直指·무비스님

사람들 평균수명 3만년때 나타나

通達無我法者 2009. 10. 19. 23:27

 

 

사람들 평균수명 3만년때 나타나

〈6〉제5불 구나함모니불(拘那含牟尼佛)


拘那含牟尼佛 賢劫第二 偈曰

佛不見身知是佛

若實有知別無佛

智者能知罪性空

坦然不怖於生死

구나함모니 부처님은 현재 현겁의 제2 부처님이다. 게송으로 말씀하셨다.

부처란 몸을 보지 않는다. 아는 것이 부처다.

만약 진실로 아는 것이 있으면 따로 부처라고 할 것은 없다.

지혜로운 사람은 능히 죄의 성품이 텅 빈 것을 알아서

편안하고 태연하여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현재 현겁의 두번째 2부처님

1회 설법으로 3만명 제도해

해설 : 구나함모니불에 대한 <장아함경>중 <대본경>의 이야기에는 이렇다. “사람들의 평균수명이 3만년을 살 때에 세상에 출현하셨으며 종성은 바라문이고 성은 가섭이며 아버지는 대덕(大德)이고 어머니는 선승(善勝)이시다. 청정성에 살았으며 오잠바라문 나무 아래에서 1회를 설법하시고 3만 명을 제도하셨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 게송은 부처님이란 어떤 존재인가라는 문제를 밝힌 내용이다. 불교란 깨달은 사람의 가르침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깨달은 사람을 부처님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사바세계 중생들의 특징을 말할 때 흔히 모양을 보고 마음을 낸다는 뜻에서 상견중생(相見衆生)이라 하듯이 그 내용에 기준을 두지 않고 모양에 팔려버린다.

게송에서 밝힌 바는 부처란 몸을 보지 않고 지혜로 아는 능력을 부처라고 하였다. 일찍이 원효스님도 신해(神解)라는 말을 써서 우리들 보통 인간들도 신비롭게 아는 능력이 있어서 그 신비롭게 아는 능력 그것이 위대한 존재라고 하였으며, 고덕들도 영지(靈知)라는 말을 써서 사람 사람들이 본래로 아는 이 능력은 참으로 신령스러운 일이라고 높이 평하였다. 신비하면서 신령스럽게 아는 능력이란 무엇인가? 배가 고프면 음식을 찾아 먹을 줄 알고 피곤하면 잠을 잘 줄 아는 이 능력이다. 부르면 대답할 줄 알고 춥고 더운 것을 알아서 잘 대처할 줄 아는 그 능력, 그 사실, 그 사람이다.

신찬(神贊)선사가 은사스님인 계현(戒賢)스님을 깨우치기 위해서 목욕을 함께 하였다. 은사스님의 등을 어루만지면서 “법당은 참 좋은데 부처가 영험이 없구나(好好法堂 佛無靈驗)”라고 하니 계현스님이 뒤를 돌아보았다. 다시 하는 말이, “영험도 없는 부처가 능히 방광은 할 줄 아는구나(佛無靈驗 也能放光)”라고 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그렇다 무슨 말을 들으면 알든 모르든 즉각 반응을 할 줄 아는 그 사실이다. 그 사실이 방광이며 신비롭고 신령스럽게 아는 능력이다. 이렇게 아는 것이 부처라는 말이다.

인류사에서 가장 부처님다운 훌륭한 부처님이 우리나라에 있다. 석굴암의 불상이다. 그러나 그는 추운 줄 도 모르고 더운 줄도 모른다. 불러도 대답이 없다. 저렇게 오래 앉아 있건만 배가 고픈 줄도 모르고 다리가 아픈 줄도 모른다. 당신에게 바친 돈을 누가 훔쳐가도 모르며, 심지어 누가 법당에 불을 질러도 모른다. 그와 같은 부처님이 세계에서 가장 아름답고 훌륭한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던가. 그래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욕심을 부당하게 채우기 위해서 간절히 빌고 때를 쓰지 않던가. 이와 같은 진실을 모르는 무지몽매한 중생들에게 구나함모니 부처님은 “부처란 몸뚱이가 아니라 아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곧 부처다”라고 하였다.

그래서 “사람이 곧 부처님이다”라는 인불사상(人佛思想)은 불교의 큰 근본이 되는 과거7불에서부터 역대 조사들을 거쳐 오면서 지금까지 변함없이 부르짖는 정법불교의 대선언이다. 모든 인간을 부처님으로 바로보고 바로 이해시키는 이 가르침보다 더 위대하거나 우선하는 가르침은 없다. 그가 언제 어디에 살고 무엇을 하는 누구이든 관계없이 모두가 이 큰 원리와 큰 원칙 안에 모두 포함되기 때문이다. 불교의 위대하고 훌륭한 점이 바로 이것이며 불교의 생명이다.

무비스님 / 조계종 전 교육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