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능정업장분/1/苦 수용할 줄 알면 어디서든 대접받아

通達無我法者 2008. 10. 8. 16:20

 

 

선시 맛보기

                       <사진설명>금강산도 화첩 중 낙산사. 겸재 정선(1697~1759) 作.

新安吏 - 杜甫

客行新安道 喧呼聞點兵
借問新安吏 縣小更無丁

나그네가 신안 땅을 지나다가, 떠들썩한 점병(點兵) 소리 들었네.
신안의 관리에게 묻노니, “마을이 작아서 장정도 없을 텐데~”

府帖昨夜下 次選中男行
中男絶短小 何以守王城

“어제 저녁 관에서 영장이 내려오길, 미성년자라도 뽑아내라 한다오.”
“덩치도 작고 나이도 어린데, 어떻게 왕성을 지키겠소?”

肥男有母送 瘦男獨伶
白水暮東流 靑山猶哭聲

살찐 녀석은 어미가 배웅을 나왔건만, 여윈 녀석은 홀로 어정거리네.
뿌연 냇물은 저물녘에 동쪽으로 흘러가는데, 청산에는 오히려 곡성(哭聲)만 울리네.

莫自使眼枯 收汝淚縱橫
眼枯却見骨 天地終無情

저절로 눈물이 마르게 하지 말고, 그대의 흥건한 눈물을 거두시오.
눈물이 말라서 뼈가 드러나도, 천지는 끝내 무정하다오.

我軍收相州 日夕望其平
豈意賊難料 歸軍星散營

우리 군대가 상주를 수복했대서, 아침저녁으로 평화를 바랬건만,
적을 예측하기 어려우니, 패잔병이 별처럼 흩어져 돌아올 줄 어찌 알았겠소.

就糧近故壘 練卒依舊京
掘壕不到水 牧馬役亦輕

군량 있는 곳으로 뽑혀가고 옛 진지와도 가까우며, 낙양에 의지하여 훈련도 받는다니,
참호도 깊게 파지 않고, 말을 치더라도 부역 또한 가벼울 것이라오.

況乃王師順 撫養甚分明
送行勿泣血 僕射如父兄

더군다나, 왕의 군대는 순리를 따른다니, 어루만져 보살필게 아주 분명하다오.
떠나보내면서 피눈물을 흘리지 마시오. 부대의 대장은 부모형제(父兄) 같으리니.

〈보충설명1〉 縣小更無丁(현소갱무정)→ 丁(丁男)은 성숙한 장정을 말합니다.

能淨業障分 第十六

復次須菩提 善男子善女人 受持讀誦此經 若爲人輕賤 是人 先世罪業 應墮惡道 以今世人 輕賤故 先世罪業 則爲消滅 當得阿多羅三三菩提

“다시 또 수보리여! 선남자·선여인이 이 경전을 수지독송하는데도 만일 다른 사람에게 가벼이 여김과 천히 여김을 당한다면, 이 사람은 과거세의 죄업으로 응당 삼악도(三惡道)에 떨어질 것이지만, 금세의 사람들에게 가벼이 여김과 천히 여김을 당하므로 과거세 죄업이 곧 소멸되어 마땅히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으리라.”

〈보충설명1〉 능정업장분의 가르침은,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면 과거 이래로 누적되어 온 죄장을 굴려 무상(無相)으로 살아가고 종국에는 부처님 지위에 오른다는 것이 핵심내용입니다.

〈보충설명2〉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여 텅 빈 이치를 알게 되면 자신이 천하게 대접 받아도 괴로워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과거의 죄업을 현실에서 소멸한다고 생각하고 괴로움을 기꺼이 수용합니다. 이런 입장은 현실에서 매우 중요합니다. 만일 이 도리를 현실생활에 쓸 수 있는 사람이라면 어디에서나 환영받고 필요한 사람으로 대접 받을 것입니다.

〈보충설명3〉 ‘부차(復次)’는 지경공덕분에 이어서 금강경 수지독송의 공과를 다시 언급한다는 뜻으로서 접속부사입니다.

〈보충설명4〉 ‘약위인경천(若爲人輕賤)’의 ‘위(爲)’는 피동의 의미로서 ‘소(所)’가 생략된 것입니다.

[六祖]佛言 持經之人 合得一切天人 恭敬供養 爲多生 有重業障故 今生雖得受持諸佛如來 甚深經典 常被人輕賤 不得人恭敬供養 自以受持經典故 不起人我等相 不問親 常行恭敬 心無惱恨 蕩然無所計較 念念常行般若波羅蜜 曾無退轉 以能如是修行 故得從無量劫 以至今生 所有極重惡障 悉皆消滅 又約理而言 先世者 卽是前念妄心 今世者 卽是後念覺心 以後念覺心 輕賤前念妄心 妄不能住 故 云先世罪業 卽爲消滅 妄念 旣滅 罪業 不成 卽得菩提也

부처님께서 말씀해 주신 뜻은,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사람은 마땅히 모든 인천(人天)에게 공경과 공양을 받아야 하겠지만 다겁생의 무거운 업장 때문에 비록 모든 부처님과 여래의 깊고 깊은 경전을 수지독송하더라도 사람들에게 무시당하고 공경과 공양을 받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스스로 경전을 수지독송하면 아상(我相)과 인상(人相) 등을 내지 않기 때문에 원수와 친한 사람의 구별 없이 항상 공경을 행하며, 마음에는 번뇌와 한이 없어서 탕연히 머리를 굴리지 않고 생각 생각마다 항상 반야바라밀을 행하여 일찍이 물러남이 없게 된다. 능히 이와 같이 수행하면 지난 무량겁으로부터 금생에 이르기까지 지은 바 무거운 업장이 다 능히 소멸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치를 잡아서 말하자면, 선세(先世)는 곧 앞생각의 망령된 마음이고 금세(今世)는 곧 뒷생각의 깨달은 마음이니, 뒷생각 깨달은 마음으로 앞생각 망령된 마음을 가벼이 여겨 망심에 머물지 않게 하므로 선세의 죄업이 곧 소멸된다고 하는 것이다. 망념이 소멸되면 죄업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곧 보리를 얻는 것이다.

[冶父]不因一事 不長一智
한 일을 말미암지 않으면 한 지혜가 자라나지 않는다.

〈보충설명〉 어떤 일을 경험하지 않고는 그 일에 대한 지혜가 터득되지 않습니다. 이를테면 한 번 아파본 사람이라야 건강에 대해 더욱 큰 관심을 갖게 되고, 한 번 실패해본 사람이라야 성공을 더욱 갈구하고 소중하게 여기게 됩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아픔을 겪어야 보리의 소중함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런 지혜는 모든 사람들이 다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