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42

通達無我法者 2011. 1. 6. 00:25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어리석음은 선하지 못한 모든 것의 으뜸이 되는 근본원인입니다.

어리석어서 탐욕을 일으키고 탐욕으로 인해 화를 내게 됩니다.


어리석음은 다양한 형태로 나타나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들이

무명, 무지, 미혹, 둔함, 망상, 현혹, 맹목성, 들뜸, 의심 같은 것들입니다.


세속에서의 어리석음은 이처럼 다양한 것들로 가득차있지만

출세간의 어리석음은 대상의 성품인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대상을 관념(觀念)으로 보는가, 실재(實在)로 보는가에 따라서

어리석음의 유무를 구별할 수가 있는데

실재를 보는 것이 바로 진리를 보는 것입니다.


실재는 궁극적인 진리인데, 사물의 이치가 마지막까지 다다른 것으로

존재하는 것들의 속성인 무상과 괴로움과 무아를 아는 것입니다.


어리석어서 대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잘못된 견해로 보았기 때문에,

모든 것이 변하고, 괴로움이 있고, 자아가 없다는 것을 모릅니다.


관념적인 진리는 겉으로 드러난 세상일의 이치를 보고서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깨달음의 진리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찰해야만 알 수가 있습니다.


세상일로 본 진리는 자아를 가지고 본 것이라서 결코 바르게 볼 수가 없습니다.

자기 자신의 몸과 마음을 볼 때만이 자아가 없이 본 것이라서 가장 참된 것입니다.


어리석음은 맹목적인 것이라서 맹신에 빠지기 쉽고 마치 화약과 같습니다.

잘못된 것을 오히려 잘된 것으로 아는 것처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어리석음으로 인해 들뜨고 흥분하고 산만해지는데

이런 상태에서는 선한마음의 작용인 알아차림을 할 수가 없어

결코 지혜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어리석음으로 인해 의심을 하게 되는데, 의심은 불확실한 정신적 상태이며,

주저하는 마음으로 바르게 알고자하는 것을 가로막습니다.


의심은 사물에 대한 사변으로는 결코 치유될 수 없는 것입니다.

경험이 아닌, 순수한 사유만을 통해서는 바른 인식을 갖기가 어렵습니다.


모든 종류의 어리석음은 모른다는 것으로, 이것을 치유하는 단하나의 길은

자신의 몸과 마음을 통찰하는 수행을 통해서 집착을 끊는 것입니다.


어리석음을 치유하는 유일한 길은 '내가 몰랐네!’ 라고

어리석은 그 사실자체를 다시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오늘도 지난시간에 이어서 부처님의 고행과 깨달음의 세계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다섯 명의 동료수행자들이 떠난 뒤에도

고타마 싯다르타는 계속해서 정진을 하였습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수많은 지나간 생애를 다음과 같이 회상했습니다.

첫 번째 삶, 두 번째 삶, 그리고 셋, 넷, 다섯, 열, 스물, 쉬운 번째 삶까지,

그리고 나서 일백년, 천년, 십만 년,

그리고 나서 많은 세계의 분회, 많은 세계의 분회와 진화

그 당시에  있었던 그의 그러저러한 이름, 가정,

그 당시에 있었던 신분, 또는 먹었던 음식,

그가 경험한 기쁨과 괴로움, 그의 삶의 마감까지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곳을 떠나서 그밖에 다른 곳에 가서 태어났습니다.

그에 따른 그의 이름, 그의 가정, 그의 계층, 그의 음식,

그가 겪은 기쁨과 괴로움 그러한 그의 삶의 마감까지.


그리고 나서 그곳을 떠나 지금 여기에 와서 태어났습니다.

이와 같이 그는 전생에서 여러 가지 모습을 상세하게 회상해 보았습니다.

이것이 바로 초기 경에 그가 깨달은 첫 번째 앎입니다.


이와 같이 과거에 대한 무지를 떨쳐버리면서 그는 자신의 순수한 마음을

존재들이 사라지고 다시 나타나는 것을 인식하는 대로 돌렸습니다.


