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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란 무엇인가 ④ - 찰나.연박.원속.분위연기

通達無我法者 2010. 7. 11. 23:12

 

 

연기란 무엇인가 ④ - 찰나.연박.원속.분위연기

“연기는 무아 드러내는 강력한 수단”


지난 호까지 연기(緣起)는 윤회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를 설하는 가르침이요, 이것은 과거.현재.미래의 삼세에 걸쳐서 괴로움의 원인과 결과가 두 번 반복되는 삼세양중인과(三世兩重因果)를 핵심으로 하는 가르침이라고 설명하였다.

연기의 가르침은 최종적으로 12지 연기로 정착이 되었는데 이러한 12연기는 이미 다양한 부파의 여러 대가들에 의해 다양하게 설명되어 왔다.

북방 아비달마를 총괄하고 있는 <아비달마 구사론>에 의하면 아비달마에서는 연기의 가르침을 네 가지로 이해한다고 적고 있다.

 

존재론적 실체 상정 거부

제법무아론 명백한 제시

 

첫째, 한 찰나에 연기의 12지가 동시에 함께 일어난다는 주장인데 이것을 ‘찰나(刹那)연기’라 한다.

<구사론>은 탐욕으로 말미암아 살생을 행할 때 한 찰나에 12지가 모두 갖추어져 일어난다고 예를 들고 있다.

둘째, 12찰나에 걸쳐서 연속적으로 12지가 연이어서 상속(相續)한다는 것이 ‘연박(連縛)연기’이다.

셋째, 여러 생에 걸쳐서 시간을 건너뛰어서 12지가 상속한다는 것이 ‘원속(遠續)연기’이다.

넷째, 12지는 모두 오온을 본질로 하여 매순간 오온이 생멸하면서 상속하지만 특정 순간의 두드러진 상태(分位)에 근거하여 각각의 명칭을 설정한 것이라고 연기의 가르침을 설명하는 것이 ‘분위(分位)연기’이다.

<구사론>에 의하면 설일체유부는 이 분위연기를 12연기 해설의 정설로 채택하고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구사론>은 경(經)은 오로지 번뇌를 끊어(斷惑, 단혹) 해탈.열반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여 설해졌기 때문에 연기의 가르침을 ‘유정’에만 한정시킨 반면, 논(論)은 법의 참된 모습 즉 법상(法相) 혹은 제법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을 근본으로 하여 설하였기 때문에 분위로도 설하고 유정.비유정과 통하는 것으로도 설하였다고 밝히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이론은 이미 <대비바사론>에 나타나고 있는데, 분위와 원속은 오로지 유정에 국한되는 연기이고, 찰나와 연박은 비유정 즉 법에도 통하는 연기라고 한다.

이처럼 경에서는 유정 즉 중생의 괴로움의 발생구조와 소멸구조로 연기를 설하고 있지만 아비달마 즉 논의 가르침에서는 이러한 연기가 제법의 상호관계를 밝히는 것으로도 확장되었다는 것이다.

12연기를 비롯한 여러 각지의 연기의 가르침을 접하면서 우리가 명심해야 하는 더욱 중요한 사실은 연기는 ‘무아를 드러내는 강력한 수단’이라는 점이다.

연기의 가르침은 자아니 진아니 대아니 주인공이니 하는 존재론적인 실체를 상정하기를 거부한다.

연기의 가르침은 24연이나 6인-4연-5과라는 제법의 상호관계로 승화되어서 제법무아를 이론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중요한 관점이 있다.

그것은 괴로움을 소멸하기 위해서는 연기의 구성요소들 즉 12지 모두를 다 소멸시켜야 하는가라는 것이다.

그렇지 않다.

12가지 구성요소 가운데 어느 하나를 소멸하면 된다.

특히 인-과의 고리로 본다면 괴로움의 원인인 인(因)의 고리를 부수어야 하는데 갈애가 중점이다.

그래서 사성제에서도 괴로움의 원인으로 갈애를 들고 있으며 이 갈애가 남김없이 멸진된 경지를 열반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이 갈애를 없앨 것인가?

팔정도로 대표되는 37보리분법을 닦아서 없애야 한다.

이제 다음 호부터는 괴로움을 없애고 열반을 실현하는 구체적인 방법인 저 37보리분법에 대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