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지경공덕분/1/사상을 여읜 순간 부처를 이루리라

通達無我法者 2008. 10. 8. 16:05

 

 

오늘부터 『금강경』 하권(下卷)이 시작됩니다. 법신불·노사나불·화신불이 안주하고 있고, 육바라밀의 실천을 통해 부처님 세계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 있으며, 진공묘유의 사상이 깃들어 있는 『금강경』은 하늘과 사람, 아수라(阿修羅)가 모두 공경하는 경전입니다. 하권이 시작되는 지경공덕분(持經功德分)의 핵심 내용은 『금강경』의 진리를 깨닫고 진공묘유를 체득해 자리이타하는 공덕이 목숨 보시나 재물 보시에 비할 바 없이 훨씬 더 수승하며 영원불멸하다는 것입니다.

須菩提 若有善男子善女人 初日分 以恒河沙等身 布施 中日分 復以恒河沙等身 布施 後日分 亦以恒河沙等身 布施 如是無量百千萬億劫 以身布施
“수보리여! 만일 선남자·선여인이 하루를 셋으로 나누어 아침에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몸으로써 보시하고, 낮에도 항하의 모래수와 같은 많은 몸으로써 보시하고, 저녁에도 또한 항하의 모래수와 같이 많은 몸으로써 보시해, 이와 같이 한량없는 백천만억겁을 몸으로써 보시하더라도∼”

若復有人 聞此經典 信心不逆 其福 勝彼 何況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만약에 어떤 사람이 있어 이 『금강경』을 듣고서 믿는 마음이 거스르지 않으면 그 복이 저런 보시보다 수승하거늘 하물며 『금강경』을 쓰고 베끼고 받아 지니고 독송하면서 다른 사람을 위해 해설해 준다면 그 복의 수승함을 무엇과 비교하겠는가?”

[六祖]佛說末法之時 得聞此經 信心不逆 四相不生 卽是佛之知見 此人功德 勝前多劫捨身功德百千萬億 不可譬喩 一念聞經 其福尙多 何況更能書寫受持讀誦 爲人解說 當知此人 決定成就阿多羅三三菩提 所以 種種方便 爲說如是甚深經典 離諸相 得阿多羅三三菩提 所得功德 無有邊際 蓋緣多劫捨身 不了諸相本空 有能捨所捨心在 元未離衆生之見 如能聞經悟道 我人頓盡 言下卽佛 將彼捨身有漏之福 比持經無漏之慧 實不可及 雖十方聚寶 三世捨身 不如持經四句之偈也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바에 의하면 말법 시대에 이 『금강경』 내용을 듣고 믿는 마음이 거스르지 않으면 사상(四相)이 생기지 않는다 하였으니 이것이 곧 부처님의 지견(知見)이다. 이 사람의 공덕은 이전의 다겁생 동안 몸을 버려 보시하는 공덕보다 백천만억배나 더 수승해서 비유할 수 없으니, 잠깐 경전의 내용을 들어도 그 복이 오히려 많거늘, 하물며 다시 능히 써서 베끼고 수지독송해 남을 위해 해설해 주는 것에 무슨 말을 더하겠는가? 마땅히 알라.

이런 사람은 결정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성취할 것이고 그 까닭에 갖가지 방편으로 이 깊고 깊은 경전을 중생을 위해 설해주어 모든 상(相)을 여의게 하고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게 할 것이니 그 얻는바 공덕은 끝이 없을 것이다.

만일 다겁생에 목숨을 보시하더라도 모든 모습이 본래 공함을 요달하지 못하면, 능히 보시하는 주체와 보시 받는 대상이 마음에 남기 때문에 원래 중생이라는 소견을 여의지 못하겠지만, 만일 능히 『금강경』을 듣고 깨달아서 아상(我相)과 인상(人相)이 몰록 다하면 언하(言下)에 곧 부처인 것이다.

저 목숨을 보시하는 유루의 복을 가지고 『금강경』을 지송하는 무루의 지혜에 비교하면 실로 미치지 못하니, 비록 시방에 가득 쌓인 보배와 삼세(三世)의 몸을 보시하더라도 경전의 사구게를 지송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冶父]人天福報卽不無 佛法未夢見在
인간과 천상에 태어나는 복과 과보는 없지 않지만, 불법은 꿈에도 볼 수 없을 것이로다.

〈보충설명〉 상에 머물러 행하는 유루보시는 복과 과보가 따릅니다. 그러나 부처님 세계는 텅 빈 진리여서 꿈에도 볼 수 없습니다.

初中後發施心同 功德無邊算莫窮 爭似信心心不立 一拳打透太虛空
아침·점심·저녁으로 보시를 발하는 마음이 한결같으니, 공덕이 끝없어 헤아릴 수 없도다. 그러나 어찌 믿는 마음이 우러나고 그 마음마저 세우지 않고 텅 비워서, 한 주먹에 태허공을 때려 무너트리는 경지와 같겠는가?