뛰어난 통찰력과 투시력으로 그는 존재들이 한 상태에서 사라졌다가

다른 곳에서 다시 나타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비천함과 고귀함, 아름다움과 추함, 행복과 불행과 같은 모든 것들이

그들의 행위에서 나타남을 보았습니다.


그는 이러한 선한 개체들이 나쁜 행위, 나쁜 말, 나쁜 생각에 의해서

성스러운 자들을 욕하고, 그릇된 신앙 때문에 그들의 육체가 분해가 된 사후에

고통을 받는 상태로 다시 태어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는 이러한 선한 개체들이 좋은 행위, 좋은 말, 좋은 생각에 의해서

성스러운 자들을 비방하지 않으며, 올바른 믿음으로 올바른 신앙자들의 삶을

따라가기 때문에 그들의 육체가 분해 된 사후에

행복한 천상에 태어나게 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혜안으로 그는 존재들이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것이 마치 바로 한밤중에 깨달은 두 번째 앎이었습니다.


미래에 대한 이와 같은 무지를 몰아내면서 그는 그의 순수한 마음을

번뇌의 소멸을 깨닫는 대로 돌렸습니다. 그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괴로움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일어남이다.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이다 .

이것은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길이다. 라고

고집멸도 사성제의 진리를 깨달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이번에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번뇌다.

이것이 번뇌의 일어남이다.

이것이 번뇌의 소멸이다.

이것은 번뇌의 소멸을 이끄는 길이다.


이와 같이 이해하고 깨닫게 되자,

그의 마음은 감각적인 갈망에 번뇌로부터, 존재하려는 번뇌로부터,

어리석음의 번뇌로부터 완전히 해방되었습니다.


해방이 되자 그는

“나는 해방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나는 깨달았다. 윤회는 끝났다.

삶은 성스러움으로 넘친다.

이루어야할 것은 다 이루어졌다.

이 이상의 상태는 다시없다.”

이것은 새벽에 깨달은 세 번째 앎이었습니다.


“이제 무지는 사라졌다. 그리고 지혜가 생겼다.

어둠은 사라졌다. 그리고 빛이 생겼다.”

이렇게 부처가 깨달음을 반조합니다.


여기서 오늘 우리가 주목할 것은

고타마 싯다르타가 고행을 하면서 고행이 무의미하다는 사실을 알고

고행을 풀었다는 것입니다.

왜 고행을 풀었는가가 중요합니다.


고타마 싯다르타는 극한 상황에 이르러서 죽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죽으면 끝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런데 자기의 고행은 오직 죽음으로만 갈 뿐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떤 평화도 어떤 깨달음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생각했습니다.

죽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죽는 것에 대한 의문이 생긴 것입니다.

그래서 왜 죽는가?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고타마 싯다르타는 늙어서 죽는 것이 태어났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구나! 죽는 것은 태어났기 때문이구나!”

그리고 다시 반문 했습니다. 그러면 왜 태어나는가?

그리고 왜 태어남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태어남에 원인은 업에 생성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왜 업의 생성이 일어났는가를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업의 생성은 집착을 했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구나! 내가 집착을 해서 업을 생성시켜서 태어났고

태어났으니까 늙어서 죽는 이런 일련의 과정이 있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자 왜 집착을 했는가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렇다. 왜 집착을 했는가?

그래서 집착의 원인을 살펴보니까 그것은 갈애, 갈망, 욕망이었습니다.

“아! 욕망 때문에 집착을 했구나!” 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그렇다고 한다면 왜 갈애를 일으키는가? 라는 의문에 부딪쳤습니다.

그리고 나서 갈애가 일어난 원인을 발견했는데,

그것이 바로 느낌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구나! 느낌 때문에 갈애를 일으켜서 집착했구나!”


사실 느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모든 것이 느낌입니다.

사랑, 명예, 돈, 술 모든 것이 느낌입니다.

