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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 ①

通達無我法者 2010. 7. 25. 21:34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사념처) ①

 

 - 왜 마음챙김인가

청정범행 닦음은 열반으로 완결

다섯가지 감각기능 의지처 마음

해탈과 연결시켜주는 중요 기능

 

37보리분법(菩提分法) 혹은 37조도품(助道品) 가운데 항상 제일 먼저 나타나는 가르침은 ‘네 가지 마음챙김의 확립(四念處, cattaro satipat.t.ha-na-)’이다.

먼저 필자가 항상 가슴에 품고 있는 초기불전 한 구절부터 소개한다.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어떻게 여인을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쳐다보지 말라.”

 

“세존이시여, 쳐다보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말하지 말라.”

 

“세존이시여, 말을 하게 되면 어떻게 대처해야 합니까?” “아난다여, 마음챙김을 확립해야 한다.” (<대반열반경>(D22) §5.9)

 

여기서 ‘마음챙김의 확립’으로 옮긴 원어는 사띠빳타나(sati-pat.t.ha-na)이다.

주석서에 의하면 이 술어는 두 가지로 분석되어 해석된다.

첫째는 사띠+우빳타나(sati+upat.t.ha-na)이고 둘째는 사띠+빳타나(sati+pat.t.ha-na)다.

전자는 마음챙김의 확립으로, 후자는 마음챙김의 토대로 옮겨진다.

전자는 마음챙김을 일으키는 행위를, 후자는 마음챙김의 대상을 강조한다.

이 둘 가운데 전자의 의미가 더 원래적이라 할 수 있다. 사띠+우빳타나(sati+upat.t.ha-na)로 이해한 것이 이미 초기불전(S54:1, S54:13 등)에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 마음챙김(念, sati)에 대해서 살펴보자.

마음챙김은 빠알리어 사띠(sati, 念, 기억)의 역어인데 이것은 √smr.(기억하다)에서 파생된 추상명사로 사전적인 의미는 ‘기억’이다. 그러나 초기불전에서 사띠(sati)는 거의 대부분 기억이라는 의미로는 쓰이지 않는다.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일 때는 주로 접두어 ‘anu-’를 붙여 ‘아눗사띠(anussati)’라는 술어를 사용하거나 √smr.에서 파생된 다른 명사인 ‘사라나(saran.a)’라는 단어가 쓰인다.

물론 수행과 관계없는 문맥에서 사띠는 기억이라는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한국에서 사띠는 마음챙김으로 정착이 되고 있다.

그러면 사띠를 왜 기억 등으로 옮기지 않고 마음챙김으로 옮겼나?

 

먼저 경을 인용한다.

 

“바라문이여, 다섯 가지 감각기능(눈.귀.코.혀.몸)은 마음(意)을 의지한다.

마음이 그들의 대상과 영역을 경험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마음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마음은 마음챙김을 의지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마음챙김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마음챙김은 해탈을 의지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해탈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해탈은 열반을 의지한다.”

 

“고따마 존자시여, 그러면 열반은 무엇을 의지합니까?”

“바라문이여, 그대는 질문의 범위를 넘어서버렸다.

그대는 질문의 한계를 잡지 못하였구나.

바라문이여, 청정범행을 닦는 것은 열반으로 귀결되고 열반으로 완성되고 열반으로 완결되기 때문이다.”(<운나바 바라문 경>(S48:42)

 

이처럼 마음챙김은 마음을 해탈과 연결시켜주는 중요한 기능을 한다.

그래서 마음챙김으로 옮겼다.

그리고 2세기(후한 시대)에 안세고(安世高)스님이 옮긴 <불설대안반수의경>(佛說大安般守意經)이라는 경의 제목을 주의해볼 필요가 있다.

여기서 안세고스님은 아나빠나(a-na-pa-na, 出入息, 들숨날숨)를 안반(安般)으로 음사하고 있으며,

사띠는 염(念)이 아닌 ‘수의(守意)’ 즉 마음(意, mano)을 지키고 보호(守)하는 기능으로 의역하고 있다.

이처럼 이미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던 최초기에 마음챙김은 보호로 이해되어 왔다.

이런 것을 참조해서 사띠를 ‘마음챙김’으로 옮겼다.

 

 초기불전연구원 지도법사

 

[불교신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