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금강산도 화첩 중 만폭동. 겸재 정선(1697~1759) 作.
讚不及毁不及 若了一萬事畢 無欠無餘若太虛 爲君題作波羅蜜 칭찬으로도 미칠 수 없고 헐뜯어서도 미칠 수 없도다. 만일 모든 일을 다 요달해 마친다면,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는 것이 태허공과 같을진대, 그대를 위해 바라밀이라 이름 했을 뿐이로다. 〈보충설명〉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험담은 잠시 나의 밖에 머물다가 가버리는 그림자입니다. 실제의 나는 비난이나 칭찬과는 아무런 상관도 없습니다. 허공처럼 어디에나 가득 차 있으면서 모자람도 없고 남음도 없고 이름조차 없습니다. 그러나 공부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불가피하게 반야바라밀이란 이름을 붙이고 방편으로 문자를 쓸 뿐입니다. 杜詩 맛보기 潼關吏 - 杜甫 士卒何草草 築城潼關道 大城鐵不如 小城萬丈餘 병사들이 왜 그리 헐떡이나? 동관의 길목에 성을 쌓아 그러하네. 큰 성은 철보다 더 견고하고, 작은 성도 만 장 남짓 길어라. 借問潼關吏 修關還備胡 要我下馬行 爲我指山隅 동관의 관리에게 물으니, 관새(關塞)를 수리하여 오랑캐를 막는다네. 나 보고는 말 아래로 내려서 가라며, 산모퉁이 가리키네. 連雲列戰格 飛鳥不能踰 胡來但自守 豈復憂西都 목책(木柵)이 구름에 잇닿아서 나는 새도 넘을 수 없겠는데 오랑캐가 오더라도 목책이 스스로 지키나니, 어찌 다시 장안을 걱정하리. 丈人視要處 窄狹容單車 艱難奮長戟 千古用一夫 “어르신! 저 요처(要處)를 보십시오. 좁고 험하기가 수레 한 대 겨우 지나가고 아무리 어려워도 긴 창 휘두르면 만고에 혼자서도 지켜낼 것입니다.” 哀哉桃林戰 百萬化爲魚 請囑防關將 愼勿學哥舒 슬프도다. 도림(桃林)의 전쟁이여! 백만 대군이 고기밥이 되었도다. 청하노니, 관문 막는 장군이여! 가서(哥舒)를 배우지는 마십시오. 〈보충설명1〉 동관은 오랑캐가 장안(長安)에 들어갈 때 지나야만 하는 산악지대 요충지입니다. 안록산의 군대가 장안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관군의 총수인 곽자의 장군이 이곳에 성을 쌓았는데 엄청난 규모의 공사여서 사상자가 많았다고 합니다. 두보는 이런 내용을 하나도 드러내지 않은 채 황폐해진 현실을 고발하고 있습니다. 전하는 바에 의하면 민중의 애환을 시로써 대변하며 두보는 그 아픔에 못 이겨 피를 토했다고 합니다. 〈보충설명2〉 전격(戰格)은 병졸들이 성벽을 넘어가지 못하도록 가지런히 쌓아올린 목책입니다. 가파른 산모퉁이에 하늘과 닿도록 높이 쌓아 올린 목책이 있어서 지키는 사람이 없어도 오랑캐를 막을 수 있다고 자랑하는 관리의 말을 듣는 두보는 오히려 그것을 쌓는 동안 희생된 병졸들을 생각하며 가슴 아파 합니다. 〈보충설명3〉 대장군 곽자의에게는 가서한이라는 수하가 있었는데, 백만 대군을 믿고 자만하다가 도림의 전쟁에서 크게 패하여 많은 군사를 잃었습니다. 동관을 지키는 장군도 목책을 믿고 자만할까봐서 두보는 그 걱정스런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 것입니다. 須菩提 我念過去無量阿僧祇劫 於然燈佛前 得値八百四千萬億那由他諸佛 悉皆供養承事 無空過者 “수보리여! 내가 생각건대 연등부처님을 만나기 전 과거의 셀 수 없는 많은 겁 동안에도 팔백사천만억의 모든 부처님을 만나 다 공양 올리고 받들어 모시는 일에 헛되이 지나친 적이 없느니라.” 〈보충설명〉 부처님께서 무량한 과거에 무량한 부처님을 만나 한 번도 공양 올리지 않은 일이 없고 또 받들어 모시지 않은 적이 없다고 말씀하신 까닭은 『금강경』을 수지독송하는 공덕이 이보다 훨씬 더 수승하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부처님께 올리는 공양은, 여러 가지 공양 중에서도 최상의 공양이지만 『금강경』을 지니는 것에 비하면 하찮은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말씀을 성실히 새기고 잘 수용하면서 진리의 깊은 맛을 음미할 수 있어야 합니다. 『금강경』을 배우면서도 그 가르침에 소홀하고 게으르면 공연히 업장만 누적됩니다. 若復有人 於後末世 能受持讀誦此經 所得功德 於我所供養諸佛功德 百分不及一 千萬億分 乃至算數譬喩 所不能及 “만일 사람들이 후말세에 이 『금강경』을 수지독송하여 얻는바 공덕을 비교한다면, 내가 모든 부처님을 공양한 공덕이라도 그 것의 백분의 일에 미치지 못하며 천만억분의 일 내지 모든 숫자의 비유로도 미치지 못할 것이니라.” [六祖]供養恒沙諸佛 施寶滿三千界 捨身如微塵數 種種福德 不及持經 一念悟無相理 息希望心 遠離衆生顚倒知見 卽到波羅彼岸 永出三塗苦 證無餘涅槃 항하의 모래 수만큼의 모든 부처님께 공양 올리며, 보배를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히 보시하고, 신명을 바쳐 보시하기를 티끌 수처럼 많이 행하여 얻는 갖가지 복덕도 『금강경』을 수지하는데에 미치지 못한다고 설한 까닭은, 한 생각에 무상(無相)의 이치를 깨달아서 바라는 게 있는 마음을 쉬고 중생의 전도된 지견을 멀리 여의면 곧 반야바라밀의 저 언덕에 이르러 영원히 삼악도의 고통을 뛰어넘고 무여열반을 증득하기 때문이다. [冶父]功不浪施 공력을 헛되이 베푸는 게 아니로다. 〈보충설명〉 야보 스님의 이 착어는 지경공덕에 관한 부처님 말씀을 전적으로 수용한 것입니다. 즉, 『금강경』의 수지독송은 무루복덕을 이루고 불과를 성취하게 하므로 그 공력이 헛되지 않다는 뜻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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