그런 느낌을 항상 더 증폭시키려는 것이 우리들의 현실입니다.


그렇다면 고통을 일으키는 이 느낌은 왜 일어났는가? 라고 반문해보았습니다.

그러자 느낌의 원인은 접촉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부딪침이라고 하는 것인데, 느낌은 부딪침에 의해서 일어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때의 접촉은 안이비설신의 라는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색성향미촉법에 부딪쳐서 일어나는 것을 말합니다. 이때 느낌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왜 접촉하는가를 보니까 역시 접촉의 원인은

안이비설신의라는 감각기관이 있어서 색성향미촉법에 접촉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왜 생겼는가? 라고 반문했습니다.

그러자 여섯 가지 감각기관의 원인이 바로 정신과 물질,

나마 루빠(nama rupa)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을 또 다른 말로는 몸과 마음이라고 합니다.


그렇습니다! 몸과 마음이 생겨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있고,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여섯 가지 감각대상에 부딪쳐서 느낌이 일어나는구나!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알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시 반문했습니다.

정신과 물질은 왜 일어나는가? 라고 보니까

정신과 물질을 일으킨 것은 재생연결식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러니까 선행하는 마음이 있어서 그 마음의 상태에 따라서

정신과 물질이 생긴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바꾸어 이야기하면 인간으로 태어나는 마음이 선행되면, 인간의 몸과 마음이 되고

개의 수준에 마음이 있었다면, 개로 태어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것을 재생연결식이라고 합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재생연결식은 왜 생겼는가? 하는 의문을 가졌습니다.

그래서 재생연결식이 생기는 원인을 보니까 과거에 업의 형성, 마음의 형성력,

과거의 행위로 말미암아서 현생의 재생연결식이 생겼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구나! 어떤 행위가 있어서 그 행위로 말미암아서 재생연결식이 생겼구나!”

라고 알았습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 행위는 왜 일어났는가라고 반문해보았습니다.

그러자 그 행위의 원인은 무명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 무명은 ‘모른다’입니다. 무지, 모른다 라는 뜻입니다.


“그렇구나! 몰라서 행위를 해서 재생연결식이 생겼고,

그래서 재생연결식의 수준에 맞는 몸과 마음이 생겼고,

그리고 몸과 마음이 생겨서 여섯 가지 감각기관이 생기고,

감각대상에 부딪쳐서 느낌이 생기고,


느낌이 있어서 갈애가 일어나고,

갈애가 일어나서 집착을 하게 되고

집착을 해서 업의 생성을 일으키고,

업의 생성 때문에 미래에 태어남이 있고,

태어났으니까 결과적으로 죽어야하는구나!” 라는

일련의 과정을 알았습니다.


이렇듯 행의 원인인 무명을 알게 되었습니다.


다시 반문했습니다.

무명의 원인은 무엇일까? 라고 생각해보니까

무명의 원인이 무명이라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렇구나! 모르는 것 그 이전으로 거슬러 갈수가 없구나!” 라고 해서

죽음의 즈음에서 죽음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죽음의 원인을 추적한 결과

그 끝이 무명 때문에 시작되어서 죽음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12연기의 역관입니다. 역으로 본 연기를 말씀드리는 것입니다.


이렇게 역관으로 본 12연기를 아신 뒤에 무명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것이 없어서

다시 무명으로부터 시작해서 순관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렇다! 무명을 원인으로 행이 일어나고,

행을 원인으로 재생 연결식이 일어나고,

재생연결식을 원인으로 정신과 물질이 일어나고,

이렇게 역관과 순관을 오르락내리락하시면서,

인류사의 가장 위대한 사상 중에 하나인

‘원인과 결과’라는 진리를 발견하신 겁니다.


인류의 역사상 오직 유일하게 부처만이 원인과 결과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인류 역사상 원인과 결과라는 연기의 사실은

누구도 밝힐 수 없을뿐더러 오직 부처만 밝힐 수 있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이 연기를 통해서 다시 수행을 시작하시게 됩니다.

오늘은 여기까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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