須菩提 以要言之 是經 有不可思議不可稱量無邊功德
“수보리여! 요점을 들어서 이야기해 보건대, 이 『금강경』이야 말로 가히 사의할 수도 없고 헤아릴 수도 없고 가없는 공덕이 있느니라.”

[六祖]持經之人 心無我所 無我所故 卽是佛心 佛心功德 無有邊際 故 言不可稱量也
『금강경』을 지송하는 사람은 我所(내 것이라는 집착)가 없으니, 아소가 없는 까닭으로 이것이 곧 부처님 마음이다. 부처님 마음의 공덕은 한계가 있을 수 없기 때문에 ‘불가칭량’이라고 말씀 하셨다.

如來 爲發大乘者說 爲發最上乘者說
“여래는 대승을 발하는 사람을 위해 설하며, 최상승을 발하는 사람을 위해 설하느니라.”

〈보충설명〉 대승(大乘)은 일체의 중생이 부처와 똑같이 진리를 성취하기 원하고 부처님 경지의 자비와 지혜를 실천하는 것입니다.

[六祖]大乘者 智慧廣大 善能建立一切法 最上乘者 不見垢法可厭 不見淨法可求 不見衆生可度 不見涅槃可證 不作度衆生之心 亦不作不度衆生之心 是名最上乘 亦名一切智 亦名無生忍 亦名大般若 有人 發心 求無上道 聞此無相無爲甚深之法 聞已 卽便信解受持 爲人解說 令其深悟 不生毁謗 得大忍力 大智慧力 大方便力 卽能流通此經
‘대승자’는 지혜가 광대해서 능히 일체법을 잘 건립하는 사람이다. ‘최상승자’는 더러운 법도 싫어하는 생각을 내지 않고, 깨끗한 법도 구한다는 생각을 내지 않고, 중생을 구제한다는 생각도 내지 않고, 열반을 증득한다는 생각도 내지 않고, 중생을 제도한다는 마음도 내지 않으며, 또한 중생을 제도하지 않는다는 마음도 내지 않는다. 이러해 ‘최상승’이라 이름 함과 동시에 ‘일체지(一切智)’라고도 이름하며, ‘불생(不生)의 진리를 얻은 무생인’이라고도 이름하며, ‘대반야’라고도 이름 한다.

만일 어떤 사람이 마음을 내서 무상(無上)의 도를 구한다면 이 무상(無相)·무위(無爲)의 매우 깊은 법을 들을 것이며, 또 듣고 난 직후에 경전 내용을 믿고·이해하고·수지하게 되어 남을 위해서도 해설해 줄 것이며, 그로 해금 깊이 믿게 해서 비방하는 마음을 내지 않게 해, 큰 인내의 힘과 큰 지혜의 힘과 큰 방편의 힘을 얻어서 이 경을 능히 유통시키게 할 것이다.

[冶父]如斬一握絲 一斬一切斷

한 웅큼의 실을 잡아끊음에 있어서 한칼에 다 끊어버리도다.

〈보충설명〉 우리의 지견을 어둡게 하는 사상(四相)만 여의면 그 즉시 모든 것이 空이 되어 부처를 이룬다는 비유입니다.

一拳打倒化城關 一脚玄妙寨 南北東西信步行 休覓大悲觀自在 大乘說最上說 一棒一條痕 一掌一握血
한 주먹으로 아지랑이를 쳐부수고, 한 발로 현묘한 진리를 걷어찼도다. 동서남북을 발길 닿는 대로 다니니, 대비 관세음보살을 찾는 것도 쉽도다. 대승을 위해 설하고 최상승을 위해 설한다 함이여! 그런 소리를 한 방망이 치니 한 가닥의 흔적이요, 한 주먹으로 때리니 한 줌의 피로다.

〈보충설명1〉 ‘化城’은 법화경의 비유품에 나오는 비유로서 아지랑이라는 뜻입니다.

〈보충설명2〉 ‘南北東西信步行’은 大自由人이 되었다는 뜻이며 ‘信’은 전치사입니다.

〈보충설명3〉 부처님은 『금강경』 공덕의 위대함을 나타내기 위해서 대승자와 최상승자를 위해 설했다고 말씀하시지만, 야보 스님은 여기에 집착할까 저어해 성문이니 연각이니, 대승이니 최상승이니 하는 개념에 전혀 걸리지 말라는 뜻으로 이렇게 고일착 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붙지 않은 진공묘유의 『금강경』 진리는, 방망이로 때리면 그 순간에 방망이 맞은 흔적이 남듯이, 믿는 순간에 바로 진리를 깨달아 대승자가 되고 최상승자가 됩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