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이상적멸분/3/터럭 하나가 큰 바다를 삼키네

通達無我法者 2008. 10. 5. 07:16

 

 

<사진설명>소박한 모습의 덕민스님 방안 모습. 가사와 장삼 등이 가지런히 걸려있다.

若復有人 得聞是經 不驚不怖不畏 當知是人 甚爲希有

“만일 또 어떤 사람이 이 금강경을 듣고 놀라지도 않고 두려워하지도 않는다면,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은 매우 희유한 사람이니라.”

〈보충설명〉 진리를 깨달아 아는 사람이라면 자기 자신이 곧 금강경이고 부처님이기 때문에 어떤 일과 마주치더라도 놀라거나 두려워함이 없습니다.

[冶父]祇是自家底

다만 자기 집안의 몫이니라.

〈보충설명〉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듣고 놀라거나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희유한 사람이라고 설명해 주시니까, ‘희유’에 대해 집착하는 허물이 남을까봐 야보 스님이 염려하는 마음으로 우리에게 한 마디 남겨주는 것입니다.
즉, ‘희유(希有)한 사람’이라고 언급될 만큼 특별한 것이나 특별한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고, 자신의 몫으로 누구에게나 다 갖추어져 있는 바로 그것(這箇)이 희유한 것이라는 뜻을 우리에게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毛呑巨海水 芥子納須彌 碧漢一輪滿 淸光六合輝 踏得故鄕田地穩 更無南北與東西

하나의 터럭은 큰 바다를 삼키고, 겨자씨는 수미산을 담았네. 푸른 은하수에 둥근 달 가득 차니, 맑은 빛이 사방을 비추네. 고향땅을 밟아서 평온해지니, 동서남북이 따로 없도다.

何以故 須菩提 如來 說第一波羅密 非第一波羅密 是名第一波羅密

“어찌 그러한가? 수보리여! 여래가 설하는 제일바라밀은 제일바라밀이 아니라 이름이 제일바라밀이니라.”

〈보충설명〉 일체의 상이 붙지 않았을 때의 모습이 부처님 모습이고, 일체의 상을 떠나 행하는 육바라밀을 통해서 불과(佛果)에 오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佛果에 오르는 씨앗 가운데서는 금강반야바라밀이 최상의 씨앗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금강반야바라밀이 제일의 바라밀이긴 하지만, 제일의 바라밀이라는 相에 또 집착이 남을까봐 그것이 염려스러워 그냥 이름만 바라밀이라고 덧붙여 설명해 주십니다.

[冶父]八字打開 兩手分付

양 쪽 대문을 활짝 열어서 양손으로 분부해 주셨도다.

〈보충설명〉 온 집안의 모습을 하나도 남김없이 모두 다 내 보여 주었다는 뜻입니다.

是名第一波羅蜜 萬別千差從此出 鬼面神頭對面來 此時莫道不相識

이름하여 제일바라밀이여! 천차만별의 모든 것이 이로부터 나왔도다. 귀면신두(鬼面神頭, 鬼의 얼굴, 神의 머리)가 우리 앞에 불쑥 나타나건대, 이때에 서로 알지 못한다고 말하지 말라.

〈보충설명〉 일체상이 끊어진 진공묘유를 적절히 표현할 수 없어 억지로 鬼面神頭라고 표현한 것입니다. 鬼面神頭는 行住坐臥 一切處에서 움직이는 바로 우리 자신의 주인공 모습입니다. 禪의 언어는 알듯 모를 듯한 소리로 우리의 의심을 잡아당겨 주는 것이므로 言句에 속아 넘어가면 안 됩니다.

須菩提 忍辱波羅密 如來 說非忍辱波羅密 是名忍辱波羅密 何以故 須菩提 如我昔爲歌利王 割截身體 我於爾時 無我相 無人相 無衆生相 無壽者相

“수보리여! 인욕바라밀을 여래가 인욕바라밀이 아니라고 설하건대 그 이름이 인욕바라밀이니라. 어찌하여 그러한가? 수보리여! 내가 옛날 가리왕에게 신체가 찢겨졌을 그 때에, 나에게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전혀 없었도다.”

〈보충설명〉 이 부분의 부처님 말씀은, ‘중생의 제도를 위해 온갖 괴로움을 수용하는 대승보살은 괴로움의 인(因)이 있으므로 괴로움의 과보가 따르지 않겠습니까?’ 하는 의구심을 내포한 질문이 생길 수 있는데, 이에 대해 미리 응답을 내려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살에게는 일체의 상이 끊어져서 인욕 자체도 법의 이치이고 기쁨이 될 수 있을지언정 괴로움이라는 과보가 따를 수 없습니다. 진리의 차원에서는 인욕이라는 고통의 상태도 또 바라밀을 행한다는 흔적도 없는 것입니다.

圭峰) 歌利王 此云極惡 佛昔作仙 在山中脩道 王獵疲寢 妃共禮仙 王 問得四果不 皆答云不 王 怒 割截 天 怒 雨石 王 懼而懺悔 仙 證本無嗔 王乃免害 論 云不但無苦 而乃有樂 以慈悲故

가리왕은 소위 극악(極惡)을 말한다. 부처님께서 옛날 선인으로 있으면서 산중에서 수도하고 있을 때였다. 왕이 사냥 나왔다가 피곤하여 잠들었으매 왕비가 선인에게 공양을 올렸다. 왕은 선인에게 “사과(四果)를 얻었느냐?”고 물었다. 선인은 “얻지 못했습니다.” 라고 답했다. 왕이 노해서 선인의 몸을 찢었더니, 천신들이 노하여 돌을 비처럼 쏟아 부었다. 왕은 두려워서 참회하였다.
선인은 본래 탐진치가 없는 경계를 증득했기 때문에 왕이 곧 해(害)를 면했다. 반야론에는, ‘부처님은 괴로움의 흔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법의 즐거움이 있었으니, 자비를 갖추었기 때문이니라’라고 언급되어 있다.

何以故 我於往昔節節支解時 若有我相人相衆生相壽者相 應生瞋恨

“어찌 그러한가? 내가 옛날에 마디마디 사지를 해체 당할 때, 만일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응당 성내고 한스러움이 있었을 것이니라.”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