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불교/12연기와 위빠사나·묘원법사

12연기와 위빠사나/122

通達無我法者 2011. 2. 22. 23:03

 

 

  

 

안녕하십니까? 묘원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만약 여러분들께서 좌선을 하기를 원하신다면

다음과 같이 하시기 바랍니다.


먼저 자리에 앉아 편안하게 몸의 긴장을 풀고 살며시 눈을 감습니다.

턱을 아래쪽으로 약간 당긴 뒤에 허리를 바로 세웁니다.

발은 양발을 가지런히 놓은 평좌를 하거나

반가부좌나 결가부좌를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좌선을 시작하면 먼저 현재의 마음부터 알아차립니다.

바라거나 화를 내거나 두려운 마음이 있는지를 보십시오.

만약 어떤 마음이 있으면 그냥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아무런 마음도 없으면 그냥 덤덤한 마음을 알아차리십시오.


그리고 그 마음이 일을 시작합니다.

먼저 몸으로 와서 잠시 눈꺼풀이 닿아 있는 느낌을 주시하십시오.

이 때 눈꺼풀을 눈으로 보지 말고 느낌으로 알아차리십시오.

다음에 차례로 입술의 느낌과 손의 느낌과

엉덩이가 바닥에 닿는 느낌을 알아차리시기 바랍니다.

그런 뒤에 편안하게 앉아 있는 몸 전체를 알아차립니다.

몸 전체를 주시하면 몸의 일부에서 움직임이 발견됩니다.


위빠사나 수행에서 몸을 알아차리는 방법은

몸을 전체로 보거나 때로는 부분적으로 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몸을 알아차리다가 그 대상이 끝나면

몸을 전체로 알아차리기 시작해야 합니다.

전체로 알아차렸을 때 어딘가에 움직임이 발견될 것입니다.


그러면 코, 가슴, 배, 또 그리고 몸의 어느 일부,

아니면 전면에서 움직임이 일어나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때 그 움직임이 있는 곳을 겨냥해서

차분히 일어나고 꺼지는 호흡을 주시해야 합니다.

몸을 알아차릴 때 호흡은 주 대상이므로,

다른 대상이 나타나면 그 대상을 알아차린 뒤에

그 대상이 사라지면 다시 호흡으로 옵니다.


망상이 일어나면 망상이 일어난 것을 알아차린 뒤에

망상하는 마음을 보고 가슴에서 느낌을 알아차립니다.

그 느낌이 사라진 뒤에 주 대상인 호흡을 알아차리면 됩니다.


통증이 일어났을 때는 통증 때문에 반응한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통증의 성품인 찌름, 당김, 쑤심 같은 실재하는 현상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졸음이 올 때는 졸음과 싸우지 말고, 

졸릴 때 희미한 마음과 무거운 몸을 번갈아 가면서 알아차려야 하겠습니다.


좌선 중에 이따금씩 지금 내 마음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지금 자세가 바른가? 그리고 몸은 긴장하고 있지 않은가? 이렇게 살펴봐야 하겠습니다.


이때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은 마음의 노력이고

몸을 알아차리는 것은 몸의 노력에 속합니다.


좌선이 끝나면 바로 현재의 마음을 알아차린 뒤에

노력과 알아차림과 집중이 적절했는지를 살펴봐야 합니다.

그냥 좌선을 풀지 말고 좌선이 끝난 뒤에 끝난 현재의 마음을 다시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리고 잠시 좌선을 하는 순간에 과연 노력은 적절했으며, 알아차림은 적절했으며,

집중은 되었는지를 다시 한 번 살피는 것이 수행에 도움이 됩니다.


수행자 여러분!

지난 시간에 이어서 위빠사나의 아누빠사나에 대해서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위빠사나의 빠사나를 한문으로는 따를 수(隨)자를 써서 수관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때의 수관은 따라가면서 본다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으로 알아차리는 것을 말합니다.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에는 대상과 아는 마음에 갭이 있으면 안 됩니다.

