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지경공덕분/3/

通達無我法者 2008. 10. 8. 16:16

 

 

                         <사진설명>금강산도 화첩 중 표훈사. 겸재 정선(1697~1759) 作.



〈보충설명〉 거대한 산악도 낱낱의 티끌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도 결국은 공(空)으로 돌아갑니다.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은 안광(眼光)이 빛나고 가슴 속의 기운이 웅장하게 넘쳐흐릅니다. 그리고 이렇게 웅장한 기개를 펼쳐 보이는 사람들이 변방에 가게 되면 변방이 평화로워지고, 나라 안으로 들어가면 영재들을 두루 교육시켜 나라가 부강해 집니다. 대승보살의 마음이 바로 그렇습니다. 마치 바다처럼 웅장하며 또 큰 파도가 일더라도 시간과 공간이 끊어진 채 언제나 푸른 것과 같습니다.

何以故 須菩提 若樂小法者 着我見人見衆生見壽者見 卽於此經 不能聽受讀誦 爲人解說

“어떻겠는가? 수보리여! 만일 작은 법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아견·인견·중생견·수자견에 집착하기 때문에 이 경전을 받아 듣고 독송하여 남을 위해 해설해 주지 못하리라.”

[六祖]樂小法者 爲二乘人 樂小果 不發大心 以不發大心故 卽於如來深法 不能受持讀誦 爲人解說

작은 법을 좋아하는 사람은 이승(二乘)을 행하는 사람이라서 작은 결과에 즐거워하므로 큰마음을 발하지 못하니, 큰마음을 발하지 못하는 까닭으로 여래의 깊은 법을 수지독송하여 남을 위해 해설하지 못한다.

[冶父]仁者見之 謂之仁 智者見之 謂之智

어진 사람이 『금강경』을 보면 어짊이 묻어 나오고, 지혜 있는 사람이 보면 지혜가 묻어 나오도다.

〈보충설명〉 이것은 주역에 나오는 말입니다.

不學英雄不讀書 波波役役走長途 娘生寶藏無心用 甘作無知餓死夫 爭怪得別人

영웅의 학문도 안 배우고 독서도 안하면서, 물결치는 대로 일 따라 오랫동안 달려만 왔도다. 날 때부터 갖고 온 보배 창고를 사용할 줄 모르고, 기껏 無知만 지어 굶어죽게 됐도다. 어찌 다른 사람에게 괴이하다 여기겠는가?

〈보충설명〉 우리는 출생할 때 지니고 나오는 지혜의 보배가 있지만, 스스로 어리석음을 지으며 그 보배를 쓰지 못한 채 죽어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기막힐 일인데도 불구하고 마치 다른 사람의 일인 것으로만 알고 바로 나 자신의 일인 줄을 모릅니다.

須菩提 在在處處 若有此經 一切世間天人阿修羅 所應供養 當知此處 則爲是塔 皆應恭敬作禮圍繞 以諸華香 而散其處

“수보리여! 어느 곳이든지 이 『금강경』이 놓여 있으면, 모든 세간의 천·인·아수라가 응당히 공양을 올릴 것이니, 마땅히 알라. 이곳은 곧 탑이 있는 것과 같아서 모두 공경의 예를 지어 빙 둘러 돌 것이며, 여러 가지 꽃과 향을 그 곳에 흩어 공양 하리라.”

[六祖]若人 口誦般若 心行般若 在在處處 常行無爲無相之行 此人所在之處 如有佛塔 感得一切人天 各持供養 作禮恭敬 與佛無異 能受持經者 是人心中 自有世尊 故云如佛塔廟 當知是人 所作福德 無量無邊

어떤 사람이 입으로는 반야를 외우고 마음으로는 반야를 실천하며, 곳곳에서 항상 함이 없는(無爲) 무상(無相)의 행실을 행하면, 이 사람이 있는 곳은 불탑(佛塔)이 있는 것처럼 모든 인천(人天)이 각각 공양 올려 예절대로 공경하기를 부처님께 하는 것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적극적으로 『금강경』을 수지하는 사람은 마음 가운데에 스스로 세존이 있음을 감득하기 때문에 불탑묘와 같다고 하는 것이니, 마땅히 알라. 이 사람의 지은 복덕이 무량무변할 것이다.

[冶父]鎭州蘿蔔 雲門胡

진주의 무이고, 운문의 개떡이로다.

〈보충설명〉 벽암록에 등장하는 이야기를 야보 스님이 인용한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조주 스님에게 와서 “스님은 남전 스님께 좋은 법을 많이 들었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은 “훌륭한 스승에게 좋은 법문을 많이 들었을 테니 조주 스님의 법력도 크지 않겠습니까? 내 보여 주십시오” 하는 거량이 들어있는 질문입니다. 그 때 조주 스님은 “진주의 무는 방망이 보다 더 크더라”고 대답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이 운문 스님에게 “부처의 말도, 조사의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많이 듣지 않은 한마디를 해주십시오” 라고 법문을 요청했습니다. 그 때 운문 스님은 “개떡이나 먹어보시게”라고 대답했습니다.

야보 스님이 진주의 무와 운문의 개떡을 이끌어서 우리에게 전해주려는 요지는 『금강경』에 공양 올리고 예를 갖추는 것이 우리의 일상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무나 개떡처럼 항상 가까이 있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갖추어진 부처, 나 자신의 『금강경』 진리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與君同步又同行 起坐相將歲月長 渴飮飢食常對面 不須回首更思量

그대와 함께 거닐고 함께 움직이니, 일어나고 앉고 서로 기다리며 많은 세월 보내도다. 목마르면 마시고 주리면 밥 먹으며 항상 대면하니, 모름지기 머리 돌려 따로 구하지 말지어다.

〈보충설명1〉 『금강경』 진리는 항상 우리와 함께 있습니다. 목마르면 물마시고 배고프면 밥 먹는 그 가운데 있는데, 다른 곳에 진리가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사량한다면 마치 물속에서 헤엄치는 물고기가 물을 따로 구하는 것과 같습니다.

〈보충설명2〉 府帖昨夜下 次選中男行 中男絶短小 何以守王城 → 두보와 신안 관리의 대화입니다. 정남(丁男)은 이미 전쟁터로 차출되었고, 열 서너 살 소년들(中男)까지 전쟁에 징발하려는 현실을 고발하는 대목입니다.

〈보충설명3〉 白水暮東流 → 흐르는 냇물이 돌아오지 않듯이 전쟁터에 나가면 돌아오지 못하는 분위기를 표현한 것입니다.

〈보충설명4〉 眼枯却見骨 → 여기에서의 見은 ‘본다’는 뜻의 ‘견’이 아니고 ‘드러난다’는 뜻의 ‘현’입니다.

〈보충설명5〉 掘壕不到水 → 물이 나올 만큼 참호를 깊게 파지 않으니 그만큼 힘 드는 부역과 병영생활은 아닐 것이라고 슬퍼하는 가족을 위로하는 대목입니다.

〈보충설명6〉 僕射 → 唐代의 무관벼슬(부대의 대장)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