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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덕민 스님이 승가대학 학장으로 있는 불국사 전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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須菩提 所言一切法者 卽非一切法 是故 名一切法
“수보리여! 일체의 법이란 곧 일체의 법이라는 흔적이 없으니, 이런 까닭으로 일체의 법이라고 이름 붙일 따름이니라.”
〈보충설명1〉 우리가 이미 배우고 지나간 금강경 상권은 부처님과 수보리와의 대화를 통해 우리의 굵고 거친 번뇌들을 제거해 나가도록 가르침이 전개되었습니다.
지금 배우고 있는 구경무아분에 이르러서는 마지막 미세한 번뇌까지도 철저하게 제거하여 ‘나’라는 인식이 깨끗하게 사라져야만 비로소 원융무애한 불법의 바다에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침이 전개됩니다.
〈보충설명2〉 일체법(→삼라만상 모든 법, 진리)은 법이라고 할 아무런 흔적이 없을 때가 되어야만 참된 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말하는 바의 일체법이란, 일체법이라는 상(相) 또는 언어의 흔적을 남기는 것이므로 참된 의미의 일체법이 될 수 없고 다만 일체법이라는 이름만 붙일 따름인 것입니다. 진리의 모습이 진정으로 살아나려면 일체의 상(相)을 떠난 구경무아의 상태가 되어야 가능한 것입니다.
[六祖]能於諸法 心無取捨 亦無能所 熾然建立一切法 而心常空寂 故知一切法 皆是佛法 恐迷者 貪着一切法 以爲佛法 爲遣此病故 言卽非一切法 心無能所 寂而常照 定慧齊行 體用一致 是故 名一切法也
능히 일체법에 대하여 취사(取捨)하는 마음이 없고 또한 주관과 객관도 없어지면 성대하게 일체법을 건립하더라도 마음은 항상 공적할 것이다. 그러므로 알아야 한다. 일체법이 모두 불법(佛法)이지만, 미혹한 사람이 일체법에 탐착하여 불법으로 잘못 알까 저어하여 이런 병폐를 버리게 하려고 ‘즉비일체법’(→일체법이 법이 아니라고 부정함)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주관과 객관이 사라진 마음으로 한결같이 고요히 반조하면 선정과 지혜가 가지런히 행해지고 체(體)와 용(用)이 하나로 어우러질 것이니 이런 까닭으로 이름하여 일체법이라 하는 것이다.
[冶父]上大人丘乙已
훌륭한 공자님은 을사년에 태어나셨도다.
〈보충설명1〉 상대인은 최고로 훌륭한 사람을 일컫는 말이며 을사년은 공자 탄생의 해입니다.
〈보충설명2〉 구(丘)는 공자의 어릴 때 이름자인데 성인의 이름은 함부로 부르지 않는 것이 관습이어서 여기서도 ‘모’(某: 아무개의 뜻)라고 읽어야 합니다.
〈보충설명3〉 ‘상대인모을사’는 중국 사람들이 아기를 등에 업고 ‘너도 공자님처럼 훌륭한 인물이 되라’는 뜻으로 자장가처럼 부르는 노래입니다.
〈보충설명〉 여기서는, ‘일체의 모든 법은 법이 아니다’ 하는 부처님 말씀을 불가(佛家)에서는 너무 많이 들어서 누구나 다 아는 자장가처럼 귀에 익었습니다.’ 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是法非法不是法 死水藏龍活 是心非心不是心 逼塞虛空古到今 者是 絶追尋 無限野雲風捲盡 一輪孤月照天心
옳은 법도 그른 법도 다 법이 아님이여! 썩은 물에 감춰진 용이 살아서 활기 넘치네. 옳은 마음도 그른 마음도 다 마음이 아님이여! 허공에 꽉 차 예부터 지금에 이르렀네. 다못 이 ‘이놈’(지금 이 순간의 우리자신) 이니 찾아 헤매지 말라. 끝없는 들 구름을 바람이 다 거두니, 하나의 둥근 달이 하늘 복판에서 비추네.
〈보충설명〉 시법이니 비법이니 하는 차별법은 모두 불법(佛法)이 아니기 때문에 이런 차별법이 모두 사라진 뒤라야 진리의 용이 되살아나서 천변만화를 부립니다. 이 진리, 이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허공에 꽉 차 있으며 다른 것이 아니고 바로 ‘이놈’(→지금 이 순간의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須菩提 譬如人身長大 須菩提 言 世尊 如來說人身長大 則爲非大身 是名大身
“수보리여! 비유하건대 사람의 몸이 장대한 것과 같으니라.” 수보리가 말씀 올렸다. “세존이시여! 여래께서 사람의 몸이 장대하다고 말씀하신 것은 곧 (진리의 입장에서) 큰 몸이 아니기 때문에 이름을 큰 몸이라고 붙였을 뿐입니다.”
〈보충설명〉 장엄정토분에서의 ‘인신장대’는 보신불(報身佛)의 경우를 이야기 합니다. 이 곳 구경무아분에서의 ‘인신장대’는 법신(法身)의 경계입니다.
그러나 여기서의 ‘큰 몸’도 ‘큰 몸’이란 것에 한계를 지워 집착할까봐 ‘큰 몸’이 아니라고 부정하고 다만 대신(大身)이라고 이름 붙였을 뿐이라고 말씀하십니다.
[六祖]如來 說人身長大 卽爲非大身者 以顯一切衆生 法身 本無處所 故言卽非大身 法身 不二 無有限量 是名大身 又以色身 雖大 內無智慧 卽非大身也 色身 雖小 內有智慧 得名大身 雖有智慧 不能依行 卽非大身 依敎修行 悟入諸佛無上知見 心無能所限量 是名大身
여래께서 설하신 ‘인신장대 즉위비대신’이란, 일체 중생의 법신이 본래 정해진 처소가 없음을 드러내려고 ‘즉비대신’이라 말씀하신 것이며, 법신이 둘이 아니고 한량이 없기 때문에 이름하여 대신(大身)일 뿐이다. 또, 색신(色身)은 비록 크지만 내면에 지혜가 없으면 곧 큰 몸이 아니요, 색신은 비록 작지만 내면에 지혜가 있으면 큰 몸이라 이름한다.
비록 지혜가 있으나 능히 수행에 의지하지 않으면 곧 큰 몸이 아니요, 가르침에 의지해 수행하여 모든 부처님의 위없는 지견을 깨달아 마음에 능소의 분별없이 한량없게 되면 큰 몸이라 이름할 것이다.
[冶父]喚作一物卽不中
‘한 물건’이라고 불러도 곧 맞지 않도다.
天産英靈六尺軀 能文能武善經書 一朝識破孃生面 方信閑名滿五湖
하늘이 내려준 영특하고 신령스런 여섯 척 몸뚱이여! 문장과 무술에 능하고 경전도 잘 읽네. 하루아침에 어머니가 낳기 이전 본래의 얼굴을 되찾아 알게 되니, 바야흐로 한가한 이름이 오호에 가득하네.
〈보충설명〉 우리는 어머니가 낳아준 우리의 모습을 두고서 ‘나’라고 여기며 삽니다. 그러나 수행을 하다보면 우리가 ‘나’라고 착각하고 있던 우리 자신은 허망한 것임을 알게 되고 어느 순간에 어머니가 낳기 이전의 진실된 내 모습을 알게 됩니다.
그 것을 방편으로 ‘한 물건’이라 이름 하지만 이 ‘한 물건’도 진리에서는 벗어난 이름이기 때문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