일어나는 순간에 일어나는 것을 함께 정확하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생각이 들어와서 지혜가 성숙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위빠사나 수행의 알아차림을 즉시성, 현장성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밀착 될 때만이 불이 나서 지혜가 생깁니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의 정법 수행자인 쑤시마에게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쑤시마여! 도, 과를 성취하는 것은 집중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위빠사나의 지혜로 인하여 도, 과를 성취하는 것이다.

위빠사나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고, 바람직한 결과를 이룰 수 있으므로,

오로지 이를 통해서만이 도, 과를 성취할 수 있다. “


그렇습니다.

수행을 시작하면 알아차려서 집중이 되어야 하지만 이것이 목표는 아닙니다.

집중에 의해서 지혜를 얻어야 합니다.

지혜가 나야 무상, 고, 무아를 알아서 열반을 성취합니다.

이것이 바로 계, 정, 혜 삼학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습니다.

“실로 쑤시마여! 진리 안에 머무는 지혜가 먼저이고 이 후에 열반에 대한 지혜가 있다.”


이 말은 “실로 쑤시마여!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가 먼저 오고,

다음으로 열반의 지혜가 뒤따른다. “ 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여기서 진리 안에 머무는 지혜를 한문으로 법주지라고 하는데

이것은 대상을 지속적으로 알아차려서 얻는 지혜를 말합니다.


대상을 알아차릴 때 어떤 고정관념 없이 탐욕, 성냄, 어리석음 없이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가 난 뒤에 도, 과를 성취하는 열반에 이릅니다.

있는 그대로 알아차리는 지혜를 여실지견이라고 합니다.

있는 그대로 아는 지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항상 일어나고 사라진다는

실재에 대한 통찰을 의미합니다.


달리 말하자면 수행자는 꿰뚫는 통찰력으로

처음에는 일어남과 사라짐의 현상이 바로 고통뿐인 사실을 먼저 깨닫고,

그 다음으로 조건 지어진 현상은 불쾌하며 혐오스럽고 전혀 바람직하지 않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여기서 조건 지어진 현상을 유위법 또는 유루(有漏)라고 합니다.

유위법은 원인과 결과가 있는 조건 지어진 현상을 말합니다.

마음, 마음의 작용, 몸, 이렇게 세 가지를 말하는데 이것이 바로 오온입니다.

그리고 조건이 없는 현상은 무위법, 또는 무루(無漏)라고 합니다.


무위법은 원인과 결과가 없는 것으로 열반을 뜻합니다.

이들 네 가지를 합쳐서 빠라마타 담마 또는 최승의법이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두 단계의 통찰을 거쳐

마지막 단계의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고 명백히 가르치셨습니다.


초전 법륜경에서는 세 단계의 지혜 즉,

진리를 아는 지혜, 그리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아는 지혜

그리고 진리를 완수하는 것을 아는 지혜를 말씀하셨습니다.

잠시 이 세 가지에 대해서 살펴보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얻는 지혜를 다음 세 단계로 나누었습니다.

첫 번째 빨리어로 사짜냐나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성제의 진리를 아는 지혜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괴로움에 대한 성스러운 진리, 성자들만이 아는 진리인 고성제이다.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들에 관해서

나의 내면의 눈이 일어나고, 지혜가 일어나고, 통찰지혜가 일어나고,

명지가 일어나고, 광명이 일어났다.”

이렇게 괴로움의 진리를 아는 지혜가 일어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두 번째 지혜는 빨리어로 끼짜냐나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아는 지혜를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고성제의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아는 지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고성제는 바르게 잘 이해되어야 한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에 관해서 나의 내면의 눈이 일어나고

지혜가 일어나고 통찰지혜가 일어나고 명지가 일어나고 광명이 일어났다. “

이렇게 괴로움의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아는 지혜가 일어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깟따냐나입니다.

이것은 진리를 완수하는 것을 아는 지혜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성제의 진리를 완수한 것을 아는 지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이 고성제를 완전하고 바르게 잘 깨달았다.

