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剛經五家解·덕민스님

구경무아분/5/모습에 집착하는 삶은 허망하니라

通達無我法者 2008. 10. 8. 16:48

 

 

若有人 如來得阿多羅三三菩提 須菩提 實無有法佛得阿多羅三三菩提 須菩提 如來所得阿多羅三三菩提 於是中 無實無虛
“만일 어떤 사람이 ‘여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었다’ 라고 말한다해도 수보리여! 실제의 이치에서는 어떤 특정한 법으로 부처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를 얻은 바가 없느니라. 수보리여! 여래가 얻은 바 아뇩다라삼먁삼보리는 그 가운데에 실상도 허상도 전혀 없느니라.”

 

[六祖]佛言 實無所得心 而得菩提 以所得心 不生 是故 得菩提 離此心外 更無菩提可得 故言無實也 所得心 寂滅 一切智 本有 萬行 悉圓備 恒沙德性 用無乏少 故言無虛也
부처님께서는 “실제의 이치에서는 얻을 바 없는 마음으로 보리를 얻었으니, 얻을 바가 있다는 마음을 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까닭으로 보리를 얻었느니라.” 하셨다. 또, 이 마음을 떠나 밖에서 따로 얻을 보리가 없기 때문에 ‘무실(無實)’이라 말씀하셨으며, 얻을 바 마음은 적멸하지만 그 가운데 일체지(一切智)가 본래 존재하고 만 가지 행도 원만히 갖추어져 있어서 항하사 모래와 같은 덕의 성품이 써도 써도 모자람이 없기 때문에 ‘무허(無虛)’라고도 말씀하신 것이다.

 

[冶父]富嫌千口少 貧恨一身多
부자는 천 명 먹을 재산이 있어도 적다고 불평하고, 가난한 사람은 한 몸뚱이도 많다고 한탄하네.

 

〈보충설명〉 ‘무실무허’의 살림살이를 현실적으로 확연히 드러나게 표현한 것입니다.

 

生涯如夢若淨雲 活計都無絶六親 留得一雙靑白眼 笑看無限往來人
삶은 꿈과 같고 뜬 구름 같지만, 활계는 아무 것도 없어서 육친(六親)의 경계조차 끊어졌네. 한 쌍의 청백의 눈동자에 머물러 얻어서, 풍진에 끝없이 왕래하는 사람을 웃으며 바라보네.

 

〈보충설명〉 모습에 집착하는 삶이란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무아(無我)의 진리를 체득하면 헛되이 바쁘게 오락가락하는 사람들을 뛰어넘는 활계가 생깁니다.

是故 如來 說一切法 皆是佛法
“이런 까닭으로 여래는 일체법이 모두 불법이라고 말하는 것이니라.”

 

〈보충설명〉 삼계(三界)의 모든 것은 진리를 벗어나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법이 다 부처님 법입니다.

 

[冶父]明明百草頭 明明祖師意
분명한 모든 풀끝에 분명한 조사의 뜻이 함께하도다.

 

會造逡巡酒 能開頃刻花 琴彈碧玉調 爐煉白砂 幾般伎倆從何得 須信風流出當家
즉석에서 준순주(술)를 만들고 순식간에 꽃도 피우네. 거문고로 벽옥의 곡조를 연주하고 용광로에서 흰빛 주사(砂)를 제련하네. 이런 재주들은 어디서 나왔는가? 모름지기 풍류가 개개인에게서 나왔음을 믿을지어다.

 

〈보충설명1〉 갖가지 신통묘용은 어느 특정인이 독점하는 재주도 아니고 또 어떤 특정한 곳에서 특별히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가 갖추고 있는 불법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어느 순간 극락을 생각하면 극락이 곧 우리 마음에 펼쳐지고, 어느 순간 어릴 적 기억을 더듬으면 우리의 시간은 그 즉시 과거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우리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신통묘용을 언제나 쓰고 살아갑니다. 진정한 무아를 이루고 신통묘용의 곡조를 울리면 그 것이 곧 죽은 사람을 살리는 것입니다.

 

〈보충설명2〉 ‘회(會)’는 시간부사로서 즉석에서의 뜻.

 

〈보충설명3〉 준순주는 중국의 술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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漁父詞 - 屈原

夫屈原이 旣放에 游於江潭하며 行吟澤畔할새 顔色樵悴하고 形容枯槁하니
漁父 見而問之曰 子非三閭大夫與아 何故로 至於斯오.
굴원이 추방당하고 강과 연못을 헤매며 강 언덕에서 시를 읊조리는데 안색이 초췌하고 몰골이 바짝 말라 볼품없으니, 어부가 보고 물어 가로되, “선생께서는 삼려대부가 아닙니까? 무슨 까닭으로 이 지경이 되었습니까?”

 

屈原 曰 擧世皆濁이어늘 我獨淸하고, 衆人皆醉어늘 我獨醒이라. 是以로 見放이로다.
굴원이 이르되, “온 세상이 모두 혼탁하거늘 나 홀로 깨끗하고, 많은 사람이 다 취했거늘 나 홀로 깨어 있는지라. 이런 까닭으로 추방당했다오.”

