍수용고(乏受用苦)입니다. 앞으로 전개되는 『금강경』 경문은 이런 고통들을 사구게 등으로 다 초월할 수 있다는 내용이 반복되면서 이어집니다.

須菩提 菩薩 爲利益一切衆生 應如是布施

“수보리여! 보살이 일체 중생을 이익되게 하려면 응당 이와 같이 보시해야 하나니~”

[冶父]有佛處 不得住 無佛處 急走過 三十年後 莫言不道

부처님 계신 곳에도 머물지 말고 부처님 없는 곳도 빨리 달려 지나쳐서, 30년이 지난 뒤에 이런 얘기 안 해 주었다고도 말하지 말라.

〈보충설명1〉 부처님이 나에게 가르침과 깨달음을 주더라도 내 의식으로는 부처님이 계신다는 생각마저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이라도 그 것이 마음에 끼어들면 병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有句와 無句에 치우치지 않는 中間句, 즉, 진리이므로 30년이 지난 뒤에 객관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더라도 틀리지 않습니다.

〈보충설명2〉 ‘30년 후’는 어떤 인물이 살았을 때 남긴 업적을 후대에서 객관적으로 評하도록 설정된 세월입니다. 만일 어떤 인물에 대한 품평을 그가 살아있을 때 한다면 올바른 평가이기 보다 편견이 개입된 평가이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인물에 대해 호의적이지도 않고 악의적이지도 않은 정평을 기대한다면, 또 그 인물에 대한 어록과 행장을 후대에 전하려면 마땅히 그 인물의 사후 30년 정도의 세월은 경과해야 합니다.

朝遊南嶽 暮往天台 追而不及 忽然自來 獨行獨坐無拘繫 得寬懷處且寬懷

아침에는 남악에서 노닐고 저녁에는 천태산에 가도다. 종적을 쫓아도 미칠 수 없고, 홀연히 스스로 오도다. 홀로 거닐고 앉더라도 얽매임이 없으니, 넓은 경지 얻고서도 더욱 넓어지도다.

〈보충설명〉 시간과 공간을 훌쩍 뛰어 넘은 무애자재의 살림살이를 표현한 것입니다. 유전고를 비롯한 여러 가지 고통에 묶여서 마음이 옹졸하다가도, 『금강경』 사구게를 지니고 본분의 입장에서 살면 넓고 시원해집니다. 부처님이 계시는 것도, 계시지 않은 것도, 有無와 中間의 句도 모두 사라지면 이처럼 관대한 마음을 소유할 수 있습니다.

如來 說一切諸相 卽是非相 又說一切衆生 則非衆生

“여래는 일체의 모습이 곧 가짜의 모습이라 설하며, 또한 일체 중생도 곧 중생이라 할 수 없다고 설하노라.”

〈보충설명〉 일체의 相, 그리고 四大와 五蘊으로 화합된 일체의 중생은 第一義인 眞理의 입장에서 모습이라 할 수 없고, 중생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이 대목은 나를(진리의 나)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내 마음(생멸하는 無常의 마음)이 나를 괴롭게 해도 달라붙을 곳이 전혀 없는 대목입니다.

[冶父]別有長處 不妨拈出

특별히 좋은 곳이 있으니, 내가 잡아내서 보여주어도 방해될 것 없도다.

〈보충설명〉 부처님께서 ‘卽是非相 則非衆生’이라고 說하신 부분에 대해 중생이 또 비(非)에 걸려 집착할까봐 야보 스님은 ‘別有長處’를 말씀해 주시는 것입니다.

不是衆生不是相 春暖黃鶯啼柳上 說盡山雲海月情 依前不會空 休 萬里無雲天一樣

중생도 아니고 모습도 아니라고 하심이여! 봄이 따스하니 노란 꾀꼬리가 버드나무 위에서 우짖네. 산, 구름, 바다와 달의 實情을 다 설명했거늘, 여전히 알지 못하고 공연히 슬퍼하고 한탄하도다. 한탄을 쉬어라. 만리에 구름이 없으니 푸른 하늘이 한 모습이로다.

〈보충설명〉 부처님은 상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봄이 되면 꾀꼬리가 웁니다. 이것은 모습이 벌어진 것입니다. 텅 비어 있는 곳에서 삼라만상의 모습이 피어났을 때, 이것이 바로 진실한 모습인 것입니다.

주관적 편견과 왜곡된 눈으로 사물을 이해하는 중생들은 하늘에 떠 있는 구름만 보면서 하늘이라 생각하고 상(相)이니 비상(非相)이니 시비에 걸리지만 실제로는 구름 걷힌 하늘이 바로 진실한 푸른 하늘입니다.

須菩提 如來 是眞語者 實語者 如語者 不語者 不異語者

“수보리여! 여래는 참된 말만 하는 사람이며, 실상의 말만 하는 사람이며, 진여의 말만 하는 사람이며, 들쑥날쑥 말하지 않는 사람이며, 말을 바꾸어 하지 않는 사람이니라.”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