그래서 비구들이여! 전에 들어보지 못한 법에 관해서

나의 내면의 눈이 일어나고 지혜가 일어나고 통찰 지혜가 일어나고

명지가 일어나고 광명이 일어났다. “

이렇게 괴로움의 진리를 완수한 것을 아는 지혜가 일어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차례대로 집성제와 멸성제와 도성제에 대하여 계속해서

진리를 아는 지혜, 진리를 실행할 것을 아는 지혜,

진리를 완수한 것을 아는 지혜가 일어난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우리는 그냥 지혜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먼저 진리를 아는 지혜를 얻고자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진리를 실행하는 것을 아는 지혜를 얻고자 노력해야 되겠습니다.

그런 결과로 마지막인 진리를 완수한 것을 아는 지혜가 일어난다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궁극의 진리를 얻고자 할 때 그냥 우연히 오는 것이 아니고,

이러한 일정한 단계에 의해서 점진적으로 지혜가 성숙된다는 것을 유념하셔야 하겠습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것은 이 세상에서 깨달음을 얻은 것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 선포는 자신이 어떤 외부의 지도나 가르침이 없이

스스로의 경험과 직관의 지혜로 진리를 찾아서 정등각자가 되신 것을 밝히신 것입니다.


이러한 선포가 있은 뒤에 마침내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시기 시작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이러한 선포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들에 대한 선포이십니다.

지각이 있어서 알아들을 수 있는 모든 생명에 대해서 부처님은 선포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선포가 있은 뒤에 비로소 전법을 하신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 나의 내면의 눈이 일어나고, 지혜가 일어나고, 통찰 지혜가 일어나고,

명지가 일어나고, 광명이 일어났다” 라고 선포하신 뒤에

마침내 법의 수레바퀴를 돌리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이 길은 성스럽고 숭고한 길입니다.

그러므로 길고 지루한 사마타 수행의 길을 따라가지 말고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지름길인 위빠사나 수행의 길로 갈 것을

초보 수행자들에게 권하는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부처님께서 선언하신

“나의 내면의 눈이 일어나고 지혜가 일어나고 통찰지가 일어나고

명지가 일어나고 광명이 일어났다.”는 것은

모두 지혜를 얻은 여러 가지 단계의 과정을 설명하신 것입니다.

이 말들은 모두 하나의 지혜를 뜻합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제 우리들의 길은 정해졌습니다.

인간으로 태어나서 가장 바람직하게 사는 길은 선하게 사는 것이고

그 선하게 사는 길을 완수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그 수행은 사마타 수행의 선정의 고요함을 얻어서 먼저 번뇌를 소멸시키는 것과

그리고 번뇌를 소멸시키는 단계를 뛰어 넘어서 궁극의 해탈을 얻는

위빠사나 수행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서 사는 가장 바람직한 사명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겠습니까?

우리는 일상의 알아차림을 해야 하겠습니다.


이 일상의 알아차림이란 것은 좌선과 경행뿐이 아니고,

아침에 눈을 떠서 잠자리에 일어나서 밥을 먹고 옷을 입고

그리고 청소를 하고 출근하고 하는 모든 것들을 다 통틀어서 말하는 것입니다.


직장인이 직장에서 근무를 할 때에도 알아차림이 있어야 하겠고

수행자가 수행을 할 때에도 물론 알아차림이 있어야 하겠지만

걷거나 앉거나 누울 때 차를 탈 때에나 모두 알아차릴 대상들인 것입니다.


이렇게 수행을 해서 우리는 지고의 열반을 얻어야 하겠습니다.


그 지고의 열반은 어느 한 순간만 알아차리는 것이 아니고

눈을 떠서 저녁에 잠자리에 들 때 까지 모든 과정을 빠짐없이 주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처음에는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단 한 순간이라도 알아차리는 것을 시작하면

한 순간이 두 순간이 되고 두 순간이 세 순간이 되어서

조금씩 조금씩 알아차림의 영역을 넓혀 갈 것입니다.


수행자 여러분!

이렇게 하면 더욱 밀밀한 알아차림이 유지되어서

우리는 궁극의 열반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상좌불교한국명상원 원장/묘원법사 

http://cafe.daum.net/vipassanacent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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