漁父 曰 聖人은 不凝滯於物하고 而能與世推移하나니, 世人이 皆濁이어든 何不其泥而揚其波하며, 衆人이 皆醉어든 何不飽其糟而其어늘, 何故로 深思高擧하여 自令放爲오.


어부가 가로되, “성인은 사물에 엉기거나 막히지 않고 능히 세상과 더불어 나아간다는데, 세상 사람들이 모두 탁하면 어째서 그 진흙에다 더러운 물결을 일으키지 않았으며, 대중이 모두 취했다면 어째서 그 술지게미도 먹지 않고 술도 마시지 않았으며, 무슨 까닭으로 깊이 생각하고 고상하게 거동하여 스스로 추방을 당하셨습니까?”

屈原 曰 吾聞之하니, 新沐者는 必彈冠이오 新浴者는 必振衣라 하니 安能以身之察察로 受物之汶汶者乎아. 寧赴湘流하여 葬於江魚之腹中이언정 安能以皓皓之白으로 而蒙世俗之塵埃乎아.
굴원이 이르되, “내가 듣기로는, 새로 머리를 감은 자는 반드시 갓을 털고서 쓰며, 새로 목욕한 자는 반드시 옷을 털고서 입는다 하였는데, 어찌 내 몸의 정갈함에 외물(外物)의 얼룩을 묻히겠는가? 차라리 소상강(湘江)에 뛰어들어 물고기 뱃속에서 장사를 지낼망정 어찌 희디흰 순백으로 세속의 티끌을 뒤집어쓰겠는가?”

 

漁父가 莞爾而笑하고 鼓而去하며 乃歌曰, 滄浪之水淸兮어든 可以濯吾纓이오 滄浪之水濁兮어든 可以濯吾足이로다하고 遂去不復與言이러라.
어부가 빙긋이 웃고 뱃머리를 두드리고 가면서 노래하기를, “창랑의 물이 맑거든 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탁하거든 내 발을 씻네.” 하고는 마침내 가버리고 다시는 굴원과 더불어 말하지 않더라.

 

〈보충설명1〉 굴원은 자신의 숭고한 뜻을 정치에 펼치지 못하고 귀양을 다니다가 ‘이소(離騷)’라는 유명한 대서사시를 지었습니다. 그의 제자 중에 송옥(宋玉)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있었는데 초사(楚辭)라는 문체를 빛내게 되어 굴원이의 글도 꽃피우게 되었습니다.

 

〈보충설명2〉 어부사는 많은 문장가들이 지었습니다. 굴원의 어부사는, 일편에서는 굴원이 지은 것이 아니고, 춘주전국시대가 끝난 후 한대에 이르러 굴원이를 사모하는 한(漢)대의 문장가들이 지은 것이라고도 얘기합니다.

 

〈보충설명3〉 굴원의 어부사에는 세속과 타협하지 않는 굴원 자신과, 은사(隱士)로서 세상을 바라보는 어부가 등장합니다. 둘이는 서로 다른 가치관을 첨예하게 대비시키면서 얘기를 이끌어 나갑니다. 이 작품에서 굴원은 자신의 청렴결백을 드러내고 있지만 금강경의 입장에서는 어부의 살림살이가 더 도(道)와 가깝습니다. 어부가 은사(隱士)로 등장하는 굴원의 어부사의 영향으로 당대(唐代)에는 은둔하며 지내는 스님들이 어부사를 많이 읊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스님이 선자화상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고려시대의 진각국사께서 어부사를 남겼습니다. 어부사는 금강경의 空사상과도 많이 일치합니다.

 

〈보충설명4〉 현명한 사람이라면 세상사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유연하게 받아들입니다. 바뀌어 가는 세상의 흐름에 맞추어 탁한 사람과도 함께하고 취한 사람과도 함께 어울려 지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강직한 굴원이는 자신이 청렴하기 때문에 세간의 더러움과 함께 어울릴 수 없었고, 타협할 줄 모르는 그 성품 때문에 결국 오월단오에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했습니다. 대만에서는 지금도 단오가 되면 굴원이를 기리는 행사가 행해집니다.

 

〈보충설명5〉 마지막 어부의 노래는 맹자에 소개된 공자의 일화에서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공자가 제자들과 함께 개울을 건너는데 어린이들이 모여 창랑의 물에 대한 노래를 불렀습니다. 제자들이 그 노래의 뜻을 물었을 때 공자는 ‘自取之矣(자취지의 : 스스로 취한다)’라고 대답 했습니다. 자기가 탁하게 살면 탁한 사람이 모이고 자기가 청정하게 살면 청정한 사람이 모입니다. 모든 것은 자기 자신이 짓고 자기 자신이 지은 대로 받는 것입니다. 〈계속〉

 

출처:법보신문/덕민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